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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14 바로크 스페인 벨라스케스,

AH101 2012. 2. 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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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Velazquez, Diego Rodriguez de Silva: 1599~1660)


에스파냐 세비야 출생. 처음 에레라에게 사사하고, 이어 마니에리스트 화가
파체코에게 사사하였다. 정신적으로도 문화도시와 스승 파체고의 영향을
받았으며 뒤에 그의 사위가 되었다. 초기의 작풍은 당시의 에스파냐 화가들과
다름없이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명암법으로 경건한 종교적 주제를 그렸으나
민중의 빈곤한 일상생활에도 관심이 많았다.
1622
수도 마드리드로 나가, 이듬해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가 되어평생 왕의
예우를 받았으며 나중에는 궁정의 요직까지 맡았다.
초기의 어두운 색조와 명암법에 의한 마지막 걸작은 《주정뱅이들-바커스의 대관(
戴冠)(1629)이고, 28년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받은 베네치아파의 영향으로
중기(中期) 밝고 선명한 색조와 경묘한 필치로 바뀌었다.
시기에 왕족·신하 그리고 궁정의 어릿광대·난쟁이 등을 그린 다수의 초상화는
그를 미술사상 초상화가의 대가로 만들었다. 불행한 사람들을 왕족들과 다름없는
담담한 필치로 묘사한 것은 인간 존재의 중요성과 본질적인 비극성까지 추구하였음을
보여준다.
초상화의 대표작으로는 《왕녀 마리아 안나》 《왕녀 마르가리타》 《교황 인노켄티우스
10
세》(50) 등이 있으며, 구도의 작품으로는 《브레다성의 항복》(37) 유명하다.
번째 이탈리아에 체류(4951)하는 동안 장기간 연찬을 거듭하여 기법상의
혁신이 완성되었다. 만년의 대작 《궁녀들(라스 메니나스)》과 《직녀(織女)들》(57)
평생의 화업(畵業) 집약한 것들이다.
거기서는 전통적인 선에 의한 윤곽과 조소적(彫塑的) 양감(量感)이라는 기법이, 투명한
색채의 터치로 분해되어, 공기의 두께에 의한 원근법의 표현으로 대치되었다.
전동(顫動)하는 빛의 파도에 씻기고 완전히 대기를 파악하는 벨라스케스의 공간과 기법은
시대를 크게 앞질러 인상파의 출현을 예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그의 종교화·신화화는 모두 주제의 제약에 속박되지 않는 조형성 탐구라는 근대성을
지녔으며, 백색·흑색·회색의 해조(諧調) 색채가 비속화나 이상화에 치우치지 않는
독자적인 리얼리스트로서, 시대의 에스파냐 화단에서는 개성이 출중한 화가로서
평가되었다.

*The Immaculate Conception,1618*

*The Waterseller of Seville,1623*

*Philip IV in Armour, 1628*

*The Feast of Bacchus ("Los Borrachos"),1629*

*Doña Antonia de Ipeñarrieta y Galdós and her Son Luis, 1631*

*Philip IV in Brown and Silver,1631-32*

*Queen Isabel,1632*

*Philip III on Horseback, 1634-35*

*Queen Margarita on Horseback, 1634-35*

*The Count-Duke of Olivares on Horseback,1634*

*Self-Portrait,1640*

*Philip IV at Fraga,1644*

*Venus at Her Mirror ("The Rokeby Venus"),1644-48*

매혹적인 여성이 느긋하게 거울을 보며 길게 몸을 뻗는다.
손으로 머리를 괴고 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여성의 뒤에서 우리는
그녀의 풍만한 몸으로부터 환영과 같은 거울 속의 얼굴로 조금씩 빨려 들어간다.
그림의 여주인공은 눈보다 희고 대리석보다 매끄러운 피부와 탄력 있는 근육으로
군살 없이 다듬어진 몸매를 관음증에 시달리는 남성들에게 보여주면서 자신은
심연의 자아세계로 조용히 침잠하고 있다. 어깻죽지에 작은 날개를 달고 있어 그가
큐피드임을 있는 어린 소년은 주인공의 충실한 몸종처럼 거울을 받쳐주고
미소 머금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화가는 사람을 붉은 천과 푸른 천으로 치장한 실내에 놓아둠으로써 그들이
고귀한 신분임을 암시하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장의 누드화는 벨라스케스의
대표적인 그림들과 달리 잔잔한 성적 흥분을 바탕에 깔고 있다. 또한 관능적인
분위기가 화면 가득 담겨져 보는 이로 하여금 어쩔 모르는 사랑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많은 미술사학자들이 그림의 여주인공을 그의 정부, 이탈리아
여인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추리는 우선 그림에서 관능적인
여성을 정면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화가와 모델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애틋하며
몽환적인 여성의 얼굴 표현으로 그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그리고 큐피드를 배치하여 사랑의 감정을 깊이 드러낸다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그림에서 여성의 신체 표현은 정확한 모델링을 통해 얻어지는 사생적
묘사가 돋보이는데, 포즈를 제공했을 그녀는 벨라스케스의 정부가 아니었을까?

