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포스트
모더니즘"은
제2차
세계대전후
권위주의적인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것이다. 즉
서구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
즉, 유태인
대량
학살, 히로시마
원폭
투하, 무절제한
생태계
파괴, 핵
전쟁
위협
등
인간성을
위협하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하여
서구인들은
헬레니즘
철학자들이
구축한
서구세계의
지적
인식틀
안에
깊숙히
내재되어
있는
합리
주의
이성론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이후에
계속된
사회
문화적인
변화
역시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
시켰으며
오늘날
흔히
얘기되는
후기
산업
사회, 정보화
시대, 대중
소비사회라는
용어들은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다각적
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이런
새로운
질서에
상응하는
변화된
예술적
현상이
「탈모더니즘,탈구조주의」또는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정의되고
있다.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이며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 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
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1)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과
양상: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것
중의
하나는
아직도
이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은
문학, 철학, 사회학과
더불어
예술
일반에
적용될
수
있으면서도
적용분야에
따라
그
의미가
상당부분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개념의
어원과
유래를
살펴
봄으로써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을
시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용어는
문자
그대로 '포스트'라는
접두어와 '모더니즘'이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생긴
말이다.
이
용어는
의미면에서
본다면
단순히 '모더니즘
다음에
오는'현상을
가리킬
따름
이다. 따라서
그것은
일차적인면에서
시간적
구분을
의미할
뿐
결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어떤
유형의
가치
평가가
개입된
개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즉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시성을
가르키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프리모던'이란
용어가
단순히 '전근대' 또는 '전현대'를
가리키는
것과
마찬
가지로 '포스트
모던'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후근대
또는
후현대'를
가리키는
표현인
것이다. 이
용어를
보다
명시적으로
보여준
사람은 1950년대
초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이다. 토인비는
서구문명이
19세기
이후
전환기적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그
전환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이것을 '돌연변이'로
인식했고,또
현대를
맞이하는
서구
역사의
전통에
극적인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연구 A Study of History> 후반에서
우리의
시대를
사회적
불안, 세계
전쟁, 혁명의
시대
그리고 '포스트
모던
시대'로
명명했다.
토인비는
근대의
서구역사를
네가지로
분류한다.
초기근대(Early Modern : 르네상스), 근대(Modern : 르네상스
전성기와
그
이후), 후기근대(Late Modern : 17세기와 18세기를
정점으로
한
기간과
좀
더
넓혀서
보면
계몽주의가
풍미했던 19세기), 마지막으로
포스트
모던
(Post-Mordern : 1870∼80년을
기점으로
한)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면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미
한
세기가
지난
서구
문명
에서의
포스트
모던
국면은
무정부주의(anarchy)시대로
특징지을
수
있을
지
모른다. 토인비는
포스트모던
개념을
헬레니즘
철학자들이
구축한
서구세계의
지적
인식틀
안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던
합리주의
이성론이
붕괴되고
말았다고
지적할
때
사용한바
있다. 고전적인
것을
재발견하고자
했던
르네상스의
결과
로서
유래된
근대
뿐만
아니라
서구문명
전체에서
누차
강조된
합리성에
대한
신뢰는
후기
근대를
맞이하면서
심각한
도전을
받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1850년대
이후
그러한
도전은
한층
격화되었다. 토인비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
와
대립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서구
과학정신은 "정념은
이성을
지니나
이성은
지식을
지니지
못한다"는
파스칼의
직관적인
관찰에
의해서
변화되고
말았다. 20세기
기독교
시대에
탈
기독교적인
소구의
심리학
은
인간
영혼에
깔린
무의식적
심연을
탐구하기
위한
시초였으며, 자연법의
근간이
된
것은
논리(logic)의
법칙이
아니라
신화의
법칙이었음은
당연하다.
이와
같이
포스트
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처럼
해석
되어지게
되었다.
