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38 후기인상주의: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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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38 후기인상주의: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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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후기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Self-Portrait, 1879-1882/Paul Cezanne

신인상주의와 같은 시대에 인상주의의 맥락에서 좀더 새로운 예술 세계를 지향한
또 하나의 경향으로 후기인상주의(後期印象主義, Post-Impressionism)
가 있다. 세잔, 고갱, 고흐는 후기인상주의의 3대 화가라고 부른다.
고갱과 세잔이 인상주의 그룹전에 여러번 출품하면서 그들 화업의 출발을 인상
주의에서 했기 때문에 이들을 인상주의의 후계자로서 그러나 새로운 인상주의자
로서 취급하는 것이다. 후기인상주의 명칭은 영국평론가 로저 프라이 Roper
Fry가 1910~11년 겨울에 런던 그래프론 화랑에서 기획∙개최한 전시회인 '마네
와 후기인상주의전'이란 표제에서 유래, 아주 막연한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이 전시회에서 비롯하여 인상주의의 색채에 영향을 받은 계승이자 단지 시각
효과를 넘어서 작가적 색채가 주관에서 비롯되는 각기 특징적인 주의로서 극복
의 뜻을 담는다고 하겠다.

후기인상주의는 단순한 점묘주의로서의 신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전개되어
보다 견고한 화면구성을 추구하였던 경향과 표현내용을 중요시하였다.
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인상주의로부터 거리를 두고변화를 일으키는 속성을
가진 변함없는 자연의 진실을 포착할 수 있는 새로운 구성주의를 지향하며작가
의 강한 개성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쇠라가 과학적 분석과 주관적 회화
구조를 통해 인상주의의 순간적 인상을 견고하게 만들었다면, 세잔은 자연을 통해
회화적 질서와 구성을 화면위에 재창조함으로써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세잔은 자연의 생생한 외형에서 느끼는 감각과 주관적인 이해를 통한 자연의 본질
적 구조를 표현하여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쇠라나 세잔이 자연세계를 주관적 화음과 질서로 통일하여 독립된 새로운 리얼리티
를 추구였다면 고갱과 고흐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였다.
산업사회 이면에 감춰진 모순으로 인한 불안의식 및 정신적 가치에 대한 향수는
보이는 세계보다는 관념적 환상과 동경의 세계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났다.

인상주의가 순간적인 외관의 모습을 포착하려는 표현을 하였다면 이들은 보다
견고한 것과 본질적인 것을 추구했다는 점이 다르며, 이로써 인상주의의 극복이라
는 면에서 의의를 가진다. 이들은 인상주의의 업적, 즉 순수한 빛과 색을 새롭게
발견하고 각자의 개성 있는 화풍을 인정하는 전통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상대적
으로 인상주의가 잃었던 견고함, 질서, 그리고 인간 내면의 심오한 깊이를 추구
하기 시작했다. 이들 세 화가의 접근 방식과 목적은 서로 달랐으나, 세 사람의
업적이 모두 20세기 미술-야수파, 표현주의, 입체파-이 발생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Self-Portrait with Palette, 1885-1887

폴 세잔(Paul Cezanne:1839~1906)은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의
부유한 중산층 가문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은행가인 아버지의 강요로 법학과
에 등록했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1861년 파리로 이주했다. 세잔은 파리에서
인상주의 운동을 접했지만 과거의 회화에 대한 깊은 존경심 때문에 순수한 빛과
색채의 즐거움에 빠져들지 못했다. 초기의 넑고 순순한 붓질이 주는 생동감은
점차 절제되고 섬세한 붓질로 변했다. 몇 년의 훈련을 거치면서 세잔은 인상주의
로부터 벗어났다. 그는 회화는 빛과 색채의 인상이 아니라 엄격하고 기하학적인
입체에 대한 이성적인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제는 가족 초상과 자화상,
정물, 프로방스의 생트 빅투아르 산과 같은 특정 장소의 풍경으로 제한했다.
성숙기에 그린 크고 넓게 펼쳐진 풍경화는 그가 세웠던 "자연을 좇아 푸생을 되살
리기'라는 계획의 의미를 전달해 준다. 여기에 전제되어 있는 두 가지 선택, 즉
과거의 미술을 형식적인 모델로 삼은 것과 자연광선의 사용은 입체감과 색채를
종합시키는 세잔의 뛰어난 재능이 없었다면, 어느 화가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특징에 불과했을 것이다. 화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나 대중에게 외면
당했던 세잔은 죽은 후에야 20세기 미술을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인정
받을 수 있었다.

