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55 큐비즘(입체파) 페르낭레제, 들로네, 그리

서양 미술사 - 55(입체파: 레제, 들로네, 그리)

   


레제(Fernand Legar: 1881~1955)


프랑스 아르장탕 출생. 처음에는 캉의 건축사무소에서 견습생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나 1903 파리의 미술학교에 들어가, 제롬과 페리에에게 사사하는 한편
루브르나 아카데미 쥘리앙에 다니면서 공부하였다.
초기에는 인상파와 신인상파의 감화를 받았고, 마티스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였으나, 1907년경 세잔의 작품을 계기로 화면 구성이나 공간 표현을
연구하게 되었다.

1910
피카소와 브라크, 아폴리네르, 들로네 등과 사귀어 입체파(큐비즘)
운동에 참가하여, 대표자의 사람이 되었다. 특히 들로네와 같이 정물화다운
제재(題材)보다 자연과 인간생활의 구도를 즐겨 다루면서 단순한 명암이나
명쾌한 색채로써 대상을 간명하게 나타냈고, 원통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를
좋아하였다. 기계문명의 다이나미즘과 명확성에 이끌려 그것을 반영한
다이내믹 입체파라는 경지를 이루었다. 1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부상을
입었으나, 전쟁의 체험을 통하여 기계와 인간의 공동작업이라는
시대의 주제에 눈을 명쾌한 포름과 순색(純色) 평도(平塗) 기계적인
표현으로 나아갔다. 코르뷔지에와 몬드리안 등과 사귀어 추상주의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회화와 건축, 인쇄 ·영화 ·연극 등의 관련에도 관심을 보였다.
현대 사회생활의 요구를 반영하고 생활의 실감을 존중하는 제작을 의도하였다.

유채화 ·소묘 ·판화에서 벽화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등에도
손을 대어 폭넓은 활동력을 발휘하였다. 1920년대에는 전위영화 《발레
메커닉》(1924) 무대장치와 영화 ·발레 관계 일에 종사하였고, 2
세계대전 중인 1940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곡예》나 《자전거 타기》
등을 제작하였다. 1945 다시 파리로 돌아와 1946 아시교회의 정면을
모자이크로 장식하였고, 오댕쿠르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도자기나 태피스트리
광범위한 일에 종사하여 간명하고 힘센 평면적인 표현을 통하여 기계시대의
새로운 인간상을 추구하였다. 1960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의 비오에
레제미술관이 개관되었다.

*The City, 1919*

*The Discs in the City*

*Leisure Homage to Louis David*

*Still Life with a Beer Mug, 1921*

*The Four Cyclists*

*The Builders, 1950*

레제는 하나의 건물을 세우는 사람들을 관찰하여 여러 각도에서 그리고
있다. 작품은 커다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조립되는 견고한 철골과
선명한 색채, 일하는 사람들의 활력이 넘치는 대작이다. 레제는 작품을
통해 문명과 인간의 조화, 형과 색의 선명한 대비 등을 강조하고 있다.

*The Parade*

*Three Women*

*Two Women Holding Flowers*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


프랑스 파리 출생. 주로 역사화를 그린 고전주의 화가 J.E.들로네의 아들이다.
처음에 신인상파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색채 연구에 열중하였고 입체파
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파의 동향 등에 촉발되어
1912
년경부터 순수한 프리즘색에 의한 율동적인 추상 구성을 발전시켜서
오르피즘의 창시자가 되었다.

당시의 대표작 《에펠탑》(1911) 연작에서 《창()(1912) 이르는
발전 과정은 구상으로부터 비구상으로의 이행, 색채 자체에 의한 율동적인
공간 표현을 달성한 것으로서 추상 회화의 역사에 중요한 의의를 남긴
것이었다. 또한 색채론과 독일미학에도 조예가 깊어 V.칸딘스키, F.마르크
P.
클레 등의 '청기사(靑騎士)' 그룹전() 초대 출품하는 국외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다.
들로네는 1909년경의 에펠탑 연작에서 분석적 큐비즘의 영향을 보여주지만
피카소나 브라크와는 달리 색채를 지양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후에 그려진 <>시리즈와 <, >연작에서는 비구상 계열의
순수 색채 회화를 보여준다. (그래서 아뽈리네르는 들로네와 같은 시기에
이와 비슷한 작품을 보여준 쿠프카나 피키비아 등의 작품 경향을 일컬어
<
오르피즘>이라 부른다. ) 오르피즘은 음악의 오르페우스에서 따온 말로
(
자신의 싯구에도 있다) 이들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색채의 율동성과
색채의 프리즘 효과를 나타내주는 말이다. 오르피즘은 그래서 오르페우스적
입체주의, 혹은 순수색채적 큐비즘이라 불려지게 된다.
부인 소니아(18851979) 러시아인으로 1905 파리에 와서 1910년에
그와 결혼하였다. 그녀 역시 오르피슴의 대표자로서 화사한 화면을 제작하였다.

