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06매너리즘 파르미지아노, 틴토레토

   

(3) 후기 르네상스 (Mannerism)

16
세기말 대가들의 소묘실력은 정점에 달해 있었고 이상의 발전에 대한
의문으로 반고전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한다.
완벽한 기법의 숙달로 16세기말 사람들은 미술의 발전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정신적 혼란속에 당시의 젊은 미술가들은
르네상스의 이상인 "조화와 균형을 거부하고 반고전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안렌즈로 바라보듯이 목을 길게하거나 하여 신체의 일부를 과장하여
신기하고 부자연스러운 효과를 기도했는데, 16세기 초의 이러한 경향의 미술을
매너리즘이라고 한다. 후기 르네상스는 매너리즘으로 불리며 예술적 기교에
치우친 타성적 예술이다. 전성기 르네상스 이후의 경향들을 일러 흔히 평가
절하되어 경향이기도 하다. 인위적이고 기교적인 성격이 강하고 형식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대의 거장들의 기법을 모방했다고 간주되어 창조성에서 의심을 받았다.
전반적인 그림들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신비감, 몽상적인 분위기, 기괴한 배경
과장된 인체비례에서 시대정신의 면의 표출로 보기도 한다.
특히 파르미지아노(1503-1540), 틴토레토(1518-1594), 코렛지오(1489-1534)
그레코등이 대표적인 매너리즘 작가로 꼽히고 있다.

이미 티치아노(베네치아 화파) 이후 부터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하던 것이
틴토레토에 이르러 매너리즘의 획을 긋는다.
틴토레토는 충격적이고 극적인 그림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한편 매너리즘의 1세대 화가로 꼽히는 파르미지아니노의 유미주의도 이와
상통한다고 본다. 하지만 매너리즘의 기법을 가장 깊이있게 밀고나간 대가는
그리스 출신의 그레코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혹평을 받던중 스페인으로 건너와 인정을 받게 되는데
그레코의 작품들은 이미 바로크적인 역동성을 배태하고 있지만 지극히
정신적으로 흘러서 신비감과 모호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회화 세계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양식적 특징으로는 인체의 장신화, 차갑고 선명한 색조, 표면처리의
매끈함, 원근법의 과장, 비논리적인 공간배치 대가 그림의 일부 차용 등을
있다. 반면에 긍정적인 측면을 수도 있다. 이전 르네상스 양식의
이성적 접근은 미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며, 새롭고
색다른 감성적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 매너리즘은 긍정적이다.
이러한 점은 이후 바로크 미술의 계기가 된다.

Parmigianino(1503~1540)

파르미지아노는 일반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다.
본명이 지롤라모 프란체스코 마리아 마촐라(Girolamo Francesco
Maria Mazzola)
이다. 1503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에서 태어나 37세에
요절한 화가로 대표적인 매너리스트 화가다.
코레조에게 사사하여 그의 후계자가 되었다. 1523 로마로 가서 7년간
체재하며 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았다.
1530
볼로냐에서 샤를 칸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1531 파르마로 돌아와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의 성모화는 목이 길어서 ' 목의 성모'라고
일컬어지는데, 이것은 마니에리즘(manirisme:기교주의) 특유의 포름으로
코레조풍의 섬세한 명암법을 살리고 빛의 효과를 구사하여 우아하고 세련된
화풍을 이룩하였다.

*Self-portrait in a Convex Mirror.1524*

*Rest on the Flight to Egypt,1524*

*Cupid,1523-24*

*The Vision of St Jerome,1527*

*Portrait of a Man,1528-30*

*Madonna and Child with Saints,1530*

*Madonna and Child with St. Jerome (Madonna with the Long Neck),1534-35*

*Pallas Athene,1539*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 1518~1594)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7 티치아노의 제자가 되었다.
로마로 가서 미켈란젤로에게 감화를 받았으며, 화려한 색채와 미켈란젤로의
데생을 이상으로 웅대한 작풍을 이룩하였다.
종교 신화에서 소재를 취한 다수의 작품 외에 베네치아의 역사화, 기타 초상화
등을 많이 그렸다. 그는 베로네세와 함께 베네치아파 대표자의 사람으로
16
세기 후반의 화단에 영향을 끼쳤다.

*The Birth of St. John the Baptist, 1540*

*Adam and Eve, 1550*

*Judith and Holofernes, 1550>

*Vulcanus Takes Mars and Venus Unawares, 1560*

*Women Playing Music*

*은하수의 기원, 1570*

틴토레토가 그린 <은하수의 기원> 제우스와 헤라 여신, 아기 헤라클레스가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그림이다.
이야기는 제우스가 알크 메네라는 여인과 바람을 피우는데서 비롯된다.
제우스가 알크메네와 동침을 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유명한 헤라클레스이다.
제우스가 외도를 애까지 낳은 사실은 제우스의 부인 헤라 여신의 분노를
산다. 미칠 듯이 화가 헤라 여신은 어떻게 해서든 '저주스러운' 헤라클레스를
죽이려 한다. 그러자 알크메네는 가족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아기를 성밖에
내다 버린다. 가여운 아기는 허기와 따가운 햇살에 지쳐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를 이상 두고만 없었던 제우스는버려진 아기를 안고 몰래
천궁으로 올라온다. 우선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일이 급선무였다.
부성애에 사로잡힌 제우스는 앞뒤 가리지 않고 아내 헤라의 처소로 숨어들었다.
마침 헤라 여신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제우스는 헤라가 잠든 틈을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여신의 젖을 물렸다. 아기는 여신의 젖을 있는 힘껏 빨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결코 젖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슴이 심히 불편해진 헤라 여신. 급기야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다급해진 제우스는 강제로 아기를 떼어 놓았다. 그러자 여신의 가슴에서
젖이 하늘로 분수 같이 솟았다고 한다.
하늘에 점점이 박힌 젖은 무수한 별들의 군집, 은하수가 되었다.
은하수가 '젖의 (Milky Way)' 불리게 사연이 여기에 있다.
한편 땅에 떨어진 젖은 백합꽃이 되었다 한다.
그림에서는 백합꽃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원작의 부분이 파손되어
보수 과정에서 잘려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제우스의 부성애가 아름다운
은하수의 탄생을 야기했다는 사실이 코믹하면서도 훈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악명 높은 바람둥이라도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은 여느 아버지
못지 않았다. 헤라 여신은 헤라클레스가 죽을 때까지 그를 갖가지 시련에
빠뜨렸다. 그러나 헤라 여신도 알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어떤 시련도
이길 영웅이라는 것을...
그는 다름 아닌 헤라 여신의 젖을 먹은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1570*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발이 물속에
발이 완전히 잠겨있고 두손을 가슴에 모은 자세가 수태고지에 등장하는
천사를 보는 하다.

