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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강의정리(서양미술과 현대시각문화4)

AH101 2022. 7. 1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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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새로운 공간 결국 이야기하고 싶으 것은 자연의 미를 수직수평의 선으로 단순화. 이 세상을 두 가지 힘의 팽팽한 균형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한쪽이 너무 강해지면 망가지기 때문에, 긴장이 ㄴ유토피아의 비전.
이무렵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 THEOSOPHY
19세기 말에 시작된 종교, 20세기 전반까지 유럽 지식인들에게 어필.
기본적으로는 인도의 종교, 동서양의 종교가 융합.
여기에 의하면, 이 세상에 사이클이 있는데, 제5사이클이 유럽. 다른 사회가 나와서 제7사이클이 이상적 유토피아.
예를 들어 소련혁명이 유토피아라고 실제로 많이 생각을 했다.
우주의 여러가지 힘을 팽팽한 균형으로 봤을때 이게 그사람이 생각한 유토피아. 
자연에서 압도되는 UNITY를 화면에 옮겨보려는 시도.
통일감에 집중, 끊임없이 조정된 상태. 상대적인. 마지막에는 완전히 균형있는 평원으로 조정
이것은 너무 금욕적이라고 생각. 갈색의 색채 - 큐비즘

4. 1916 구성
a. 여기서 색채를 사용. 상당히 풍요로운 모습. 뭐가 문제냐?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선이 색채위에 얹어져있어서, 선이 색을 DOMINATE했다. 
5. 1917 구성 A  / B
a. 이것이 색채와 선 간에 실험
6. 1919 구성
7. 1930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a. 몬드리안이 1917년 작품을 했을 때, 전쟁으로 네덜란드 귀국, 17년에 화가 조각가 건축가가 모여 새로운 협동미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역사의 전환점이라 인식. 전쟁의 혼란 속에서 자신들이 새로운 시대로 가는 전환점에 있다고 생각. 미래주의가 그랬듯이.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양식이야말로 새로운 시대 문화에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 자신들의 그룹을 DE STIJL THE STYLE - THE = 유일한 양식이다. 
i. 공동 간행물DE STIJL 
ii.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의 특징은 화음. 미술 뿐 아니라 주위환경을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는 종합예술운동이다. 미술이 실생활과 연관되기를 원했다.  어찌보면 영국의 19세기 미술과 공예운동 등. 
iii. 디자인사에서는 ARTS AND CRAFTS MOVEMENT와 
iv. 테오 반 되스부르흐는 몬드리안의 화면을 신조형주의 NEO PLASTICISM이라고 해서, 모든 화면을 삼원색과 삼비색이라고, 유토피아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다고, 가장UNIVERSAL한 색은 삼원색. 가장 보편적인 색인 삼원색. 으로 색채를 제한한다. 나중에 되스부르흐와 사이가 나빠진 게 되스부르흐가 초록을 좋아했기 때문.
v. 우주의 구조를 건축적 구조로 하려 함. 몬드리안의 미술은 비대칭의 균형. 기하학적 형태와 까만 선, 직각, 이런것을 사용해서 유토피아의 환경을 화면에 창조하려는 것.
vi. 당시 사람들에게는 황당하게 보였을 것.
vii. 모더니즘의 기본 마인드 - 화가는 창조주. 몬드리안의 그림이 크지 않은 이유는 그림이 너무 크면 통제가 안되니깐. 
viii. 1920년쯤 되면 몬드리안에게 자연의 묘사는 완전히 사라진다.
ix. 직관적인 균형감각을 사용, 선과 면과 색채를 조정. 형태를 규정짓는 검은 선이 굵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건축적 구조적 모든것이 상대적이라는 것. 단순한 공식에 의한 것 같지만,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 팽팽한 균형상태.
8. 구성, 1932
a. 60살. 여기서 보면 가장자리에 검은색이 둘러진 것이 없다. 색채는 밖으로 확장하려는 성격이 크고, 색을 둘러싼 이외의 독자적인 성격을 갖는다. 색채와 구조가 명확, 비물질적, 정신적, 실제세계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유토피아의 실현을 이끌어가는 것이라 생각. 드 스킬 그룹은 상당히 정신적 측면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9. 1942,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a. 1930년대까지 작업을 하다가 전쟁이 나자 뉴욕으로 오게 되었다. 뉴욕에 와서 도시 활기에 감명을 받고, 작품이 훨씬 명랑해진다. 
b. 색채가 아닌 콜라쥬같은 모습. 
