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88 개념미술: 솔 르윗, 차학경

   

서양 미술사 - 88(개념미술: 르윗, 차학경)

   


르윗(Sol Lewitt: 1928~ )


현대미술사에 획을 그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거장이다.
미국 코네티컷 하트포드에서 러시아계 유태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시라큐스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했으며, 1960년대 로버트 맨골드
Robert Mangold,
플래빈Dan Flavin 미니멀리즘 작가들과 교류
하면서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된 객관적이고 단순한 회화를 주창하며
기존 회화에 반기를 들었다. 또한 작가는 아이디어만을 제공하고, 실제 작업은
조수들이 하는 "개념미술" 선보이면서 작가가 직접 작업하는 것이 작품
이라는 기존 회화의 정설 또한 뒤집어 엎었다.
1951
6.25전쟁 중에 한국에서 일년간 근무하면서 포스터 제작을 포함한
선무작업에 동원되기도 했다. 1967 <개념미술에 대하여>에서 "개념미술에
있어서 관념과 개념은 작품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모든 계획과 결정이 먼저
내려지며 제작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일이다. 관념은 미술을 만들어 내는
기계가 된다" 말하였다.

*ABCD 5, 1968*

*Horizontal Colour Bands and Vertical Colour Bands I, 1991*

*Irregular Wavy Bands, 1996*

기하학적 곡선을 보여준다. 르윗의 작품에는 기하학과 수학의 원리가
동원된다. 무질서하게 그려진 같지만, 여기에는 작가의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아이디어가 담겨있다. 직사각형 캔버스위에 1cm간격으로 입방면체
계속 배열해 나간다든지, 다양한 곡선을 엇갈리게 배치한뒤 삼원색을 그려
넣는 식이다.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가들은 작가의 감정을 배재하기 위해
작품의 재료를 시장에서 있는 공산품으로 사용하는데, 위의 르윗의
회화도 흔히 포스터물감이라고 부르는 과슈물감으로 이용해 그렸다.
르윗은 과정에서 작가는 아이디어만 제공하고실제 작업은 조수들이 하는
개념미술을 선보였다.

*Concentric Irregular Bands*

*Cube-Circle 4*

*Stars (7-pointed), 1996*

*Untitled Structure, 1997*

*Maquette for Irregular Progression (High) No. 7 (Vertical Blocks), 1998*

*Arcs and Bands in Colors (A-F), 1999*

*Arcs and Bands in Colors 2, 1999*

*Colors Divided By Wavy Lines, 1999*

*Circles Arcs and Bands, 1999*

*Wall Drawing #606, 2000*

*Bands of Equal Width in Color, 2000*

*Bands of Equal Width in Color, 2000*

*BK X, 2000*

*Untitled (Doctors of the World), 2001*

*Horizontal Brushstrokes (More or Less), 2002*

*A Square with Broken Bands of Color, 2003*

*Wall Drawing #1096, 2003*

*Wall Drawing 1119, whirls, 2004*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 1951~1982)


부산출생, 5형제중 셋째로 태어나 11세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간
1.5
세대에 속하는 한국계 미국작가로서 이산(離散 Diaspora) 언어의
문제를 중심으로 탈장르 작업을 시도, 포스트모던 미술에 확실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녀의 부모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피해 만주에서 성장하였고
2 대전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이승만 정권의 몰락이후 가족이 정치적
불안과 소요에 휘말리게 되자 미국이민을 선택한다. 그들은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면서 구한말부터 시작된 유랑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렇게 차학경은 한국의 근대사에 얽힌 독특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69
년부터 10년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분교(UC버클리)에서 비교
문학과 미술을 전공하고 문학사, 미술학사, 동대학원에서 미술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6년에는 현대 영화 이론 공부를 위해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기
하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때 알게된 고다르 등의 실험영화와 프랑스
영화 이론에서 크게 영향을 받아 이후 영상 작업에 적용하였다.
그녀의 비디오와 영상 작업에서 있는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미묘한
명암의 변화, 느린 장면 이행시간의 점진적 추이, 현실도 꿈도 아닌 모호한
시간과 공간의 연출에서 영향을 찾아 있다.

그녀는 재학시절,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반전운동과 인권운동, 전위적
문화운동의 중심지였다. 그녀는 이런 사회, 문화운동이 제시하는 비전을
간파하는 한편, 모더니즘을 탈피할 새로운 양식적 실험을 추구하였다.
결과 오브제, 아티스트 , 종이작업, 퍼포먼스, 비디오와 영상 등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은 장르의 경계를 '위반'하게 된다. 사진, 다양한 타이포
그래피와 언어적 텍스트, 여백 등을 이용한 몽타주 방법과 분절된 이미지와
불확실한 내용, 변하기 쉽고 고정되지 않은 다층적 정체성은 포스트모더니즘
특성을 일찌감치 예견하였다. 문학, 개념미술, 퍼포먼스, 신체예술, 비디오
예술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였으나, 졸업 예술의 중심지에서 활동하려는
야망을 품고 1980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결혼 직후 근처의
주차장에서 괴한에게 피살되어 32살의 일기로 삶을 마감한다.
그를 기리기 위한 가족의 부단한 노력 끝에 1991 모교인 버크리대학교
부설 '버클리 미술관/태평양 필름아카이브' '차학경 아카이브' 설립 되었다.
현재 그녀의 작품 일체와 자료들은 이곳에 안전하게 보관 관리되고 있다.

타남Tanam출판사에서 작가 편집자, 엘리자베스 세튼 컬리지 비디오 아트
강사로 재직하였으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디자인부에서 활동하였다.
언어능력이 탁월했던 그녀는 1980 바르트, 보드리야르 등의 영화관계 글을
엮은 저서 <기관 Apparatus> 펴내고, 죽기 개월 전에는 <받아쓰기
Dictee>
출판하였는데, 과거와 현재, 역사와 허구, 이미지와 언어가 교묘하게
교차하는 책은 만주출신 교사였던 어머니와 유관순, 다르크 등의 생애를
시와 산문, 사진 등을 결합하여 엮어낸 것으로 페미니즘 예술의 지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작품제작을 위해 1978 고국을 방문하였으며, 죽기 해인 1981
에도 미술사에 나타난 손의 이미지를 모은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기 위해 재차
입국하였다. 미국내 유색인종의 문화적 정체성과 차별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복합문화주의Mulitculturalism 부상과 더불어 그녀의 예술적 성과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졌다.
차학경은 몸소 겪은 이주의 경험에서 미술과 문학작품의 주제를 끌어내었다.
경험은 단순히 장소를 떠나 다른 장소에 도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곳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바람, 다시말해 '현재 이곳'에서 '과거의 그곳'
기억하려는 갈망과 더불어 그것의 지속적인 좌절과 애초에 그것의 불가능성이
동시에 제시된다. 이주의 경험은 작가가 "나의 주제는 언어에 관한 "
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언어의 문제, 모국어의 상실과 새로운 언어의 습득과
직결된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기능적 측면에
머물지 않고 생성가 변화 구조적 탐구로 확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Videoeme"1976, "망명자 Exilee"1980 같은 작품의 제목은
영어와 프랑스어의 짜집기 또는 교묘한 말장난에 의한 조어이다.
대표적인 퍼포먼스인 <눈먼소리 Aveugle Voix>1975 프랑스어 단어의
위치를 역설적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1992~93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백남준에 이어 한국계 작가로서는 두번째로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전시를 갖기도 차학경은 특히 비극적 생애로 인해 많은 사람들
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4 95~1026 쌈지스페이스에서
국내전시를 가졌다. 차학경의 작품이 21세기의 문턱에서 재조명되는 이유는
후기 식민시대 이후 초국가주의와 인간(여성) 복잡한 위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간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유랑민이 더욱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상 순수한 하나의 기원이나 뿌리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녀는 일찍이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불확정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중심에서 사는아시아 여성이란 이중식민상태의 정체성을 표현하였다.
그가 모국을 기억할 그것은 언제나 한국과 미국, 세계의 역사가 겹친 순간일
밖에 없으며 따라서 순수한 기원에 대한 향수나 귀환과 재화합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이런 때문에 그의 문학작품과 미술작품은 탈식민주의와 여성주의
담론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는 대표적 모델로 인식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Theresa Hak Kyung Cha*