*수태고지(Annunciation),1583~1587*

마리아가 있는 건물 안으로 천사가 들어오며 성령인 비둘기가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붉은 색으로 빛의 효과가 뛰어나다.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1570~75*

*Portrait of a Gentleman in a Fur,1550*

*Saint George and the Dragon,1550*

*Man in Armour, 1550*

*Vincenzo Morosini,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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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05전성기르네상스2 라파엘로, 티치아노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1483.~1520)

이탈리아 우르비노 출생의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 천재 예술가의 사람이다.  
처음에는 페루지노의 제자로 있다가 독립하여 1504년에 플로렌스로
가서 마사치오, 레오나르도 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예술을 연구하였다.
그는 인간미의 이상을 추구하며 여러가지 화풍을 연구하고 종합하여 우아한
작품을 확립하였다.  작품은 300 종이나 되며, 또한 건축가로서 베드로
대성당의 조영에 참여하였다.

라파엘로는 부드럽고 순수한 성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그림 [요정 갈라테아](1514 ) 인물의 배치, 구도상의 교묘한
기법 등으로 후세의 찬사를 받고 있다.  말하자면 그림 감상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인물들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현실의 모델을 그린것이 아니
[
라파엘로] 마음에 있는 어떤 이념을 형상화시켰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던진다.  지금까지 자연을 묘사하고 흉내 내려한 르네상스 미술의 세계와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연을 추구하다가 의도적으로
자연을 개선하려는 우를 범했던 르네상스 미술을 극복한 그의 업적은 그의
묘비명에서도 찬사 받았다.  그곳에는 "자연이 그를 두려워 했다." 쓰여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청순한 색채와 감미로운 음악적 리듬이 보이며
격정이나 위대성을 강조하지 않고 부드러운 매력을 나타내려 하였다.
그는 페루지노의 기풍을 익혀 《성모대관》,《그리스도의 책형》
《성모의 결혼》등은 페루지노의 그림이라 착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공간처리나 환상적인 표현에는 그의 스승에게서 없는 신선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후에 그는 바르톨로메오의 장대한 화면 구성과 레오나르도
빈치의 명암법을 배워 페루지노의 화풍을 탈피하여피렌체의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그가 그린 초상화에서는 레오나르도 빈치의 영향을 받았고
성모의 자태나 피라미드형 구도에 있어서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매장》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선의 움직임까지 모방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인의 기법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화면 구성에 있어서의
선의 율동적인 조화라든지 인물태도의 고요함이나 용모의 청순함 등에는
언제나 독자성을 나타내었다.
그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많은 걸작은 19세기 전반까지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아테네 학당,151011*

작품은 율리우스 교황의 스탄자(거처) 그려진 벽화이다.
내부는 거대한 홀로 이루어진 하나의 바실리카(로마의 공회당)처럼 인물
초상화, 브레만테의 건축 기법, 조각, 실내 장식 등을 과학적 원근법을 적용시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꾸며놓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 "아테네 학파"들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그리스
철학자들의 군상을 각자의 성격에 맞는 포즈와 행동으로 뛰어난 상상력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중앙의 거대한 아치를 배경으로 소실점이 가운데로 모이는 입구에서
들어오는 철학자의 모습이 보인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Timaeus)
옆에 끼고 다른 손으로 이데아(Ideal) 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옆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땅을
향해 자연과 생물에 관한 학구적인 몸짓을 하고 있다.  구성에 있어 수평선을
강조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계단에는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반라의 차림으로
누워 있다.  그리고 밑에 책상에 기대어 필기를 하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있으며 바로 뒤에는 잣대를 피타고라스가 무언가 적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화면 오른쪽 구석에는 유클리드가 컴퍼스를 그리면서 학생들
에게 강의를 하고 있으며, 약간 뒤쪽으로 검은 베레모를 라파엘의 자화상이
슬쩍 그려져 있다.

거대한 드라마가 펼쳐져 있는 그림은 개의 수평적 계단 위로 있는
인물들과 아치를 받치는 두꺼운 벽기둥, 그리고 평면적으로 넓게 퍼진 공간
모두 플라톤이 있는 위치로 아치가 순서적으로 후퇴하는 양상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거대한 작품은 주제의 뛰어난 형상화와 조각적 입체감이 균형감 있게
하나로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Madonna and Child,1503*

*Spozalizio (The Engagement of Virgin Mary),1504*

배경의 신전에 라파엘로 서명과 밑의 아치 모서리에 1504 이라는
연기가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으로 손에 들고 있는
마른 나무 가지에서 새싹이 솟아나면 마리아와 결혼 있다.
요셉의 가지에서 새싹이 솟아나 결혼을 하며, 투덜거리며 가지를 꺾어 버리는
구혼자의 모습도 보인다.

*Portrait of a Lady with a Unicorn,1505~6*

레오나르도 빈치의 <모나리자> 유사한 구도이다.  순결을 상징하는
외뿔 송아지를 안은 여인의 어깨에 걸쳐있는 붉은 겉옷과 부분이
어색하다.  < 카테리나> 알려져 있었으나 X 조사 결과 이전 그림이
밝혀짐으로써 복원되었으며 복원시 외뿔송아지가 많이 손상되었다.

