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참고자료

서양미술과 현대시각문화1

AH101 2022. 7. 1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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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에서 야수파까지


I. 1900년대 배경
1) PAUL GAUGUIN, THE WHITE HORSE, 1898
i. 1900년부터가 고흐 고갱 쇠라 등 후기인상주의가 가장 일반인에게 인기잇는 시기.
1) 이 사람들에 의해서 주관이 강조되어, 고갱의 경우 화면의 장식적인 구성, 색채, 사실은 자연에서 보는 색채가 현대미술의- 그림이 더 이상 보는 자연을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 것이 아닌, 작가의 주관, 실제 자연에서는 안보이더라도 작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예술을 위한 예술)것이 시작되는 것. 의미.
ii. 고갱을 보여주는 이유 - 이사람은 그림은 별로 못 팔았지만, 이 당시 미술가와 대중들에게 굉장히 우상. 1900년 무렵에는 실험적인 한 세대가 완전히 끝난다. 
iii. 1906년에 세잔이 죽는데, 
2) PAUL CEZANNE, MT. ST. VICTOIRE, 1906
i. 어려서부터 인상파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빛에 대한 생각이 강하다. 
ii. 하지만 세잔은 고스란히 옮기는 것이 아니라, 
1) 인상파는 변화하는 순간 순간에 관심을 가졌지만
2) 변화무쌍한 자연에서 변함없는 느낌을 그리고 싶다.
iii. 색채를 면으로 칠하게 되는데, 어떤 터치는 빛을 반영하고, 어떤 터치는 구조를 반영한다. 하나하나의 터치가 면으로 이루어져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그 순간을 간직하려는 노력+2.구조를 반영하려는 노력간의 긴장. 
1) 구조를 살리려는 그 노력이 피카소 등의 입체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잔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보게 된다.
2) 자연에서 출발한 것이 / 인상으로 / 이러한 것으로
3) 폴 시냑, GRAND CANAL AT VENICE 1905
i. 사실 1900년이후의 예술가들에게 정말 인상을 준 것은 신인상주의 NEO IMPRESSIONISM
1) 쇠라는 일찍 죽어서 폴 시냑이 이어간다.
2) 세잔은 포인트, 신인상주의는 더 터치가 굵게 강조되는 
3) 이러한 미술이 1900년대 되면 쇠라는 죽고 시냑은 여전히 활동한다
4) 1900년을 기념하는 여러가지 행사 중에, 만박. 만국박람회. 파리에서 열린다. 1851년 영국 런던에 서 시작한 만박이 거의 연례행사처럼 계속되엇고, 이중에 중요한 것은 - 근대가 이루어낸 모든 성과가 자랑되는 것. 공장 상품 문화 모든 것이 소개된다. 일종의 올림픽. 여기에는 늘 미술전람회가 들어가게 되어있다. 여기서 보면
4) 1900 PARIS EXPOSITION, JAPANESE PAVILLION
i. 우리나라도 근정전같은 걸 소규모로 지었다.
ii. 일본도 했고
iii. 유럽에서는 지난 미술의 성과를 정리한 100년전, 10년전 이라는 전시회를 했다.
1) 기획 로제 마르크스 - 
2) 1900년이 되면서 소위 당시엔 재야였던 고갱 세잔 등이 어느정도 인정받게 되고, 인상파 작품을 국가에서 구입하게 된다. 인상파, 후기 인상파가 인정받게 된다. 더 이상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그림은 설 땅이 없게 되는 것이 이 시기.
5) MATISSE, THE DESSERT, 1897
i. 마티스는 원래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처음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법대를 다녔는데, 사무행정을 하려면 그래야 했다. 대학 다니다 20대에 아파서 입원해있는데, 친구가 소일하게 그림이나 그리라고 수채화 도구를 준다. 그것을 해보다가 재미가 들려서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에 갔다. 그 당시 이 곳은 보수적인 사실주의 뎃생등을 가르쳤다. 그런데 선생이 구스타브 모로 MOREAU였다. 
ii. 모로는 굉장히 예외적인 인물. 모로는 상당히 자유롭게, 다른 선생들이 반대하던 인상주의를 가르쳤다. 마티스가 방학이 되어 영국에 간 사이에 모로가 죽었다. 그 다음을 꼬르몽?이란 사람이 들어왔는데, 1900년에 정물 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기겁. 이런 원색적인 그림을.. 마티스를 쫓아내려 했지만 이미 30이 넘었다. 
1) 나는 30이 넘는 학생을 받을 수가 없다 해서 쫓아냈다.
iii. 그래서 PRIVATE STUDIO 사설 학원에서 배웟다. 당시엔 그런게 많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파리로 그림을 배우러 왔다.
iv. 1897 THE DESSERT MATISSE - 이런 그림 - 2미터가 넘는 큰 그림.
