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참고자료/플럭서스

서양미술사82 플럭서스 백남준

AH101 2012. 2. 17.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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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 82(플럭서스: 백남준)

   


백남준(Paiknamjun: 1932~)


서울에서 태어나 피아노와 작곡공부를 하다가 1949 홍콩 Royden
School
졸업, 1950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학 미학문학부에서 공부
(
아놀드 쉰베르크에 대한 논문으로 미학미술사과를 졸업), 1956 독일로
유학하여 뮌헨 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학교 수료(서독 쾰른 전자음악연구회에
참여하며, 1958 케이지를 만나게 된다)하였다.
유럽과 미국을 떠돌며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미술집단 플럭서스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테이프리코더와 피아노음악 공연(독일 뒤셀도르프, 1959), 피아노
포르테 연구(1960), 심플공연(스웨덴 스톡홀름, 1961), 뮤직일렉트로닉
TV
(1963) 많은 공연과 전시회를 가졌다.
1958
케이지와의 만남으로 동서양의 사고를 섞고 음악과 미술을 통합
하여 Mixed Media로서의 예술을 지향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예술세계는
퍼포먼스와 비디오 아트로 크게 전개된다.
1963
독일 부퍼달 파르니스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어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로 세계 미술계에 주목을 받는다. 인물을 대상으로 13가지의 모습
으로 변형시킨 최초의 비디오 아트전 '음악전람회-전자텔레비젼', 백남준은
음악을 소리의 세계에서 해방시켜 음악연주에 대한 인습적인 개념을 거부하고
해체하려 했으며 자서전적인 오브제로써 뒤샹의 오브제 미학을 계승했다.
1969
미국에서 샬롯 무어맨과의 공연을 통해 비디오 아트를 예술 장르로
편입시킨 선구자라는 평을 들었다. ' 케이지의 예찬' 대의 피아노가
무대에서 음악적인 괴음을 내며 쓰려지는 퍼포먼스이다. 케이지가 소리의 영역
넓히기 위해 음악에 액션을 도입했다면 백남준은 그러한 액션을 폭력화함
으로써 견해를 달리한다.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거나 피아노를 부수는
획기적인 행동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백남준은 플럭서스 그룹의 창설 당시부터
참여하여 활동한다. 시기부터 그는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능동적인 사고없이
텔레비젼을 시청한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네오다다 그룹에
참여하여 반체제 음악을 전개한다. 콜라쥬, 플럭서스 그룹 파괴적 행동을
하는 예술단체에 참여하여 해프닝과 이벤트를 계속하던 그는 1963 초에
있었던 예술의 대변환기(해프닝, 플럭서스, 신사실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아방가르드 영화, 무용)에도 전세계를 다니며 활동을 보여준다.
무어맨과 함께 최초의 Sex-Music <성인을 위한 첼로소나타 No.1> 공연하게
되었는데, 그의 Sex-Music 회화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인 성이 음악에
있어서만 금지된 것에 반발이었다.
1970
보스톤의 WGBH-TV 방송국의 도움으로 슈야 아베와의 공동작업으로
4
년간의 경험을 하나의 테이프로 축적한 '비디오 신서자이저' 발표함으로써
다른 새로운 분야의 선구자가 된다.
1984
1 1 미국-유럽-한국을 동시에 연결하여 방송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전세계 방송사상 최초로 작가의 구상에 의해 여러 국가를 연결한
방송이다. 1993 베네치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백남준은 전자매체를 토대로 형성될 미래 사회에 대한 낙관론을 가지고 있으며
'
브라더' 통제수단이 아니라 인류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굿모닝 미스터
오웰'), 동과 서를 잇는 중요한 역할의 매체('바이바이 키플링')로서 텔리비젼을
수용하는 인공위성 프로젝트로 확장되었다.

1996
6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 신경이 모두 마비되었다.
그러나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국내외에서 도시와 영상전(서울시립미술관, 1996)
교과서 미술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독일 비디오조각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97 바젤국제아트페어(스위스 바젤, 1997)
개인전(미국 국립미국미술관, 1997), 98 서울 판화미술제(예술의 전당
미술관, 1998), 한국현대미술전-시간(호암 갤러리, 1998) 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1996 10 독일《포쿠스》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 예술가'
중에 들었고, 1997 8월에는 독일 경제월간지 《캐피탈》이 선정한 '세계
작가 100' 가운데 8위로 올랐다. 1998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미술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예술과 비디오를 접목시키는 결정적
기여를 공로로 '98년도 교토상' 수상하였고, 한국과 독일의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메달' 받았다. 2000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백남준은 새로운 방법으로 예술을 해석하여 새로운 사고를 창출해 냈으며
단순하고도 기발한 이미지를 생산, 궁극적으로 문화에 다양성을 제공했다.
시인이며 작곡가, 피아니스트, 화가, 비디오 아티스트, 철학자인 백남준-
현재 뉴욕의 멀서가에 살며 연중 1/3 독일등 유럽에서 거주하며 작업한다.
그는 자신이 텔레비전 화면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지는 않지만 텔레비전을
표현매체로 하여 그것을 기술적으로 제작하고 조립하는 제작자의 위치에서
감상자에게 보다 다양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텔레비전을 물감을
쓰듯이 풍부하게 일개인인 소유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현실에서 보면
이러한 것은 일부 전위 예술가들의 전유물인 같이 보이지만 , 폭의
명화를 오래두고 감상하기보다 전자오락실에 드나들기를 즐겨하는 요즈음
젊은 세대들에겐 백남준의 작품이 보다 아름다운 환상적인 화면을 제공해
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시대의 상품은 예술과 정보가 주역이 되는 체험, 필링, 엑스터시, 시간
가는 모르게 하는 오락물로, 모두 체험 중심의 비제품적 상품들이다.
예술은 시대의 중심이 것이며, 그의 예술은 그것을 예감하고 만들어
지는 미래의 예술형태이다. 그렇듯 백남준, 그의 멀티미디어 하이테크
아트의 가능성은 끝없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완전피아노, 1958~63*

