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참고자료/나비파

서양미술사42 나비파: 세뤼지에, 보나르, 발로통, 뷔야르

AH101 2012. 2. 1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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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비파(Les Nobis)

나비파(Les Nobis) 19세기 고갱의 영향을 받은 젊은 화가들의
반인상주의(反印象主義) 미술 그룹을 말한다. 1891년에서 1900 사이에 활발히
활동하였다. 1888 9 쥴리앙 아카데미(Julian Academy) 간사인 P. 세뤼지에
고갱의 신기한 작품과 명확한 이론에 감명받고, 아카데미의 젊은 동료들에게 이를
전했다. 이것을 발단으로 실질적인 그룹을 형성하여 1889 카페 보르피니에서
인상파와 종합주의의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세뤼지에를 중심으로 M. 드니, L. 보나
, 뷔야르, K.X. 루셀, R. 피오, P.E. 랑송, H.G. 이벨, 발로통 등과 당시 화필을
잡은 조각가 A. 마욜이 참가하였다.

나비파(Les Nobis) '예언자' 뜻하는 헤브라이어() '나비'에서 따온 명칭으로
시인 카자리스가 붙였다. 일찍이 인상파 화가들이 카페 게르부아에 모인 것처럼
나비파는 보라리가() 카페에 모여 토론하였다. 색채분석에 의존하여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인상파의 작품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던만큼, 화면을 하나의 창조
라고 생각하고 종합적인 구성을 시도하여 자신의 사색을 전개하는 고갱의 작품 경향
새로운 계시로 받아들였다. 평면적인 병렬(竝列)이나 장식적인 구성을 채택했을
뿐만 아니라, 작가가 그리는 형태나 색채는 오히려 작가의 해석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한편 문단을 움직이던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아, 같은 상징적인 작품을
그리는 O. 르동과도 교류하였다.

나비파는 일반적인 성격 속에 다양한 경향을 내포하고 있어, 작풍(作風)으로 흘러
감에 따라 집회는 자연적으로 해산되고 말았으나, 반인상주의 운동으로서 젊은 세대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드니는 평면적인 구성을 발전시켜 장식적인 효과
에서 설화화(說話畵) 종교화를 개척하였다. 반대로 보나르와 세뤼지에는 신변
제재를 정감있게 묘사하여 색채를 정성스레 다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특징은 신비적·상징적 경향이 강하며, 같은 시대의 상징주의 문학이나 상징
주의자 등과도 깊은 관계를 갖는다. 표현상의 특색으로서는 반사실주의적, 장식
경향이 강하며,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을 받아, 평탄한 색면으로 아주 대담
화면 구성을 즐겼다. 이런 경향은 특히 보나르나 발로통의 판화, 포스터,
뷔야르의 장식화에서 현저하다. 나비파의 이론가였던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1870~1943)
회화란 자연의 재현이 아니고, 이차원의 평면임을 강조했는
, 생각은 20세기 회화의 기본적 방향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조각가인 마이욜, 벨기에에서 찾아온 베르카드 등도 한때 나비파의 동인이었다.
나비파의 운동은 세기말의 10년여 동안이나 계속되다가, 작가들은 각기
독자적인 길을 찾았으므로, 운동은 자연히 없어졌다.

세뤼지에(Paul Serusier:1863~1927)

세뤼지에 프랑스 파리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파리에서 철학을 공부한 세뤼지에는 미술 공부를 위해 1885 쥴리앙 아카데미
(Julian Academy)
입학했다. 회화에 관한 이론가이기도 그가 고갱을 만난
1888 퐁타방(Pont-Aven)에서였고 고갱의 상징주의 회화에 매료되었다.
고갱을 만난 화가로서 눈이 열렸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고갱이 형태와 색을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드니, 보나르, 뷔야르 등과
함께 '나비파' 그룹을 창설한 그는 드니와 더불어 그룹의 이론가로 활약했다.
1921
년에 ABC of Painting(회화의 ABC)』를 출간했는데 색의 대비와 비례에
관한 체계를 정리한 책이다.