미국에서 사는 주변부 아시아 여성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2003
9~10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린 <관객의 : 차학경>
미국에서 활동하다 32세때 사망한 차학경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이다. 전시제목이 '관객의 ' 것은 차학경의 작품세계가 포함하고
있는 수많은 의미망을 관객들이 찾아내기를 바라는 기획자의 바람 때문이다.
버클리대학에서 차학경은 도예, 비교문학, 미술 등을 수학하고 미술에서
석사학위를 받는다. 무렵부터 차학경은 언어의 의미에 천착한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을 시작하여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다. 그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면서 1980 뉴욕으로 이주한 사진작가 리처드 반스와 결혼했으나
6
개월만에 변사체로 발견된다. 남편이 일하던 건물의 경비원에게 폭행 당하고
길거리에 처참하게 버려진 것이다.
미국내에서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차학경은 우리나라에 거의 소개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휘트니
뮤지엄에서 한국인으로는 백남준 이후 두번째로 그녀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렸으며, 버클리대학은 대학내 '차학경 기념 자료실' 마련하였다.

*2003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린 차학경전 포스터*

*차학경의 비디오 작품 '눈먼 음성' 장면, 퍼포먼스, 1975*

언어유희를 통해 모국어 상실을 말한다. 프랑스어 단어의 위치를 역설적으로
바꿔치기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놀이는 작품 내에 사용된 텍스트에서도
쉽게 접할 있다. 8분짜리 비디오 <입에서 입으로>1975에서는 한글모음소
그것을 발음하는 입술의 이미지가 전파장애로 발생하는 반점과 흐르는
소리에 의해 거의 지워지고 들리지 않게 됨으로써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모국어
상실의 고통이 표현되어 있다.

*차학경의 비디오 작품 '눈먼 음성' 스틸컷, 1975*

*빛과 재질의 절묘한 조화가 들어난 사진 작품*

*차학경의 대표적인 문학작품 딕테의 미국판 표지*

*차학경의 '엑사일레(망명자)' 비디오 스틸, 1980*

차학경은 1979 17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귀환에 대한 기대와
기쁨도 잠시, 자신이 모국을 떠날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외국인임을 깨닫는다.
이민자로서 귀환에 대한 갈망과 그것의 좌절, 한국과 미국, 어디에도 속할
없는 국가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이산(離散 Diaspora)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한국방문이후 더욱 확고해져서 그의 멀티미디어 대표작 <망명자>
문학작품 <딕테> 주제가 되었다. 지난 30년간 미국 내에서 차례 차학경의
개인전이 열린바 있지만 1992 겨울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제외하곤 대개 한두 작품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엑사일레(Exilee), 비디오스틸,1980 *

그녀의 작업의 핵심은 언어, 다시 말해 혀끝에서 발화되기 이전의 언어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언어는 단어와 단어가 하나의 문장구조 속에서 연결되어
상호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단어들은 서로 치환 되거나 변위될
있으며, 또한 그러한 변화로 인해 쉽게 분절되거나 파편화되고 만다.
그녀는 단어와 의미가 언어 내에서 구축하는 구문법, 그리고 문장 구조의 변화
고립, 문맥과의 유리, 반복, 최소단위로의 환원 등의 과정과 조작을 통한
언어의 변형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의 특성에 개인의 경험을 투영
시킨다. 반복되고 분절된 혹은 낯선 언어들은 새로운 의미이며 자신이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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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87 개념미술: 키엔홀츠(Edward Kienholz),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서양 미술사 - 87(개념미술: 키엔홀츠, 코수스)

   


37.
개념미술(Conceptual Art: 1970년대)


미니멀 아트 이후의 현대미술의 경향으로 있으나 특정한 미술운동
이라기 보다는 1960년대말 활동배경이 다른 여러 작가들이 모여 생겨난
하나의 경향이라고 있다.
사진 또는 도표로 나타내는 문서 등을 수단으로 종래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외면하고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미술적 제작 태도를 가리킨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동유럽권을 포함해서
북미·남미·오스트레일리아 일본에까지 확산되어 있다. 맥락은 예술의
'
최소한' 강조하는 미니멀 아트의 논리적 귀결에서 찾을 있다.
또한 네오다다이즘이나 플럭스(flux) 파문을 일으켰던 1960년을 전후하여
여러 기존형식을 파괴하는 일련의 운동과 함께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하였다.

그러나 개념미술의 선구자는 M.뒤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13
미술가의 역할에 대하여 "물질을 교묘하게 치장하는데 있지 않고 미의 고찰을
위한 선택에 있다" 정의를 내렸다. 이것이야말로 개념미술의 근본적인
미학이다. 뒤샹은 《레디 메이디:Ready-made》와 이후의 작품들을
통하여 형식과 기교 회화의 낭만성을 버리고 평범한 대상물과 사상쪽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동향은 예술 일반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결과적으로 그는 아무런 미술작품도 제작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그는 생활 자체가 미술이요, 조형활동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관점에서 그는 이미 미술가들이 창조자로서의 존재에서 밀려나와서
연출자나 제조자로 빠져 들어갈 함정을 예견하였던 것이다. 뒤샹의 작품은
1960
년대 말기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미국의 신진 개념미술작가들이
계속 추구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다. 개념미술의 다른 원류는 다다이즘
에서 찾아볼 있다.