*Innocent X,1650*

*Queen Doña Mariana of Austria, 1652-53*

*Maria Teresa of Spain ("with two watches"),1652~53*

*Las Meninas,1656*

벨라스케스는 제단화나 초현실적인 그림보다는 사실주의 화풍의 인물화, 집단
초상화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필리페 4세의 개인 사무실에 걸려 있을 만큼
그가 아꼈던 그림은 필리페 4세와 그의 가족들의 초상을 그린 작품으로, 실내 묘사
자화상, 집단 초상화 화실의 화가 등이 하나의 그림으로 담겨져 있다.
그림이 배경이 되는 곳은 죽은 왕자의 침실이다. 펠리페 4세와 마리아 사이에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는 가는 허리에 넓게 퍼진 푸른 스커트로 치장하고, 어딘가에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녀 옆에서 하녀는 무릎을 꿇고 먹을 것을 권하고 있지만
거절당한다. 그녀들 앞에는 난쟁이가 개를 발로 건드려 보고 있으며, 하나는
그림의 정면을 묵묵하게 쳐다보고 있다. 다른 인물들은 바라보는 곳이 정확한 반면
마르가리타의 시선은 명확하지 않다. 그녀 뒤에 떨어져 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보면 그녀 부모의 얼굴이 비치는데, 공주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미술사가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팔레트에 붓을 찍고 있는 화가가 전면에 캔버스와 원근법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곳에 있는데, 훈장이 박혀 있는 의상이 궁정화가임을 눈에 보여준다.
수녀와 경호원으로 보이는 인물, 그림 구도에서 소실점이 모아지는 문가에도 인물이
침실 내부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사실적인 양감과 함께 치밀한 묘사가 차갑지만 밝은
색채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법상의 요소들과 더불어 시각적으로 신비한 느낌을 주는
인물들의 표정이 함께 결합되면서, 그림은 우울하면서도 묘한 울림을 주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단정한 공주의 모습을 은근히 강조한다. 그녀는 오른쪽 상단에서
공간으로 떨어지는 충만한 속에 잠겨 있다. 빛은 벨라스케스와 시녀들과
난쟁이들을 단지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시녀들과 함께 있는 다섯 살짜리 공주
마르가리타의 초상화 위치가 사전에 준비되어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벨라스케스를 통해
우리는 그와 공주와 시녀들과 난쟁이들이 들여다 보고 있는 2 거울을 연상하게 된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초상화 제작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룹 속에 있는 벨라스케스와, 그림 거울에 비친 왕비와 돌아가려던 시종장이 그림
속에 묘사된 대형 캔버스 위에서 있는 것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벨라스케스가 궁정 화가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일까?
증명된 것은 1651 벨라스케스가 여러 번에 걸친 왕의 요구 때문에 마지못해 자신의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마드리드로 돌아왔다는 사실과, 그리하여 1625 왕궁의
시종으로 임명되고 1659년에는 산티아고 기사단의 작위를 받아 계속해서 궁정
관직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벨라스케스는 17세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의
사람이었다. 그의 직접적인 후계자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고야가 1778
<
라스메니나스> 판화로 제작한 있으며, 마네는 그의 회화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라스메니나스> 직접적으로 재현했던 20세기 화가로는 피카소와 달리가 있다.

*Infanta Margarita,1656*

벨라스케스는 1623년부터 스페인 필립 4세의 궁정화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초상화를 제작했다. 그의 궁정 초상화들은 초기 작품에서 있었던 카라바조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티치아노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묘한 색조 분석이 돋보인다.
그는 궁정 초상화에서 과장을 피하고, 왕가의 인물들을 사실적이고 기품 있게
그려냈다. 특히 벨라스케스는 필립 4세의 딸인 마르가리타를 모델로 하여 여러
작품들을 남겼는데, 작품에서 마르가리타 공주는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보다
4
년여 남짓 지난 후의 모습이다. 공주의 외모와 자세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벨라스케즈의 회화 기법은 분명한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작품에서 사물에 비치는 반짝이는 빛을 새로이 탐구하여, 생생한
질감과 실감나는 색채를 이끌어냈다. 드레스와 검은 레이스 장식의 대담한 패턴
빨간 벨벳 의자와 드레스의 투명하고 빛나는 색채 등은 후일 인상주의 화가들이
벨라스케스에게 매료되도록 하였다. 인물의 특정적인 부분만을 살린 표현 기법
반짝이는 빛을 정확하게 포착한 생생한 터치는 그가 인상파의 선구임을
확신하게 한다.

*Las Hilanderas (The Spinners),1657*

*Prince Felipe Prospero,1659*

*Portrait of the Infanta Margarita, 1660*

*The Infanta Don Margarita de Austria,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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