The Talisman(부적), 1888


나비파의 기원은 세뤼지에가 퐁타방에서 고갱과 그림을 그렸던 1888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갱은 퐁타방의 브아 무르(Bois dAmour) 근처에서 풍경
그리고 있던 세뤼지에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고, 세루지에는 이를 기꺼이 받아
들였다. "나무들이 어떻게 보이나? 초록색으로 보이나? 그렇다면 초록색을 칠하
게나. 팔레트에서 가장 순수한 초록색을 칠해 보게. 그리고 그림자는 약간 푸른색
으로 보이지 않나? 그렇다면 푸른색을 칠하는 주저하지 말게."
이러한 고갱의 조언은 세뤼지에가 이상 자연의 재현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
생각, 상상에 따라서 색을 쓰도록 고무하였다.
본래 풍경을 그린 작품에서 제대로 형태를 알아 있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고갱의 말대로 세루지에는 나무는 초록색으로, 그림자는 푸른색으로, 흙은 붉은
으로 칠한 듯하다. 순수한 색면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2차원의 평면성을 강조한다.
20
세기 미술이 추구하는 회화 자체의 본질, 조형성을 중시하는 추상 회화의 단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뤼지에는 작품의 제목을 <부적>이라고 했다. <부적> 쥴리앙 아카데미에서
함께 수학하는 친구들에게 보여주었고, 모리스 드니는 "우리는 <부적> 보자 모든
미술품을 변조시킬 있다." 훗날 술회했는데, 형태와 색을 상징적으로 사용할
있다면 과거 화가들이 그린 것보다 훨씬 다르게 그릴 있다는 자신이 생긴
이라고 말할 있다.

Breton Wrestling, 1890

Breton Eve(Melancholy), 1891

Apple Harvest, 1891

Incantation or The Sacred Forest, 1891~92

The Downpour/L'averse, 1893

La barricoe Fleurie, 1889

Bathers with White Veils, 1908

The Daughters of Pelichtim, 1908


보나르(Pierre Bonnard:1867~1947)

The Last Self-Portrait, 1944-45


프랑스 파리 교외 센현() 퐁트네 로즈 출생으로 처음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공부를 하였으나, 그림에 흥미를 느껴 틈틈이 쥴리앙 아카데미나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P. 세뤼지에, M. 드니, J. 뷔야르 등과 가깝게 지냈다.
1889
그림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고갱의 영향을 받은 그들과 반인상파인
나비파() 결성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흑갈색을 기조로 차분한 색감으로
파리 시민의 일상 생활을 상징적으로 그렸으나, 40대에 접어들면서는 회색조
에서 서서히 밝은 색조로 이행하였다. 독특한 시각에서 잡는 기지적(機智的)
구도로 풍경, 멱감는 나부(裸婦), 정물, 사람이 모인 부드러운 실내정경 등을
소박하면서도 감미로운 정감으로 그려, 뷔야르와 함께 대표적인 앵티미스트
[Intimiste:
親密派,내경파-회화사에서 넓게는 실내 화가를 가리키고, 좁게는
실내화에 따뜻한 친밀감을 표현하는 화가들을 가리키는 . 전형적으로는 P.
보나르, J.E. 뷔야르 등을 가리킨다.] 높이 평가되었다.
색채에 대한 관심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져 60세를 지나면서는 선명한 명색
(
明色) 조화를 추구하였으며, 차차 대상의 설명에서 벗어나 현란한 명색이
교향(交響)하는 독자적인 색채의 세계를 확립하여 '색채의 마술사' 불리었다.
2 세계대전 중에는 남프랑스의 카네에 은거하여 제작에 몰두하였으며,
전후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Intimite(일상생활), 1891


<
일상생활> 보나르가 나비파 초창기에 실내 장면을 주제로 그린 작품들
하나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을 있다. 작품에서는 명의 친구가 함께
담소를 나누며 나선형의 연기를 내뿜고 있다. 앙드레의 담배와 다른 명의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벽지에 그려진 멋진 아라베스크 장식과 어우러진다.
이런 요소들은 공간 축소의 효과를 주면서 따뜻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인물 사이의 감정과 지적인 교류 관계, 자유로운 영혼과 친밀감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따뜻하고 외투에 파묻힌 끈이 접혀 올라간 모자를 쓰고 있는
클로드 테라스는 빛을 강하게 받고 있는 반면, 앙드레 보나르의 가려진 옆모습에는
어슴푸레한 빛이 드리워져 있다. 빛은 순간의 덧없고 내밀하며 조용한 분위기
부각시킨다. 한편 손만 강조되어 있는 보나르의 모습은 화면 전체에 독특한 느낌
자아낸다.

