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참고자료/영국 라파엘전파

서양미술사30 라파엘전파:번 존스

AH101 2012. 2. 16.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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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ward Burne-Jones(1833~1898) ★


번 존스(Edward Burne-Jones)는 영국 버밍엄에서 출생하였다.
1856년 라파엘전파의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를 만남으로써 삶의 전기를
맞이한 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채 옥스퍼드를 떠났다. 그후 런던에 정착하여
로세티의 지도 아래 작업을 진행하였다. 세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는 형태와
표현 양식의 순수성 그리고 중세 미술의 고양된 도덕성을 미술에서 회복하고자
하였다. 주제를 성서나 고금의 문학작품에서 취하고, 유려한 선묘(線描), 단정한
구도, 풍요한 색채로 신비적이고 낭만적인 작품을 만들었는데 장식적인 경향이
강했다. 그의 작품은 중세와 고전주의 시대의 작품들, 그리고 성서에 바탕을 둔
주제 의식에서 주요한 영감을 얻은 것들로서 풍부한 감정과 낭만적인 스타일이
두드러진 것들이며 일반적으로 라파엘전파의 화가들 작품 가운데서 뛰어난 작품
으로 평가받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 시절의 친구인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와 함께 중세 응용 미술을 부활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모리스가 경영하는 상점에서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 태피스트리 등을 직접
디자인했던 것이다. 그가 디자인한 창문은 옥스퍼드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나
버밍엄 성당을 포함해서 영국의 많은 교회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윌리엄 모리스의
켈름스코트 출판사에서 일러스트 작업도 하였다.
1894년 준남작 작위를 받았다.

The Knight's Farewell, 1858

Clara von Bork, 1860/Watercolor

Sidonia von Bork, 1860/Watercolor

The Wedding of Sir Tristram, 1862, stained glass designed by

Burne-Jones for the music room at Harden Grange, Bingley

The Princess Sabra Led to the Dragon, 1866

The Lament, 1866

Laus Veneris, 1869

Portrait of Maria Zambaco, 1870

영원히 헤어지기 싫은, 그러나 결코 맺어질 수 없는 번 존스-잠바코(Maria
Zambaco:1842-1914).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하는 두 남녀가 있었다.
자신들의 처지에 절망한 두 사람은 수로에 몸을 던져 함께 이승을 등지기로 했다.
그러나 수로에 가보니 물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래서 투신을 포기하고 이승에
다시 남아 있기로 했다. 한 예술가와 모델의 처절한 사랑이 코믹하게 한 고비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는 잠시잠깐의 숨돌림이었을 뿐 둘의 사랑은 늘
몰아치는 광풍과 같았다. 에드워드 번 존스는 우수에 잠긴 아름답고 매혹적인
소녀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그의 이런 여인사을 위해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한 모델 가운데 한 사람이 마리아 잠바코이다. 그녀의 처녀 시절 이름은 마리아
테르프시테아 카사베티(Maria Terpsithea Casavetti)다. 그녀는 런던의 부유
한 그리스계 사업가의 딸로 태어나 역시 그리스계 의사 데메트리우스 잠바코와
결혼해 '잠바코'라는 성을 얻었다. 두 아이를 가졌으나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
하지 않았던 듯하다. 파리에서 살던 잠바코는 1866년 남편과 헤어져 런던으로
돌아 왔고, 곧 런던의 예술가들과 친교를 나누게 되었다. 미술을 애호하는 집안
출신이어서 어려서부터 예술적인 환경에서 자란데다가 어머니가 특히 라파엘전파
화가들을 좋아해서 그들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라파엘전파 화가인 번 존스
와 알게 된 것도 어머니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번 존스는 당시 이미 결혼한 몸이었
지만, 잠바코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을 동경해 온데다
고대의 조각 같은 여인들을 자신의 예술적 이상으로 삼아 온 그에게 이 그리스 혈통
의 아리따운 아가씨(라파엘전파 화가들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미인'이라
는 의미로 "스터너(Stunner)"라고 불렀다.)는 더없이 감미로운 유혹이었다.
물론 그 유혹은 엄청난 재난을 동반한 것이었다. 둘의 사랑은 번 존스의 아틀리에
에서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시를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으로 함께 달아나는 꿈으로 꽃 피었다.
두 사람 사이가 절정에 이를 무렵 잠바코의 어머니 역시 그 관계를 눈치챘지만,
돈이 많은 그녀는 번 존스로 하여금 자신의 딸을 모델로 한 그림을 계속 그리도록
주문했다. 아마도 둘의 사랑을 단단히 엮어보고 싶었던 듯하다.