10. 리트펠트 1917, 빨강과 파랑의 의자
a. 선과 면, 빨강파랑노랑, 관계 이런것은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가 의자에 적용된 케이스이다. 
b. 모형으로도 많이 파는데, 별로 앉기 좋게 생기지 않았다. 미적이기는 한데, 실용성은 떨어진다.
c. 미적이면서 기능성이 보완되어 나오는 것이 바우하우스이다. 의자를 하더라도 가죽이나 여러가지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여 기능적으로 된다. 
11. 슈뢰더 하우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1923
a. 지금은 박물관 미술관. 작은 개인의 집이지만, 몬드리안의 그림이 집에 적용된 것 같다. 
b. 집의 두꺼운 벽이 없는듯한 곳도 있다. 모서리 창문을 열면. 
c. 이동식 스크린과 미닫이 문.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d. 노란색 선은 기능적인 것은 아니고 구성 역할이다. 전체 면의 구성상.
e. 모서리를 열어버리면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다. 무거운 벽의 느낌이 없어지면서 투명하고 가벼운.
f. 실내장식이나 가구도 그렇다.
12. 의자 - 리트펠트
a. 면과 선을 사용해 만든 의자. (쓸 수 있을까?ㅋ)
13. 테오 반 되스부르흐
a. 몬드리안이 싫어했던 대각선을 사용. 다이나믹하지만 균형이 무너지는(훨씬 장식적인 효과를 주는)
b. 드 스틸 전파의 역할은 이 사람의 영향이 컸다.(전시를 한다든지)
c. 1920년대 되면 바우하우스 23년에 생기고 서로 교류.
d. 예술이 아름다운 환경이나 질서를 주고, 미술이 유토피아의 사회에 이르는 방법이라던 그런것이 결국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많이 보인다. 현대 디자인에서 비슷한 요소를 많이 볼 수 있다.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가


독일표현주의
기하학적 형태, 추상까지 봤다. 여기는 다시 독일. 
1. 
a. 프랑스에서 야수파가 활약하던 시대. 독일은 프랑스보다는 뒤졌고, 인상주의가 1910년대에 소개. 자유로운 원색 활달한 붓으로 자연을 주관적으로 프랑스화가들이 보고 있던 때, 독일 화가들은 자신들의 그룹을 만들었다. 드레스덴 건축학도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에른스트 키르히너 KIRCHNER/ ERIK HECKEL/KARL SCHMIDT ROTTLUFF등
b. DIE BRUECKE (THE BRIDGE) 모든 새로운 것들을 연결하는 다리. 독일에서 일어난 첫번째 중요한 미술운동. 처음에는 키르히너의 방에서 토론했지만, 나중에는 커다란 스튜디오를 가지고 작품을 했는데, 에칭 드로잉들을 많이 해서, 야수파들은 그냥 친구들의 모임인데 비해서, 다리파는 목적이 확실 탄탄한 그룹, 공통의 양식을 추구했던 사람들. 여행도 같이 가고 전시도 기획하고 성명서도 발표. 우리는 이런이런것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미술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준회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자기들의 판화를 보냈다. 
c. 이사람들 - 프랑스 미술의 경우, 상당히 점차적으로 변한 데 비해서, 사회적으로도 급변하는 독일의 사회, 갹동, 현대사회로 가려는 과정에서 너무 안이하고 물질적인 중산층의 도덕의식, 사회적 갈등 등을 의식하면서 새로운 인간의 해방을 꿈꾸었던 것이 다리파. 그래서 이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서
i. 페이슈타인, 에밀 놀데 등 - 1910년까지는 드레스덴에서 주거하다가 베를린, 이후 내부분열로
ii. 과격, 서로의 작품을 비판하는 것이 강해서, 에밀놀데등이 가입은 했지만 어린것들이 자기 작ㄱ품을 비판하는 것이 고깝고 ㅋ탈퇴.
d. 도시적인 주제, 창녀, 풍경. 종교적인 불신, 사회의 갈등, 인간이 받는 압박감 현대 인간들의 심리적인 상황. 기본적으로 전통을 무시하고 원시적인 미술로의 혁신을 꾀했다. 
2. PORTFOLIO OF BRUECKE 1909 목판화
a. 판화는 깎아낸다는 점에서 원시적인 것으로 생각, 거친 선으로 도려내는 그런것
b. 독일의 전통 중 하나가 중세판화 - 정말 독일스러운 것을 중세 독일에서 찾음. 
c. 굉장히 영향받는 것이 이젠하임 제단화 - 그뤼네발트 - 원래 표현주의적인 것이 독일적 특징이다. 독일 - 프랑스미술에서는 고전적 질서. 마티스의 그림을 봐도 오버를 안한다 / 독일은 그 반대. 서로 감정적으로 둘이 안맞는듯? 숲 FOREST에 대한 신비적인 생각, 어떤경우에는 아주 야만적으로 오버하는 경우도 있고, 음악에선는 - 신표현주의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가능. 
d. 야수파와 다리파의 차이점 / 야수파는 미학적 관점에서 활동했다면, 회화적 구성같은.
i. 다리파는 사회문제 부적응, 등 내용이 - 당대 독일인이 겪는 사회적 부적응같은. 