*Madonna del Cardellino,1507*

<아름다운 정원사의 성모> 함께 라파엘로가 만든 많은 성모자상 가운데
걸작이다.  피렌체 빈체엔초 나지를 위해 제작했으며 1547 나지가에
소장되었다.  어린 요한이 아기 예수에게 검은 방울새를 바치고 있기 때문에
<
검은 방울새의 성모>라고 불린다.  아기 예수가 잡고 있는 작은 새는 하늘을
뜻한다.

*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 John the Baptist (La Belle Jardinière),1507*

성모화는 가련미의 매력이 넘치는 작품으로 이름이 높다.
지혜의 상징인 책을 성모 마리아와 요한은 꿇어앉아 동경어린 눈길로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요한의 모습을 잡는 동시에 성모의 얼굴로 유도된다.
성모마리아가 들고 있는 책은 <솔로몬 지혜서> 지혜와 지식과 교양이
있음을 나탄낸다.

*The Canigiani Madonna*

*Madonna del Baldacchino,1507-08*

*The Holy Family with a Lamb,1507*

*The Entombment(매장),1507*

작품의 제작 과정은 많은 밑그림과 구상이 필요하였고, 또한 완성된
성과에 대한 논리도 많았다.   작품을 제작할 무렵의 라파엘로의 화풍은
극히 종교적인 명상과 고귀한 정관의 경향이었음에 비하여 그림은 너무나
동적이고 격정적이며, 극적인 세속성까지 표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라파엘로 작품에서 특성이 되고 있는 구도의 통일성과 간결한
일체성은 여기서 찾아볼 없고, 사방으로 분산되는 동세로 복잡한 선을
구성하고 있다.  부드러운 음율적인 선은 여기서 찾아볼 길이 없다.  
그리스도의 사체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 연상시키며, 한편 기절한
성모를 떠받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미켈란젤로의 <聖家族>에서 빌어온
상이라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모르나 지적된
점은 양자의 관계를 시사해 준다.

*Madonna and Child with the Infant St John,1508*

*Madonna and Child (The Ansidei Altarpiece),1505*

*The Fire in the Borgo,1514*

기원 847 보르고 마을에 화재가 일어났을 레오 4세가 십자가에
간절히 기도하자 불이 꺼졌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
교황이 보이는 안쪽 건물은 피에트로 대성당이다.

*The Battle of Ostia,1514-15*

*The Baptism of Constantine,1520-24*

*Aldobrandini Madonna (Garvagh Madonna)*

*Madonna with the Blue Diadem*

*The Triumph of Galatea,1512~14*

로마의 은행가 아고스티노는 라파엘로의 든든한 후원자 사람이다.  
후원자의 별장 파르네제에 그려진 벽화다.
피렌체의 시인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시에서 주제를 따왔는데 못생긴
거인 폴리페모스가 아름다운 바다 요정 갈라테아에게 사랑의 노래를
바치지만 그녀는 그의 노래를 조롱하듯 마리의 돌고래가 끄는 수레를
타고 파도위를 달려가고 다른 바다의 신들과 요정들이 그녀 주위를
몰려드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The Madonna of Foligno*

*Portrait of Julius II*

*Portrait of Baldassare Castiglione,1514~15*

작품은 루이 14세의 컬렉션 목록에 있던 작품으로, 1661 이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의 모델은 귀족의 이상을 담은
『조신(朝臣)』의 저자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이다.  
영웅적인 군인이자 문인이었던 발다사레는 전형적인 르네상스의
귀족이었다.  그는 1528 발간된 『조신』에서 이상적인 미학과 정신의
완전함을 주장했는데, 이는 라파엘의 회화관과 합치되는 것이었다.  
초상화는 사람 사이의 공감과 우정을 시사하는 작품이다.  
한층 완성도가 높아진 라파엘의 초상화는 조금씩 변화의 양상을 띤다.  
작품은 비교적 그의 후기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극명한 명암 대조법은
배제되었으며 고전적인 균형과 절제가 돋보인다.  기품 있는 자태와 더불어
우아한 의상과 모자는 그가 귀족의 신분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살짝 자세는 레오나르도 빈치의 <모나리자> 연상
시킨다.  라파엘은 세밀한 묘사를 과감히 생략한 대신 얼굴 묘사에 있어서
특징적인 부분만을 부각시켰다.  맑은 눈빛, 지긋이 다문 입술 온화하고
위엄있는 모습을 통해 모델의 내면 세계까지 드러내고 있다.  
또한 손을 가지런히 모은 정면을 응시한 모델에게서 화가에 대한
존경심을 엿볼 있다.

*Portrait of Cardinal Bibbiena*

*Portrait of Bindo Altoviti*

*Madonna with the Fish*

*The Sistine Madonna*

*St Cecilia*

*The Holy Family*

*Woman with a Veil (La Donna Velata)*

*Portrait of Jeanne d'Aragon*

*Portrait of a Young Woman (La Fornarina),1518~19*

라파엘로 애인 포르나리나를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에서는 시에나
태생으로 로마 빵집 아가씨였던 마르가리타 루티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매너리즘적 기질이 강하게 나탄난다.  팔찌에 <우르비노의 라파엘로>라는
문자가 새겨져있다.

*The Vision of Ezekiel*

*Pope Leo X with Cardinals Giulio de' Medici and Luigi de' Rossi,1518*

*The Transfiguration,1518~20*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베네치아파 화가다.
티치아노는 일찍이 뛰어난 대가로 인정받았으며 수세기에 걸쳐 그의
명성은 이어져 내려 왔다.  미술이론가 조반니 로마초는 1590년에
그를 '이탈리아의 여러 대가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화가들 가운데
태양같은 존재' 라고 평했다.  오늘날에도 티치아노의 천재성은 전혀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초상화는 인물의 특성을
꿰뚫고 있으며 종교화는 젊은 시절에 즐겨 그린 성모상으로부터
말기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Crucifixion>,<예수의 매장
Entombment>
이르기까지 폭넓은 정서를 보여준다.  한편 신화를
주제로한 그림들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교적인 쾌활함과 자유
분방함을 으낄 있는데, 특히 벌거벗은 비너스(<비너스와 아도니스,
Venus and Adonis>)
다나에(<다나에와 유모 Danae with
Nursemaid>)
표현에서 누구도 능가할 없는 육체의
아름다움과 관능성의 기준을 세웠고 루벤스나 니콜라 푸생 같은
후세의 대가들도 그를 즐겨 모방했다.