*나무가 있는 에펠탑*

"빛은 모든 것을 왜곡시키고, 모든 것을 분해한다. 이상 기하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이 무너지고 있다." 적어도 30점의 작품이 포함된 연작의
대상인 에펠탑은 로베르 들로네 작품의 중요한 주제였다.
그가 1909년에 소냐 터크와의 약혼을 기념하는 뜻에서 처음 탑을 그린
것이 분명하며 다음 년간, 그리고 다시 1920년에 기술의 경이를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화폭에 담았다.
당시의 많은 문인과 미술가에게 그랬던 것처럼 들로네에게도 역시 탑은
근대성의 상징이 되었다. 라디오 수신탑으로서의 용량에 있어서, 에펠탑은
경계를 무너뜨려 유럽을 하나의 지구촌으로 변모시키면서 들로네가 마음속에
그렸던 국제적인 대화를 현실로 보여 주었다. 에펠탑에 대한 들로네의 첫번째
처리 방식은 제한된 색채와 단순한 블록 형태로 죠르쥬 브라크 새잔느의
영향을 보여준다. 다이나믹한 <나무가 있는 에펠탑> 표현 방식은
들로네 작품형식에 있어서 극적인 변화을 알려주고 있다.
들로네는 아마도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아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시각의
움직임을 암시하고 동시주의적인 조망을 표현하면서 여러 시점에서 탑을
한번에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시간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그가 내적인
지각에 대한 핵심이라고 믿었던 충분한 지각의 경험을 포착함으로써 몇몇
인상들을 종합할 있었다. 그가 파리를 떠난 , 기억에 의존하여
그림을 완성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는 기억을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가
유동적인 의식의 연속 고리에 의해서 통합된다고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주장에 영향을 받았다. 들로네는 에펠탑이 놓여 있는 거대한 공간의 혜택을
취하면서 구조물의 궤도 따라 하늘로, 다시 밑으로 움직이는 시선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시선이 전경의 나무로부터 멀리 탑의 꼭대기로 움직이고
건물의 전면을 가로질러 굽어있는 나무 가지를 따라 구름 기둥의 아래쪽으로
이동함에 따라서, 에펠탑은 자동적인 삼차원 대상물로의 위치와 전체적으로
그림 표면에 나타난 도안의 요소라는 본분 사이로 옮겨 가면서 전경과 배경
사이에서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각적 효과는 고도의 추상으로
그를 이끈 <> 시리즈로부터 들로네의 후기 작품에서 명백해졌다.
<
나무가 있는 에펠탑> 들로네의 화법상 해체 단계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보였던 견고한 형태가 분해되어 조각나기
시작하지만, 입체주의 미술가들의 연구 대상들과는 달리 여기서 에펠탑은
여전히 주변 공간으로부터 구별할 있는 형태로 남아 있다.
작품은 들로네가 대상물로 흩어진 구성 요소들의 만화경으로 조각내면서
견고한 형태에 침투시켜 그것을 부수기 위해 빛을 이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에펠탑, 1910*

*도시 2, 1910*

*Champ de Mars: The Red Tower, 1911/23*

*파리시, 1912*

단형, 1913*

* 개의 창문 연작의 습작, 1913*

*Homage to Bleriot, 1914*

*에펠탑, 1926*

*끝없는 리듬, 1934*

*공기. 그리고 , 1937*

후앙 그리(Juan Gris: 1887~1927)