(2) 포스트모던의
등장:
모더니즘의
회의속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다음
명제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은
동시대
어느
문화권에서나
에서나
읽을
수
있는
보편사가
아니며
단순히
문화의
한
사조로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현상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논리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삶의
양식과
분리해서
볼수는
없다. 현대의
모든
현상을
배태한
서구이성이
허용치
않던
비판을
과감히
시도하며
교조적
시대가
남긴
빈약한
세계상을
반성하는
무비판
시대의
자기
반성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즉, 역사적
반성과
자기
비판에서
도출된
개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라는
사상사의
축약체에
대비하여
읽혀야
한다. 시대를
겪어내며
그
시대의
문제를
고민한
사람들의
사상사적
축약체가
문화
사회
역사
경제에
자기를
현시하는
방법으로
읽지
못하면
다만
포스트는
<현상>으로서만
포착되고
따라서
본질은
은폐되며
그리하여
뿌리없는
자기
해체로
중심잃기만이
진행된다. 결국
인간은
근거도
모르는
이론에
마냥
끌려
가게된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근본
배경
연구없이
각
분야에서
드러나는
현상만을
조합하는
것은
가지만을
바라보며
나무의
병을
진단하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철학/영화, 같은글}}.
그렇다면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도대체
무엇인가?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을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에서
우리가
갖는
느낌은, 이제
우리
자신이
새로우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으며, 모든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도
다시
똑같을
수
없고, 어떤
것도
다시
똑같기를
원치
않으며, 우리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기를
원하며, 과거의
모든
대상, 가치, 정신구조, 일을
행하는
방식들을
제거해
버리길
원하다. 어쨌든
과거의
모든
것이
변형되기를
원하다
는
신념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현대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현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방식이다." 포스트모던에서는
과거
그
자체가
과거에
대한
인식,
또는
역사성, 그리고
집단적
기억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비동시성과
이의
발생이
동일한
시간대
위에서
공존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성으로
시작과
종말의
붕괴, 기원의
부정, 인간의
탈중심화,
새로운
것에의
활력, 이성의
탈신격화, 통일성의
거부, 주체의
공허성, 언어의
한계성, 메타담론들의
해체
등을
지적할
수
있다.
탈근대로
번역하든
후기현대로
번역하든
그런
것은
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나
다다이즘과
같은
단순한
문화사조
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구가
현대로
진입하게된
사상사적
계기들을
모더니즘
이라
부르고
그에
대한
비판으로
도출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만
자본주의라는
현실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질문의
고리들일뿐
현대성의
대안이
아니다. 하버마스처럼
아직
이성을
포기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분명한
것은
지구상의
곳곳에서
각각의
영역
에서
하나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의
재검토, 합리주의의
거부, 주체의
해체를
바탕으로
한
시대의
이념을
사회의
각
영역에서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또한
이러한
세계관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조망하려는
사람들이
늘어
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은
형용사의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명사에
붙게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화가
그렇고
미술이나
건축, 패션, 광고,
정치학, 사회학
등
포스트모더니즘을
세계관으로
혹은
방법론으로
채택한
연구자들
이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드러난다.
그들의
시도가
성공적이었느냐
아니냐는
차후의
문제이다. 이성이, 이성을
가진
주체가
세계를
진보로
이끌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타자의
문제를
논하고
거대이론의
해체를
다루며
생산과
소비와
욕망을
담론화시키는
그
모든
영역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존재한다.
