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23 절충주의: 윈터할터, 쿠튀르, 카바넬

   

9. 절충주의(折衷主義: Eclecticism Art)

미술 양식에서의 절충주의(折衷主義) 독자적인 양식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여러 양식 중에 장점을 취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19세기 중엽 이후에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타협을
도모한 건축상의 양식과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J.A.D. 앵그르의 고전
주의와 F.V.E.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의 조정을 절충한 회화양식 등을
있다.

윈터할터(Franz Winterhalter: 1805~1873, 독일 화가)

   

*Leopold I, King of the Belgians,1840*

*Queen Marie Amelie,1842*

*Queen Victoria,1842*

*Princess Charlotte of Belgium,1842*

*Prince Albert,1842*

*Francoise Caroline Gonzague, Princesse de Joinville, 1844*

*Queen Victoria and Prince Albert with the Family of King Louis Philippe at the

Chateau D'Eu,1845*

*The First of May 1851, 1851*

*Florinda,1852*

*Elzbieta Branicka, Countess Krasinka and her Children,1853*

*Katarzyna Branicka, Countess Potocka,1854*

*The Empress Eugenie, 1854*

*The Empress Eugenie Surrounded by her Ladies in Waiting,1855*

*Roza Potocka,1856*

*Edouard Andre, 1857*

*The Empress Maria Alexandrovna of Russia,1857*

*Princess Elizabeth Esperovna Belosselsky-Belozersky, Princess Troubetskoi,1859*

*Countess Varvara Alekseyevna Musina-Pushkina*

*Princess Alice, 1861*

*Adelina Patti, 1863*

*림스키 코르샤코프 부인, 1846*

*Alexandra, Princess of Wales,1864*

*The Maharajah Duleep Singh,1854*

*Spring Der Frubling*

*A Swiss Girl from Interlaken*

*Zofia Potocka, Countess Zamoyska,1870*

토마 쿠튀르(Thomas Couture: 1815~1879)

토마 쿠튀르(Thomas Couture:1815~1879) 프랑스 상리에서 출생
하였으며, 아카데미 미술의 테두리 안에서 절충주의 양식을 구사화가로
손꼽힌다. 그는 고대 그리이스의 고전주의와 플랑드르 화파의 미술 기법
그리고 관능적인 분위기까지 모호하게 결합시킨 역사화를 선보였다.
1847
년의 살롱전에 출품되어 논란을 일으킨《퇴폐기의 로마인들, The
Romans of the Decadence
》이라는 작품의 작가로 알려져있다.
주로 역사적 장면이나 초상화를 그렸으며, 앙트완느 그로(Antoine-
Jean Baron de Gros)
들라로슈(Paul Delaroche) 제자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18세기의 부드러운 색채감과 19세기 고전주의 양식을
결합하여, 부분적으로는 결점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어색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과장된 작품의 고전적인 예로 언급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작품은 개념적으로나 기법면에서
활기에 넘치는 측면도 있다. 화가로서보다 미술교육가로서 명성을 얻었는데
제자로는 마네(Edouard Manet), 퓌비 샤반(Pierre Cecile Puvis
de Chavannes),
팡탱 라투르(Henri Fantin-Latour) 등이 있으며
이들은 그에게서 뚜렷한 색조의 대비에 대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퇴폐기의 로마인들, 토마 쿠튀르,1847*

작품의 내용은 타락한 로마인들이 환락의 이후 맞은 아침 장면을
묘사하였다. 쿠튀르는 로마의 시인 주브날(Juvenal) 풍자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구상하였는데, 장면 묘사의 내용과 형식은 파울로 베로네제의
<
가나의 향연>에서 영향을 받았다. 고전주의와 에로티시즘의 분위기를
모호하게 결합시킨 작품에서 당시 브르주아들의 취향의 단면을 읽을
있다. 1847 작품이 살롱에 출품되었을 정부는 작품을 구입
하였는데, 정부는 작품이 은유하는 바를 읽지 못한 것이다.
공화주의자였던 쿠튀르는 작품을 통해서 루이 필립 왕정의 실정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비평가 데오필 토레도 그림이 시대의 타락한 정치와 도덕에
대한 비판이라고 평한 있다.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1823~1889)

알렉상드르 카바넬은 프랑스 몽펠리에 출생했으며, 미술학교에서 F.피코에게
사사하였다. 1845 로마상을 받고 5년간 이탈리아에 유학하였으며, 귀국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A. 다비드와 J.A. 앵그르의 고전주의적 작풍으로
역사화, 풍속화, 초상화로 명성을 떨쳐 2제정시대 화단의 총아가 되고
관료화가로서 오랫동안 아카데미 원장의 영예를 누렸다.

*비너스의 탄생,1863*

작품은 1863 살롱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1863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살롱에서
배제된 반면, 작품은 살롱에서 찬사의 대상이 되었다.
작품에 매료된 나폴레옹 3세는 그림을 정부가 구입 소장하도록 하였다.
물결이 잔잔히 이는 바닷가에서 이제 탄생한 비너스가 손을 위로 올려
여체의 곡선미를 강조하고 있다. 뽀얗고 매끈한 여체는 로코코풍으로 이상화
되었다. 옆으로 누운 자세와 여체가 드러내는 유연한 곡선에서 앵그르의 영향을
감지 있다. 여성의 육체를 욕망의 대상으로써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은 2 제정시대에 유행하였던 전형적인 여성 누드화이다.
한편 나폴레옹 3세를 비롯하여 많은 동시대인들이 카바넬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였으나, 작가 에밀 졸라는 비너스를 분홍빛과 하얀색의 과자로
빚어진 맛좋은 고급 매춘부라고 비난하였다.
근대 미술의 태동기에 화가들의 새로운 움직임을 격려하였던 에밀 졸라에게
이러한 비현실적인 우미함은 어떤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

*The Death of Francesca da Rimini and Paolo Malatesta,1870, Cab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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