당시 독일에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자주 벌렸던 백남준이 가지고
있던 여러 대의 피아노 하나를 그의 친구와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전시회 후에 팔리지 않은 피아노 작품을 들고 투덜거리며 길가에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당시에는 10 억만금이
작품을 부수고 있었던 것를 꿈에도 몰랐다고 고백하였다.

*로봇K-456, 1964*

* 케이지의 현악기을 위한 26.1.1499, 1964*

백남준은 절친한 친구 샬롯 무어맨과 2인조로 갖가지 해프닝을 벌였다.
무어맨은 혼자서도 반나체로 첼로를 연주하기도 하고 텔레비전으로 만든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에로티카 2인조들이 하는 공연 중에는 24시간동안 하는 공연도 있었는데
24시간 해프닝에 대해 그는 전세계 미술사의 한페이지를 차지하는 역사적
사건이라 말하였다.

*무제, 1968*

*일렉트로닉 오페라 No. l, 1969*

*텔레비전 안경을 쓰고 TV첼로를 연주하고 있는 샬롯 무어만, 1971*

*글로벌 그루브, 1973*

*TV 부처, 1974*

*물고기 하늘을 날다, 1976*

*TV 시계, 1976~82*

*TV 부처, 1978*

동양적 정서를 갖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며 백남준이기에 가능했다고
서양사람들이 극찬한 작품이다. 그가 조국에 대한 정서로 가지고 있는
부처 이미지를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부처는 고고해 보이며 앞의
텔레비전은 부처 앞에 놓여있는 우주 공간처럼 보여지고 있다.
그는 TV 이용하여 TV브라, TV로댕 여러 응용작품을 제작하였다.

*선은 빨갛다, 1982, 안테나를 붙인 캔버스에 유화*

*TV 브라, 1982*

백남준의 예술적 동반자 샬롯 무어맨이 그가 TV 만든 브라를 착용하고
퍼포먼스를 행하였다. 작품은 무게만 해도 3킬로그램이 넘었지만
그녀는 퍼포먼스 중의 자신이 살아있는 조각이라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작품은 당시 여성해방운동의 하나였던 노브라 운동에
자극받은 것이라 한다.

*TV 정원, 1982*

인공적인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자연 친화적인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그는 "치유의 예술" 지향하고 있다. 미술관 내에 식물을 이용한 숲을
만든 텔레비전을 함께 설치한 작품의 공간 안에서 관객은 휴식을
취하며 기술과 자연의 조화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무와 TV 완전하게 병합될 수는 없지만 같은 공간에 존재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의도는 충분히 보여지고 있다.

*하얀사슴, 1984, 캔버스에 안료와 콜라쥬*

*예술과 인공위성,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1984 백남준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 앞에서 위성을 이용한 중계 예술
<
굿모닝 미스터 오웰> 보여 주었다. 작품은 새벽2 우리나라에서도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1984>이란 소설로 텔레비전이 인류를 지배
하리라는 조지 오웰의 시각을 부정하고자 그는 참여 TV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텔레비전 예술을 통해 인류에의 희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그의
이상이었다.

*피아노산소, 1985*

*로봇가족 :삼촌, 1986 *

*로봇가족 :숙모, 1986 *

*로리앤더슨, 1986*

*닭장, 1986*

*색칠한 아이, 1986*

*다다익선, 1986, 1003대의 텔레비젼모니터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현대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88
올림픽을 기념하여 제작된 것으로 텔레비전들을 탑처럼 쌓아 높이만
해도 18미터가 넘는 작품이다. "언젠가는 전세계 TV 집안에서 보게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그는 전세계의 이미지를 1003대의 모니터에서
쏟아내는 현란한 이미지들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보이스 모자, 1988, 시멘트와 *

*토끼 또는 , 1988, 도자기*

*세종대왕, 1988*

*Norbert Wiener 타임시리즈 방정식, 1988*

* 남승용의 골인, 1988*

*1936년의 서울거리, 1988*

*24개속의 하나, 1988*

*안테나가 있는 손기정, 1988*

*손기정의 골인, 1988*

*요소, 1989*

*올랭피아, 1989*

*벤자민 플랭클린, 1989*

*나의 파우스트, 1989~91*

*백남준의 존케이지, 1990*

* 스승, 1990*

*파라다이스 나우, 1991*

*갈릴레오 갈릴레이, 1991*

*세기말 인간, 1992*

*김유신, 1992*

*정약용, 1993*

*스키타이 단군, 1993*

*정보 초고속도로, 백남준과의 여행, 1993*

*백팔번뇌, 1998*

98 경주 세계 문화엑스포에서 전시되었던 작품이었다.
불교 도시라 있는 경주의 이미지를 108개의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안심낙관, 1999*

뇌졸중으로 병원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았던 백남준은 환자들이 병원에서
안심하고 낙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위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백남준은 1990년대에 들어서 삼성의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되어 그때부터는 소니 텔레비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작품은 강남 우리들병원에 소장되어 있다.

*동시변조,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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