1 세계대전 이후 정신적인 갈등과 혼매(昏昧)에서 탄생한 다다이즘은
허무주의적인 내용과 반미술적인 형식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과 흡사한 1960년대의 정신적인 고갈에서 많은 젊은 미술가들은
반물질적인 태도로 작품을 만들었다. ,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은
조형예술을 추구하였다. 산업적으로 조립된 회화와 조각은 미술에서 점차적
으로 '손재주' 제거 당하는 구체적인 증거로 나타났다. 복잡한 형태가 허물어
지는 당연한 귀결로서 나온 것이 바로 미니멀 아트였다. 그러다가 여기에서
걸음 나아가 미술작품 자체를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새로운 바람이 개념
미술이다. 물질적 대상에서 심리적 이미지로 옮겨간 비약적인 변천이고
내용은 보통 사진이나 문서, 상투적 문구 또는 일상적인 산문뿐만 아니라
때때로 작가들의 공식적인 서명을 수단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어떤 비평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변천된 사항은 미술을 문학으로 대체
하려는 같은 인상마저 풍기는 것이다.

개념미술의 대표적 작가인 J.코주드는 사전의 낱말풀이를 그대로 신문에 실어
작품으로 발표하였고, D. 후에불러는 《지속적인 단편들》이란 명칭으로
작품을 내놓았는데, 이것은 지도와 도면에 기록을 남긴 것이다.
특히 개념미술은 상품으로서의 작품을 거부함으로써 미술작품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을 약화시켰다. 이것은 수집가 ·미술가 전통적인 미술작품에 적용하는
모든 가치기준을 거부하는 공격의 화살이다. 따라서 미술가들은 자신을 장인
(
匠人) 아니라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거의 모든 사물을 미술
작품으로 제시하게 한다. 그들의 주제는 일반적인 것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것도 포용한다. 사소하거나 심오한 , 사실이거나 추상적인 어느 것도
가리지 않는다. 한정된 주제와 꾸며낸 조형이 아니라 가능성의 전달을 의도
한다. 따라서 작품은 조형물의 결과에서가 아니라 거기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은
미술가의 관념에서 우러나온 가치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감상자는 메티에(mtier:전문적 또는 특이한 기법) ·마티에르(matire) 부정한
작품 또는 작품의 흔적을 대하면서거기에서 작가가 추구한 과정 또는 관념을
찾아야 한다. 개념미술은 추상표현주의로 대표되는 Modernism 의의를
제기했다. 실제 개념미술의 효과는 예술 내에서만 있고, 대중적 효과는 미비
하였다. 사회문화와 대중미술을 연계한 방향의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 1927~1994)


에드워드 키엔홀츠는 1927 Washington Fairfield 에서 태어났다.
자라서 목장경영을 하거나 목동이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농장생활에서
그는 기계를 만지는 기술과 목수로서의 훈련을 습득하게 된다.
동부 워싱턴 교육대학에서 수학하고 짧게 스포케인에 있는 Whitworth
College
에서 수학하지만 공식적인 미술수업을 받을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는 벌이를 위해서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게 된다. 정신병원의 간호사로, 댄스
밴드의 매니저로 그리고 중고차 딜러로 일했으며 연회주선 담당자, 데코레이터
진공청소기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다양한 직업편력은 그의 작업에
다양한 형태로 반영되어 나타나게 된다. 1953년에 그는 로스엔젤레스로 이사를
오게 되며 1954 로스엔젤레스의 릴리프 제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1956년까지 제작되던 릴리프 작업은 서서히 더욱
뚜렷한 3차원 작업으로의 진행을 암시하는 것이었다고 있다.
작품활동의 초기부터 그러했던 키엔홀츠 특유의 거칠고 야만적인 어법은 그의
작품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간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는 것이어서 지속적인 센세이션을 몰고 다니게 된다.
1972
사진 저널리스트인 그의 다섯 번째 부인인 Nancy Reddin Kienholz
만나고 동료로서 조력자로서 공동작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독일과 미국의
스튜디오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94 10, 그는 아이다호의 Hope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John Doe, 1959*

*History as a Planter, 1961*

*The Illegal Operation, 1962*

*Back Seat Dodge '38, 1964*

*The Birthday, 1964*

*The State Hospital (EXTERIOR), 1966*

*The State Hospital (INTERIOR) , 1966*

작품은 에드워드 키엔홀츠의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작품은 병동의 침상에 누워 있는 노쇠한 환자와 아래칸에 묶여있는
벌거벗은 노인의 신체로 구성되어 있다. 정신적인 생명력을 완전히
박탈당한 노인은 가혹한 육체적 변화의 희생자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의 몸은 탈색된 가죽으로 덮인 뼈다귀에 불과하며 그의 머리는 금붕어가
떠다니는 유리 어항으로 변해있다. 극도로 사실적으로 처리된 무시
무시한(개인의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장면은 심지어 냄새까지 풍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실제로 작품은 로스엔젤레스 미술관에 전시되었을
때는 속을 뒤짚는 듯한 병원 냄새가 나게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침대 윗칸에 설치된 인물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인물은 아래칸에 있는 인물을 거의 똑같이 복제한 것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만화에서 사용되는 말풍선속에 갇혀 있는
점으로 보아서 윗칸의 인물은 마음속의 이미지를 보여 준다고 말할 있다고
하겠다. 결국 윗칸의 인물은 아래칸에 누운 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 있을것이다. 말풍선이라는 추상적인 형태와
은유적인 의미를 지닌 어항의 등장은 장면이 표방하는 사실주의 정신에
비해 다분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고
있는 이러한 장치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할 뿐만 아니라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키엔홀츠가 이용한 수단은 아트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의 목적은
그리스 시대의 비극이 지향했던 바와 같다고 하겠다. 현대적인 생활의 저변에
은폐된 비참한 현실에 대면하여 키엔홀츠만큼 진실한 증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The Portable War Memorial, 1968*

*Sollie 17, 1979-80*

*To Mourn a Dead Horse, 1989*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1945~ )


미국의 개념미술가로 1945 1 31 오하이오주 털리도에서 출생하였다.
1955
62 털리도박물관 디자인스쿨에서 공부한 1963 클리블랜드
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파리로 가서 유럽 여러 나라와 북아프리카를
여행하였다. 1965 뉴욕으로 이주하여 1967년까지 비주얼아트스쿨에서
공부하였다. 196575년까지 L.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철학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67 노멀아트미술관을 창립하여 개인전을
열었다. 1968년부터 비주얼아트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7576
잡지 《폭스 The Fox》를 편집하였고, 197778 Marxist Perspec-
tives
》의 미술편집자로 활동하였다.
초기 작품에는 어떤 사전적 의미를 두지 않았으나, 1965 이후에는 작품의
기본적 요소로 언어를 중시하였다. 언어 역시 초기에는 백과사전적 정의를
분석하는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철학적이거나 심리학적인 텍스트로 폭을
넓혔다. 논문 〈철학 이후의 미술 Art After Philosophy(1969) 썼고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 One and three Chairs(1965), 《네온 전광
문자》(1966), 《흑과 White and Black(1966), Zero and
Not
(1986), 《무제 Untitled(1997) 등의 작품이 있다.