3. GRUNEWALD, ISENHEIM 제단화 / 중세피에타
a. 너무너무 표현적. 왜곡된 형태, 이런것이 독일 표현주의의 형태.
4. MUNCH
a. 뭉크가 이무렵 독일에서 전시를 했고, 반고흐의 영향 등이 중요했다. 
5. KIRCHNER 거리 1907 
a. 뭉크같은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독일 표현주의는 뭉크와 자기들을 연결짓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자기들은 마티스 그림같은 걸 몇년도까지는 절대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글쎄^^;;자생성을 중요시하긴 했다. 
b. 우리나라 현대미술도 민중미술같은 것이 그렇게 주장하는데, 자생이라는 것은 있을수가 없다. 
c. 또 하나 - 이당시 보링거같은 사람의 책 - 추상과 감정이입 - 무언가 시대가 어렵고 한 시대에는 굉장히 추상적 미술이 나온다. 이 당시 많은 사람들이 관심가진 것은 중세 표현주의 등. 그뤼네발트 등. 
d. 이 작품 1907년 거리. - 뭉크의 그림에 비하면 원색을 많이 사용했고, 구불구불한 선들이 많이 나와서, 약간 아르누보같은 영향도 보이고, 초록색얼굴 보면 마티스같기도 하고, 툴루즈 로트렉의 물랑루즈같은 그런 영향도 생각할 수 있다.  - 색채가 사실이 아닌 주관적인 색채를 사용 색채자체는 원색적
i. 마티스의 경우 색채가 조화가 되는데, 이들은 조화되지 않아 불편.
ii. 뭉크의 경우 외롭고 고립 위축된 느낌이 나는데, 여기선 거리의 복잡스런 모습
6. 일본우산 밑의 여인 1909
a. 이것도 불편. 예전에는 누드가 있으면 거리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직면하게 만들었다. 전통적인 아름다운 누드와도 거리가 멀고 야만적, 뭔가 불건전한 느낌이 든다. 엉덩이를 강조, 피부의 색도 마구 흩어놓은 듯 칠하고, 형태가 과장 왜곡. 강렬한 원색. 서로 충돌, 긴장을 조성하는 원색. 얼룩져있는 것 같은. 전반적으로 거칠은 느낌. 
i. 색채도 상당히 더운 색들. 노랑에 원색. 전체적으로 뜨거운. 뒤에 파란색이 없으면 너무 뜬다. 전체적으로 격렬하고 뜨거운 에너지 느낌. 
b. 또한 쇼비니스트들이다. 이시대 아방가르드들은 상당히 남성중심. 관람자는 남성이라고 생각이 들고, 여성을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보인다. 
7. KIRCHNER, FRANZI IN A CARVED CHAIR 1910
a. 고아 소녀. 실제 자연의 색이 아닌 원색으로 묘사. 어떻게 보면 중심인물인데 왼쪽에 치우쳐 배열한달지, 색채가 굉장히 생생한, 대비 사용. 뒤에 보이는 것은 목각 조각. 어찌보면 거의 똑같은 강렬함 - 둘다 사람인것처럼. 
b. 색채를 자유분방하게 쓰는 것은 야수파와 유사하나, 야수파에서 볼 수 없는 감정적인, 심리적인, 다듬어지지 않은 분출구같은 격정적인 느낌이 난다. 
8. KIRCHNER, 거리 STRASSE, BERLIN, 1913
a. 다리파 - 드레스덴의 건축학도 모임, 활동지를 베를린으로 옮겨옴 여기로 오면서부터 색채는 가라앉는다. 거리는 키르히너의 즐겨 그린 주제.
b. 날카롭고 각진 선이 그가 사용하기 시작한 것들. V자형태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c. 붓터치도 대각선빗금같은ㅋ 이런류의 효과는 큐비즘의 단면처리와도 비슷하지만, 조형적 필요성보다는 무언가 불편한 느낌을 준다. 이런 세련 우아한 남녀들이 있지만, 원근의 차가 급격하고, 각자 시선을 돌리고 있고, 베를린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신경질적 불안함을 보여주는 모습. 색채도 불협적.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색채는 아니다. 1년 후에 1차대전, 신경쇠약적인 무언가가 느껴지는 분위기 전달.
