서양미술사 참고자료/아카데미즘

서양미술사31 아카데미즘: 부궤로

AH101 2012. 2. 16.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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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Adolphe Bouguereau/Self-Portrait, 1879


19세기 후반 프랑스 화가이며 아카데미즘(Academism)의 대표자인 윌리엄
부궤로(William Adolphe Bouguereau:1825∼1905)
는 어려서부터
미술 소질이 뛰어나 일찍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앵그르에게 배우며 두각을
나타내었다. 아카데미즘(Academism)이란 어려서는 교육기관에서 졸업
후에는 아틀리에에서 처음 6개월은 대작들을 카피하고, 조각을 보며 스케치
연습 등 붓을 잡기까지 최소한 1년이 걸리는 도제방식의 연마(Academic Art)를
말한다. 이렇게 스승 밑에서 5, 6년의 힘든 시기를 거쳐, 기본과 안정적인 구도
를 강조하는 전통 회화의 방식-원근법과 해부학적인 관점을 중시한 사실적인
묘사를 터득하여 회화에 있어서 누적된 지식과 기술, 훈련으로 인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근육, 핏줄, 뼈대, 생생한 색깔 등 표현력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준에 오를 수 있었다.

부궤로는 평생 그림을 그리며, 또한 자신이 배운 방식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800점이 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후 인상주의나 사실주의 화가들과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을 만큼 부궤로의 그림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보고 나면
오래 기억되며 또 다시 보고 싶어질 만큼 매우 인상적이다.
잠시 시선을 맞추고 감상하면, 직접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 있는 듯, 그 당시의
상황과 현장 속에 함께 있는 듯한 신비한 마술에 빠져들게 된다.
부궤로는 주로 고전적이고 종교적인 그림을 그렸다. 형식과 기법 면에서는 다비
드, 앵그르의 신고전풍 전통을 이었다. 그의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정교하면서도 극사실적인 표현이 주는 자연스러움에 있으며, 내면까지 표현해내
는 감상적인 주제 해석에 있다. 현대에 와서 일부 비평가들은 부궤로를 독창적
시각과 기법상의 대담성을 갖지 못했으며, 매끈하고 판에 박힌 인간의 모습을
그린 화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유 있게 감상해 보면 그런 평가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직후에 태어나 전통과 현대의 사이에서 겪게되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는 부궤로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스케치를 하라던 스승의 명을 거역하고
아틀리에를 뛰쳐나온 마네, 작업실에서 과거의 명작들을 반복해서 그리는 틀에
박힌 시스템에 반대하고 자유로운 개성을 추구하는 이들, 그리고 주류에 편입
하지 못했던 작가들의 모임 등 캔버스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 자연의 모습을
담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인상파 화가들의 등장인 것이다.
당시의 주류였던 아카데미즘 화가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주제 의식이
없고 불안정한 구도, 자연의 모습 등 완성하지 않은 스케치에 불과한 것이라고
조롱하며 살롱에 전시되는 것에 반대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인상파 화가들은 그들만의 전시를 시작하였다.
양자의 대립과 반목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인상주의에 밀려 아카데미즘의
대표자로 인식된 부궤로는 집중적인 비난으로 그의 그림들은 미술관에서 조차
퇴출, 사장되고 그의 이름은 서양미술사에 사라지게 된다.
이제는 그의 그림이 몇점이나 되고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출처조차 찾기
힘들며 아직도 그가 몇년에 죽었는지(1905?) 조차도 잘못 기록되어 있는 현실
이다.

1977년 콜럼비아대학에서 미술교육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Fred Ross는 어느 날
Clark Museum에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러갔다.
그는 그 구석에서 처음으로 부궤로의 작품을 보았다.
그는 알고있는 모든 작가들을 생각해 보았으나 부궤로란 인물이 도무지 누구일
까 떠오르지가 않았다. 부궤로를 알고 있는 사람도, 자료도 찾기 힘든 상황에서
그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는 생전에 엄청난 경력을 가진 화가가 어떻게 철저
하게 묻혀질 수 있는지를 밝혀내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대를 연구하고 내버려진
작품들을 찾아다니며 이 사건이 부궤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궤로에 대한 말도 안되는 편견과 인신공격, 악의적 왜곡이 수십년간 지배하였
고, 인상파와 그 뒤를 이은 현대미술, 그리고 대량생산을 선호하는 딜러들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희생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부궤로의 작품은 새로운 조명을 받으며, 작품 가격이
치솟고 회고전이 파리와 몬트리올 등지에서 열리는 등 활기를 되찾아 지금은
세계 100여 박물관에서 자랑스럽게 전시되고 있다.