그러나 번 존스에게는 사려 깊고 조신한 아내 조지아나가 있었다. 번 존스는 자신
의 불륜을 결코 아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아나는 두 사람의 관계
를 극적으로 알게 되는데, 이는 동료 화가 로제티의 친구 찰스 하웰 탓이었다.
남을 난처한 입장에 빠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이 고약한 친구는 1869년 어느
날 번 존스가 집을 비운 사이에 잠바코가 그 집을 방문하도록 꾸몄다.
조지아나와 잠바코가 일대일로 대면하도록 의도한 것이었다. 하웰은 속으로 키득
키득 웃었을지 모르나,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온 번 존스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아내와 정부가 한 자리에서 자신을 맞는 모습을 본 번 존스는 쓰러져 벽 난로에
머리를 찧기까지 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번 존스와 잠바코가 리젠트파크의 수로
에 몸을 던지려 했던 사건은 바로 이 일이 있고 난 후의 에피소드이다.
그 후 번 존스는 더 이상 자신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그는 갑자기 로마로 떠났다. 그가 사라진 것을 안 잠바코는 그의 친구들 집을 들쑤
셔 벌집을 만들어놓는 등 미친 듯이 그를 찾아 나섰다. 오죽하면 로세티는 그런
그녀를 '악을 쓰는 카산드라(예언의 능력을 가졌으나 아무도 믿지 않는 운명을
가진 트로이의 여인)'라고 묘사했을까. 하지만 번 존스는 멀리 가지 못했다.
영불 해협도 건너지 못하고 큰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는 결국 끝까지 인내하며
아내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조지아나의 품으로 돌아왔다. 조지아나는 그에게 관용
을 베풀었지만, 두 사람의 삶은 더 이상 옛날 같지 않았다. 비록 계속 한 지붕 아래
서 생활하기로 했으나 각자 별개의 삶을 영위해 나갔던 것이다. 현숙한 여인인 조지
아나는 자선 활동과 지역 사회 봉사 활동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았다.
1870년 대 초에 이르면 번 존스와 잠바코의 관계는 번 존스가 끝내 자신의 아내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바코가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두 사람의 사이는
확실한 종장을 맞았다. 물론 그렇다고 번 존스가 잠바코를 향한 그리움을 거둔 적
은 한 번도 없다. 그에게 잠바코는 영원한 미와 사랑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번 존스와 헤어진 잠바코는 파리로 가 조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노력한 그녀는 유명한 조각가 로댕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결혼
하지 않고 파리의 예술 속에 심취하여 살았다고 한다. 번 존스는 잠바코를 모델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 가운데는 두 사람의 격정과 갈등이 선명히 나타나
있는 그림이 몇 점 있다. 1874년 작인 <멀린의 기만>과 1881-82년 작인
<용서의 나무>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The Mirror of Venus, 1870-76