*하나 그리고 개의 의자, 1965*

예술작품이 상품이 되고 그에 따라 가격의 거품화가 심해져갔다.
그렇게 되면 돈이 있는 사람들만 예술작품을 소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품으로서의 예술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행해진다.
결코 없는 것을 예술로 제작하는 것이다.
개념미술(Concept or Conceptual Art) 대지미술(Environmental,
Earth, or Land Art)
이러한 경향을 대표한다.
작품도 없는 예술인 개념미술이다. 개념미술의 작품인
뒤샹의 '' 유명세 때문에 비싼 값에 팔렸다고는 하지만 보통 개념
미술은 관객에게 개념을 제시하고 생각하게 하는 미술이지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기에 의자의 세가지 재현물이 있다.
언어적 재현물(언어적 정의), 실제 자체, 이미지 재현물(사진)이다.
언어학자이자 구조주의자인 소시르는 언어를 기표와 기의라는 기호적
관계로 이해했는데,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 관계이면서 일대일로 대응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후기 구조주의자인 자끄 데리다는
기표와 기의 간의 일대일 대응 관계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의미가 지연
되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사전에 나온 의자와 실제 의자가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다고 것이다. 의자라는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
사람이 앉기 위한 도구'라고 나온다.
여기에서 사람, 앉다, 도구 등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며, 이러한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따라서 의미는 확정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지연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던한 상태이다.
또한 의자를 앉는다는 의미와 연관시킬 것인지, 가구라는 의미와 연관
시킬 것인지 등은 관객에 따라 다양하게 연상할 것이다.
작품의 의미가 작가가 아니라 관객에게 놓여있는 것이다.

*Sigla, Finnegans Wake, 1998*

과거의 벽화들이 종교 역사 신화 일화 등을 주제로 장식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현대에 들어와서는 건축물의 기능성이나, 주거공간에 적합한
실용적 요구에 부합되는 벽화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이는 미술과 , 회화와 건축, 장식성과 기능성의 결합으로 해석될 있다.
벽면은 단순히 작품이 걸리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벽자체가 작품의
배경이자 도구인 동시에 존재의 근원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는 기존의 회화 캔버스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3차원 공간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는 현대미술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Sigla, Finnegans Wake,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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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86 대지미술: 크리스토 & 잔느 끌로드(Christo and Jeanne-Claude),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 마이클 하이저(Micheal Heizer: 1944~ ), 월터 드 마리아 (Walter De Maria : 1935~ )

   

서양 미술사 - 86(대지 미술: 끌로드 )

   


36.
대지미술(Land Art: 1960년대 후반)


대지미술이라 함은 미니멀 아트의 영향 아래 '물질'로서의 예술을 부정하려는
경향과 반문명적인 문화현상이 뒤섞여 생겨난 미술로 미술 작품을 화랑과
문명사회로부터 떼어내어 자연 가운데 설치하려는 미술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규모가 크고 일시적으로 존재하며 자연물을 소재로 하거나
혹은 자연에 인공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자연과 인공의 관계를 탐구하는 미술을
말한다. 랜드 아트(Land Art)·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라고도 한다.
랜드아트가 , 바다, , 대지 자체를 소재로 한다면, 어스 아트(Earth
Art)
그외에 환경적 요소까지 포함된 폭넓은 개념이다.

2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은 예술계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유럽이 점차
쇠퇴하고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미국의 사회는 기계문명의 발달과 첨단기술로 사회.문화.예술
전반적인 면에서 안정된 나라였으며, 반면 유럽은 전쟁으로 인하여 정치,
경제,사회,문화,예술 면에서 혼란기였다.
이렇게 유럽에서 발생한 예술의 전반적인 활동들이 미국으로 전원지를 옮긴
시기인것이다. 이런 배경 아래서 대지미술이 발생할 있는 계기가 되는
시초는 "미니멀 아트" 등장이었다. 대지미술은 1960년대 후반 영국·독일
특히 미국에서 성행하였다. 소설가 B.앨디스가 SF소설 제목에서 작가
스미드슨이 같은 이름을 전람회 이름으로 사용함으로써 일반화된 미술용어가
되었다.

대지위에서 거대한 스케일과 함께 수평적으로 전개되는 특징도 보여지고 그들이
전적으로 자연과 동화하려는 의지의 일환으로서 표현이며 우주와 인간사이의
중재 역할로 작품을 통해서 나타낸다.
존재하는 사물을 포장해 버린다는 것은 보이는 사물의 존재를 지워버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물의 존재를 지워버린다는 것은 또한 사물의 물질성에서
우리의 관념을 해방시켜준다는 것으로 말할 있다. 아트리에에서 손작업의
한계안에서 추상적인 문법을 추출해 간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와같은 정신과
물질의 갭이 증대될 아틀리에는 파괴된다. 작가가 아트리에에서 탈출할
창조력의 무한성을 얻을 있다. 대지미술은 모더니즘이래 미학적 이념들에
기계문명과 테크놀리지를 대자연에 도입, 행위 또는 작업화 과정을 강조, 매스
미디어에 의한 정보화 등의 특성을 동시대 여러 미술과 관련되어져 새로운 미술
형식을 현대미술에 제시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수있다. 이렇게 대지미술은
자연을 재해석하여 사회적으로는 현대문명과 관련 되어져 나타나며 환경적으로
자연을 우선시 하거나 환경문제에 무관심한 경우, 환경보호를 위한 미술이
발달되었고, 대지미술을 형성하기 위한 기계문명이 필요하였으며 장소적인 변화
대지미술에 관련 지음으로써 현대미술의 선구적 위치를 차지한다고
있다. 또한 대지미술이 미니멀 아트의 반발로 일어났지만 미니멀적인 요소를
버릴수 없음을 있다. 작품의 소재나 경향·방법 등이 작가마다 매우
다르다. 사막·산악·해변·설원(雪原) 등의 넓은 땅을 파헤치거나 거기에 선을
새기고 사진에 수록하여 작품으로 삼기도 하고, 잔디 등의 자연물을 그릇에
담거나 직접 화랑에 운반하여 전시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모두 예술의
일시적 성격, 재료 또는 재질로서의 자연의 재인식, 자연환경의 창조적 응용
등을 강조한 수법이다.
대지미술가의 작업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리차드 롱은 사람이 한번도
걷지 않은 길을 반복적으로 걸어다님으로써 길을 내는 것을 작품으로 삼았다.
그런가 하면 데니스 오펜하임은 새로 일군 밭에 갈퀴질을 하여 일종의 문양을
만들어 놓았다. 이외에도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작품들이 존재하는데, 대지미술
공통점 하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품의 형태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갈퀴질을 자욱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나면 차츰 없어질테고, 나선형의
방파제 역시 잡초가 생겼다가 없어지면서 원형을 조금씩 이탈해 것이다.
그런데 미술가들은 이러한 변형 혹은 소멸의 과정조차 작품의 일부로 받아
들인다. 혹은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작품을 사진으로 기록함으로써 사진을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대지미술의 작품들은 이상 회화도 조각도 아닌 미술 작품들이다.
미술과 타예술간의 경계도 모호해졌을 뿐아니라, 미술의 정의마저도 침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최근의 미술이다. 물론 아직도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
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그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미술가들
이라고 없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갈 점은 미술이 영역을 넓혀
감으로써 갖게 되는 중요한 특징 한가지이다. 말하자면 미니멀리즘 이후 등장
하는 새로운 미술들은 비물질성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시각적 대상은 없고 단지 그것에 대한 개념만 존재하는 개념미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공간예술이라기 보다는 시간예술이라 행위미술 또한
물질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대지미술 역시 전통적인 미술 개념으론 수용하기
힘든 새로운 형식이라 있겠다.
모름지기 미술작품이란 일정한 크기와 형체가 있어 수시로 사고 있는
물건으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대지미술의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철거
되거나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미술애호가가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소장할 있는 성격의 것은 못된다. 더욱이 미술관에
전시될 있는 작품도 아니다.
그러므로 최근 미술의 비물질적 성향은 종래의 미술제도-미술관
작품 매매의 관습 - 하나의 공격행위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경향, 미술의 탈미술화는 최근으로 올수록 더욱 심화되고
다양한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대표적인 작가로 불가리아 태생의 미국인인 크리스토와 로버트 스밋슨, 마이클
하이저, 영국 작가인 리차드 롱과 네덜란드 출신의 데니스 오펜하임 등이 있다.