Dante and Virgil in Hell, 1850

Fraternal Love, 1851

The Dance, 1856

All Saints' Day(Le jour des morts), 1859

Rest at Harvest, 1865

The Thanks Offering, 1867

Art & Literature, 1867

Young Shepherdess, 1868

The Shell, 1871


아이의 호기심은 왕성하다. 그들은 늘 입에 "왜?"라는 질문을 달고 다닌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섭렵한다고 해도 아이들은 아마 만족해하지 않을 것이다.
궁금하는 게 그들의 본능이고, 더 알고자하는 게 그들의 욕망이니까.
아이들의 이런 태도는 때로 어른들을 짜증나게 한다. 대답하고 대답해도 되돌이
표처럼 끝없이 돌아오는 질문들. 마치 엄마, 아빠를 괴롭히려고 이 세상에 태어
난 듯 아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어른드을 벽에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의 끝없는 질문은 아이들
의 성장단계에서 필수적이고 중요한 부분이니까. 이때 얼마나 아이를 지혜롭게
잘 대해주느냐가 아이의 지능이나 정서 능력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좋은 부모는 아이들의 질문에 다 답을 해주는 부모가 아니라, 그 질문이
삶에 대한 영원한 호기심과 외경심, 도전 정신으로 이어지도록 도와주는 부모
이다. 부궤로의 <조가비>에서 어머니는 딸에게 지금 조가비에서 나는 쇠를 들려
주고 있다. 흔히 조가비 안에는 바다의 소리가 들어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우주가 얼마나 무궁무진한 곳인지, 삶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딸에
게 깨우쳐 주고 있다. 아이의 질문이 더 심원하고 아름다운 질문으로 자라나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보노라면 아이의 질문에 대한 가장 훌륭한 답
은 특정한 답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이 담긴 새로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Nymphs & Satyr(님프와 사티로스), 1873


사티로스는 그리스신화의 주신(酒神) Bacchus를 섬기는 반인반수의 숲의 신이다.
술과 여자를 몹시 좋아했는데, 4명의 님프들이 사티로스를 호수로 끌어 들일려고
희롱하며 놀고 있다.

Child Braiding a Crown, 1874

Cupidon, 1875

At the Edge of the Brook, 1875


이 그림은 가장 섬세한 인물화 중 하나이다. 매우 신비롭기도 하지만 아름답고
친절해 보이는 농부의 소녀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그녀는 선함과 신뢰의 눈으로 관람자를 진정한 친밀감으로 바라보고 있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기에 그러한 신뢰를 가진다. 이것이 부궤로의 인간상에서
표현되는 최고의 가치이다. 상징적으로 소녀는 강의 끝자락에 앉아있다.
아마도 그녀는 인생의 최고의 갈림길에 있는 것일까? 이를 말이라도 하듯 그녀
의 손과 다리는 엇갈려 앉은 자세이고 오른편의 나무 또한 그러하다.
그녀의 머리에는 어린나이의 영성을 나타내 듯 빨간색의 꽃으로 열근 꽃 모자를
쓰고 있다.

The Secret, 1876

Return from the Harvest, 1878

Charity, 1878


이 작품은 2000년 여름 360만불에 팔리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림 속의 아름다운 여인은 5명의 아기에게 모유와 양식, 그리고 지식을 공급
하고 있다. 모유를 먹이는 것은 여인의 노출된 가슴이 상징하고 있고, 여인
스스로 아기들을 돌보는 의지가 묘사되어 있다. 여인의 왼편 발 아래에는 금전
과 은전이 쏟아져 나온 동전통이 보인다. 이는 아이들의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음을 상징하고 있으며,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소유라도 지불 할
의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녀의 오른쪽 발 아래에는 아이가 책에
기대여 있다. 이는 아이들의 교육적 양육을 의미한다. 헌신과 자비의 이미지가
배어 나오는 작품이다.