The Garden of the Hesperides, 1870-77

Temperantia, 1872

Pan and Psyche, 1872-74

The Beguiling of Merlin(속임수에 빠진 멀린), 1874

넋나간 표정의 멀린이 바라보는 것은 니무에(Nimue)다. 니무에는 여러가지 다른
이름들을 갖고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이름으로는 비비안이 있다. 워즈워스는
니나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서 왕 전설에서 이들에게 더 잘 알려진 이름으로 '호수
의 여인'이란 닉네임이 있다. 토머스 맬로리 경의 <아서 왕의 죽음>에서 아서에게
엑스칼리버를 준 여인이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란슬롯을 양육한 여인으로도 등장
한다. 니무에(비비안)는 멀린의 제자였다. 주로 멀린의 필사를 돕고 예언을 기록
하는 일을 했지만 야망이 컸다.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멀린의 경지에 오르지
못할 것을 알고 그를 유혹한다. 이 때의 멀린은 우리가 알고 있는 멀린보다 나이를
덜 먹었고(하지만 젊진 않고), 그만큼 현명하지 못했다. 결국 니무에의 사랑을 얻는
대신 자신의 주문(spell)과 마법의 비밀을 모두 알려주었다. 이 곳은 브로셀리앙드
숲, 예로부터 요정이 나온다는 마법의 숲이다. 멀린은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랑에 눈
이 멀어 손발에 힘을 뺀 채 멍하니 니무에를 바라 본다. 사랑을 나누기 위해 나무가
많이 우거진 숲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이미 사랑을 나누었는지, 나눌 참인지, 멀린
은 산사나무에 기대어 있다. 니무에는 스펠북(spell book)을 들고 마지막 질문을
한다. 이 질문에 답을 들으면 멀린이 알려준 바로 그 주문으로 멀린을 옭아매고
가둘 것이다. 살짝 비튼 몸, 뱀처럼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번 존스는 팜므 파탈
(妖婦)의 이미지를 니무에에게 투영했다. 멀린이 기대고, 그를 둘러싼 산사나무는
잠시 후 뱀처럼 그를 붙들고 얽어버릴 나무다. (그림에서 그는 이미 사로잡힌 듯
하다). 니무에는 산사나무로 그를 잡아 멀리 탑에 가둔다. 어떤 판본에서는 죽였다
고도 하고, 어떤 판본에서는 니무에가 진실로 그를 사랑하여 자신만 접근할 수
있는 지하 세계에 숨겼다고도 한다. 니무에의 발밑에 알게 모르게 핀 흰 꽃은 멀린
에 대한 사랑이 아주 거짓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번 존스가 잠바코와의 관계를 청산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린 그림이다.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번 존스는 이렇게 썼다.
"매년 산사나무에서 싹이 돋아날 때 그것은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와 무언가 말하려
는 멀린의 영혼이다.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하지 못한 채 떠나갔으니까."
자신의 사랑에 관해 아직도 할 말이 많은 화가의 심사, 그 비통함이 역역히 느껴
진다.

The Golden Stairs, 1876-80


*Pygmalion and the Images*

지중해에 피그말리온이란 젊은 조각가가 살고 있었다. 볼품없는 외모를 지녔던
그는 사랑에 대해서는 체념한 채 조각에만 정열을 바쳤다. 그러다가 자신도
언젠가는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심혈을 기울여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의 여인의 나체상을 조각했다. 그 조각은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여인상이었고
그는 정성스럽게 다듬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여인상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사랑의 감정으로 싹터 갔다.
매일 꽃을 꺾어 여인상 앞에 바쳤다. 그러던 어느날 아프로디테의 제전이 다가
왔다. 자신의 소원을 비는 축제가 벌어졌다. 피그말리온은 신께 그 여인상을 사랑
하게 되었노라며, 아내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온 피그말리온은 여인상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손에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놀란 피그말리온이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자 조각상에서 점점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며 사람으로 변해가기 시작
했다. 피그말리온의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인 신이 그 조각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조각상이 살아 있는 여인으로 변하자 피그말리온은 인간이
된 갈라테이아와 결혼하였고 이들의 결혼식에는 아프로디테도 참석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피그말리온의 고향 땅 이름을 따서 '파포스'라고
불렀다. 번 존스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4부작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을 제작했다.

Pygmalion and the Image I:The Heart Desires, 1875-78


마음이 원하다... 아틀리에에서 사색에 잠겨있는 피그말리온을 보여주고 있다.
문 밖으로 아리따운 소녀들이 지나가지만 그는 지금 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Pygmalion and the Image II:The Hand Refrains, 1875-78


손을 거두다... 피그말리온은 조각을 완성한 뒤 그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피조물인데도 그의 감탄은 마치 이 세상 너머의 것을 향하고 있는 듯
하다.

Pygmalion and the Image III:The Godhead Fires, 1875-78


신이 빛을 비추다... 마침내 아프로디테의 손길이 조각상에 미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지극히 아름다운 두 여인이, 하나는 생명을 주는 존재로, 하나는 생명을
받는 존재로 만나 피그말리온의 소원에 살을 입혀주고 있다.

