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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101 이탈리아 트랜스아방가르드 클레멘테

AH101 2012. 2. 17.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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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 101(포스트모더니즘: 트랜스아방가르드, 클레멘테)

   


(5)
이탈리아 트랜스아방가르드(Transavantgarde)


구상회화로의 복귀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미술의 특징 하나이다.
독일의 신표현주의, 프랑스의 신구상, 미국의 신회화 등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유사경향을 말한다.
트랜스아방가르드는 60년대에 모더니즘이 세계화단을 휩쓸고 지나간뒤 잡다
다원주의 경향이 풍미한 70년대 미술계에 반발하면서 독자적인 조형철학
함께 새로운 조형언어를 선보이기 시작한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몇몇 평론가들로부터 과거로의 회귀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많은
평자들은 80년대 이후 신표현주의와 더불어 가장 성공한 미술경향으로 평가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평론가인 올리바가 만들어 용어로 트랜스아방
가르드 회화를 전통적인 형식을 사용하는 비정치적이며 절충적인 미술로 정의
했다. 명명자인 올리바는 7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이러한 동종 운동의 총칭으로
사용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1980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국제적인 관심을
끌며 등장한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산드로 키아, 엔조 쿠키, 밈모 팔라디노
이탈리아 화가들을 일컫는다. 트랜스아방가르드 미술은 역사와 대중문화,
유럽 미술에 등장했던 이미지들을 차용했고, 논리나 시지각을 통해서가 아닌
감성 또는 직관에 의해 이해되는 은유적인 내용들이 주측을 이룬다.

이들은 어떠한 미술운동으로도 분류되기 어려운 다양한 양식을 고집하는데,
기본적으로 그림 그리기, 형상미술로 돌아가려는 독일의 신표현주의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대체로 도상성과 형상성의 부활, 전통적 양식이 차용, 전통과
현대의 절충, 인간의 원초적 욕구와 본능 내적 감정의 표현, 풍부한 내용과
은유, 자전적(autobiographic art), 개인적, 신화적, 종교적, 차갑고 순수
하고 비개인적인 모더니즘을 대체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커다란 흐름 안에서
특징들을 나열할 있다. 특히 죽음, 신화, 과거의 표현주의나 내용중심
회화에서 있었던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담은 이미지들을 격렬한 터치로
그려나감으로써 금욕적으로 관념적이던 종래의 미술을 세속적인 내적 감정의
산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 외형상의 특징인데, 이들의 관심은 이렇듯
미술사의 주류에 있던 대가들보다 주변, 또는 구석에 위치한 미술가와 시기들
있다. 다른 예로, 피카소의 말기작품, 키리코의 후기 고전주의적
회화, 16세기 매너리스트들에 대한 관심, 낙서, 원주민 그림, 3세계에 대한
관심 등이 그러한 특징들을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이들 트랜스 아방가르드
작가들 중에는 3C 불리우는 세명의 작가들이 있는데 산드로 키아, 프란체
스코 클레멘테, 엔조 쿠키가 그들이다. 세명 모두 로마에서 이미 70년대 초반
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77년경에는 스타일을 확립하고 있었는데 같은
'
파리 청년 비엔날레' 출품된 키아와 클레멘테의 작품은 당시 파리 미술계의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모더니즘적 방법론의 진화를 추구하고 있던 전후 미술의
흐름에 마치 반항하듯 그들은 평범하고도 전통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
이었고, 이것은 앞으로의 동향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1952~ )