폴 세잔은 후기인상주의자들 가운데 형태와 구성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구축한
화가이다. 즉 인상주의의 회화를 이루고 있는 순간적 인상에 영원성을 지닌 견고
함을 첨가 시키므로써 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그는 자연의 본질적 구조를 구현하는데 있어, 대상의 외형에서 잡아 낼 수 있는
객관적 시각의 결과와 대상에 대한 작가 자신의 주관적 이해를 동시에 표현함으로
서, 20세기 추상미술이 가지고 있는 객관과 주관의 동시성을 선구적으로 보여
주었다.

Portrait of the Artist's Father, 1866

Lawyer(Uncle Dominique), 1866

Portrait of Achille Emperaire, 1867-68

이 인상적인 초상화는 세잔과 함께 엑상 프로방스의 쉬스 아틀리에서 그림을
그렸던 친구 아쉴 엥프레르를 그린 것이다. 큰 두상과 빈약한 다리, 의자에 앉아
있는 모델의 모습은 왠지 어색한데 엥프레르가 본래 난장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나이프로 두텁게 발라 올린 물감, 화면 전반의 어두운 색조는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기량을 쌓아가던 습작기의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세잔은 이
그림에 마치 중세의 이콘화처럼, 모델의 이름을 작품 상단에 썼다.
1870년 살롱에 출품된 이 작품은 심사위원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Still Life with Green Pot and Pewter Jug, 1867-68

Young Girl at the Piano - Overture to Tannhauser, 1869-70

Pastorale(목가), 1870

세잔이 서른 한 살 되던 해 제작한 이 작품은 현실 너머의 남녀의 사랑을 환상적
으로 다룬 작품이다. 세잔은 1860년대 후반과 1870년대 에로틱한 주제들을
즐겨 그렸는데, 이 작품도 성적인 환상을 담은 작품들 중의 한 점이다.
마치 연극 무대와 같은 화폭에는 신비스러운 밤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섬인지,
강인지 모를 물가와 낮은 언덕을 배경으로 몇몇 남성과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다.
누드로 그려진 여인들은 각각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뒤편으로 머리를 감으려
고 몸을 숙이고 있는 여인, 화면 왼쪽의 노골적으로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관능적
인 포즈를 취한 여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경에 한 여인이 등을 보이고 돌아 누워
있다. 이러한 여인들은 전형화된 포즈를 따른 전통적인 여성 누드의 도상들이다.
한편, 그림에 등장하는 남성들 역시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여성에 열중
하기도 하고 무관심하기도 한 다양한 모습들이다. 특히 화면 중앙에 거만하게
턱을 괴고 누워있는 남자는 세잔 자신의 모습으로 이 환상을 객관적으로 관찰
하고 있다.

The House of Dr. Gachet in Auvers(오베르의 가셰 박사의 집), 1872-1873

이 작품은 1872년 세잔이 가족과 함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
에 체류하던 시기에 그려진 것이다. 이 시기 세잔느의 작품은 오베르 근처의
퐁투아즈(Pontoise)에 살고 있던 피사로와 교분을 갖게 되면서, 점차 인상주의
화풍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 그림에서 세잔느는 후경에 왼쪽으로 살짝 치우쳐
위쪽에 위치해 있는 밝은 건축물, 즉 오베르의 그 유명한 가셰 박사의 집 서쪽 면
을 그렸다. 구불구불하게 시작되는 길, 일정한 구성으로 연속적인 시점을 형성해
주고는 있으나 그물망처럼 복잡하고 흐릿하게 얽힌 나뭇가지들, 특히 회색, 연한
갈색, 황토색, 갈색, 푸른색과 벽돌색 터치 등의 어두운 색조 등은 피사로의 영향
에서 벗어나 세잔느 고유의 양식을 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많은 작품들이 캔버스 표면에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 세심히 그려진
반면, 이 작은 그림은 곳곳에 화폭의 우툴두툴함을 남겨둘 정도로 붓자국이 투박
하다. 이러한 특징은 이 작품의 제작년도를 세잔느 화업의 초기인 1872년에서
1873년 후반쯤으로 추정하게 한다.

