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참고자료/로코코 - 프랑스 영국

서양미술사15 로코코미술:바토((Watteau, Jean-Antoine:1684~1721), 부셰(Francois Boucher: 1703~1770)

AH101 2012. 2. 1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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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로코코 미술(Rococo Art: 왕실 중심의 동적인 18세기 미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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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바로크 미술과 18세기 후반의 신고전주의 미술 사이에 유행한
유럽의 미술양식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도 퍼져나갔다. 로코코라는 말은
프랑스어의 로카유(rocaille)에서 유래한다. 본래는 당시 귀족사회의 생활을
미화하기 위하여 고안된 장식양식 내지 공예품에 대하여 쓰인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시대의 프랑스 미술, 나아가서는 유럽미술 전반에 걸친 양식
개념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어원에서 오는 조소적(嘲笑的)
의미는 불식되고, 독자적인 형식감정과 이에 부응하는 창조적이며 자율적인
가치를 가진 미술 양식으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로코코는 그에
앞서는 바로크 미술이 즐겨 쓰던 부정형(不定形)이나 유동적인 조형요소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바로크의 연장 변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바로크가 지녔던 충만한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따위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유희적 정조로 바뀌었는데, 다시 말하면
바로크가 남성적, 의지적(意志的)임에 비하여 로코코는 여성적, 감각적이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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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과 산업은 인간의 실제 생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현실세계에 대한 낙관하였고 내세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실에서 행복과 향락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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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미술활동의 무대는 교회와 왕실이었지만 중상주의 정책의 결과
부르조아지가 등장하면서 살롱(Salon) 미술활동의 새로운 무대로
등장하였다. 부르조아지들은 바로크의 묵직한 미감 대신에 상쾌함을, 지적인
구성 대신에 감각적인 관능을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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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초 자유스럽고 향락적인 인간 감정이 존중되기 시작한 풍토 속에서
만들어진 미술이 로코코 미술(Rococco Art)이다.
로코코 미술가들은 귀족의 연애와 우아한 연희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로코코 미술은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로 나아갔다.
시대는 회화가 번성한 시대이기도 하였다. 단지 귀족들만이 아니라
서민층에도 회화 취미가 침투하여 전람회(살롱) 통하여 화가와 대중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미술평론이라는 새로운 장르도 나타났다. 엄격한 데생을 주장하는
푸생파(구파) 색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루벤스파(신파) 대립을 거쳐
무렵에는 이미 신파의 승리가 결정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경쾌한 필치와 풍요한
색채에 의한 화려한 구도와 정서적인 표현방식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신파 외에 베네치아파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색채와 함께 풍속화의 양식도
유입되어 사실적 표현이 애용되었다.

와토(Watteau, Jean-Antoine:1684~1721)


로코코 미술의 창시자중 한사람으로, 전원극 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희극에서 사교계의 풍속을 그대로 옮겨 그려 여기에 시적인 해석을 가해
<
우아한 잔치> 불리어지는 로코코의 대표적인 그림 제목을 만들어 내었다.
현실적 감각과 몽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사랑스런 화풍이 특징이다.
프랑스 발랑시엔 출생이다. 1702 파리로 나와 당시 그랑드 오페라극장의
장식화가였던 C.질로에게 배우고 이어 장식화가 C.오드랑의 조수가 되어, 주로
인물사생과 희극배우들을 스케치했다. 오드랑은 당시 뤽상부르궁의 어용화가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의 접촉으로 궁전에 있는 루벤스나 플랑드르계
명화를 접하고 감화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16세기 베네치아파에서도
영향을 받아, 점차 로코코회화의 창시자로서의 작풍을 확립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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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아카데미 정회원이 기념으로 그린 《시테섬으로의 출범》(루브르
미술관 소장)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그림 속에는 와토 예술의 특색이
나타나 있다. 그는 당시 베르사유궁전을 중심으로 꽃핀 화려한 왕조문화의
궁전풍속을 비롯하여 주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던, 밝고 우아하며
어딘지 모르게 관능적인 매력을 풍기는 풍속이나 취미에 적합한 작풍을 전개
하여 '아연'으로 불리는 로코코회화 특유의 테마와 정서를 확립해 가고 있었다.
자연관찰에 착실하였으며,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다른 로코코 화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없는 풍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육체적으로 연약했던 와토는 일찍부터
폐병을 앓아 20 요양차 런던에 갔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다시 파리에 되돌아
왔다. 그런 와중에서도 친구 제르생이 화상을 시작하였을 , 가게의 간판
그림으로 평생의 걸작 《제르생의 간판》(베를린 샤를로템부르크궁 소장)
그리기까지 하였다. 그림을 완성하고 얼마 가서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18세기의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The Embarkation for Cythera,1717*