9. PECHSTEIN, RIVER LANDSCAPE, 1907
a. 키르히너는 정신병원에 입원, 1917년엔가 자살.
b. 페슈타인 - 강의 풍경
c. 거칠은 질감 빨간노랑원색을 사용, 이 시기 이사람들은 모네 터너 반고흐 등의 작품을 생각하고 있었던듯. 반고흐의 그림은 본 적이 없다. 후에 학자들이 다 밝혀냄 ㅋㅋ아니라고.
d. 많은 작품들이 겉잡을 수 없는 감정의 폭발을 보여줌. 그럼에도 자연(도시든 풍경이든)이 주제이다. 그중 온건한 사람이 페슈타인.
10. SCHMIDT-ROTTLUFF 자화상, 1912, 목판
a. 아프리카 조각같은 원시적인 얼굴.
11. S.R., HOUSE AT NIGHT, 1912
a. 수채화같은 기법, 고층건물의 형태를 보면, 무너질것같은 위협적인 형태. 완전히 평면화되지는 않는다. 
12. 성 베드로 타워, 1912
a. 여기 보면, 고딕성당의 탑. 주관적인 색채로 했다. 위협적 형태의 느낌이다. 찌르는듯이 뻗어올라간, 
b. 가만히 보면 색채자체는 굉장히 강렬하지만, 색채평면화는 여기에선 이루어지지 않는다. 원근의 표현이 아직도 남아있다.
13. HECKEL 여인과 바다, 1913
a. 이당시 이사람들이 독일표현주의에서 새로운 인간의 탄생NEW MAN - 을 원했다. 규범을 따라가는 부르주아적 인간이 아니라 모든 규범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길 원했다. 
b. 해변가에 놀러가서 완전히 누드상태로, 자기들이 새로 태어난 아담이라 생각했다 함. 모델을 데려가서, 모델의 어머니가 대단히 위험하다고 해서 쫓아갔다 함 ㅋㅋ
c. 어찌보면 프랑스보다 독일이 자유로우려는 생각이 셌던지? (경찰국가같은 느낌이 있어서)
d. 이 작품을 보면 더 이상 야수파가 아니라 큐비즘적인 면모. 색채도 더 이상 원색적 강렬한 색채가 아닌 녹색갈색으로 제한되는 과정이 보여진다.
14. NOLDE, TUGBOAT AT ELBE RIVER, 1910
a. 이때 놀데는 거의 40살, 나중에는 탈퇴하는데, 파리에서 공부했던 사람. 이사람들과 같이 참여했지만 1년후에 탈퇴. 너무 신랄한 비평이나 로틀로프와 사이가 나빴고, 공동양식보다는 독자적 미술세계를 원했던 듯. 
b. "배우지 않은 본능은 지식보다 10배 가치있다" 이런 식으로 계획 구상 실행 다 실천하려 했다. 
c. 기본적으로 이런 주제는 인상주의 주제. 그렇지만 여기서 보트가 있고, 굴뚝 배 보트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물과 하늘이 동일한 노란색, 다이나믹한 터치 등이 
i. 그럼에도 마티스처럼 원근법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전통적 원근법은 아직도 살아있다. 
d. 거의 배를 압도한 연기. 전체화면을 결정짓는 감정의 회화적 형태라 볼 수 있다. 
15. LAST SUPPER, 1909
a. 놀데는 농부의 아들, 놀데라는 고장에서 태어나 놀데라고 함. 민족에 관심이 많아서, 자신
b. 나중엔 나치에 가입, 나치가 너는 퇴폐작가라 낙인찍음.
c. 종교화를 많이 그려서 , 9개의 패널이 있다. 
d. 여기 그려진 종교화는 전통적 종교화와는 다른 놀데의 개인적인 해석. 종교적인 회의를 그림을 통해 풀고자 한 것이 아닐까. 
e. 여기에서 최후의 만찬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것이, 공간이 매우 좁다. 보기에 불편한 느낌, 압축된 공간. 포도주잔을 들고 있는데(자신의 희생), 중앙의 예수를 향해 제자들이 둘러서있다. 원시적인 열정에 찬 듯한 얼굴인데, 칠해진 것을 보면, 어린애들이 그냥 칠한 것 같은 거친 모습. 표현적 효과, 거칠고 두터움이 그 자체로 표현주의적 효과. 그런데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리스도는 광선의 효과를 준다. 주변의 얼굴들을 보면, 뭔가 이상. 앙소르의 마스크를 연상시키는 전혀 성인같지 않은 얼굴들. 사기꾼같기도 하고…
16. 동방박사의 경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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