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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Paiknamjun: 1932~) ★
서울에서
태어나
피아노와
작곡공부를
하다가 1949년
홍콩 Royden
School을
졸업, 195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학
미학문학부에서
공부
(아놀드
쉰베르크에
대한
논문으로
미학미술사과를
졸업), 1956년
독일로
유학하여
뮌헨
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학교
수료(서독
쾰른
전자음악연구회에
참여하며, 1958년
존
케이지를
만나게
된다)하였다.
유럽과
미국을
떠돌며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미술집단
플럭서스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테이프리코더와
피아노음악
공연(독일
뒤셀도르프, 1959), 피아노
포르테
연구(1960), 심플공연(스웨덴
스톡홀름, 1961), 뮤직일렉트로닉
TV전(1963) 등
많은
공연과
전시회를
가졌다.
1958년
존
케이지와의
만남으로
동서양의
사고를
섞고
음악과
미술을
통합
하여 Mixed Media로서의
예술을
지향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예술세계는
퍼포먼스와
비디오
아트로
크게
전개된다.
1963년
독일
부퍼달
파르니스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로
세계
미술계에
주목을
받는다. 한
인물을
대상으로 13가지의
모습
으로
변형시킨
최초의
비디오
아트전 '음악전람회-전자텔레비젼'전, 백남준은
음악을
소리의
세계에서
해방시켜
음악연주에
대한
인습적인
개념을
거부하고
해체하려
했으며
자서전적인
오브제로써
뒤샹의
오브제
미학을
계승했다.
1969년
미국에서
샬롯
무어맨과의
공연을
통해
비디오
아트를
예술
장르로
편입시킨
선구자라는
평을
들었다. '존
케이지의
예찬'은
한
대의
피아노가
무대에서
음악적인
괴음을
내며
쓰려지는
퍼포먼스이다. 케이지가
소리의
영역
을
넓히기
위해
음악에
액션을
도입했다면
백남준은
그러한
액션을
폭력화함
으로써
견해를
달리한다.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거나
피아노를
부수는
등
획기적인
행동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백남준은
플럭서스
그룹의
창설
당시부터
참여하여
활동한다. 이
시기부터
그는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능동적인
사고없이
텔레비젼을
시청한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네오다다
그룹에
참여하여
반체제
음악을
전개한다. 데
콜라쥬, 플럭서스
그룹
등
파괴적
행동을
하는
예술단체에
참여하여
해프닝과
이벤트를
계속하던
그는 1963년
초에
있었던
예술의
대변환기(해프닝, 플럭서스, 신사실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아방가르드
영화, 무용)에도
전세계를
다니며
활동을
보여준다.
무어맨과
함께
최초의 Sex-Music <성인을
위한
첼로소나타 No.1>을
공연하게
되었는데, 그의 Sex-Music은
회화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인
성이
음악에
있어서만
금지된
것에
반발이었다.
1970년
보스톤의 WGBH-TV 방송국의
도움으로
슈야
아베와의
공동작업으로
4년간의
경험을
하나의
테이프로
축적한 '비디오
신서자이저'를
발표함으로써
또
다른
새로운
분야의
선구자가
된다.
1984년 1월 1일
미국-유럽-한국을
동시에
연결하여
방송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전세계
방송사상
최초로
한
작가의
구상에
의해
여러
국가를
연결한
방송이다.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백남준은
전자매체를
토대로
형성될
미래
사회에
대한
낙관론을
가지고
있으며
'빅
브라더'의
통제수단이
아니라
인류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굿모닝
미스터
오웰'), 동과
서를
잇는
중요한
역할의
매체('바이바이
키플링')로서
텔리비젼을
수용하는
인공위성
프로젝트로
확장되었다.
1996년 6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
신경이
모두
마비되었다.
그러나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국내외에서
도시와
영상전(서울시립미술관, 1996)
교과서
미술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독일
비디오조각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97 바젤국제아트페어(스위스
바젤, 1997)
개인전(미국
국립미국미술관, 1997), 98 서울
판화미술제(예술의
전당
미술관, 1998), 한국현대미술전-시간(호암
갤러리, 1998) 등
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1996년 10월
독일《포쿠스》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예술가'
중에
들었고, 1997년 8월에는
독일
경제월간지
《캐피탈》이
선정한 '세계
의
작가 100인' 가운데 8위로
올랐다. 1998년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미술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예술과
비디오를
접목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공로로 '98년도
교토상'을
수상하였고, 한국과
독일의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메달'을
받았다. 2000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백남준은
새로운
방법으로
예술을
해석하여
새로운
사고를
창출해
냈으며
단순하고도
기발한
이미지를
생산, 궁극적으로
문화에
다양성을
제공했다.
시인이며
작곡가, 피아니스트, 화가, 비디오
아티스트, 철학자인
백남준-
현재
뉴욕의
멀서가에
살며
연중 1/3은
독일등
유럽에서
거주하며
작업한다.
그는
그
자신이
텔레비전
화면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지는
않지만
텔레비전을
표현매체로
하여
그것을
기술적으로
제작하고
조립하는
제작자의
위치에서
감상자에게
보다
다양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텔레비전을
물감을
쓰듯이
풍부하게
일개인인
소유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현실에서
보면
이러한
것은
일부
전위
예술가들의
전유물인
것
같이
보이지만 ,한
폭의
명화를
오래두고
감상하기보다
전자오락실에
드나들기를
즐겨하는
요즈음
젊은
세대들에겐
백남준의
작품이
보다
아름다운
환상적인
화면을
제공해
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시대의
상품은
예술과
정보가
주역이
되는
체험, 필링, 엑스터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오락물로, 모두
체험
중심의
비제품적
상품들이다.