*Venus and Adonis,1555*

티치아노의 <비너스와 아도니스> 주제가 매우 비극적이다.
생긴것으로 유명한 아도니스가 개를 몰고 비너스를 떠나가고
있다.  그러자 앉아 있던 비너스가 황급히 몸을 아도니스를
붙잡으려 한다.   멀리 나무 아래 사랑의 화신 큐피드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이는 지금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사랑이 깨어질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깨어짐은 아도니스의 죽음과 함께 온다.
비너스의 손을 뿌리치고 사냥에 나섰던 아도니스는 거대한 혹은
멧돼지에게 희생되었다고 한다.
아도니스는 어머니 미라가 파포스의 왕인 자신의 아버지 시니라스와
근친상간으로 낳은 아들이다.  미라는 행위가 부끄러워 신들에게
기도를 드려 미르라 나무가 되었다.  때가 차서 나무를 가르고
세상에 태어난 아도니스는 태어남도 죽음도 모두 비극의 손길에
맡겨진 전형적인 운명의 희생양이다.
티치아노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매우 화사하고 감각적인 색채로
표현했다.

*전원 음악회,1508*

지오르지오네의 작품인지, 티치아노의 작품인지, 학자들 사이에
작가에 대한 논란이 아직까지도 일고 있는 작품이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작품의 나부(裸婦) 티치아노의 화풍이
남아 있다고 확신, 작품을 티치아노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루브르 미술관 역시 이러한 이유로 작품을 티치아노의 작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림의 특징은 안정된 화면구성을 보이면서
인물과 배경은 서로 관련성을 띠지 않는 개별적인 모습들로 그려졌다.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여인은 동작과는 전혀 다른 것을 생각
하면서 주위 풍경과 고립된 자세로 몸을 약간 앞으로 구부린
있다.   여인은 옆으로 있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가슴을 노출
하고 있지는 않으나, 베네치아 화가들 특유의 풍만한 여체가
아름답다.  르네상스 시대의 선구적인 여성 누드 작품으로서, 훗날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식사> 그릴 참고되기도 하였다.
나부(裸婦)들은 모두 "음악", "", 그리고 "멜로디" 나타내는
알레고리로 사용되었다.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완만한 경사를 보여
주는 언덕이 한쪽에 그려져 있고, 전원에는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이
보인다.  베르길리우스의 한편처럼, 애수 어린 해질녘의 정취가
풍겨나는 작품이다.

*Profane Love (Vanity), 1514-15*

*Flora, 1515*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1515*

*장갑 남자,1520~23*

작품은 루이 14 컬렉션 하나로, 루브르 박물관이 1671년에
구입하였다.  티치아노는 특히 초상화를 그리면서 당대에 이름을
떨쳤는데, 작품과 더불어 일명 <젊은 영국인>이라는 초상화는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림 모델은 신분이 귀족임을
나타내는 고급스런 의상을 걸쳤으며, 오른손에는 반지가, 왼손에는
작품의 제목을 암시하는 장갑이 끼어져 있다.  
부드러운 윤곽선과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라는 명암법이
배합된 음영을 가지고 있는 모델의 모습은 조르조네의 그림을 연상
하게 만든다.  화면 오른쪽을 약간 비껴 응시하고 있는 모델의 진지한
표정은 젊은 청년만이 가지는 약간은 센티멘털하며, 다소 우울한
느낌을 드러낸다.  세밀하게 묘사된 장갑을 보면, 안에 들어 있는
손의 움직임까지 명확하게 드러날 만큼 운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모델이 입은 옷의 질감이나 크기 등은 명암 대조 효과를
극대화시켜 표현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윤곽을 느낄 수가 없다.
얼굴에 나타난 그늘진 표정과 검은 의상, 안에 받쳐입은 고급스런
하얀 셔츠, 그리고 오른손에 끼어진 반지 등을 통해 모델과
티치아노의 거리를 어렴풋이 짐작할 있을 뿐이다.
작품이 완성되고 20 년이 흐른 후에 완성된 <젊은 영국인>
이라는 작품에서는 좀더 사실감이 풍부해지는 양식으로 바뀌는데
작품 사이의 가장 변화라면 "눈빛" 표현이 극도로 정밀하게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젊은 영국인> 비교하여 , 모델의 내면
세계를 섬세하게 포착하였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Bacchus and Ariadne, 1523-24*

*매장,1525*

작품은 만토바의 곤자가의 의뢰로 그려졌으며, 티치아노의 회화
작품 가장 뛰어난 작품 하나로 손꼽힌다.  
작품의 소재는 라파엘의 <그리스도의 매장>에서 가져온 듯하다.
서정성이 넘치는 베네치아 장려 양식의 대표작으로, 이후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모방과 찬미의 대상이 되었다.
그림은 <그리스도의 강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는데, 제목이
말해주듯이 십자가에 박혀 죽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려 그의 제자
들이 묻으러 가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색채에 깊게 매료되었던
티치아노는 작품에서 그리스도의 시신을 가장 밝게 표현하고 있다.
그를 들고 가는 사람들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는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죽음의 비통함이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죽은 자에 대한 비통함이 여러
인물들 표정에 가득하다.  검은 구름이 잔뜩 드리워진 화면으로
꿈틀거리는 인물들의 근육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분노하는 듯이
생생하다.  그리스도의 발치에는 십자가에 박힌 자국이라는 뜻을
가진 스티그마타(Stigmata) 보인다.  화면 가운데 죽은 이를 감싼
포대를 들고 있는 남자의 옷은 비현실적으로 티치아노가 살았을
당시의 의상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티치아노가 그림의 사실성보다는
인간의 슬픔이라는 주제에 보다 중점을 두었음을 가늠하게 한다.