Rest, 1879

The Birth of Venus, 1879

The Flagell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1880

Temptation, 1880

Young Girl Defending Herself Against Cupid, 1880


한 젊은 아가씨가 큐피드의 화살을 웃으며 거부하고 있다. 큐피드는 기어코
아가씨의 가슴에 사랑의 화살을 꽂으려고 왼쪽 다리까지 여자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기를 쓰지만 아가씨는 그런 큐피드를 부드럽지만, 단호히 밀어내고
있다. 이 아가씨는 왜 사랑을 거부하는 것일까? 사랑이 두려운 것일까?
큐피드가 지금 이 순결한 아가씨에게 더욱 더 화살을 꽂으려고 안달하는 것은
비록 사랑을 거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큐피드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서 사랑
을 경험하지 못한 처녀로서의 호기심과 설레임 같은 감정이 슬쩍 엿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가씨와 큐피드는 서로 밀고 당기지만 결국에는 큐피드가
처녀에게 사랑의 화살을 꽂으며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아가씨! 사랑의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며, 사랑의 죽음 또한 두려워하지
말기를..."

윌리엄 부궤로는 신고전주의 대가답게 색채보다는 먼저 수학적 인체비례에
기초한 정확한 형태 구축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완벽한 구조를 만들어내기
까지 수많은 데생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인상주의자들은 그를 경원시했으며,
특히 르느와르는 규칙에 얽매인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보면 "에이! 부궤로
같은 놈 같으니라고."라고 비난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림을 보라. 앉아있는 저 아가씨는 마치 그려진 조각상 같지 않은가.
대리석 같이 하얗고 매끈한 피부와 뚜렷한 인체의 선은 앉아있는 조각같다.
그렇지만 저 아가씨의 아름다운 신체에선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살과 뼈와 피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역동적인 느낌보다는 서서 감탄하듯 바라
봐야하는 비너스의 조각상 같은 느낌만 있을 뿐이다. 마치 피그말리온이
인간이 되기 전의 갈라테이아 조각을 감상하듯이 말이다.
부궤로의 그림들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성이라고 평가받지만, 그 이야기들
속엔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속의 오욕칠정의 더럽고 추한 모습은 하나도 보이
지 않고, 젊은 여인들이나 사랑스런 소녀, 귀여운 아기 천사들이 등장하여
만드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상적인 미의 세계만 존재할 뿐이어서 부르주아지
부인의 응접실에 걸어놓고 구경하기에는 딱 알맞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나. 부궤로의 이상적 미의 세계도 시대의 흐름
을 거스를 수는 없었나보다. 인상주의의 뒤를 이어 등장한 모더니즘은 완성
도 높은 기교,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성, 감성적인데다 고전적인 방식, 소재
등 모더니즘과 대치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부궤로를 구시대의 대표자로
인식되어 그를 철저히 배척하여, 근대 미술사에서 부궤로의 이름은 사라지고
그가 몇점이나 그렸고 그의 그림들이 어디에 있는지 출처조차 모를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잠자던 부궤로의 그림들이 근래에 와서
재평가 받는 것을 보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기도 하지만, 현대의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초현실적인 그림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느낀 정신적 피로감과는 다른, 부궤로의 고전주의적 그림들이 내뿜는
그 아름다운 명료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그림을 편안히 쳐다보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Song of the Angels, 1881


아이에게 따뜻한 부모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면 무어보다 아이 재우는 일에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에너지가 왕성해 눈이 말똥말똥한 아이에게 잠들 때
까지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잠자는 동안 칭얼대는 아이를 그때마다 일어나 달래주는 것은 거의 성인
(聖人) 수준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시험'을 통과한 부모
라야 아이에게 자상하고 자애로운 부모로 남는다. 성모마리아는 당연히 그런
어머니였겠다. 부궤로의 <천사들의 노래>는 어머니 마리아가 정성껏 아기 예수
를 재우다가 자신마저 잠에 떨어진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사실 잠든 아이도
예쁘지만, 아이를 재우다 잠든 젊은 어머니의 모습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해야 할 온갖 일을 뒤로한 채 아이를 재우다 잠든 어머니. 어쩌면 이렇게 아이
의 종이 되어 세월 다 보내야 하나 하는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만을 위해 존재하는 자신이 무가치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자 그대로 이런 전적인 희생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 어리고 나약한
어린아이가 건강하고 믿음직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겠는가?
아이를 재우다 잠든 어머니의 얼굴에서 우리는 그 에누리 없는 희생의 숭고함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지금 자장가를 연주한는 천사들의 진정
한 위로 대상은 아기 예수가 아니라 어머니 마리아 같다. 아기 예수야 어머니
마리아가 힘써 재워놓았고, 천사들의 감미로운 자장가는 그 수고에 대한 보상으
로 마리아에게 달콤한 꿈나라의 선율을 선물하고 있다. 그렇다. 하늘은 결코
어머니의 수고를 잊지 않는다. 어머니의 외로움이 클수록, 어머니의 피곤함이
짙을수록 하늘은 그 수고에 보다 큰 울림으로 응답한다. 하늘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약속한다. 네가 네 자녀를 사랑한 만큼, 아니 그 이상 나도 네 자녀를
사랑하겠다고.