크리스토와 잔느 끌로드(Christo and Jeanne-Claude)


불가리아 태생의 미국인인 크리스토는 그의 '포장' 작업(앙컵㈔망?으로
유명한 대지미술가이다. 그는 초기의 소규모 포장작업에서 나중에는 빌딩
전체 뿐만이 아니라 트인 자연의 중요 부분까지도 둘러싸는 거대한 환경
작업에로 관심을 돌렸다. 그의 대표작이라 있는 <달리는 울타리>
1972
년에서 76 사이에 캘리포니아 해안지방인 마린과 소노마 군에서
제작한 것으로 언덕과 계곡, 들판을 거쳐 마침내 바닷가에 이르는 높이5.5m
39.4Km 길이의 인공 <울타리> 이다. 이러한 광대한 작업을 위해 그는
3
년간의 법정 투쟁과 수많은 인원의 충용, 제작에 필요한 경비(320 달러)
마련키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했다. 결국 < 달리는 울타리> 완성이
되었을 그것은 마치 중국의 만리장성과도 흡사한 " 물결" 이루었으며
애초에 회의적인 관찰자들에게도 매혹적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제공해
주었다. ( 작품은 설치 2 철거되었는데 설치기간 동안에 어떠한
환경적 폐혜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 -
재료조달자, 인부들, 청부업자들, 사진작가들, 안내인등- 에게 9백만 달러경
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작업을 하지 않는 시기에 이들 부부가 주로 하는 일은 주정부나 시의회 혹은
건물이나 땅주인들을 섭외하여 그들의 작업을 있도록 허락
받는 것이다. 작업에 필요한 제작비는 주로 작품을 기획하면서 그린
드로잉이나 작품을 찍은 사진을 팔아서 충당한다.

* 둘러싸기(Surrounded Islands), 1980-83*

크리스토와 쟌느 끌로드(Christo and Jeanne-Claude) 부부는 포장된
사물을 전시하는 행위에 내재된 초현실주의적 신비감을 대지미술의 영역에
끌어들였다. 작품은 크리스토와 쟌느 끌로드의 작품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비스케인 베이에 있는
군도들을 핑크빛 천으로 둘러 작품을 보면 기발한 착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달리는 , 1976*

*계곡커튼, 1970~72*

로버트 스밋슨(Robert Smithson: 1938~1973)


대지미술로 알려진 미국의 예술가, 비평가로 뉴저지. 1968 뉴욕
Dwan Gallery
에서 <대지미술>이라는 제목으로 그룹전이 열렸는데
여기에 참가한 예술가들은 대지를 파고 채집하고 검증하여 어떤 행위를
대지에 남기는 예술을 모색하였다. 스미드슨은 이러한 대지미술의 대표적
작가 사람이며, 동시에 이론가이자 비평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의 대지미술은 작품의 성격상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었고
이러한 작품의 기록으로서 사진은 개념사진으로 일컬어지면서 동시대의
급진적인 사진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자신도 사진가로서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1973 여름에 제작중인 대지미술을 촬영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저공비행을 하던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인 <나선형의 방파제Spiral Jetty> 1970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의 그레이트솔트호에 설치한 것으로, 나선넓이 4.6m, 길이
457m
규모이다.

*Spiral Jetty, 1970*

지구(earth) 자신의 캔버스인냥 스밋슨은 지구상에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놓고 있다.

마이클 하이저(Micheal Heizer: 1944~ )

*이동하였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인 덩어리, 1969*

*진열된, 제자리에 놓여진 덩어리, 1969*

이안 해밀턴 필래이

* 현재의 질서는 미래의 무질서이다, 1983*

*바람에 부풀린 모습*

월터 마리아 (Walter De Maria : 1935~ )

*번개치는 들판, 1971~1977*

*번개치는 평원, 1974~1977*

리차드 (1945~)

영국 브리스톨(Bristol) 태생.
자연물을 소재로, 그리고 작품 재료로 사용하면서 리차드 롱의 작가적 신념은
언제나 자연 풍경과 하나의 방향, 역동적, 물리적 연관성을 가진다. 자연을 작품의
주제 재료로서 사용하는 것은 그의 작업이 언제나 자연과 직접적이고 동적이며
실재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의 작업 방식은 크게 가지 형태로
구현되는데, 걷기, 설치하기, 텍스트 제작, 사진 찍기, 드로잉하기 등이다.
리차드 롱은 걷기, 도보를 하나의 조각 작업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기존 미술에 대한 뿌리 깊은 개념에 대한 반박이었고, 뒤샹의 레디 메이드
오브제 개념과는 상반된 의미의 변혁이었다. 이는 뒤생이 오브제의 개념을 다시
세우면서 굳어진 모더니즘 개념과는 달리 조각을 비물질적인 영역으로 포함시키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또한 아이디어의 물질적 구현으로 대변되는 개념미술류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는 구별되는, 물질적 구현 자체를 부차적으로 고려하게
전혀 다른 혁신의 미술개념이다. , 걷기가 발생하지 않으면 작품도 존재하지
않으나 걷기 자체는 물리적인 영속성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평소에 레이크 디스트릭트(영국 북서부의 아름다운 호수와 산악으로 이루어진
국립공원) 산책하는 리차드 롱은 주로 시골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대지를
예술로 변형시키는데 있어서 자신의 주된 방법이자 고도로 경제적인 "도보"라는
수단을 발견해냈다. 도보를 통해 이동하면서, 위에 지표를 세우고, 꽃을 따고,
돌맹이나 나무조각 등을 재배열하는 등의 행위는 시간과 운동, 장소에 관한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된다. 도보는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활동
이며 인류가 지금까지 성장해 있었던 운동 양식이다. 나아가 리차드에게
도보는 문화적인 다양성의 표현이자, 다른 문화들끼리의 연결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이는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보다 깊은 차원의
이해이며 자신의 고유 위치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만들어 낸다.