*Portrait of a Young Woman, 1530*

*The Venus of Urbino,1538>*

*Portrait of Pietro Aretino, 1545*

*Portrait of Pope Paul III, 1546*

*Empress Isabel of Portugal, 1548*

*King Philip II, 1551*

*Venus with Organist and Cupid,1548*

*Danae and the Shower of Gold,1554*

*Venus with a Mirror,1555*

*Self-Portrait,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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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04전성기르네상스 다빈치, 미켈란젤로

   

(2)  전성기 르네상스(Cirquecento, 1500년대)

이성적 규칙을 통한 객관적인 정확성과 조화와 균형이라는 미의 이념이
구현된 황금기다.   다른 어떤 세기보다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으며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레오나르도 빈치, 미켈란젤로다.

레오나르도 빈치 (Leonardo da Vinch;1452 - 1519)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다.  
그는 피렌체 근교의 빈치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생애는 대개 5시기로 나눌
있다.
1 시기는 466년에서 82년까지로, 1 피렌체 시기이다.
시기에 그는 베로키오 밑에서 도제수업을 받았으며, 엄격한 사실주의
기법을 터득하였는데, 스승과의 공동작인 <그리스도의 세례>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지네브라 벤치》, 《마돈나 베아노》에서 그의
치밀한 사실기법은 명암법에 스푸마토를 병용함으로서 완성의 경지에 다다랐다.
시기의 그의 작풍은 엄격한 사실에서 깊은 정신세계를 발견 있다.
2 시기는 1482년에서 99년까지로, 1 밀라노 시기이다.
시기는 동안 축적된 그의 다양한 재능이 충분히 발휘된 시기이다.
《최후의 만찬》은 객관적 사실과 정신내용을 훌륭하게 융합함으로서 다음 세기
고전양식을 이미 완성하였다. 또한 과학 연구와 저술에 힘쓴 시기이기도 했다.
3 시기는 1500년에서 06년까지로, 2 피렌체 시기이다.
시기에 그는 《모나리자》를 제작하였고, 특히 과학연구에 몰두한 시기이다.
4 시기는 506년에서 13년까지로, 2 밀라노 시기이다.
시기에 그는 《동굴의 성모》를 완성하였고, 《성 안나》 등의 제작에 착수
하였다. 《성 안나》 그의 예술의 귀결인 동시에 전성기 르네상스 고전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기의 그는 오히려 여러 가지 과학연구, 특히
수류에 관한 연구나 운하공학 또는 기계학과 해부학 등에 주력하고 있었다.
5 시기는 1513년에서 19년까지로, 로마·앙부아즈 시기이다.
그는 시기에 수학연구에 몰두하였고, 앙부아즈의 궁정화가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방대한 양의 수기를 정리하고 여러 가지 사색에 잠겼으며, 운하
설계나 궁정설계를 지휘하면서 충실한 생활을 하였다.
그의 방대한 수기는 평생에 걸친 여러 과학의 연구 예술론과 인생론이
비롯된 것으로, 현재는 서구각지에 분산 소장되어있다. 과학론은 그의 실증적
경험주의와 냉철한 관찰적 사고법의 결정체로 선구적 의의가 크다.  

*The Dreyfus Madonna

(The Madonna with a Pomegranate),1469*

*The Annunciation,1472-1475*

*벤치의 초상, 147476*

*Madonna with the Carnation, 1475*

*베노아의 마돈나, 1478*

* 족제비와 여인, 148390*

*비례 연구, 1487*

*Madonna Litta, 1490*

*최후의 만찬, 1498*

*Madonna of the Yarnwinder, 1501*

*Virgin and Child with St. Anne,1510*

레오나르도 빈치의 유화는 15점의 많지 않은 작품이 현존하는데 비해, 소묘는
상당수가 남아 있다. 1510년경 밀라노에서 그려진 그림도 많은 밑그림과 데생을
거친 작품이다. 현재는 작품의 소묘 점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어머니 안나의 무릎에 마리아를 그리는 소재는 중세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
성모는 안나의 무릎 위에 걸터앉아 팔을 뻗쳐 아기 예수를 끌어안고 있다.
아기 예수는 어린양을 붙잡은 성모를 향해 미소짓고 있다.
안나는 모자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안나의 시선이 성모의 머리
부분을 통과하여 아기 예수의 눈과 정확하게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구도는 마사치오의
영향이라고 있다.
한편, 작품은 레오나르도 빈치의 공기 원근법 연구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공기 원근법으로 인해 풍경은 안개가 흐르는 부드럽고 신비롭게 채색
되어 있다. 빈치는 윤곽선으로 형태를 나타냈던 이전 화가들과는 달리 풍부한 명암법
(
키아로스큐로)으로 사실적인 입체감을 나타냈다. 윤곽선을 흐릿하게 하고, 어두운
색에서 밝은 색으로 미묘하게 변해 가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은 형태를 부드럽게
드러내면서 주위와 융화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명암법은 사람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통일체로 비춰지게 한다.
작품과 내셔널 갤러리의 소묘를 비교하면, 어린 세례 요한이 양으로 바뀌었으며
소묘에서는 서로 마주 보았던 성모와 안나의 시선 또한 수정되었다.
안나가 성모를 아래로 굽어봄으로써, 그림은 수평 구도에서 수직 구조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안나의 시선의 변화는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의 모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섬세한 요소들에 힘입어 작품은 종교적 메시지보다는 가족의 화목한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Mona Lisa (La Gioconda), 1503-1506*