피카소와 브라크 외에 이들의 큐비즘 미학을 이들보다 오히려 대중에게
전달했던 작가로서 후앙 그리가 있다. 그는 1912 경에 분석적 큐비즘
경향의 작품을 보여주고, 큐비즘 운동이 약해지기 시작한 1914 경에
종합적 큐비즘 경향의 작품을 보여준다.
종합적 큐비즘의 원리들이 그것의 가장 순수하고 논리적인 귀결에 이르게
것도 바로 그의 예술에서였다. 피카소를 비유컨데 미켈란젤로적인 재능을
가지고 전통적 가치를 전복시켜 버린 혁명가라 한다면, 그리고 브라크를
운동의 장인이자 시인이라 한다면 그리는 운동의 대변인이요, 운동의
정신을 구현시킨 사람이었다고 있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그보다 앞서 2 동안 진전시켰던 보다 선적(線的)이고
추상적인 유형의 회화를 대단히 개성적으로 변장시켜 가지고 그가 사람의
성숙한 큐비스트 예술가로 나타났던 것이 고작 1912년이었다.
그러나 앞의 두사람의 작품에서는 큐비즘이라는 새로운 테크닉이 형태와
주변의 공간이 상호 침투하면서 맞물려 잇는 보다 유동적이고 암시적인
유형의 회화에 이르렀던데 비해, 그리의 예술은 처음부터 당장 뭔가 훨씬
설명적이고 표제음악적인 결정체로 응결 되어있다. 그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각각 가로축과 세로축을 따라 이등분되어 있으며, 거기에서
나오는 단편들은 상이한 각도의 시선에 따라 세밀하게 검증되고 있다.
그런 다음 오브제는 다시 접합되어, 피카소나 브라크 작품에 나오는
어떠한 이미지보다도 체계적인 분석을 거친, 그러면서도 문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는 피카소와 브라크가 순전히 종합적인
큐비스트 언어를 개발하고 있던 무렵 여전히 분석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다시 말해서 그는 여전히 그의 소재에 대한 선입관과
자연주의적 이미지를 가지고 시작하고 있었는데, 이것들을 그는 의식적으로
'
동시적 시선' 원리에 따라 분석하고 추상화 시켰다. 그의 회화에 그려진
대상들은 지나치게 자연주의적이며 물질 세계의 원형에 지나치게 가깝다는
것을 그도 느꼈던 것이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초기 큐비스트 회화에
나타나는 오브제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그리의 주제는 훨씬 문학적이고
특정한 소재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그의 주제는 그것이 무엇인가
얼른 확인할 있는 모델들로부터 유래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을 때가
있다. 그리의 종합적 큐비즘적인 태도는 1913 이후에야 완성되었던
유화를 위한 예비적 탐구라 있는, 그의 이른바 '수학적 드로잉'
씨앗이 뿌려져 있었다. , 삼각자, 측경기와 같은 기하학 제도 기구의
도움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어떤
수학적, 원근법적 체계에 하나도 따라가지 않는다. 다만 그의 드로잉은
큐비스트 회화의 절차를 체계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단순한 기하학적 관계 설정을 통해 작업하면서 그가
순전히 추상적인 조형언어로도 조화로운 콤포지션을 성취할 있는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Three Lamps, 1910-11*

*Bottles and Knife, 1911-12*

*Still-life with Oil Lamp, 1911-1912*

*Portrait of Picasso, 1912*

*Still Life with Flowers, 1912*

*Glass of Beer and Playing Cards, 1913*

*Landscape with Houses at Ceret, 1913*

*Guitar on a Chair, 1913*

*The Siphon, 1913*

*Violin and Checkerboard, 1913*

*Pears and Grapes on a Table, 1913*

*Untitled (Violin and Ink Bottle on a Table), 1913*

*Violin and Guitar, 1913*

*Bottle and Glass on a Table, 1913-1914*

*The Bottle of Banyuls, 1914*

*A Man in a Cafe, 1914*

*Musician's Table, 1914*

*The Pot of Geraniums, 1915*

*Portrait of Josette, 1916*

평면들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들은 선과 뿐만 아니라 구조와 묘사된
물체들의 형태들이다. 하나가 그것의 모양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것이
하나의 같은 평면, 완벽하게 확인되어 있고 정해져 있는 공간안에 존재한다.

*Still Life with Fruit Dish and Mandolin, 1919*

*The Mountain "Le Canigou", 1921*

*The Open Window, 1921*

*The Painter's Window, 1925*

*Guitar and Music Paper, 19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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