1) 처음에 마티스는 그림 공부를 믖게 했기 때문에, 이사람의 일 하나가 루브르에 가서 정물화를 카피하는 것이 공부. 20여점이 남아있다.
2) 아직도 인상파적인 주제이다. 구석에 딱 모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일상생활의 한 장면(이런 것이 인상파의 특징!) 이러한 중산층의 일상생활 - 이런 점에서 인상파적인 것. + 유리병의 반짝거리는 광선에 대한 관심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 하지만 아직 인상파를 완전히 소화한 것이 아닌 게, - 옷에서 명암으로 볼륨을 강조했다는 점이 그 전 시기 특징을 보이고, 물감이 쌓아올려진 것 같은 것이 예를 들면 18세기 샤르댕 정물을 많이 보고 관찰한 영향이 아닐까. 또 하나는 구스타프 모로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모로가 이런 식의 텍스쳐 강조, 색채의 미묘한 농담, 반짝임을 표현했기 때문에, 이것은 상당히 초기의 야심작이라 할 수 있다. 
b) 당시 이 사람이 어떤 과정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샤르댕 모로의 영향, 도한 아직 완전히 인상주의를 이해하지 못했구나.
6) 1900 마티스, 정물 
i. 여기와서는 완전히 탈피했구나 알 수 있다. 큼직큼직한 붓질. 강렬한 원색을 두껍고 큼직하게 발랐다는 것은, 이 당시로 보면 굉장히 전례없이 강렬한 시도였던 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또한 물감의 감각적인 느낌을 주게, 이 사람 스스로의 실험이다. 
ii. 아까것은 살롱에 출품한 것이고, 1900년의 이 작품은 실험작이다. 쿠르몽이 보기에는 문제작
7) MATISSE, 스튜디오의 누드, 1899 / 알베르 마르케, 야수로 불리는 누드, 1899
i. 마르케 등 모로의 스튜디오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과 스튜디오(누구지)
1) 그 스튜디오는 선생은 일주일에 한 번만 봐주고, 나머지 시간에는 모델 세워서 그리는 시스템이었다.
2) 이 두 그림은 둘이 같이 그렸다. 
ii. 현대미술은 특히 이런 그림들은, 주제보다는 선 색 형태가 어던 식으로 처리되었는지를 해야 하니깐, 이 두 작품이 어떻게 다른지? 
1) 기준 - 명암과 색채를 통해 사실적인 느낌을 내려 했는가
a) 다리와 엉덩이
i) 빛과 그림자, 그림자 위에 벽에서 튄 반사광이 쬐는 것을 보면 보인다.
b) 작은 부분 하나만 놓고 보면, 원근법이 무너져버리는 것이, 빛과 세세한 터치를 사용해 경물의 앞과 뒤를 나타내는 노력이 없다. 
2) 마티스의 그림에서는 2차원(평면)과 3차원(깊이) 초기 단계에서는 어느정도 두 가지가 공존한다.
a) 어떻게 보면 평면이고 어찌보면 입체일수도 있는 것이 
b) 하지만 그 당시로 치면, 반 고흐조차 그렇게 나간 적이 없다. 
c) 마르케의 이 정도의 그림만 해도 당시 주류 그림과 비교하면 상당히 과감한 것이다.
8) 로댕, 걷고 있는 남자, 1905 / 마티스, 노예 1903
i. 마티스는 조각도 많이 했다.
ii. 로댕은 이미 이 시대에는 대가인데,
iii. 둘이 비슷해보이기도 하지만, 로댕의 것을 봄ㄴ 그나마 고전에 입각한 듯한 신체비례이지만, 마티스의 경우는 - 사람이 서잇고 걸어가고보다는 형태의 대조(감각적인 부분)쪽에 관심을 더 가졌다. 시각적 효과에 더 관심을 가져서, 면과 면이 서로 연결되는 부분들이, 사실보다는 자체 형태로서 더 중요하게 된다. 현대 조각으로 마티스의 조각이 들어간다면, 로댕은 다소 전통적 조각이라 부를수도 있을것이다.
9) 생 투르페(지명, 남부 프랑스)1904 / MATISSE, LUXARY, CALM, VOLUPTUOUS,1905 사치 고요, 관능
i. 왓다갔다 하다가 드디어 자기 길을 찾게 되는 것이 1905년이다.