The House of Pere Lacroix in Auvers, 1873

The Hanged Man's House, 1873

1872년 세잔은 부인 오르탕스 피케와 갓난 아들과 함께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 sur Oise)에 정착했다. 당시 피사로는 오베르 근처의 퐁투아즈
(Pontoise)에 살고 있었는데, 세잔은 2년 동안 오베르에 머물며 피사로와 함께
작업을 하곤 하였다. 그 무렵 그려진 이 작품은 피사로로부터 받은 영향력으로
인상주의 화풍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초기 작품들의 특징인 화면 전체를 감도는 어두운 색조, 극단적인 대조, 에로틱
한 주제들은 밝은 풍경화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 화폭에는 청명한 날씨, 밝은
햇살이 내리쬔다. 지붕에 흡수된 빛, 혹은 반사된 빛의 세밀한 감각들은 작은
붓질을 통해 전달된다. 이러한 빛의 떨림은 대상 자체의 밝은 색조를 고양시키고
있다. 그러나 인상주의자들이 추구하였던 일시적인 양상과 순간적인 장면에
대한 묘사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미 화면에는 풍경의 기본적인 구조들이 조화와
리듬 속에 드러나고 있다. 탄탄한 구성, 지붕과 나무의 견고한 선과 면은 안정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세잔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피사로
의 추천 덕분에 1874년 제 1회 인상주의전에 참여하였다.
이 작품은 <오베르의 풍경>, <모던 올랭피아>와 함께 인상주의전에 출품되었고
도리아 백작(le Compte Doria)은 비평가들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구입하였다. 이후 빅토르 쇼케(Chocquet)가 이 작품을 다시 구입하여 1889년
만국 박람회에 출품하였다.

A Modern Olympia(현대적 올랭피아), 1873-1874

낭만적인 주제를 선택하여 어두운 물감을 두텁게 발랐던 세잔느 초기의 작품들
은 들라크루아, 도미에, 쿠르베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초기의 화풍은
1872년경 오베르 쉬르 오아즈에서 피사로와 함께 작업하면서 점차 변화하였다.
1872∼1873년 그려진 이 작품은 세잔의 화풍 변화를 보여준다. 세잔은 이미
1866년 같은 주제로 그렸던 작품은 어둡고 무거운 작품이었던 데 반하여, 몇 년
뒤 다시 그려진 이 작품은 밝은 화면으로 바뀌었다. 밝은 화면, 선명한 색조, 형태
를 생략한 재빠른 붓터치는 이미 세잔의 화풍이 인상주의로 접어들었음을 보여
준다. 작품의 내용은 1865년 마네가 살롱에 큰 논쟁을 일으켰던 <올랭피아>를
언급하면서, 에로틱한 화가 자신의 환상을 담고 있다.
<올랭피아>의 검은 고양이는 이 작품에서 강아지의 모습으로 그려졌고, 본래
마네의 그림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사가 호기심에 가득 찬 눈길로 올랭피아를
올려다보고 있다. 세잔 자신의 모습으로 그려진 이 신사는 사창가를 찾은 손님
으로서 올랭피아가 창녀임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오베르에
머무는 동안 제작된 것으로 의사인 가셰 박사가 마네의 <올랭피아>를 칭찬하자
세잔은 단숨에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Study: Landscape at Auvers, 1873

Self-Portrait, 1873-1876

세잔은 입체주의의 선구자로서 미술사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평가된다. 그는 생전에 비평가들의 냉담함과 대중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세잔느는 오랜 친구였던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L'oeuvre)』에서 자신을 실패한 천재로 묘사한 데 격분, 졸라와
절교를 선언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한 화가였다. 여러 점의 자화상 속에서 세잔느
는 자신을 팔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의 모습으로도, 단정한 파리 신사의 이미지로
도 그리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화가는 예의 무겁고 쏘아보는 듯한 시선을 관람객
을 향해 던지고 있다. 그의 굳은 표정을 통해 긍지에 차 있으면서도, 악의에 찬
비평을 두려워하는 화가 자신의 내면의 모순된 심리를 읽을 수 있다.
텁수룩한 수염과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색 의상, 치켜 올라간
눈썹 등은 화가의 완고한 성품을 암시하는 듯하다.