*Dry Ground Sleeping Place, an eight day mountain walk in Sobaeksan, Korea, 1993*

*Boot Circle, a seven day walk on the East Bank of the Rio Grande New Mexico, 1995*

*Warm Ground Sleeping Place, a twelve day walk in the High Sierra, California, 1995*

*Deer Circle, a fifteen day walk in three sisters wilderness Organ, 2001*

*Knocked Over In The Wind Walk, a six day walk in Terridon and Beinn Eighe,

Scotland, 2003*

** Seoul 전시회 작품들: 2004. 5/4~6/13, 국제 갤러리에서 **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리차드 롱의 전시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을(자연을 작품의
주제 재료로서 사용하는 것은 그의 작업이 언제나 자연과 직접적이고 동적
이며 실재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의 작업 방식은 크게
가지 형태로 구현되는데, 걷기, 설치하기, 텍스트 제작, 사진 찍기, 드로잉하기
등이다) 보여주는 작품을 제시한다.
특히 한국에서 찾아낸 자연석을 재료로 하여 전시장에 나열함으로써 그의
다른 문화 경험에 대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Untitled, River Avon mud, White China clay and Korean clay on wood, 2004*

*Spring Spiral, Korean clay on wall, 2004*

*Untitled, White China clay and Korean clay on wood, 2004*

*Untitled, White China clay on wood, 2004*

*Untitled, River Avon mud on handmade Korean paper, 2004*

*Untitled, River Avon mud and Korean clay on handmade Korean paper, 2004*

*Kyungbok Circle, Grey Korean Granite, 2004*

*Monkey Spiral, Antique Korean roof tiles, 255, 2004*

*Seastone Spiral, White Korean granite, 279

stones, 2004*

*Bukhan San Sprial, Black Korean granite cobble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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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85 미니멀리즘 모리스 루이스, 바넷 뉴먼, 네네스 놀런드

   

서양 미술사 - 85(미니멀 아트: 모리스 루이스, 바넷 뉴먼, 네네스 놀런드)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 1912~1962)


본명 모리스 번스타인(Morris Bernstein)이며 볼티모어 출생.
메릴랜드전문대학에서 공부한 놀란드와 워싱턴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추상표현주의로부터 출발하였으나, 1950년대에 색채표현의 가능성을
개척하여 J.폴록에 이어 주목받는 화가가 되었다.
베일의 이미지, 꽃의 이미지, 스트라이프로 불리는 작풍(作風) 전개하였다.
루이스는 추상표현주의 이후 1950년대 후반의 미국 색면추상회화의 전개에
선두적인 역할을 하였다. 폴록의 영향이 짙은 추상표현주의적인 작업을 하던
루이스는 1953 평론가 그린버그의 권유로 프랑켄탈러(Helen Franken-
thaler)
작업실을 방문, 그녀의 작품 <바다와 (Mountains and Sea)>
접하고 작업의 전기를 맞는다. 수채화처럼 엷게 채색된 프랑켄탈러의 유화에서
물감의 물리적 두께가 제거된 그림의 평면적인 성질을 발견한 루이스는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천에 묽은 아크릴 물감을 흘려 물들이는 염색기법을 이용하여
베일(Veil, 1954, 1957-60), 펼침(Unfurled, 1960-61), 줄무늬(Stripe,
1961-62)
연작 수백점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델타 감마, 1960*

루이스의 흘러 내리는 물감은 유동적인 색채의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여
준다고 있다. 그린버그는 루이스를 포함하여 부드럽고 밝은 색채의
자율성을 커다란 회화적 평면위에 드러내었던 일련의 화가들의 작품을 "후기
회화적 추상(post-painterly abstraction)"이라고 명명하였다.
회화적 추상 이후에 나타난 추상미술이란 뜻으로, 여기서 "회화적 추상"이란
잭슨 폴락, 윌렘 쿠닝 등의 추상표현주의를 일컫는 것이다.
후기회화적 추상은 표현적이고 역동적인 회화적 추상과 달리 작가의 냉정한
태도를 특징으로 한다.

*new, 1961*

150 점의 펼침 연작의 하나로, 제목은 작가가 생전에 다른 점의
펼침 작품에 붙인 그리이스식 알파벳 제목을 선례로 그의 사후에 붙여진
제목이다. 펼침 연작을 위해 루이스는 무게가 가볍고 올이 성긴 캔버스를
택하고, 공장생산된 물감을 조색과정 없이 그대로 캔버스에 흘려 천에
스며들게 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그의 그림은 캔버스 표면과 물감이 하나로
혼융되어 평면화의 정점에 도달하였다. 대칭을 이루며 사선으로 흘러 내려
가고 있는 다양한 색깔의 물감띠들은 흐르는 물감의 분방한 움직임 속에
물감띠 간의 평행을 유지하는 계산된 긴장감을 전달하고 있다.
또한 작품은 전통적으로 회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던 가장자리
부분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고 중앙을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중심과
가장자리의 가치를 전도시키고 있다.

*이입(moving in), 1961*

물감과 캔버스의 완전한 하나됨은 회화에서의 환영적 요소를 완전히 제거해
준다. 추상표현주의에는 여전히 어떤 상징적 형상이 남아있고 그러므로
그것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는 폴락의 그림을 화가의 행위의 장으로
파악하고 캔버스위에 흩뿌려진 물감덩어리를 행위의 흔적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루이스의 작품에서는 추상표현주의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이원성,
물체로서의 그림과 형상으로서의 그림이 완전히 통합되고 있다.
말하자면 루이스에게 있어선 그림이 형상이다. 그의 작품에선 형상과 바탕의
구분이 없으며따라서 공간적 환영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Horizontal I*

   

   

바네트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


미국 뉴욕 출생. 아트 스튜던츠 리그, 뉴욕시립대학교, 코넬대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내적인 구성을 배제한 단순한 색면(色面) 색대(色帶) 의한
대화면은, 직절적(直截的) 자기 표현을 억제하고 확장하는 고요한 공간을
연출시킨다. 추상표현주의와 관계하는 한편 1960년대의 새로운 추상
미니멀 아트 운동의 선구자이다.