1) 이젠 이미 살롱전에는 관심이 사라지고, 새로운 살롱전이 많이 생겼다. - 살롱 데 앙데팡당 이란 것이 (독립) -심사없는 전시회. 사치, 고요, 관능
2) 완연한 신인상주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생 투르페 이 그림이 사치고요관능 1년 전 그림인데, 
a) 마티스의 아내와 아들 피에르.
b) 이 때만 해도, 규칙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c) 1년 뒤에 야심작을 그릴 때에는 신인상주의처럼 규칙적인 배치가 되면서, 폴 시냑 등과 함께 같이 스케치여행을 다니므로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d)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림은 더 이상 자연의 반영이 아니라 주제를 가졌다는 것이다. 보들레르 여행에의 초대 라는 시에서 나오는 주제이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작품에서 어떤 이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가면 사치와 고요와 관능만이 있는 이상향이다. 상상의 주제. 이 것은 인상파, 후기 인상파와도 완전히 다른 주제접근인데, 
e) 색채가 중요해진다 - 여기에서 이상적인,- 사치 고요 관능이 있는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서, 색채를 도구로 사용했다. 이 사람이 사용한 색은 주로 빨강 노랑 등 상당히 감각적인 색채를 사용했다. 실제 색이 아닌 자기가 그런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주관적인 것을 스는 것이다. 색채가 묘사의 도구가 아닌 표현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f) 19세기까지는 선과 형태가 중요했는데, 그 이후는 색채가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들기에 서양의 합리주의에서는 형태가 우선이고, 색채가 부차적인 것이었다. 들라크루아 등을 출발해서 점점 색채가 중요해지는데, 마티스에 이르면 이제 인체가 형태 뎃생보다 그것의 배경이 중요하게 된다. 어찌 보면 배경을 먼저 그린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핑크 노랑 파랑 등. 표현적이면서 DECORATIVE장식적이다. 색채가 독립적으로, 또한 된다. 
i) 우리나라에서는 장식적이라는 말이 무언가 진지하지 않다고 받아들여지는데, 소위 그림에 딱 맞는 색채를 마티스만큼 잘 하는 사람은 없엇고, 우리가 20세기 전반에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 마티스- 색채화가. 왜 마티스가 색채화가이냐, 대체로 여태까지 화가들은 대체로 정해진 룰 따위가 있다. 예를 들어 흰색과 빨강이 잘 맞는다 같은 색채배합의 룰. 그런데 마티스가 사용하는 색채는 서로 안 맞는 것 같은 것을 색도를 미묘하게 조절해 참 잘 맞게 만든다. 프랑스 패션에서 색채감각 이런 것이 이런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러한 재능이 뛰어났던 것. 
ii) 그럼에도 프랑스에서는 고전주의가 참 중요하다. 독일 그림은 어디로 튀는지 모르는데, 프랑스 그림은 주관적이고 그럴지라도 항상 그 안에서는 균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0) MATISSE, GIRL READONG 1905
i. 살롱 도톤느 전(가을 전) - 앙데팡당이 너무 들숙날쑥해서, 진보적이나 심사를 해야 하는 전시회.
ii. 마티스가 여러 작품을 내고 친구들과 한 방에 그렸는데, 이 방 안에 고전주의적인 조각을 가운데 배치했다. 평론가"도나텔로가 사나운 맹수들에 둘러싸여 있군!" WILD BEAST - 야수. LE FAUVE - FAUVISM -야수주의. 
iii. 확 달라졌다. 면이 매우 큼직해지고 자유분방해진다. 시냑은 이것을 보고 마티스가 미쳤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자신을 추종하다가 다른데로 가버리니까. 마티스는 일약 젊은 화가들의 리더가 되고, 색채가 굉장히 실험적이다. 
1) 색채 - 따뜻한 색은 튀어나오는데, 어두운 색은 들어가보인다.
a)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봤을 때, 평면과 깊이가 계속 공존한다. 그림의 왼편은 원근법이 있어보인다. 그러나 색채의 대비를 보면, 색채 고유의 성격을 이용하여 색채가 구조가 되고 원근이 되는 것을 이용한다. 나중에 형태가 무너지면 참 재밌어진다.
11) MATISSE, OPEN WINDOW, 1905
i. 여기서도 원근법이, 안 중간 바깥이 있고 보트 크기와 화분을 보면 원근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ii. 안쪽 벽의 양쪽이 색이 다르고, 실제 색의 균형(너무 더워서)을 맞추려고 양쪽을 조금씩 변용
12) THE GREEN LINE, 1905 마티스의 부인
i. 부인 - 이 사람의 성격이 어땠을까?
1) 얼굴의 표정이 아니라 색채로 그 사람의 퍼스낼리티를 표현
ii. 아까 그림들보다 훨씬 부조적.
1) 1905년 당시에 사람의 얼굴에 초록색을 할 수 있는 것은 마티스 뿐.
a) 옛날같다면 코를 명암에 의해 코가 높다는 것을 표현하는데, 여기서는 오른면의 찬 초록색과 코의 따뜩한 초록을 사용해 더 튀어나오게 한다.