Portrait of Chocquet, 1875

Temptation of St. Anthony, 1875

19세기 중반, 종교 예술의 부흥은 낭만주의의 영향이었다. 초기의 세잔 작품 역시
카라밧지오, 제리코, 도미에의 영향으로 낭만적이면서 바로크적인 성향을 갖는다.
특히 1862∼1869년에 세잔느는 엑상 프로방스의 그라네 미술관에서 카라밧지오
의 고전주의 성향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강간, 약탈, 살인, 난잡한 성적 타락과
같은 육체적 긴장이나 상상적 폭력을 주제로 한 환상적인 작품들을 주로 그린다.
세잔은 작품들을 거칠고 어두운 색채로 표현하였으며, 구성이나 붓의 사용에
있어서도 격렬하고 둔탁한 터치를 이용해 극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 연작과 유사한 구도로 나타나는 <성 앙투안느의 유혹>
은 중앙의 여인을 중심으로 세 명의 큐피트가 둘러싸 있고, 왼쪽에는 성자 앙투
안느와 악마가 자리잡고 있다. 격렬한 몸짓의 성자와 머리에 뿔이 달린 악마는
별개의 두 인물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전나의 여인은 물론이고 세 꼬마들마저도
배를 내민 자세는 오만 불손하게 느껴진다. 이집트에 은거해 있던 이 성자의
전설은 많은 화가들이 그렸고, 세잔도 세 점의 유채와 다섯 점의 수채를 남겼다.

Bathers at Rest (Les baigneurs au repos), 1875-1876

The Pool, 1876

Vase of Flowers, 1876

꽃이나 꽃병을 그린 세잔의 정물화는 무수히 많으나, 로코코풍의 것을 그린 그림
은 이것이 단 1점이다. 실은 이 작품은 제 2제정 시대의 판화를 그대로 유화로
옮긴 것으로 실제로 이러한 재료들을 보면서 그린 그림이 아니다. 판화를 사용
한다든지, 꽃을 조화(造化)로 바꾸어 그린다든지 하는 것은 세잔이 곧잘 하던
짓이었다. 색채를 자기 스스로 상상하여 만든 것이었으리라. 꽃병의 백색과 장식
부분의 투명한 청색계의 대조는 매우 투명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으며, 백색
꽃병에는 녹색의 반사색(反射色)을 쓰고 있다.
채광(採光)은 왼쪽 윗부분으로 잡고 있고, 꽃병은 오른쪽으로 조그맣게 그늘을
늘어뜨리고 있다. 꽃이나 잎, 꽃병은 붓자국이 매우 섬세하며, 그것에 비하여
배경이나 책상은 붓자국이 조금밖에 나타나 있지 않다.

Chocquet Seated, 1877

물체의 형태를 여러 가지 평면으로 분할하여 모자이크와 같은 선명한 색채 효과
를 노린 점이 이 초상화의 특색이다. 화면의 배경인 여러 점의 그림이나, 장식품
등으로 보아 이 작품은 숏케의 집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제작 연대는
1880년 전후로 보이나, 그 이상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바닥과 벽이 만나는
수평선, 오른쪽 윗부분에 상하로 걸린 그림의 왼쪽 선이 의자의 선과 만나는
수직선, 이러한 두 개의 직선이 화면 구성상의 축을 이룬다.
그 외 여러 개의 직선들이 이것들과 평행하여 작은 악센트를 이루고 있다.
광선은 왼쪽에서 비쳐져 숏케의 얼굴이나, 상반신을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
으로 양분시키고 있다. 바닥이나 벽지의 붉은 무늬 등의 색채가 빛에 의하여 선명
하게 두드러지면서 빛과 실내 공기를 생성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Hortense Fiquet in a Striped Skirt, 1877-78