The White Cat, 1894


나비파의 화가들은 공통의 미학적 신조를 견지하는 동시에 각자 조금씩 다른 방향
으로 개성적인 화풍을 확립해 갔다. 보나르는 나비파 중에서 가장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로 "나비 자포나르(Nabi Japonard)" 불릴 정도로 당시 자포니즘
(Japonisme)
매료되어 있었다. 대부분 세로로 그의 그림은 실제로 일본식
병풍을 연상시킨다. 19세기 부르주아의 단란하고 내밀한(Intime) 가정 생활을
즐겨 다룬 보나르는 앵티미즘(Intimisme) 경향을 대표한다.
일상의 모티브들을 따뜻하고 친밀하게 그렸던 그의 작품들에는 개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들이 가족들과 함께 등장한다.
작품에서는 작가가 좋아했던 동물인 고양이만을 중점적으로 묘사하였다.
화면 중앙에 크게 그려진 고양이는 갈색과 짙은 녹색 면으로 채색된 배경 속에
부드럽게 융화된다. 대상과 배경을 구분 짓는 분명한 윤곽선은 찾아볼 없으며,
평탄한 하얀색과 갈색, 녹색의 색면으로 구성된 듯하다. 색면의 실루엣이 불러
일으키는 장식적인 특징은 직접적으로 일본 우키요에와 아르 누보의 영향으로
있다.

The Letter, 1906

The Loge, 1908

화장대(El tocador), 1908


그림은 <거울(La Glace)>이라는 다른 제목이 일러주듯, 빛과 구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경대 위의 큰그릇이 바닥을 거의 드러낸 것으로 보아 시선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울 속에 비춰진 여인은 작품의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 낮은 곳에도 있음을 알려준다.
여인의 인체는 결코 아름답지 않으며, 여인이 취한 자세와 동작 또한 분명하지 않다.
얼굴도 잘려진 그려진 여인은 물병이나 의자, 혹은 다른 소도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지 못하다. 화면에 긴장을 불어넣고 있는 조형 요소는 오히려 사각형과
, 도형이 자아내는 형태적인 대립이다. 거울은 거울 앞의 실재로 존재하는
대상물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인과 둥근 의자, 욕조는 현실 속의
사물이 아니라, 거울의 사각형의 형태에 상응하는 조형 요소로서 취해진 것이다.
자연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파악한 입체파의 태동과 영향을 읽을 있다.

Model in Backlight(Dauberville 481), 1908

Portrait of the Bernheim Brothers, 1920

The Open Window, 1921

The Terrace at Vernonnet, 1939


발로통(Felix Valloton:1865~1925)

Self Portrait, 1891


펠릭스 발로통은 스위스 Lausanne에서 태어났으며, 17 파리로 쥴리앙
아카데미에 입학하였다. 그는 초상화 화가로 출발하였으나 1885년부터 실내 정경을
주로 그렸다. 1893 이후 '나비파' 합류해 보나르와 함께 전시회를 가졌다.
그는 미술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소질이 있어 3개의 소설과 여러 개의 희곡을 남겼다.

Bathing on a Summer Evening, 1892~93

La Malade, 1892

The Waltz, 1893

달빛, 1895


펠릭스 발로통은 본래 목판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나비파에 합류하면서
장식적이고 평면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작품에서 대지 위에는 작은 물길이
구불구불하게 있고, 지평선에는 작은 나무가 외롭게 있다. 구름에 가려 반쯤
내민 달이 어두운 밤하늘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작품은 제목을 생각하고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풍경화라기보다는 추상화로 보여진다. 화면은 지평선을 중심
으로 짙은 초록색과 회색이 섞인 옅은 녹색조로 이분되어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점점이 퍼져 있는 구름의 장식적인 패턴이, 하단에는 달빛이
그대로 드리운 강물의 유려한 선이 자리한다. 상하로 분할된 딱딱한 구도는 구름과
강물의 리드미컬한 선이 이루어낸 묘한 균형으로 부드러워졌다.
발로통의 감각적인 색채가 차분하고 고요하게 화면을 감싸고 있다.

, 1899


작품에는 하늘도, 시원한 원근감이 느껴지는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한가로운 공원의 때를 가파르게 내려다보는 조감(鳥瞰)법으로 잡은 화면은 제한
공간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발로통은 작품에서도 <달빛>에서처럼
분명하게 나뉘어진 공간, 소녀가 공을 쫓아 뛰어가는 황토빛 공간과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초록색 신록이 우거진 공간으로 구성하고 있다.
공간은 나비파의 특징인 고르게 칠해진 색면과 간결한 선을 보여준다.
발로통이 나눈 공간은 시각적, 장식적인 화면을 위해 고안된 것일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까지 담고 있다. , 어른과 아이가 서로 넘나들 없는 독자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암시로 읽을 있다.