1952
나폴리 출생으로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1980
키아, 쿠키와 함께 뉴욕에서 전시, 이탈리아의 3C 불리우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화가이자 음유시인인 클레멘테 회화의 주제는
기본적으로 개인 신화의 탐구, 자아를 응시하는 것이며 클레멘테 회화는
표의문자의 능력을 갖고 있다. 언어와 문자 그리고 거기에서 기인한 이미지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으며 상식으로 이해할 없는 여러 형상들을 동시에 제시한다.
자신의 자전적 이미지를 식물과 동물, 그리고 노골적인 성적 형상과 결합시켜
정신세계와 심리 상태에서 표현된 단편적인 형상과 상징들을 사용한다.
작품의 주제는 , 탄생과 죽음, 인간과 우주를 포괄한다.
논리를 뛰어넘는 뛰어난 상상력은 역사 저편의 종교의식을 불러 일으키며,
세련되고 관능적인 색채는 표현적 생명력을 발산한다. 지적되는 그의 예술의
동양적 특성은 그가 태어나 청년기를 보낸 나폴리와 다년간 체류했던 인도의
마드라스에서 기인한다. 주로 뉴욕과 마드라스, 로마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클레멘테는 글로벌 시대의 아티스트들이 그러하듯이 세계의 이곳저곳을 유랑
하며 자아를 탐구한다. 특히 인도의 문학과 종교는 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없는 요소이며, 거기에 대중문화의 잡다한 이미지와 음성, 언어, 자신
상상력의 단편들이 뒤섞여 그의 작품을 이루고 있다.
모든 이미지는 예술 표현에 있어서 똑같은 비중을 가진다' 그의 발언은 1950
년대를 휩쓴 추상표현주의의 천재신화에 대한 반발하며,세속을 부정하지 않고
구별을 없애고자 인도의 탄트라 철학과도 통한다.
트랜스 아방가르드의 3C작가들 가장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다작을 하기로
유명한 클레멘테는 표현기법에서도 정통 프레스코화에서 일본의 목판화, 모자
이크, 수채화, 파스텔, 조작 등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그는 파스텔을
'
인도의 강렬한 햇빛이 모든 색채를 불태워 버린 되어 다시 태어난 '이라고
표현했다. 수도원, 고대 정신적인 , 복잡한 것과 단순한 것을 현대적인 방법
으로, 세잔의 수평선 구도의 인물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프란체스코 클레멘테는 80년대 새로운 구상회화의 복귀의 발맞추어 등장한
이탈리아의 트랜스 아방가르드(Trans Avant-garde) 작가중 하나다.
70
년대를 풍미하였던 미니멀과 개념미술의 엄격성을 뒤로하고, 80년대 새로운
표현주의와 함께 등장하였던 이들은 이탈리아의 신화·성상, 중세의 신비주의
(Mysticism)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2차원의 평면에 복귀시켰을
아니라 프레스코, 세코(secco), 그리고 전통적인 조각의 기법과 재료들도
재동원하였다. 그러나 이전의 문화를 재활용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성향은
당시 상업성에 대한 논란과 함께 문화적인 권위성을 누린 이래로 이상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는 미술계에 자본의 논리를 입증시켰다는 비판
일으켰다. 실제로 줄리앙 슈나벨이 만든 바스키아에 관한 영화에서도 나타나
듯이 클레멘테는 데뷔 초기부터 80년대의 상업적으로 성공한 다른 표현주의
작가들과 함께 화려한 생활을 누릴 있었다. 전시회 입구에 걸린 잡지
《인터뷰(Interview)》의 표지를 연상시키는 초상화들과 앤디 워홀 그리고
바스키아와의 공동작품은 그의 이른 상업적인 성공과 화려한 전력을 보여주는
예들이라고 있다.