Pygmalion and the Image IV:The Soul Attains, 1875-78


영혼을 얻다... 조각상이 인간이 되자 감격한 피그말리온이 무릎을 꿇고 자신의
우상을 찬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귀한 꿈과 순수한 사랑은 이렇듯 죽은 사물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만들어 낸다.
물론 완벽한 여인상을 만들 수 있는 피그말리온의 탁월한 재능이 없었다면 그의
기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빼어난 재현 능력이야말로
이 기적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번 존스는 그래서 자신의 그림에서 피그말리
온을 무엇보다 한 사람의 탁월한 예술가로 부각시키고 있다.
번 존스 또한 자기가 그린 여인이 피그말리온의 조각처럼 강렬한 생명력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길 원했다. 그런 만큼 그림의 소녀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정성껏 그렸다. 이 연작을 그리기 전 번 존스는 자신의 예술적 소망에 대하여 다음
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대작을 만들 기회를 갖고 싶다. 보통 사람들이 그걸
보고 '와!'하고 감탄하는. 그저 '와'라는 말밖에 내뱉을 수 없는..."
피그말리온의 소망이 그의 소망이었다.

Song of Love, 1877

Perseus and the Sea Nymphs, 1877

The Annunciation, 1879

The Last Sleep of Arthur in Avalon, detail, 1881-98

The Tree of Forgiveness, 1881-82

남녀의 나신이 부둥켜안고 있고 더구나 여자가 남자를 뒤쫓는 형국이어서 발표
당시 외설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그림이다. 잠바코와 번 존스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그림의 선명한 자전적 요소에 거부감을 토로했다. 번 존스는 이 작품에
고대 로마 작가 오비디우스의 다음과 같은 글귀를 부침으로써 소용돌이쳤던 지난
날를 회상했다.
"어리석게 사랑한 것 말고 내가 행한 것을 나에게 말해다오."
"정욕은 나를 놀라게 하고 위협한다. 정욕은 한마디로 그럴 수 없는 절망이다.
모든 행복의 포기이며, 갈수록 퇴보된 상태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Georgiana Burne Jones, 1883

King Cophetua and the Beggar Maid(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 1884


신화와 전설을 토대로 낭만적인 화풍을 개척했던 번 존스의 1884년 유화 작품
이다. 여성에 대한 관심이 없어 평생 결혼을 하지 않으려던 흑인왕이 우연히 보게
된 순수한 거지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은 시를 테마로 한 그림이다.
그림은 엘리자베스 1세 시절의 민요인 존슨(Richard Johnson)의 작품
《A Song of a Beggar and a King》(1612)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 노래는 이후 시인 테니슨(Alfred Tennyson)에 의해 《거지 소녀:The
Beggar Maid》라는 시로 쓰여졌다.
옛날 아프리카에 코페투아라는 왕이 있었다. 코페투아 왕은 평소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거리를 지나던 예쁜 거지 소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왕이 거지 소녀와 사랑에 빠지자 궁전에서는 반발이 일어나고 왕은
거지 소녀와 왕좌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왕은 결국 사랑을
택한다. 젊은 시절부터 이 주제에 매료된 번 존스는 코페투아 왕의 아름다운 사랑
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세로로 긴 그림의 중앙에는 청순한
모습의 거지 소녀가 앉아 있다. 남루한 옷을 입었지만 아름다운 얼굴과 몸을 가지
고 있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얼굴과 가슴, 팔과 발은 우유 빛으로 빛나고
오른손에는 아네모네 꽃을 들고 있다. 갑옷을 입은 왕은 그 앞에 앉아 소녀를 바라
본다. 손에는 왕관을 들고 있는데, 소녀에 대한 경의의 표시인 동시에 그가 버리게
될 왕좌를 상징한다. 이 그림은 문학과 회화가 결합한 작품으로 이는 빅토리아
시대 미술의 특징 중 하나였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아 화사한 분위기
를 풍기는 작품이다.

The Arming of Perseus, unfinished, 1885

The Doom Fulfilled, 1885

The Rock of Doom, 1885-88

The Baleful Head, 1886-87

The Star of Bethlehem, 1888-91

The Heart of the Rose, 1889

Sponsa de Libano (The Bride of Lebanon), 1891

Love Among the Ruins, 1894

The Wedding of Psyche, 1895

The Prioress' 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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