*Whos Afraid of Red*

*Vir heroie subl.*

*Dionysius 1949">

*The word II*

*Canto XII 1964*

*Yellow Painting*

*Profile of light*

*Canto XV 1964*

*Twelfth Station - 1965*

케네드 놀런드(Kenneth Noland: 1924~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태생, 블랙마운틴 대학에서 요셉 앨버스, 쿠닝
등의 지도를 받은 파리로 가서 자킨에게 사사하였다.
귀국 모리스 루이스 등과 사귀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로캔버스(천에 밑칠이 되어있지 않은 캔버스) 그림물감을
永欲? 그림을 발표하였다.
1961
이후는 스트라이프에 의한 동심원이나 산형을 모티프로 하거나
넓은 색면에 수평의 스트라이프를 병렬하는 화면을 유사 또는 대비되는
색상으로 그렸다. 최근에는 표현주의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Virginia Site - 1959*

*Untitled - 1959*

*Corn Sweet - 1961*

*Blue Extend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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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84 미니멀리즘: 도널드 저드, 프랭크 스텔라

   

서양 미술사 - 84(미니멀 아트: 저드, 스텔라)

   


35.
미니멀 아트(Minimal Art: 1960년대 후반)


"ABC
아트", "환원적 예술" 이라고도 불리는 미니멀 아트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태동하였다. 1965 영국의 철학자 R. 월하임이 처음으로 20세기의
특수한 예술적 동향을 논한 논문의 제목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논문에서는 M. 뒤샹의 기제품의 오브제, A. 라인하르트에의한 모노크롬의 회화
등을 문제삼아, 의식적으로 이의 미적가치를 저감시킨 작품군을 지칭하여
미니멀 아트라 하였다. 그러나 1968 7 뉴욕근대미술관이 개최한
'
실제의 예술전'에서는 전람회에서 주목받은 작품, D. 저드, F. 스텔라,
M.
루이스, K. 안드레, D. 플래빈 등의 작품을 총칭하는 말로 정착되었다.
이것은 최소한의 조형수단으로 제작했던 회화나 조각을 지칭하는 것이다.
당시 미국 화단의 지배적인 세력이었던 추상표현주의는 초자아(超自我)
표현하여 관객에게 호소하는 입장을 취했고, 아트는 문명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성격을 띠었던데 반해 미니멀 아트는 엄격하고 비개성적이며
소극적인 화면을 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 미니멀아트는 추상표현주의의 과장된 감정과 아트의 천박함에 반발
해서 일어난 것이라 있다.

미국태생의 조각가이자 미니멀 아트의 창시자였던 도널드 저드(Donale
Judd)
미니멀 아트를 가리켜 '사람들이 미술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는 요소들을 제거한 '이라고 정의하였다.
미니멀 아티스트들에게 최소화된 형태는 최대한의 무아지경을 암시하는 것으로
세부묘사, 영상, 서술적 요소 같은 산만한 효과들을 제거함으로써 그들은 관객
에게 사물의 정수(精髓)에만 몰두하여 관심을 쏟을 것을 권고한다.
최소한의 것으로 축소된 예술의 형태를 가지면서도 안에 내제된 의미는
'
예술을 위한 예술' 순수주의의 표명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며 이들 작품의
공통된 조형적 특징은 단순성, 명료성, 반복성, 사물성으로 분석되어진다.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유동적이고 풍성한 자연에 대비되는 특수한 인공물로서
제시되고 있다. 모리스는 합판으로 사다리꼴을 만들어 회색으로 채색한
작품으로 자신의 순수한 존재만을 정보로써 전달하는 작품을 발표하였고
도날드 쥬드는 차가운 느낌을 주는 사각형을 늘어 놓아 절대적인 객관성을
모색하였다. 이렇듯 연속적인 생산, 공장에서 제작된 자제, 기본적 기하학
적인 형태의 사용하는 등은 미니멀 아트를 특징짓는 대표적 성격이다.
이것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원천적인 것에 관심과 본질을 추구하여 순수성을
가짐으로서 대상의 본연을 환원하는 방법으로 단일한 색채, 단순한 형태,
오브제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미니멀아트는 거대한 실내 또는 실외 조각에서부터 분리된 형태 요소들을
배열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또한 미니멀아트는 오늘날까지도 회화 조각 아니라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 매우 실생활에 근접해 있어 너무도 쉽게 영향을 찾아볼 있다.
실생활 곳곳에 퍼져 있는 미니멀아트의 영향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같다.

도널드 저드 (Donald Judd:1928~1994)

미국 화가로 1960년대 초부터 3차원 오브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회화와 조각의 개념을 넘나드는 '특수한 오브제'라는 개념을 만들고
오브제를 캔버스의 표면과 형태, 색채의 본질적인 단위로 간주하였다.
채색된 나무와 금속의 단순한 입체물, 상자들을 제작했는데, 상자들은
가로 또는 세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열된 형태를 띠었다.
도널드 저드도 스텔라처럼 미술의 배후에 있는 '관계적' 개념을 거부하고
대신 '비관계적' 작품, 전체로서의 의미를 주장했다. 그러나 조각의
관점에서 어떤 작품의 전체를 한눈에 지각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저드는 '전체' 의미가 부담스러운 개념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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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상태에 있는 조각은 시간을 초월하여 지각할 있다.
따라서 관람자는 다양한 '시점' 모여 하나의 완벽한 이미지가 형성될 때까지
모든 방향에서 작품을 고려해야(느껴야)한다. 이러한 애매함을 깨달은 저드는
형태와 공간의 지각을 이용하였으며, 그에 따라 예상과 실제 경험은 모순을
이루게 되었다.

회화의 일루져니즘과 조각의 상징성을 타파하기 위해 재료의 즉물적인
사물성(Objecthood) 강조한 저드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작가 개인의 표현성과 닫힌 물체가 촉발할 있는 조각 내부의 신비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내부가 공개된 상자들을 공장에 주문하여 사용하였다.
부분적으로 교체될 있는 동일한 단위들을 반복적으로 배열한 것은 그들
사이에 관계적이고 계급적인 구성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함이다.
입체작품으로서는 드물게 주황색의 채색이 가하여진 것은 작품이 회화와
조각 사이의 중간형태로 존재하는 '특수한 사물'이라는 작가의 주장을 환기
시키는 부분이다.

*무제, 1968*

모더니즘 회화의 이념적 목표인 평면성과 경계에 관한 논의로부터 출발
하여 회화나 조각의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특수한 사물(Specific
Object)'
제안한 져드의 초기작품. 감상자의 시선이 작품의 중심부나
내재적인 형상에 머무르는 것을 피하고 오브제 외부공간에 산발되게 하기
위해 작품의 요소들을 연속적으로 제시한 저드의 작품에서 오브제들 사이의
공간은 오브제들 못지 않는 중요성을 갖는다. 자연의 증식 원리를 담고
있는 중세수학 Fibonacci 수열(1,2,3,5,8,13...) 응용하여 오브제와
외부 공간이 상호 침투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제, 1975*

장방형의 조각들이 벽면에 고정되어 있다. 가공되지 않은 금속 자체의 질감이
남아있고, 동일한 단위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하고 있다.
동일한 단위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부분들은 상호교환이 가능하며
단위들의 무한한 연장 또한 가능하다. 이러한 작품에서는 전체를 이루는
부분보다는 전체 - 동일한 단위가 반복되는 - 주는 효과가 중요하다고
있다. 어떠한 상징성이나 표현성도 배제된 조각물들의 단순한 반복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지극히 중립적이고 냉정한 태도가 미니멀리즘의
특성이다.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s: 1936~)