와토가 1717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작품으로, 루벤스의 <사랑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18세기 새로운
로코코 미술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개방적이며 곡선이 주조를 이룬 화면 구성, 밝은 색채, 행복감과 노스탤지어를
함께 불러 일으키는 전체 분위기는 18세기 프랑스 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림은 펠로폰네소스의 남쪽 해안에 위치해 있고, 비너스 여신을
섬기는 성전이 있는 시테르 섬을 향해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고전적 주제에 인물들의 의상은 당시 18세기 현대적인 의상으로
묘사된 것이 또한 특징적이다. 화려하게 치장한 세련된 젊은 남녀들이 사랑과
쾌락의 시테르를 향해 한결같이 들떠 있거나 아쉬워하는 기색이 그림에
역력하다. 와토는 행복은 본질적으로 덧없는 것이란 의식을 그의 작품 주제로
즐겨 사용했다. 그림에서 순례자들은 산과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풍만한
가슴을 지닌 여신상과 큐피드에 둘러싸여 서로 짝짓기를 하거나 아름다운 풍경
아래 사랑과 쾌락의 술에 젖어 있다. 그리고 이런 유희가 끝난 낙원을 떠나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서글픔도 보여지고 있다. 이처럼 와토는 그림에서
괴로운 현실 세계를 벗어난 이상향에의 꿈을 사랑과 쾌락이라는 주제로 소화
시키면서, 베네치아 화풍과 루벤스의 밝은 색채를 사용하여 뛰어나게 재현해
내고 있다.

*파리스의 심판,1718*

루키아노의 "신들의 대화" 20권에 기록된 파리스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져놓고 황금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자가 나를 소유하라"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헤라, 아테나, 아프로
디테 등의 여신이 사과를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다가, 헤르메스의 안내에
따라 목동 파리스에게 미의 판결을 받게 된다. 특히 루벤스 같은 화가는
<
파리스의 심판> 관한 주제를 다룬 그림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그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와토의 <파리스의 심판> 루벤스의 그림과는 달리, 작은
크기의 화폭에 구성 또한 차별화되고 있다. 그림은 화상 제르생의 간판의
배경에 나타나는 하나의 그림을 위한 습작이라는 설이 있는데 <제르생의 간판>
왼편에 그려진 뒷모습의 부인의 모델로서 전라의 여인이 묘사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가는 목과 어깨 자그마한 머리 등은 와토의 다른
여성상에서도 있는 와토적 취향의 것이다. 색채를 두고 때에도
<
화살을 빼앗긴 큐피드> 연결되는 진주색의 투명한 채색법 또는 청록색의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주제 자체를 두고 <파리스의 심판>
정경이 어떠한 시적 발상에 의한 것인지, 또는 우의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길이 없다. 방패를 들고 있는 이는 헤르메스이고, 사과를 들고 있는
이는 파리스이며 뒷모습이 아름답게 묘사된 여신은 명뿐이어서 여신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림의 제목이 말해주듯 "파리스의
심판" 와토풍으로 재현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Les Charmes de la vie (The Delights of Life),1718*