Dawn, 1881

The Jewel of the Fields, 1884

Meditation, 1885

Child at Bath, 1886

Le Printemps(The Return of Spring), 1886

The First Mourning(아벨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담과 이브), 1888


아비는 제 가슴을, 제 심장을 움켜잡고 있고 어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얼굴을
감싸안고 울고 있다. 이들이 누구인가? 아담과 이브이다.
아담과 이브는 인류에게 원죄를 가져다 주었지만, 이들은 또한 인간에게 세상을
열어 준 선조이기도 하다. 아벨은 아침 일찍 아담과 이브에게 인사하고 양떼를
몰고 들판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저녁 늦게 돌아오지 않는 아벨을
기다리던 부부는 결국 죽어있는 아들을 보게 되었다. 아벨은 증오의 산 제물이
되어서 아담의 제단 앞에 파랗게 바쳐졌다. 이렇게 죄는 시작되었다.
인류의 첫 번째 살인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이 돌이킬 수 없는 사형의 집행자
또한 아담의 아들인 카인이다. 카인은 동생을 증오했다. 증오는 나 아닌 타인에
대한 공포감이다. 포는 무엇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한다. 카인은 부모의
원죄를 사육하였다. 동생을 죽인 카인은 그후로 어찌되었을까?
카인이 범죄자가 되어서 신에게 쫓겨다니는 것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기억에 달라붙은 근친살해의 핏자욱이었을 것이다.
죄가 있으면 구원도 존재하는 법! 한번 열린 판도라의 뚜껑이 모든 가증스런 것
들을 내뱉었지만 희망이란 생명만은 남겨 놓았듯 우리는 아비의 무릎 위에 누워
있는 아벨의 시신을 보면서 인류를 대속하러 올 예수의 이미지를 본다.
보세요. 아비의 무릎 위에 누워있는 아벨의 시신과 옆에서 울고 있는 이브의
도상에서 피에타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러나 구원자의 도래는 멀기만 하고 현실
은 가깝다. 죄악은 일찍감치 카인의 머리 위에 올라와 있다. 아담과 이브의 비탄
위에 드리운 대지와 어두운 구름들로 뭉클한 하늘은 인류의 미래를 암시하듯 암울
하기만 하다.

The Annunciation, 1888

Virgin and Child, 1888

Cupid and Psyche as Children(First Kiss), 1889


큐피드와 프시케의 신화는 부궤로가 선호하는 신화중의 하나이다.
그는 이 주제로 여러 장의 작품을 완성했다.
(The Rapture of Psyche, Psyche and Cupid and Psyche)

The Bohemian, 1890


부궤로 작품의 소녀들은 모두 직업과 나이도 같거나 비슷하지만 분위기나 그 성격
에 있어서 각기 다 다르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앉거나 선 자태,
각기 다른 손모양과 자세를 통해, 여리게 보이지만 내면은 강하거나 또는 얼마나
자유로워 보이는 성격인지, 또 얼마나 새침하고 야무진 성격인지 그림만을 보고도
실제로 소녀를 만난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르게 묘사
된 성격과 각 그림의 성격 묘사를 위해 작품의 소녀들은 각각의 머리 색깔과 모양
도 각각 다르게 표현했으며, 입고 있는 옷이나 걸친 망토도 그 모양과 색깔을 달리
묘사하고 있다. 또한 배경의 풀이나 가축, 나무와 잎새, 하늘의 색깔과 윤곽 등을
그 성격과 감정의 표현을 위해 각기 다르게 적절히 배치시켰음을 비교해 알 수
있다. 관람자를 응시하는 눈동자와 눈빛이 주는 느낌이 모두 맑고 당당하여 그녀들
의 삶이 궁금해지게 만들며, 함께 얘기 나눠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 만큼,
소녀의 느낌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 눈빛의 느낌도 그림들 모두 각각 다르
게 다가오며, 각 인물의 성격을 특징짓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부궤로가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그만의 주요 능력이었으며, 아마도 그의
모든 그림 속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Innocence, 1890