A Turn in the Road(꼬부랑 길)

1880년 전후에 세잔은 '길'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몇 점 제작하였으며, 그 중에서
도 이 작품이 가장 잘 완성된 작품이다. 대체로 퐁드와즈 근처의 풍경으로 보여
지며, 전경 중앙에서 중경으로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구부러진 길이 원운동(圓運動)
을 형성하여, 그 내부나 왼쪽의 가느다란 나무들이 화면에 틀을 이루고 있다.
배경의 경사진 지붕이나 작은 집들이 기하학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고, 그 집들의
뒤에는 작은 언덕이 좌우로 있어 화면 구성상으로는 완벽 한 구도라 하겠다.
붓의 터치도 규칙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수년 후 제작된 풍경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의 완벽성 같은 것은 이 작품에서는 볼 수 없고, 오히려 장식적
이며 평면적인 인상이 짙다. 그러나, 고갱은 이 시기의 세잔의 풍경화나 정물화
에서 보여 주는 평면적인 성격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과일, 냅킨, 우유병이 있는 정물, 1880

폴 세잔은 1872년에서 1873년 사이에 피사로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나, 결코
인상주의 그룹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근본적으로 매우 독자적인 화가였던 그는
인상주의를 미술관에 소장된 미술만큼이나 견고하고 확실한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평생 사물의 외관에 치중하는 인상주의를 대신하여 시간을
초월한 자연의 본질, 그 원형을 찾고자 했다. 1878∼79년경 그는 물리적인
실체의 외관을 고수하는 한편, 공간 속에서 구현되는 대상의 조형적인 가치와
구조에 눈을 돌렸다. 목욕하는 이들, 남 프랑스의 시골 풍경, 정물화와 같은
특정한 모티브를 반복하여 그리면서 조형적인 실험을 지속하였다.

1880년에 그려진 이 작품에서 이미 세잔은 대상을 단순화시켜 추상적인 형태에
주목하고 있다. 몇 개의 사과와 가정에서 익숙한 가재 도구들이 탁자에 놓여 있다.
사물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대신에 단순한 기하학적인 형태를 구축함으로써
형태 내부에 있는 구조를 표현하였다. 삐딱하게 놓여진 칼이 공간의 깊이를 암시
하고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화면은 원근법의 전통적인 재현 방식을 전복
시켰다. 쌓아 올린 사과들과 탁자 모서리를 따라가다 보면 시점은 하나가 아니라,
화면 밖으로 여러 개의 시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다초점에 따른 형태의
탐구는 이후 브라크와 피카소로 하여금 입체주의로 나아가게 하였다.

L'Estaque(에스타크에서 본 마르세이유만의 광경), 1882-1885

이 풍경화는 세잔과 인상주의화파의 차이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리비에라 지역에서 고요하고 평범한 바다와 앞으로 높고 어울리지
않는 굴뚝이 펼쳐진 이 이름 모를 마을은 별로 매력적인 풍경이 아니다.
빛과 색채는 인상주의의 주요 주제였지만 세잔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Still Life, 1883-1887

Le vase bleu(The Blue Vase), 1885-87

세잔은 이 작품에서 활짝 핀 꽃의 형태 묘사보다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에 주의를
기울였다. 빛이 사물에 떨어지는 방식과 그에 따르는 색채의 변화라는 문제는
줄곧 세잔의 화두였다. 이 그림에서 공간은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면서 조밀하게
구축되었으며, 그 속에 위치한 정물들이 각각 균형 잡힌 부피감을 점하고 있으며,
꽃병은 화면 중심에서 정확하게 중심을 잡고 있다. 꽃병의 푸른색과 배경의 미묘한
푸른색의 조응은 캔버스 전체에 통일성, 조화를 꾀하고 있다. 이 작품이 그려지기
10년 전, 오베르 쉬르 오와즈에서 많은 꽃 그림을 그렸던 화가는 이 작품에서는
새로운 모티프인 사과를 첨가하였다. 세잔은 꽃이 너무 빨리 시들어 버린다고
불평하며 한때 가셰 박사에게 꽃 그림을 포기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으나, 이 그림
에 그려진 꽃은 사과와 어우러져 화면에 다채로움을 더하였다. 그렇지만 그 작품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단순함과 절제가 르누아르의 꽃 그림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풍성함과 지나침은 찾아 볼 수 없다. 이 작품은 세잔이 죽기 2년 전, 1904년
살롱 도톤느의 일부로 개최되었던 세잔의 회고전에서 대중 앞에 첫 선을 보였다.