클레멘테의 작업들은 이러한 시대적인 맥락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도
상당히 동양적·정신적 그리고 궁극적으로 종교적인 의미를 깊이 내포하고
있다. 동양문화에 심취한 일련의 시인들과 잦은 교류, 동료 화가 보에티와의
오랜 인도 체류 그리고 계속적인 힌두교와의 교류는 그의 중요한 이면을 드러
낸다. 물론 그가 작품활동의 초기부터 이국 문명, 특히 인도와 중국들의 사상
또는 중세시대의 많은 종교적 그리고 신비주의 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으로
단순히 전통적인 상징과 재현의 방식을 부활시켰다고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평가하는 것과, 독자적인 개인 양식으로 맞딱 뜨려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하겠다. 다시 말하면, 그의 상징들을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새로운 형식의
문제나 정치적인 책략, 또는 상업적인 과거의 사건들과는 무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제 클레멘테의 작업을 이전의 예술 전통의 자손이나,
아류로서의 의미를 내포하는 '새로운 이즘'과의 연관성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아방가르드 현대 미술사의 흐름과 연관
시키기보다는 자화상의 측면, 또는 수도하는 화가의 표상으로 그의 작업을 조명
하려는 입장은 이전의 상업성 논란, 미술사적인 맥락과의 고리들로부터 그를
분리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클레멘테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와 재현 방식은 기존의 미술비평이 지닌
분류와 개념의 틀에 반하는 것이다. 기이하고 변형된 형태들은 단순히 정형화
되고 자기 비판적인 모더니즘에 반대되거나, 현대 문명에 반하는 3세계의
이미지들을 끌어들이려는 시도와는 무관하게 보인다. 대부분 동양적인 종교나
중세시대의 상징들로 이루어진 클레멘테의 작업들은 내용과 형태, 실제와
모방의 이분법이 존재하기 이전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무거운 동시에 가볍고 경쾌한 인상을 지니게 되는데 이것은
이분법적인 분류가 불가능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보게
한다. 다시 말하면, 그의 이미지들은 고귀한 것과 하찮은 , 즐거움과 괴로움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완전한 상태를 제시하고 있다.
클레멘테의 작품 < 화가> 자아, 타자 그리고 자연간의 특유의 일체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벌거벗고 있는 작가는 문명사회에서 발견되는 수줍음을
전혀 지니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관객을 놀래게 하기 위한 제스처라기
다는 괴로움이나 창피함을 모르는 이전의 상태를 상기시킨다.
자아와 타아, 인간과 자연, 내면과 외부가 분리되기 이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원초적이고 때묻지 않은 이상향에 대한 갈구는 낭만주의나 고갱, 루소의
작품에서도 발견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주요한 레퍼토리 하나다.
그러나 클레멘테는 외부의 방관자로서 그러한 세계에 대한 갈망만을 꿈꿔온
이전의 작가들과는 구별된다. 이것은 낭만주의 작가들이 시나 회화에서 완전한
상태에의 갈구만을 마음속에 품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거나 모순된 상황을
파헤치는 데에 중점을 반면, 실제로 그는 보에티와의 오랜 여행 이후에
일년의 상당 부분을 종교 순례지 등에서 지내고 있으며 자신의 속에서
합일의 세계를 실천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클레멘테의 작품에
등장하는 종교적인 사상과 상징들은 외부인으로서 세계를 상상한 결과
라기보다는 내부인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표출한 결과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클레멘테의 합일의 세계는 흡사 문학 비평서적으로서
아니라, 서구 모더니즘에 대안으로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 제시
하였던 《라벨레이와 그의 세상(Rebelais and His World)》중에서 인간과
자연, 이성과 감성, 영혼과 몸이 하나를 이룬 카니발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바흐친의 소설은 스탈린 체제하에 억압된 공산주의나 초기 모더니즘의 유토
피아니즘에 반하는 새로운 사회의 원형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미술사가 또는 미술비평가들은 중세의 소설가 라벨레이가 표현하고 있는
기괴한 세상과 적나라한 시각적 묘사를 통하여, 현대미술계에서 비정형화
되고 외부와 내부의 구분이 허물어지는 여러 현대미술의 상징들, 특히 인간
신체의 표현들을 분석해내고 있다. 그러나 바흐친의 문학과 현대미술간의
관계는 단순히 형태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르네상스 이후의 인간 신체에
대한 이해, 그리고 미술사에서 모더니즘이 강조하였던 순수성에 대한 대안
으로 한층 영향력을 지닌다고 있다.
비순수성과 순수성, 특정함과 보편성, 내부와 외부의 위계질서나 구분을
완전히 백지화하고 있는 바흐친의 세계는 단순히 이성을 무의식으로 대치하려
하였던 낭만주의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이해를 뛰어넘는, 더욱더 파격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롭게도 바흐친의 비서구적이고 근원적인
카니발의 세계는, 동양적인 해탈 또는 이전 중세 신비주의의 소우주적인
사고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있는 클레멘테의 상징들과 매우 유사함을
보인다고 하겠다(중세의 소우주 사상은 실은 바흐친의 소설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실제로 바흐친의 소설에는 자연과 인간, 서로 다른 인간들이 결합
되거나 순차적으로 병렬되거나 또는 몸체에 붙어 있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계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클레멘테가 스스로의 신체를 소재로 하는 대다수의
작업에서 명상을 통하여 작가 자신이 자연과 융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과
유사하다. 화가의 다양한 사지, 손과 발들은 뱀의 모양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동물들은 일종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물로서 의미를 갖는다.
뱀의 허물은, 한편으로는 재생, 또는 새로운 삶을 의미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