Femme couch? dormant, 1899

Poker(카드놀이), 1902

Lady at the Piano, 1904

Landscape in Normandy, Arques-la-Bataille, 1903

Interior, 1904

Portrait of Gabrielle, 1908

Portrait of a Woman in a Black Hat, 1908

Portrait of Mme Haasen, 1908

화장(Coquetterie), 1911

Portrait of Georges Haasen, 1913

Baigneuse, 1916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 1868~1940)

The Breakfast, 1892


뷔야르 프랑스 퀴소 출생으로 1878 파리로 이주하였다.
15
아버지를 여의고 바느질로 생활하는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1888
아카데미 쥴리앙에 들어가 P. 보나르를 알게 되었으며, 그와 함께
나비파() 일원으로 출발하였다. 인상파의 영향을 벗어나 고갱의 화풍을
따랐으며, 나아가 형태의 단순화와 색면(色面) 장식적 배합을 지향하였다.
초기부터 뷔야르는 나비파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는 상징주의자들과 어우리
면서도 상징적인 주제보다는 부르주아 집안 실내의 내밀한 정경, 길거리, 작가가
임으로 개성을 제거한 인물 등을 그리면서 장식적인 면을 추구한다.
임의적인 분할, 대담한 생략, 넓게 칠한 단색, 검은 테두리, 원근감을 버리고 얻은
이분법적 화폭의 장식성, 채색의 섬세함 등이 차분하고 매력적인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동시에, 고갱의 구획주의와 종합주의에서 받은 영향이 드러나기도 하며
보나르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 취향 역시 뷔야르의 그림 규모, 그래픽 요소
등에서 드러난다. 1900년이후 그의 작품은 사실적이 된다. 그는 초상화에서 공간
절제, 빛의 유희 등에 유념하여 작업하였다. 1903 그는 <살롱 도톤> 공동
으로 준비하였는데, "그림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장식뿐이다"라는 작가 베르카드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면서 뷔야르는 1892년부터 1938년까지 홀로 혹은 공동으로
여러건물의 장식을 담당한다. 아방가르드 연극의 무대장식, 포스터, 프로그램,
샹젤리제 극장과 샤이오 극장의 실내 장식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다.
양차 대전 사이 작가는, 파리의 유명한 부유층, 작가, 배우 등의 초상화가로 이름을
얻고, 유머와 인물의 심리 묘사를 자기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었다.

The Stripped Blouse, 1895

The Reader, 1896

Le dejeuner du matin, 1898


19
세기 화가들에게 실내 공간은 도시화된 파리의 거리 못지 않게 모더니티를
반영하는 공간이었다. 보나르와 함께 앵티미즘 화가로 분류되는 뷔야르의 그림
에서도 실내는 속에 어우러진 인물들과 함께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어머니를 모델로 해서 그린 그림 역시 가정의 내밀한 실내 공간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뷔야르의 작품에서 초기에 실내의 가재 도구들과 비슷한 비중을
차지했던 인물들은 후기로 갈수록 화면의 중앙으로 들어와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작품에서 인물은 아직까지 모호한 옆모습만으로 묘사될 , 만년에 주로 그렸던
초상화들에서 느껴지는 인물의 심리적인 내면은 엿보이지 않는다.
실내의 벽지와 식탁보, 어머니의 실내복 등이 화가의 어린 시절의 추억, 친밀한
가족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After the Meal, 1900


작품은 뷔야르가 주로 다루는 실내와 인물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 사회의 근대화, 도시화는 건축이나 집의 외관뿐만 아니라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당시는 아르 누보로 대표되는 실내 디자인이 부상하던
시기였다. 앵티미스트인 뷔야르는 꽃무늬 벽지로 장식된 식당의 정경을 세밀하고
환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당대 부르주아 계층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작품에서는
반점들이 프린트된 벽지, 여인의 , 식탁의 그릇들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듯
어렴풋하게 그려졌다. 벽지와 여인, 인물과 식탁 위의 물건들이 모호하게 융화된
실내 공간에는 왠지 따뜻한 분위기가 감돈다.

'
식사 ' 뷔야르가 주로 다루는 실내와 인물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당대 부르주아 계층에서 유행하던 실내 인테리어 가운데 꽃무늬 벽지와 생활의 가장
일상적인 식탁의 뉘앙스를 세밀하게 그리면서도 환상적으로 묘사하여 방면에서는
독보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반점들이 찍힌 벽포나 여인의 , 커튼 등에서 화가의
취향을 있으며, 마치 마들렌느(Madeleine) 기억하면서 과거를 시적으로 되살
리는 프루스트(Proust)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을 확인할 있다. 벽지와 여인 그리고
식탁의 가장자리 윤곽을 지워가고 모호하게 뒤섞여 가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간다. 뷔야르가 그림을 그릴 건축이나 집의 외관이 아니라 실내가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인식되었고, 아르 누보로 대표되는 실내 디자인의 시기였다.

Le Dejeuner a Villeneuve-sur-Yonne, 1902

Madame Arthur Fontaine, 1904-05

The Boulevard of Batignolles, 1910

Flowers on a Mantlepiece in Clayes, 1932~35

Jeanne Lanvin, c.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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