미술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례는
예술작품의 '존귀함'과 '독창성'을
조롱한
뒤샹의
레디메이드나
키리코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
개념은 1960년
대
팝
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행위예술
등의
유행과
함께
본격적으로
부상
하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미술이
자율적이고
인간의
활동에서
자기증명적인
영역을
구축했다는
그린버그의
교리를
다양한
각도로
공격했고, 이에
맞서
모더니즘은 '천박한
취미' '중류계층의
요구들' '산업주의에
깔린
문화의
민주화'
라는
험악한
말로
그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처럼
포스트모던
혁명은
예술
작품을
텍스트로, 역사를
신화로, 예술가를
공상의
주인공으로, 실제
세계를
구태의연한
것으로
바꿈으로써, 모더니스트의
신념인
보편성, 본질성
등
하나의
세계관으로서의
예술적
진행을
대체했다. 그리고
그것은 1980년대에
후기구조주의와
결합하면서, 처음으로
포스트모던
자체의
성격이
드러나는
방식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작가
엘리너
하트니는
그의
책 "포스트모더니즘"
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
불리는 1980년대
이후
오늘까지의
미술을
신표현주의, 반미학주의
운동, 상품비평
미술,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다원문화주의라는
다섯
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가가
없는
미술이란
무엇인가' '왜
사진이
포스트모던
미술의
가장
중요한
매체인가' '예술의
상품화라고
비난받던
미술운동이
최근
미술사에서
어떻게
미술시장의
가장
인기있는
항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등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3) 미국의
뉴페인팅(New Painting)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상적(具象的)인
주제가
다시
활발해진
회화의
한
경향이다. 프랑스어로
트랑스
아방가르드(trans avant-garde)라고도
한다.
1970년경까지의
전위주의가
후퇴한
뒤, 인간의
모습을
중심
주제로
하여
언뜻
보기에는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필치로
정력적으로
그린
회화가
미국과
유럽에
거의
동시에
등장하였다. 그것은
마치
전위화가가, 상실한
현실의
인간과
그림과의
연계를
회복하려는
새로운
시도인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캔버스에
거친
필치, 원색을
사용한
격렬한
색의
대비에
의해
그려지는
폭력·죽음·성·신화
등의
도상을
갖는
이미지의
무리들은
그때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던
회묘적인
회화, 그러면서도
세속성과
무관하지는
않았던
회화의
봇물을
터뜨린
것처럼, 한때
세계에
만연했던
느낌이
있었다.
금욕적이며
관념적인
미술의
계승을
특징으로
하는 70년대
미술과
지나치게
대조되었던
까닭에
한편에서는
새시대의
도래라고
흥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회화
발전의
역사로부터
이탈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경향도
있었다.
실상
공시적으로
각국에서
발생했던
이
현상은
신천지를
열어가는
운동으로서
이론적이고
구축적인
공격의
방향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종류의
위기감에
뿌리를
두었다. 그러한
감각적인
세계관의
표명은
금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오늘날에
있어서
표현주의
계보의
재평가
를
촉진시켰다. 근자에
이르러
신표현주의라는
명칭이
점차
정착되고
있는
이
새로운
회화의
물결은 '어
뉴
스피릿트
인
페인팅 (81년
런던)', '바로크81
(81년
파리)', '슈나벨
전 (81년
뉴욕)', '아방가르디아·트랜스아방가르디아
68-77 (82년
로마)', '차이트
가이스트 (82년
베를린)', '미니멀리즘에서부터
표현주의에로 (83년
뉴욕)' 등의
전람회에
의해
주목을
받았다.
관련
작가는
미국의
슈나벨, 사레, 보로프스키, 독일의
페팅, 미텐돌프, 살로메,
바셀리츠, 뤼페르츠, 폴케, 이탈리아의
키아, 쿠치, 클레멘테, 파라디노등을
들
수
있다. 각
나라의
개별성은
있다고
하더라도
공통되는
것도
있다.
그것은
텔리비전·영화·사진·잡지
등
팽창일로에
있는
시각적
음성적인
정보의
도가니
속에
존재해
있는
일상성을
통해서
명확한
실체를
좀처럼
찾기가
어려워진
현대인의
실존주의적인
세계관에
대한
회의이다.
★
줄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 1951~ )★
깨진
접시나
도자기
또는
끈이나
천을
그림에
붙인
작품들이
유명하다.
신화
내용을
많이
다뤘으며, 카페트, 벨벳
같은
것을
주로
썼다.
*내발이
아름답다고
말해주세요(Tell me my feet are beautiful), 1989*
★
데이비드
살르(David Salle: 1952~ ) ★
오클라호마
출생. 상업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Immediate Experience*
*Pastor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