Portrait de Gabrielle Cot, 1890


이 숭고한 초상화는 작가의 노련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여겨지며,
다른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초상화중에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다.
Gabrielle Cot는 부궤로의 훌륭한 제자인 Pierre August Cot의 딸이다.
부궤로는 그녀를 모델로 몇 장의 그림을 그리려 시작하였는데, 그는 가브리엘의
강렬한 내적 미와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유일하게 위임되지 않은(부탁받지 않은)
초상화 작품을 완성하였다.

Work Interrupted, 1891

Daisies, 1894

The Rapture of Psyche, 1895

Portrait of Madame la Comtesse de Cambaceres, 1895

Girl, 1895

Admiration, 1897

Study:Head of a Young Girl, 1898

Pain of Love, 1899

The Little Marauder, 1900

Two Girls(Childhood Idyll), 1900

The Virgin with Angels, 1900

Love is Fleeting, 1901


부궤로의 그림은 일반 국민에게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새롭고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혹한 비평을 받았으며, 고대양식이나 주제를 좋아하고 부활
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역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심경과 작품을 살펴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열정과 신명나는 작업으로 그림 하나하나에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어 넣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매일 나는 기쁨에 젖어 작업실에 갔다. 저녁에는 어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멈춰
야 했지만 다음날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 작품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하나의 욕구가 되었다.
내가 인생에서 다른 무엇을 더 가지게 된다 할지라도 내 소중한 그림을 못 그린다
면 나는 비참해질 것이다." 이것은 부궤로가 생전에 남긴 고백이었다.
그가 그림에 쏟은 사랑과 애정이 유난히 깊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등장인물인 자매로 보이는 두 소녀에 그림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주변의 풀 하나, 이름모를 들꽃 하나, 늘어진 줄기나 잎새 하나하나도
주인공처럼 살아있는 듯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멀리 있는 나무나 잎새,
사람의 발에 자주 치인 바닥의 초록풀까지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며 바람에
일렁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두 소녀가 입은 옷감의 재질과 결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두 소녀의 손동작과 머릿결의 자연스러움이 소름 끼칠
정도로 사실적이며, 앞섶에 맨 끈이나 옷감의 구김과 주름도 그렇다.
특히 관람자를 압도하는 것은 두 소녀의 미소와 표정이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러워
함께 미소 짓게 된다는 점이며, 눈동자와 눈빛이 지금도 살아 있는 것처럼 강렬하
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는 소묘나 연필 스케치처럼 선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작업한 것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의 미세한 농담과 색조의 미묘한 단계까지 세분
화하여 정교하게 표현하였으며, 관람자가 못 느낄 만큼 주변의 작은 사물과 그
사물의 일부 하나하나, 그 그림자의 명암까지도 색채를 이용하여 부드럽고 은은
하게 묘사함으로써 사진보다도 더 사실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관람자가 마치 화가와 함께 그 당시의 상황과 현장에 함께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특징은 이 그림뿐만 아니라 부궤로 작품 대부분의 주요한 특징이기
도 하다. 그것은 나무기둥과 그 줄기, 그 잎새, 바닥까지 세심하게 배려하여 배치
된 들풀, 그리고 색조의 미세한 단계까지를 분할하여 정교하고 부드럽게 표현한 것
이다. 또한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 옷감의 원근과 명암, 채색의 밝기까지 매우 정교
한 차이를 빛과 색체로만 자연스럽게 묘사함으로써 재질과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지
도록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자세와 옷매무새, 표정, 미소, 눈 빛,
눈동자까지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난 한참 후에도 관람자
의 얼굴에도 그림 속 소녀의 미소와 웃음의 여운이 남아 번질 것이다.
부궤로의 그림을 통해 무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그 당시 짚시소녀와 양치기소녀들
의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과 아름답고 맑은 눈동자를 만나고 선물 받았다.
우리의 가슴 한 켠에도 어느새 소녀들의 영혼이 물든 것처럼 맑고 순수해진 느낌이
다. 또한 내 머리 속 한 자리가 그녀들의 넉넉한 미소로 각인되어 한 장의 필름처럼
자꾸만 머릿 속을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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