1960
년대 미니멀 아트(Minimal Art) 대표주자였으며, 실험적 회화를
선보인 미국 화가이다. 1936 5 12 미국 매사추세츠주 몰덴에서
태어났다.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배웠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역사를
배웠다. 그의 직업은 페인트공이었으며 처음에는 추상표현주의 그림을
그렸다. 1960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83
하버드 대학교의 찰스 노턴 교수가 되었다. 1958 뉴욕에 정착
하면서부터 크고 간결한 디자인을 특징으로 하는, 《톰린슨 공원》(1959)
같은 새로운 회화를 선보였다.
그것은 형체와 색채의 관계에 의한 조형을 배척하고, 연역적 방법에서 화면
윤곽을 화면 내부에 되풀이하는 '검정 줄무늬 그림'이었다.
이는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한 것으로, 대담함 때문에 그는 단시간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0년대 전반에는 줄무늬와 캔버스의 형태 또는 색채의 특성을
탐구하여 벽에 걸면 화면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조각과 같은 조형성을 띠는
작품을 그렸다.
1966
불규칙한 다각형(irregular polygon) 시리즈에서는 무채색의 그림
에서 벗어나 색면의 대비를 시도하였다. 곧이어 발표된 각도기(protractor)
시리즈와 서스캐처원(Saskatchewan) 시리즈는 그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장식적이며 화려한 작품이다.
1970
년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이후 발표한 폴란드 마을
(Polish village)
시리즈는 캔버스와 물감에서 벗어나 펠트·골판지·합판·섬유판
등을 사용하여 구성주의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특이한 (exotic birds)
시리즈는 회화를 일종의 건축(build)으로 보는 평면적 회화가 아닌 공간적
회화를 구사하였다. 이때부터 화려한 색채가 바탕이 되는 화면 구성이 주가
되어 미니멀 아트 경향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인도의 (Indian birds) 시리즈에서는 번쩍이는 표면과 야한 색채 그리고
철망(grille) 사용하는 회화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입체 작품을
만들었다. 1980년대의 경주로(circuits) 시리즈·파편(shards) 시리즈 등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회화적 문제를 다룬 연작이다. 1990년대 그는 독립된
입체 작품을 선보였다. 《메두사의 뗏목》 《윗슨과 상어》와 같이 자신의
회화 작품의 이름을 본따 독립된 입체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는 추상 조각에서
결여된 회화적인 드라마와 박진감을 접목시킨 것이다.
주로 시리즈 작품을 만들었던 그는 마티스처럼 가지 소재나 주제를 계속해서
변형하는 끊임없는 실험을 계속했다. 일생 동안 회화의 특성에 대해 고민한
화가로서 조형에 가까운 작품 조차도 회화로 규정하였다.
작품으로 Abra Variation I(1969), Silverstone(1981),
September 7-November 24(1996) 등이 있다.

*West Broadway -1958*

*Sinjirli variations squared*

*Seward Park - 1958*

*기저 6마일(Six mile bottom), 1960*

반복되는 줄무늬가 어느지점에서 멈추느냐에 따라 캔버스의 크기가 결정된다.
이처럼 기존의 장방형의 캔버스를 탈피하여 줄무늬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스텔라의 작품을 사람들은 "성형 캔버스(shaped cavas)"라고 불렀다.
스텔라 이후 캔버스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설정하는 성형캔버스 작가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회화를 시적인 상징성을 띠고 있는 하나의
장면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물체로서 보는 냉정한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
있겠다. 말하자면 캔버스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Hyena Stomp*

*Enamel on Fabricated Aluminium, 1987*

프랭크 스텔라의 전반적인 작품성향의 일관된 흐름은 캔버스의 형태 또는
색채의 특성을 탐구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면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작품을 '입체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콜라쥬 작업과 다양한 색채 실험을 시도하고 있으며, 작가 자신의 정신적인
이상향이라 있는 상상속의 공간을 작품화하고 있다.

*아마벨(꽃이 피는 구조물), 1997*

작품은 서울 삼성동 테헤란로 포스코 빌딩앞에 위풍당당하게 서있었던
스텔라의 9m 높이의 180만달러짜리 작품이다.
또한 포스코 빌딩 안에는 프랭크 스텔라의 가로 10m짜리 화려한 회화를 비롯
윤명로·김종학·김원숙 그리고 뉴욕 초현실주의의 대표주자였던 로베르토 마타의
대형 실크스크린도 걸려 있으며, 백남준의 "TV 깔때기" "TV 나무" 실내
조형물로 설치되어 있다. 포스코 건물 광장 한옆에 세워졌던 조각작품의
원래 이름은 "꽃이 피는 구조물"이다. 어쨌거나 작품에 걸맞는 제목임에
틀림없다. 약간만 멀리서 올려다 보거나 내려다 봐도 전체적으로는
송이가 피어나는 형상이다. 그런데 〈아마벨〉이라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느냐 하면, 철물 작품이 완성될 당시 작가 프랭크 스텔라
친구의 딸이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즉시 소녀의 이름
'
아마벨' 부제로 달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
아마벨' 평면성을 포기한 그의 후기 입체조각으로서 미니멀리즘 숭배자들을
실망시키긴 했지만 "추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예측불가능성이라는
신과학적 철학을 수용했다"(성완경 인하대교수) 평을 받는다.
'
아마벨' 포스코센타의 건축조형과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을 통해서 20세기
인간 문명의 방향성에 대한 비판적 발의를 담은 작품이다. 수백개의 스테인레스
스틸 피스로 제작한 9미터 입방체 크기의 거대한 조각으로 무게가 30톤에
달한다. 작은 부재를 공수해와 현장에서 짜맞춘 조각품, 미술에서는 이같은
작업의 조각품을 두고 Site Specific Arts라고 칭한다.
통상의 공중조각과 같은 기존의 컨텍스트를 전제로 환경조각에서 자주
있는 태도이다. '아마벨' 포스코센타의 건축 조형과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을
통해서 20세기 인간 문명의 방향성에 대한 비판적 발의를 담은 작품으로
국내에서 만날 있는 환경조각 가운데 손꼽히는 수작이다.

그러나 아마벨은 기구한 운명으로 졸지에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작품 자체에 대한 비평적 논의 때문이 아니라 단지 '아마벨'
'
소유자' 바뀌었기 때문이다.
'
아마벨' 들여온 김만제 전포철회장이 '아마벨' 구입과 관련해 비자금 의혹을
받았다. 또한 흉물이라는 지탄을 받아 철거 논란에휩싸였던 것이다.
드디어 '공중의 미의식과 괴리된 흉물'이라는 표면상의 이유로 포철이 국립현대
미술관에 무상 기증했다.

또한 재질이 스텐인리스 스틸이면 썩질 말아야 하는데 어느 나라 스텐인리스
스틸을 썼는지 형편낙인 지경으로 썩어 들어가 원제목처럼 '피어오르는 '
아니라 이젠 거의 썩어 문드러지는 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부식은 부식이되 청동의 부식처럼 고색 창연한 부식이 아니라 영등포 역전
노숙자 모습처럼 남루하고 옹색한 모습으로 퇴색되어 가고 있다.
보수를 하려해도 원래의 조형미가 마구 뒤얽혀 있어 제모습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한다. 대가의 작품이 고철덩어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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