*Gilles(Pierrot),1718*

와토의 그림에는 우울한 주제가 담긴 작품들이 많이 있다.
후에 들라크루아에게 영향을 주었던 멜랑콜리(우수) 원초적이며
현실 삶의 고단함을 인물에 그대로 투영시키면서, 인물보다는 환상적인
배경을 통해 생의 허무함이 더욱 강화되는 극적인 대비 효과가 나타난다.
작품 <피에로>에서는 직업상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도 슬픔을 속으로
삼켜야 하는 피에로의 슬픔이 묻어나고 있다. 거의 등신대로 그려진
작품은 "회화 예술의 정점, 인간 정신의 가장 빛나는 표현의 하나"라고까지
극찬되고 있는 놀라운 작품이다. 질르는 흰옷을 걸친 어릿광대의 모습으로
때묻지 않은 천진 소박한 인물로 무대에 등장한다. 작품에 그려진 질르의
모델이 누구이며 또한 배경을 이루는 몇몇 인물들, 특히 당나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수한 해석이 존재한다. 이제까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예를 들면 깜찍한 아가씨무용수, 어린이, 피에로, 아를캥
나아가서 , 등은 모두 와토 자신의 극중 인물들이었다.
따라서 질르의 천진함과 소박함, 방심한 자신을 방어할 아무런 능력도 없는
같은 순진무구함 생에 지치고 힘겨워하는 모습 등은 힘든 삶을 살다가
37
살에 폐병에 걸려 죽은 와토 자신의 모습이라고 추측해 있다.

*Pilgrimage to Cythera,1719*

*Plaisirs d'amour(The Pleasures of Love),1719*

*Reunion en plein air(Meeting in the Open Air),1719*

*Voulez-vous triompher des Belles?

(Do You Want to Succeed with Women?),1720*

*Sous un habit de Mezzetin(In Mezzetin's Costume,1720-21*

*Gersaint's Shopsign,1721*

   

   

   

부셰(Francois Boucher: 1703~1770)


프랑스 파리 출생. 한때 F.르무안에게 사사하였으나, A.와토에게서 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1723 왕립미술원에서 회화대상을 받고 1727
이탈리아로 당시 이탈리아 최대의 장식화가인 G.티에폴로를 연구한
귀국하여 1734 아카데미 회원, 1765년에는 회장이 되었는데 그동안
궁정화가로서 루이 15세의 2부인인 퐁파두르부인의 총애를 받아 화단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취재하여 요염한 여신의 모습을 그렸고
귀족이나 상류계급의 우아한 풍속과 애정장면을 즐겨 그려, 프랑스 로코코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뛰어난 장식적 재능을 발휘하여 고블랭공장을 위해
많은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을 그리고, 삽화나 만화 분야에서도 다채로운 활동을
하였다.

*Venus Demanding Arms from Vulcan for Aeneas, 1732*

*The Rape of Europa, 1732-34*

*Rinaldo and Armida,1734*

* The Afternoon Meal,1739*

*The Birth of Venus, 1740*

*Leda and the Swan,1741*

*Diana Leaving her Bath,1742*

로코코 미술을 이끌어가던 선두 화가로는 와토가 있었으며, 그를 뒤이어
프랑수아 부셰에 이르러 로코코 미술은 더욱 화려한 회화 양식을 빛내게
되었다. 작품 <목욕하는 다이아나> 부셰의 회화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그림이라 있다.
빛과 매력이 가득 환희에 넘치는 배경에, 여인이 이제 목욕을 마치고
숲가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목욕 전에 사냥을 죽은 새들이
화면 오른쪽에 있고, 화살통이며 사냥개들이 죽은 사냥감과 좌우 대칭을 이루며
왼쪽에 배치되어 있다. 몸을 만지고 있는 여인의 벗은 몸은 눈부시게 화려한
색채와 빛으로 관능적으로 빛난다. 성숙한 여인과 사냥이라는 소재가 하나의
화폭에 담겨있는 풍경은 상류 사회의 사치스런 취미와 쾌락을 즐기던 당시의
풍속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랑과 쾌락, 신화의 에로틱한 이야기들을
차용해서 화려한 그림을 그리던 부셰를 뒤이어 프라고나르에 이르면, 프랑스
로코코 미술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Diana's Return from the Hunt,1745*

*A Summer Pastoral, 1749*

*An Autumn Pastoral, 1749*

*The Toilet of Venus,1751*

*Venus Consoling Love,1751*

*Nude on a Sofa (Reclining Girl),1752*

*The Odalisk, 1753*

* The Visit of Venus to Vulcan ,1754*

*The Marquise de Pompadour,1756*

*Portrait of Marquise de Pompadour, 1759*

*Shepherd and Shepherdess Reposing,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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