"모나(Mona)" 이탈리아어로 "부인" 칭하는 말로써, 작품의 제목은 <리자 부인>
정도가 듯하다. 피렌체의 은행가 자놀리 지오콘도(Zanoli del Giocondo)
부인, 리자 지오콘도(Lisa Giocondo) 작품의 모델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빈치 자신이 정확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모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작품은 모델의 이름을 따서 < 지오콘다
(La Gioconda)>,
혹은 불어로 < 죠콘드(La Joconde)> 소개되기도 한다.
모나리자는 3/4 측면 자세로 약간 몸을 비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대 로마 이래 초상화의 기본적인 자세는 측면이었다. 15세기 중엽 플랑드르
화가들이 3/4 측면 자세를 시도하긴 하였지만, 다음 세대의 초상화 형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빈치의 <모나 리자>이다.
명확하지 않은 윤곽선, 은은하고 부드러운 색채를 겹겹이 덧발라 형태는 대기 속에
부드럽게 녹아 있다. 빈치가 창안한 "스푸마토(Sfumato)" 기법은 형태와 형태가
겹쳐지고 융화되는 부드러운 화면을 만들었다. 모나리자의 생기 있는 눈가와 입매는
흐릿한 그림자로 처리되어 조금씩 계속 변하는 미소는 작품의 독특한 개성을
만들어냈다. 빈치는 작품에서 아이크가 시도하였던 공기 원근법을
완전하게 만들었다. 멀리 보이는 구불구불한 , 다리, 계곡, 암벽들은 점차 푸르스름한
빛으로 채색되어 모델이 있는 곳으로부터 상당한 거리감을 나타낸다.
풍경은 왼쪽 지평선이 약간 낮게 깔려 있고, 모나리자의 얼굴도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모나 리자> 보는 이의 시점이 바뀜에 따라 그림의 일부분이 크게
보이거나 다른 쪽이 작게 보이는 신비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빈치는 1503 밀라노에서 그리기 시작한 작품을 자신이 프랑스 궁정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 작품은 그의 사후에 프랑수아 1세의 컬렉션에 소장
되었으며, 1804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The Virgin of the Rocks, 1483-86*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 - 1564)

역사상 인간의 육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미켈란젤로는화가인 동시에
시인, 건축가이며 당시 세도가였던 메디치가의 소장품들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들을 연구했다. 그는 이로부터 아름다운 인체를 묘사하는 고대의
스승의 비법을 알았으며 인체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연구, 인체 해부학을 탐구
하였다.  화려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시작하여 매너리즘, 바로크 양식의
미술까지 열었던 그의 가장 뛰어난 역량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그의
조각상에서 있다.  1508년에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위촉받아 12년만에 완성하였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그가 율리우스
2
세의 묘비 건립의 일부분이었던 군상 하나인 빈사의 노예와 다윗상, 모세상
에서 있다.  그는 평소에 회화에서 보다 조각에 관심이 많았다 한다.  
격렬하고 뒤틀린 듯한 포즈, 조용하기 이를 없는 듯한 자세 등은 아무리
자세가 복잡하더라도 하나의 통일감 전체적인 윤곽의 뚜렷함 이나 단순하고
안정된 듯한 느낌이 있다.

*피에타, 149899*

미켈란젤로의 초기 작품이며, 동시에 르네상스 전성기의 대표작이다.
그리스도의 시신(屍身) 무릎 위에 앉은 어머니 마리아의 군상(群像) 자연
스럽고도 이상적인, 특유한 아름다움을 띠며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후기에 가서도 같은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그가 보여준 것은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상(大理石像)이었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피에타상 형식의 직접적인 계보는 중세 북구(독일) 형식의 개신(改新)
이라고도 있다.  실물 크기 이상의 마리아가 보통 크기의 그리스도를 크게
포개진 옷의 무릎 위에 비스듬히 사선으로 안고 슬픔과 고통을 내면화(內面化)
시키고 있는 청정하면서도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당시의 미켈란젤로가 보여준
독특한 이상적 조화미의세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겠다.

*피에타, 1550*

*다비드, 150104*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다윗은 골리앗의 목을 승리의 청년상(靑年像)
으로서 조각가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아래 골리앗의 목을 누르고 ()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소년상
(
少年像) 그런 일반적인 다윗상의 형식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가로서의 자신을 충분히 발휘한 것도 역시 다윗상에서였다.  
그러나 그가 1501 8 피렌체 대성당의 의뢰를 받고 제작하게 커다란
대리석상은 그와 같은 승리의 상과는 취향을 달리하고 있다.  
망태를 메고 옆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서서 돌을 쥐고 던지려는 순간의 나체
(
裸體) 청년상이 균형감을 지키면서 드러나 있다.  
자신 같은 때에 청동(靑銅) 다른 다윗상을 만들었다고 전하나 실물은
없어졌다.  1495 메디치가에서 일단 나온 그는 실물보다 헤르쿨레스 상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Madonna and Child, 1501-05*

*Doni Tondo,1503*

미켈란젤로가 친구인 피렌체의 명문가이며, 양모직물업자인 도니(Doni)
결혼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흔히 '도니의 원형화(Tondo Doni)'라고도 부른다.  그림의 주제는
성가족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어린 그리스도를 무릎 위에 안고 있고 요셉이
옆에서 그를 찬양하는, 다른 일반적인 성가족의 구도와는 다른 모습을
성가족이다.   작품은 우피치미술관에 있는 시뇨렐리가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시뇨렐리의 그림도 같은 원형이며
배경에 이교적(異敎的) 나체의 청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켈란젤로가
여기에서 발상을 얻었으리라 짐작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점이다.  지면에 앉아 있는
마리아를 중심으로 요셉을 배치하고, 다시 그리스도를 한층 높은 위치에
둠으로써 보호받는 그리스도에서 군림하는 그리스도로 비약시킨 것이
[성가족]이라고 있다.  확실하게 미켈란젤로의 것이라고 판명되는
유일한 그림으로 현존하는 그의 회화 작품 가운데 가장 초기의 작품이다.  
액자도 미켈란젤로가 직접 디자인하였다.  성모 마리아가 남성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미켈란젤로가 여성 모델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The Conversion of Saul,1542-45*