예술은
그
시대의
중심이
될
것이며, 그의
예술은
그것을
예감하고
만들어
지는
미래의
예술형태이다. 그렇듯
백남준, 그의
멀티미디어
하이테크
아트의
가능성은
끝없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완전피아노, 1958~63*
당시
독일에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자주
벌렸던
백남준이
가지고
있던
여러
대의
피아노
중
하나를
그의
친구와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전시회
후에
팔리지
않은
이
피아노
작품을
들고
투덜거리며
길가에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그
당시에는 10년
후
억만금이
될
작품을
부수고
있었던
것를
꿈에도
몰랐다고
고백하였다.
*로봇K-456, 1964*
*존
케이지의
현악기을
위한 26.1.1499, 1964*
백남준은
절친한
친구
샬롯
무어맨과 2인조로
갖가지
해프닝을
벌였다.
무어맨은
혼자서도
반나체로
첼로를
연주하기도
하고
텔레비전으로
만든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그
에로티카 2인조들이
하는
공연
중에는 24시간동안
하는
공연도
있었는데
그 24시간
해프닝에
대해
그는
전세계
미술사의
한페이지를
차지하는
역사적
사건이라
말하였다.
*무제, 1968*
*일렉트로닉
오페라 No. l, 1969*
*텔레비전
안경을
쓰고 TV첼로를
연주하고
있는
샬롯
무어만, 1971*
*글로벌
그루브, 1973*
*TV 부처, 1974*
*물고기
하늘을
날다, 1976*
*TV 시계, 1976~82*
*TV 부처, 1978*
동양적
정서를
갖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며
백남준이기에
가능했다고
서양사람들이
극찬한
작품이다. 그가
조국에
대한
정서로
가지고
있는
부처
이미지를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부처는
고고해
보이며
그
앞의
텔레비전은
부처
앞에
놓여있는
우주
공간처럼
보여지고
있다.
그는 TV를
이용하여 TV브라, TV로댕
등
여러
응용작품을
제작하였다.
*선은
빨갛다, 1982, 안테나를
붙인
캔버스에
유화*
*TV 브라, 1982*
백남준의
예술적
동반자
샬롯
무어맨이
그가 TV로
만든
브라를
착용하고
퍼포먼스를
행하였다. 그
작품은
무게만
해도 3킬로그램이
넘었지만
그녀는
퍼포먼스
중의
자신이
살아있는
조각이라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당시
여성해방운동의
하나였던
노브라
운동에
자극받은
것이라
한다.
*TV 정원, 1982*
인공적인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자연
친화적인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그는 "치유의
예술" 을
지향하고
있다. 미술관
내에
식물을
이용한
숲을
만든
후
텔레비전을
함께
설치한
이
작품의
공간
안에서
관객은
휴식을
취하며
기술과
자연의
조화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무와 TV가
완전하게
병합될
수는
없지만
같은
공간에
존재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의도는
충분히
보여지고
있다.
*하얀사슴, 1984, 캔버스에
안료와
콜라쥬*
*예술과
인공위성,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1984년
백남준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
앞에서
위성을
이용한
중계
예술
<굿모닝
미스터
오웰>를
보여
주었다. 이
작품은
새벽2시
우리나라에서도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1984년>이란
소설로
텔레비전이
인류를
지배
하리라는
조지
오웰의
시각을
부정하고자
그는
참여 TV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텔레비전
예술을
통해
인류에의
희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그의
이상이었다.
*피아노산소, 1985*
*로봇가족 :삼촌, 1986 *
*로봇가족 :숙모, 1986 *
*로리앤더슨, 1986*
*닭장, 1986*
*색칠한
아이, 1986*
*다다익선, 1986, 1003대의
텔레비젼모니터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현대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88올림픽을
기념하여
제작된
것으로
텔레비전들을
탑처럼
쌓아
높이만
해도 18미터가
넘는
작품이다. "언젠가는
전세계 TV를
한
집안에서
보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그는
전세계의
이미지를 1003대의
모니터에서
쏟아내는
현란한
이미지들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보이스
모자, 1988, 시멘트와
풀*
*토끼
또는
달, 1988, 도자기*
*세종대왕, 1988*
*Norbert Wiener의
타임시리즈
방정식, 1988*
* 남승용의
골인, 1988*
*1936년의
서울거리, 1988*
*24개속의
하나, 1988*
*안테나가
있는
손기정, 1988*
*손기정의
골인, 1988*
*요소, 1989*
*올랭피아, 1989*
*벤자민
플랭클린, 1989*
*나의
파우스트, 1989~91*
*백남준의
존케이지, 1990*
*두
스승, 1990*
*파라다이스
나우, 1991*
*갈릴레오
갈릴레이, 1991*
*세기말
인간, 1992*
*김유신, 1992*
*정약용, 1993*
*스키타이
왕
단군, 1993*
*정보
초고속도로, 백남준과의
여행, 1993*
*백팔번뇌, 1998*
98년
경주
세계
문화엑스포에서
전시되었던
작품이었다.
불교
도시라
할
수
있는
경주의
이미지를 108개의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안심낙관, 1999*
뇌졸중으로
병원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았던
백남준은
환자들이
병원에서
안심하고
낙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위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백남준은 1990년대에
들어서
삼성의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되어
그때부터는
소니
텔레비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
작품은
강남
우리들병원에
소장되어
있다.
*동시변조,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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