Mont Sainte-Victoire(생트 빅투아르 산), 1885-1887

1880년대 이후로 줄곧 세잔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주제를 선택했다.
터너가 리기산을 그리고, 모네가 건초다미, 루앙 성당의 정면과 노르망디의 절벽을 그렸듯 세잔 역시 몇 가지 주제를 반복해 그렸다. 세잔의 작업실 창에서 바라본
생트 빅트아르 산의 육중하고 웅크리고 있는 듯한 윤곽선은 성숙기에서 후기까지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는 단일 주제에 집중해 마치 체스를 두는 사람처럼
인내심을 갖고 꼼꼼하게 더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아 분석적으로 접근해가는
세잔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은 세잔이 인상주의 화파에서
주장하는 실제 세계에 대한 충실한 재현을 점차 단념하고, 대상에 대한 신중한
분석을 선호하여 풍경이 화면 구성연습을 위한 소재로 변해가는 정도로까지 이어
갔음을 설명해준다. 그의 그림들은 인상주의라는 안전한 경로를 거부한 세잔의
끊임없는 불만족과 탐구의지를 전해준다. 형태들은 밝고 찬란한 대기의 빛 속에서
점차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변해간다.

이 작품은 셍트 빅투아르 산 주제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세잔이 스스로 세웠던 계획,
곧 "자연을 좇아 푸생을 되살리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빛으로 가득한 풍경을 향해 열려 있는 원거리 시점은 17세기의 위대한 회화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지만, 빛과 색채는 인상주의를 연상시킨다.

Still Life with Peaches and Pears, 1888-90

세잔은 광택 나는 도자기와 천, 손질되지 않은 나무와 과일 껍질 등의 표면 질감과
선원근법의 규칙을 무시하고, 과일과 물체를 균형 잡힌 기하학적인 입체로 묘사
했다. 이것이 입체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Vessels, Basket and Fruit(The Kitchen Table), 1888-90

세잔의 정물화 중에서도 복잡한 구성과 형태의 데포르 마숑 그리고, 시점의 이동이
란 점 등으로 보아서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탁자를 화면에 병치해 놓고 그 위에
과일이나, 갖가지 항아리들 그리고 과일 광주리, 냅킨 등을 풍성하게 배치하였다.
과일 광주리를 보는 시점과 왼쪽에 있는 항아리를 보는 시점의 차이는 이미 세잔
연구가들이 지적하였듯이 이러한 조형적 노력이 큐비즘의 이론 구성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배경의 구성도 매우 복잡하여 왼쪽에 짙은 갈색의
작은 테이블과 의자 등 벽구석까지 이르고 있다. 뒷벽 부분은 녹색·청색·보라색·
갈색 등 짙고 깊은 색들이 엉켜져 있고, 전경의 테이블과 평행하여 전경의
갖가지 빛깔들을 흡수하고 있다.