*Martyrdom of St Peter,1546-50*

*시스틴 예배당,1475-83, 1508-12, 1535-41*

교황 줄리오 2세는 1506 미켈란젤로에게 교황청 안의 시스틴 예배실
천장화를 주문하였다.  교황의 처음 주문은 창문들 사이에 12사도를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장식 모티브를 그려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훨씬 거대한 계획을 세워 교황을 설득하고 지금의 천장화를 남겼다.  
그는 빛의 창조에서 노아의 홍수에까지 이르는 <천지창조> 주제를 택하였다.  
그는 기존의 건축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 천장에 이와 연결된 건축구조를
그림으로 만들었다.   그리자이유의 단색 기법으로 대리석 조각이 새겨진
기둥을 이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긴 9개의 면적에 천지창조 이야기를
그리고 창문 삼각형 사이의 공간엔 예언자와 무녀들을 그렸다.  
장대한 프로그램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빛의 창조, 아담과 이브의
창조와 그들의 원죄, 노아의 타락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의
과정을 보여 준다.  그리고 양쪽의 예언자와 무녀들은 구원자가 오실 것임을
알려준 존재들이다.

*Interior of the Sistine Chapel, 1475-83, 1508-12, 1535-41*

*Exterior of the Sistine Chapel,1475-83*

*천지창조(아담의 창조,1508~12,바티칸궁 시스틴 예배당 천장 부분)*

시스틴 성당 천장화는 모두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주제들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이다.  
자연의 실제 세계가 아닌, 미켈란젤로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세계가 재현된
벽화들 중에서 <아담의 창조> 가장 뛰어난 상상력이 발휘 되어있다.  
하늘로부터 강렬하게 돌진하는 하나님은 아기 천사들에 둘러싸인 이브를
옆에 끼고, 아담 향해 검지손가락을 뻗고 있다. 대지에 밀착된 아담은 하나님을
향해 몸을 내밀고 있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아 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이브를
보며 묘한 슬픈 표정을 짓는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설정은 아담의 표정과
육체와 영혼을 부여하는 신의 강렬한 눈빛으로 가늠할 있게 된다.  
몸이 반쯤 세워진 아담이 하나님에게 생명의 힘을 전해 받으며 짓는 표정에는
앞으로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어 고통스런 현실 공간으로 떨어지게 됨이
어렴풋이 암시되어 있다.  
하나님이 취하고 있는 역동성과 신비함은 아담과의 절묘한 대비로, 인간이
다다를 없는 절대적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
아담의 창조> 성당 입구에서 출발하여 구약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간
지점에 그려져 있다.  이는 인간과 신이 함께 표현되는 양식을 과감하게
창조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하나님의 창조적 힘과
인간이 만들어지는 감동적인 순간을 뛰어나게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Creation of Eve, 1509-10*

*The Fall and Expulsion from Garden of Eden, 1509-10*

*최후의 심판,1534-41,시스틴 예배당*

작품은 시스틴 예배당 제단 뒤에 채색된 프레스코 벽화이다.
성당 천장에 새겨진 구약의 창세기 이야기가 20 년을 흐르는 동안 유럽은
·구교로 분열되고 로마가 약탈당하면서 교황의 권위는 하락하고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후의 심판> 인간과 예술에 대한 신의 심판을 기다리는
미켈란젤로의 붓끝에서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육신의 죄와 근심으로 가득 인간들은 지상에서 고통스런 몸부림을 치며
천사들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을 심판하는 예수는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과 땅에 창조된 모든 것들 사이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다.  
예수와 대지 사이에 위치한 하늘에는 요한계시록의 선지자들이 심판의 나팔을
불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인간이 취할 있는 모든 포즈를 형상화시키고 있다.
과거가 기록된 책을 읽게 하는 천사들 속에 절망에 인간들의 모습이 보인다
무덤에서 일어난 수많은 죽은 자들, 옷을 걸치거나, 벗은 사람들, 아직 잠에
취한 사람, 벼랑에 매달리거나 위로 추락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을 감시하는 천사들 위에서 성자는 구덩이 속에 죄인을 던져
버리고 천국에 몰래 들어온 자들을 다시 지옥으로 밀어내며, 사탄은 악한
자들을 집어내어 끌고 간다. 다른 한편으로는 순교자들임을 나타내는 이들
살이 벗겨진 바르톨로메오, 십자가를 안드레가 보이고, 예수의 머리
위에는 그가 박혔던 십자가, 기둥, 그리고 가시 면류관을 천사들이
보인다.   모두가 성당 내부가 전율하듯 생동감 있게 재현되고 있다.  
흰색과 푸른색의 공간 위로 상승하는 인간의 구원으로의 욕망은 선악을
주관하는 예수의 최후 심판에 따라 환희와 절망이 곳에서 교차하고 있다.  
육체의 이상미를 추구하던 신플라톤주의와는 거리가 , 인간의 가장 더럽고
추한 모든 것들이 숨김없이 꿈틀대고 있다.  
작품은 교만한 인간들의 신앙으로의 경건하고 겸손한 복귀를 외치는
미켈란젤로 최후의 메시지이다.

*빈사의 노예,151316*

작품은 1512 <시스틴 천장화> 완성된 ,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묘비
건립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반항하는 노예> 짝을 이루는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조각가로서의 자존심은 대단한 것이어서, 당시 교황과 왕들이
그에게 작품 의뢰를 요구했던 것을 번번이 물리쳤다는 것이 일화로 남아 있다.  
작품도 원래는 후원자를 위해 만들다가 그가 죽은 율리우스를 위해
제작 되었다고 전해진다.   작품의 "노예" 죽음에 이를, 그런 상태에
있다.  차가운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주는데이는 미켈란젤로가
작품에 부여한 생명성에 기인한다. 덩어리 속에 인물이 감추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작업을 , 삶의 투쟁과 긴장에서 해방되는 노예의
마지막 순간을 실제 노예를 앞에 두고 묘사한다는 믿음으로 작업한 것이
작품을 살아있게 만든 것이다.  조상의 윤곽선에는 대리석 덩어리라는
본래의 형태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조상의 포즈가 복잡한 구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본래의 단순하고 안정된 통일성을 획득하고 있다.  
피로와 육체의 고단함으로 가득 찼던 지상에서의 고단함을 이제 놓을 있게
노예의 나른한 표정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두려움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휴식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쯤 벗은 옷을 이제 올리려고
하고 있다.