13) THE SAILOR SKETCH / THE SAILOR 1906
i. 1906년이 되면 와일드한 면에서 벗어나게 된다. 선원에서 보면 왼쪽과 오른쪽 - 이 사람이 뭘 어떻게 고쳤는지 알 수 있다. 
ii. 오른쪽은 선이 활 휘듯이 라인이 통일되어있는데, 왼쪽은 뭔가 어색하고 사실묘사한듯한 느낌이다. 
1) 많은 부분에서 조금씩 달라진다. 왼쪽이 좀 더 순간적인 느낌이고
2) 오른쪽이 선을 통일하고 완성된 느낌. 사실 가격은 왼쪽이 더 비싸다. 무엇을 생각하며 그렸는가가 나타나있으니깐.
14) 1906 생의 기쁨 JOY OF LIFE
i. 굉장히 큰 그림이다. 수수께끼같은 그림이기도 한데, 이것 또한 사치고요관능과 같은 이상향을 보여준다. 행복과 고요. 하나도 부딪치거나 모순되지 않고 선은 매우 교태롭게 정리되어있다. 여기에서 마티스의 양식이 확립된다.
ii. 비밀스런 정원과 같은 이 공간에 여러 사람이 등장.
iii. 원근이 들쑥날쑥 인물들 사이에 너무 크고 너무 작고 큰데, 이 그림이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이후의 많은 그림들의 소스가 여기 다 나온다. DANCE같은 것도 독립적 작품. 이후에 나오는 레파토리들이..
iv. 여기서 보여지는 아라베스크 선 등이 초기의 와일드함에서 벗어난 독자적 양식이라 할 수 있다.
v. 이 그림을 당시 알버트 반스(춤)가 사가지고 펜실베니아에 가져다 놓고, 죽을때 유언 - 내 그림은 내 생전 보고 즐기던 곳에 절대 놓지 말고, 원색 도판으로 출간하지 마라. 
vi. 여름에는 문닫고 주말에만 열고, 시골이니깐 가기 힘들다. 책을 보면 맨날 흑백도판이었다. 그가 죽은지 수십년 후 이제는 완전히 원색도판이 공개. 
15) MATISSE, 1908 HARMONY IN RED
i. 이제는 마티스 특유의 양식이 완연히 나오고
ii. 주제는 후식과 같다. 중년 여인이 식탁을 차리고 있고, 정물들.
iii. 이제는 완전히 원근감이 사라지고, 뒤에 책상 나무 있지만, 이렇게 보면 식탁과 벽이 완전히 같은 패턴이라서 거의 평면으로 보인다. 평면과 삼차원이 공존하고, 약간의 원근이 창가나 의자에 보인다
iv. 시작은 배경을 푸른색으로 했었다 함. 처음의 의도가 없어진다고 생각했는지 완전히 빨강으로 바꾸었다 한다
v. 느낌상 사치스럽지만 따뜻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1) 마티스 왈,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편안히 쉬는 느낌을 나타내고 싶었다 한다.
a) 마티스 그림에 뭉크같은 불안함은 나오지 않는다.
b) 처음에 보았던 후식 1897과는 다른 느낌의 형식으로 변했고, 
vi. 창문의 나무 등 - 어떤 공간이느냐보다는 구성의 하나로 생각 - 분홍 집이 있어서 집안의 빨간 색을 받아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림은 하나의 구성이고, 거기서 선과 색채 형태가 어덯게 배치되고 어던 느낌을 주느냐 그 자체가 중요하게 된다. 이것을 요약하면 추상미술이 된다. 
16) THE DANCE 1910
i. 이것은 거의 벽화 크기의 아주 큰 그림이다.
ii. 옛날 식으로 그림을 보면 잔디 위 파란 하늘에 5명의 무희가 춤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ii. 실제 그림 앞에 서면 그런 내용보다는 느낌에 집중하게 된다. 색에 흠뻑 젖는 느낌. 색에 대한 느낌 이런 것이 1910년.
17) ICARUS, JAZZ, CUTOUT, 1947 / THE CIRCUS, JAZZ
i. 관절염에 걸려 붓을 쥐기 힘들어 종이를 잘라서 작업. 혹은 마분지에 과슈칠 후 잘라서 붙이기도. 잘라놓으면 조수에게 시켜서 붙이고 이런식
ii. JAZZ 시리즈는 일종의 책 시리즈. 이 사람이 여기에서 어찌 보면 일생의 색채가 완전히 보여지는 작업들이다. 이카루스-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날다가 녹아서 떨어지는 
1) 사람, 심장, 날개
iii. CIRCUS - 그네위에 타서 휙 돌아가는모습. 
다음시간에는 마티스의 동료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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