Madame Cezanne au fauteuil jaune, 1888-90

Boy in a Red Vest(Garcon au gilet rouge), 1888-1890

Boy in a Red Waistcoat, 1890-95

The Card Players, 1890-1892, The Louvre, Paris

세잔은 카드 놀이를 주제로 하여 1890년부터 1896년까지 5점의 작품을 완성
하였다. 5점의 작품들은 카드 놀이중인 사람들의 수도 작품마다 다르며 작품의
크기도 각각 달라, 세잔은 같은 주제로 일련의 조형 실험을 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현재 반즈 재단(Foundation Barnes)에 소장되어 있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0-1892)에서는 5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의 작품
에는 4명으로, 그리고 다시 루브르 미술관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에서는 2명
으로 줄었다.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이 그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
으로, 구도에 대한 세잔의 집착을 잘 보여준다.
황토색 계열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배경 속에 카드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두 인물
만이 부각되었다. 두 남자는 테이블 가운데 놓여 있는 술병을 중심으로 거울에
비추인 듯 거의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화면 중앙으로 몰린 두 손과 카드들,
두 인물의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팔, 두 개의 모자 등 엄격한 대칭 구도는
작품에 고전주의적인 기운을 불어넣었다. 화면 왼쪽의 인물이 좀 더 어둡게 칠해
졌지만 두 장의 흰 색 카드와 파이프, 흰 셔츠 깃 등으로 명암까지도 완벽한 균형
을 이루어낸다. 세잔이 임의로 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화면의 구성과 균형을
위해 대상 하나하나를 심사숙고했음을 알 수 있다.

Woman with Coffee Pot, 1890-95

학자들은 이 작품의 모델이 세잔의 부인인 오르탕스 피케, 혹은 자 드 부팡의
세잔의 저택의 하녀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 작품이 누구의 초상인가는
전혀 중요치 않다. 마치 정물이나 기념비적인 동상처럼 굳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인은 기하학적인 형태에 있어서 커피포트와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기하학적
인 형태는 대상의 객관성만을 보여줄 뿐, 모델의 성품, 내면의 심리는 전혀 개의
치 않는다. "자연을 원통과 원뿔, 원추로 보아야 한다"는 세잔의 유명한 주장은
이 그림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그림의 배경은 캔버스와 평행을 이루는
엄격한 정면성을 나타내고 문은 강조된 직각을 보여주는 기하학적인 형태로 환원
되었다. 여인의 견고한 두 팔은 커피포트처럼 원통으로 처리되었다.
세잔이 대상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믿었던 이러한 기하학적인 구조들은 색채
로 인하여 더욱 풍부해졌다. 세잔은 작은 색면을 조밀하게 겹쳐 형태를 만들고
입체감을 형성한다. 세잔의 작품에 나타난 공간 탐구, 대상의 기하학적인 관계에
대한 연구는 1908년 브라크의 첫 번째 입체주의 작품 <레스타크의 집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세잔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모델 개인의 표현에 대한
고의적인 무관심은 큐비스트들의 추상회화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The House with Cracked Walls, 1892-1894

Compotier, Pitcher, and Fruit(Nature morte), 1892-1894

Portrait of Gustave Geffroy, 1895

Seated Peasant, 1895-1900

Onions and Bottle, 1895-1900

세잔은 평생 정물화라는 매체를 통해 지속적인 조형실험을 완성시켰다.
그는 스페인과 네델란드의 대가들을 본받아 일상 생활의 친숙한 정물들이 이루어
내는 미학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러나 정작 세잔의 정물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
은 베르메르나 수르바랑, 고야와 같은 대가가 아니라 18세기 프랑스 화가 샤르댕
이었다. 세잔은 1869년 루브르에 소장된 샤르댕의 그림들을 보았을 것이며
깊이 감탄하였음에 틀림없다. 이 작품에서도 세잔은 샤르댕이 사용한 바 있는
화면에 대각선으로 놓인 나이프를 배치하여 화면에 깊이감을 주었다.
양파와 같이 구형으로 생긴 야채와 과일들은 그의 형태 탐구를 위한 가장 이상적
인 것이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양파 이외에 다른 정물들, 유리잔과 술병
등은 여전히 오늘날 액상 프로방스의 세잔의 화실에 보존, 전시되고 있다.
같은 정물에 대한 화가의 지속적인 관심은 사물의 배치와 구성이 화가의 한결
같은 관심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부채꼴 모양의 탁자 가장자리에 늘어뜨려진
천은 세잔의 만년에 다른 많은 정물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모티프
이다. 이 늘어진 천은 술병이 유도하는 수직선을 상쇄시키는 수평선을 유도하고
있으며, 정확하게 질서 잡힌 화면 구성을 부드럽게 감추고 있다.
또한 탁자보는 술병이 그러하듯 텅 빈, 중성적인 배경에 상치되면서 갑작스럽게
화면에 쑥 뻗어 나와 화면에서 술병이 점하는 무게에 균형을 잡고 있다.