으로는 남겨진 허물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시체나 잉여물들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다양성, 또는 상반된 특성이 공존하는 것은 실은 갈등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완전한 삶의 표상으로 제시된다.
한편, 바흐친은 죽음의 이미지를 두려운 것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서구의 개인
주의 사상이 안겨다준 폐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의
개인주의적이고 은밀한 신체에 반하여, 르네상스나 또는 이전의 총체적인
신체가 새로운 대안책임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고 있다.
바흐친이 말하고 있는 이상적인 세계는 개인의 신체가 사회적·형이상학적 외부
완전히 연결된 것으로, 낭만주의나 이후의 예술에서 보이는 인간의
두려움, 소외를 지니지 않는다. , 그가 대안책으로 제시했던 중세나 르네상스
인간들은 완전한 공동체를 이룸과 동시에 자신의 신체를 통하여 거대한 자연
감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있듯, 바흐친의 사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소우주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바흐친이 중세시대의 라벨레이 문학으로부터 빌려 소우주 사상은 실은 동양
에서는 익숙한 자연과 인간이 합일된 상태를 연상시키다.
그러나 이것은 동양의 사상에 반대되는 서양의 인본주의 사상 또한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 사상의 특징적인 징후일 뿐이며, 이를 극복하고 한층 근원적
신화의 세계를 제시하려는 것이 바흐친의 의도다. 이러한 측면에서 클레멘트
회화에서 발견되는 동양적인 사상은 동시에 작가가 관심을 지니고 있는 중세
또는 이전의 신화적인 모티프들과도 연관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클레멘트나 바흐친이 제시하고 있는 세계는 단순히 서구 사상에
대한 대안으로 동양적인 사고와 이상향을 모방한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인류
문명에서 근원적으로 발견되는 합일의 상태, 구분·분류나 위계질서나 사고를
완전히 지배하기 이전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클레멘테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체들, 대부분 남성/여성, 영혼/육체, 인간/자연의 구분이 허물어지고 있는
인간 형태와 재현들 또한 이러한 원초적인 합일의 세계에 속한 것이라고
있겠다. 소우주의 사상이 이렇듯 서구의 역사에서도 발견된 있으며,
아직도 많은 동양사상의 뿌리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에서 클레멘테
작품들이 낯설고 순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당히 빗나간 얘기일지는 모르지만, 그의 작품들이 미술관보다는 뉴욕의
유명한 화랑인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에서 정기적으로 전시
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있게 받아들여질 있는 대목이다. 이것은 대중적인
그의 인기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며, 소우주의 사상에 대한 욕구가 적어도 억제된
상태이긴 하지만 소통되어 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그가 예전에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나 트랜스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미국에 상륙하여
상업적인 성공과 명성을 얻은 점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이제 문제는 미술사의 해석의 측면이다. 만약 그의 작품이 계속적으로 서구
문명과 현대미술 내의 언어나 문법을 사용하기를 거부하였다면 더욱 그러하다.
클레멘테의 작품이 더욱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그가 이국적인 언어·
이미지·상징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형태의 이면,
또는 보이는 이면의 의미나 개념에 치중하여온 기존의 미술비평, 미술사의
무게와 그의 작품이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장 원초적이고 합일된
세상으로의 회귀를 학문화하는 것은 미술사가나 비평가의 입장에서 불가능한
일이라고도 있다. 이것은 흡사 모든 것을 백지화하거나 언어를 포기
하는 것을 의미할 있다. 모더니즘에 대한 여러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위주로 하는 해석의 작업이 전통적인 언어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흡사 형태가 되기를 거부하고 과정을
강조하는 작품들조차 파괴적인 '형태' 측면에서밖에 해석될 없는 한계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클레멘테가 제시하고 있는 세상을 설명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교의 해탈의 경지를 묘사하기 위하여 서구 또는 동양, 모더니즘
또는 포스트 모더니즘식의 이분법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도 이러한
구분에 의거하고 있는 언어와 글의 전개 방식을 이용할 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은 그의 작품을 가장 감상할 있는 것은 예술가가 제시한 세계를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있다. 가장 무의미하고 무모하다고도
있는 이상향의 세계,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이면을 함께
포용하는 완전한 세계를 말이다. 이제 남은 일은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느끼고 그에 동참하거나 무시하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비판하거나 논의하는 일은 클레멘테의 해탈의 세계에서는 가장 무의미한
일이라고 있을 것이다.

*Bestiary, 1978*

*Map of What Is Effortless, 1978*

*Twins, 1978*

*Two Horizons, A Thousand, 1978*

*Under the Hat, 1978*

*Inside, Outside, 1980*

*Sun, 1980*

*Atlas, 1982*

*Fire, 1982*

*Waiting, 1982*

*Abbraccio, 1983*

*Furniture, 1983*

*Three Dead Soldiers, 1983*

*The Four Corners,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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