Mont Sainte-Victoire Seen from the Bibemus Quarry, 1897

10여년 후(1897년경) 이미지는 더욱 단순해진다. 나무줄기와 풍경의 선들이
규칙적인 격자무늬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자연은 기하학의 엄격한 기준을
통해 관찰되고 있지만, 대기의 빛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여전하다.
이 그림은 강렬한 오렌지색의 채석장에서 빅트아르산을 바라본 대단히 빼어난
작품의 하나이다. 중앙의 커다란 바위덩어리에는 좌우에서 접근하는 틈사이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산은 실제보다 더 높게 그려져 있다.

Turning Road at Montgeroult, 1899

Apples and Oranges(Pommes et oranges), 1899

카몽드 콜렉션에서 인상파 미술관으로 오게 된 이 작품은 바로크적인 구도를
지닌 만년의 정물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쿠션이 있는 긴 의자에 천을 늘어
뜨렸고, 몇 장의 냅킨을 깔아서 그 위에 도자기와 과일을 배치한 구도로서 물체
가 당장 굴러 떨어질 것만 같으나, 불안정감은 없으며 오히려 화면이 생동감을
보여 주고 있다. 물감은 매우 엷게 발라져 있고, 왼쪽 냅킨은 캔버스 천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다. 터치는 매우 자유로우며, 도자기의 경우는 거의 터치를 발견
할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사과나 오렌지의 경우 붉은 색에서 노란색에 이르기
까지 그 변화가 매우 아름다우며, 형태나 양감이 매우 잘 묘사되어 있다.
원숙한 경지의 아름다움이라면 이러한 작품을 말할 것이다.

Still Life with Curtain and Flowered Pitcher, 1899

Large Bathers, 1899-1906, Philadelphia Museum of Art

만년의 7년간에 그린 이 작품은 이제까지 제작된 수많은 수욕도 중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출품 당시 젊은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전경,
중경, 원경 등 빈틈없는 논리적 화면 구성은 세잔이 점차적으로 가슴 속에 쌓아
왔던 고전적 정신의 결실이라 하겠다.

The Large Bathers, 1900-05,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Bathers, 1900-1906, National Gallery, London, Venturi 721

이 여성누드화는 오랜 미술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 전통은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광경을 다룬 르네상스의 신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여 19세기 프랑스를 거쳐 앵그르와 마네로 이어진다. 세잔은 표현주의적
으로 윤곽선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입체주의에서 부피의 단순화까지도 예견하면
서 현대 회화사에서 전환기를 마련했다.

Young Italian Girl Resting on Her Elbow, 1900

Woman Seated in Blue, 1902-06

Mount Sainte-Victoire, 1904-1906

이 작품은 생트 비투아르 산 풍경에 대한 마지막 변주이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의 색조는 다소 어둡다. 산과 그 아래 시골풍경의 기하학적인 입체감은
크고 규칙적인 색의 파편들로 해체되어 있다.

Portrait of Vallier, 1906

Le Cabanon de Jourdan, 1906

1906년 10월, 세잔은 이미 이 작품에 손을 대고 있었다. 푸른색과 오렌지색의
명쾌한 대립으로 대충 그렸으며, 길이나 나무에는 붉은 색, 녹색의 보다 약한
대립도 주어졌다. 작은 집의 문과 허술한 부분에는 하늘 색과 같은 색으로
놓여져, 총합적 큐비즘에 있어서의 색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있으나, 세잔은
다시 그 위에 다른 빛깔들을 칠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면은 힘차고 명쾌함을 보여 주고, 제작도 반은 넘어서서 남은 작업은 세분의
처리나, 약간의 끝맺음 정도로 보여진다. 그러나 결국 이 작품은 유화로서 최후의
작품이 되고 말았다. 10월 15일, 제작 도중 화가는 비를 맞고 인사 불성이 되었다.
수일 후 세잔은 약간의 회복을 보아 수채로 바리에의 초상을 시도하였으나 끝내
계속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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