*메디치가의 줄리앙,152634*

*율리우스 2세의 무덤,1545, 로마, 피에트로 교회*

*줄리아노 메디치의 무덤,1526-33*

*로렌조 메디치의 무덤,15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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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03초기 르네상스: 보티첼리, 벨리니

   

4. 르네상스 미술(Renaissance Art)

15
16세기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미술사조 이다.
르네상스는 부활(復活), 재생을 뜻하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 번영을 꿈꾸며 시작되었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배경을 보면 첫번째, 이탈리아에선 귀족계급과 부유한
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으며, 두번째 이탈리아가 서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산재하는 고전시대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번째, 도시의 자부심과 사유재산제가 발달되어 예술에 대한 후원의 기회가
많았다는 등이다. 중세 봉건영주, 귀족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권리와 능력을 자각한
시민계급의 등장은 현실세계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낳았고, 이는 중세를 지배하던 신중심의
시선을 인간중심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피렌체의 메디치가 처럼 부를 축적한 상인
계급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여 미술의 새로운 후견인이 되었다.
미술은 교리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전달수단으로 주목 받았다.
따라서 그리스미술처럼 서술적 기능이 부각 되었고 서술적 기능을 충실히 하기 위해 정확한
사실적 묘사가 중요시 되었다. 또한 그들은 미의 구현이란 어떤 이성적 법칙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과학적 예술이 발달하였다. 동시에 기하학, 생리학, 해부학, 원근법 등도
발전하였다. 게다가 미술 교육기관인 아카데미가 설립되었고 화론이 등장하였다.
르네상스를 전기, 전성기, 후기(매너리즘) 나누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1)
초기 르네상스(Quatrocento, 1400년대)

15
세기 초기 르네상스 회화는 현실적인 자연에 대한 관찰과 해석으로 첫째의 특성을
드러낸다. 그것은 인체묘사와 공간 묘사에서 발견할 있다. 평평한 화면에 깊이 있는
공간을 재현시킴으로써 중세적인 상징적 공간에 머물지않고 실제로 우리들에게 보이는것과
같은 공간 감각을 지니게 한다. 한편 그속에 그려져있는 인간들은 빛과 그림자 색채와
더불어 보다 양감있는 입체적인 조형성을 띠고 나타나서 가시적인 현실감을 회화적으로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특징들은 물론 르네상스라는 근세의 새로운시대에 살게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기 시작하는 현실 세계에 대한 보다 높은 관심에서 연유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편 이러한 관심은 실제적으로 현실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점을 주관에
대립되는 객관적인 세계에 두게 하고 이것을 주관과의 연관성 속에 파악하게 주었다.
이와 같은 연관성의 상관 관계를 가장 대변하는 것이 다름아닌 원근법의 적용이다.
원근법은 15세기 르네상스 회화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화가에게 불가결한 지식으로서
수학적 기본 개념이나 원근법적 표현을 위한 기하학의 지식을 들고 있다.
이와 같이 외적 세계에 대한 15세기 르네상스인들의 깊은 관심과 과학적인 기본 태도는 인간
자신의 표현 방식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중세 교회의 권위에 대해 회의하고 현실적인
삶에 집착하기 시작한 근세 초기의 인간들은 지상 위에 삶을 영위하는 자각한 인간의
개별상으로서 종교화 내지 자화상 또는 초상화를 많이 남기 된다.
그중에서도 세기에는 측면상의 형식이 지배적인 것으로 고대에서 발견한 기본 형식을
답습하면서도 자신에 인간 개개의 상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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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에 들어서면서 찾아볼 있는 이와 같은 일편의 세속적인 근대적 정신은 교회나
종교의 예속에서부터 점차로 예술가를 해방시켜 예술가의 상상과 주관에 의한 예술
창조에 로의 새로운 길을 터놓았다. 교회나 종교의 속박에서 독립하게 되는 예술은
잃어버린 기반과 권위를 바로 이곳에서 되찾게 된다.
그것은 또한 예술의 성장만을 가지고 것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의 인격이나 사회적
지위도 높여 주게 되었다. 이에서 오는 고대나 고대화된 신화, 전설, 역사 우의에
모티프들은 고상하고 흥미깊은 르네상스 회화에 보다 많은 주제를 제공했고 심지어
종교적인 성질의 그림에까지 서슴 없이 침투해 들어오게 되었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 ~1510):피렌체 화파

보티첼리는 르네상스 시대 활동한 대표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 처음에는 신부이자 화가였던 필리포 리피라는 사람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며, 후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이었던 베록키오 밑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1470년대부터의 보티첼리는 피렌체의 권력가인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보이게 되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정화로 유명한 시스티나성당의
측벽장식화를 그리기도 했으며, 그외 여러 성모상들과 종교 제단화에서 개성적인 인물상을
보여주었다. 메디치가의 별장에 그린 벽화 <비너스의 탄생> 그의 예술의 정점으로 인정되고
있다. <비너스의 탄생>으로 보티첼리는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꽃피운 인물로 인정받게 된다. 비잔틴과 고딕의 신성하지만 딱딱한 종교적
권위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의 중심에 사람을 가져다 놓게 되는 르네상스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체계를 성립시켰다. 하지만 강한 종교성을 보였던 중세의 가치관과 새롭게
등장한 인간관 사이에서 많은 이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르네상스 미술의 주도자 보티첼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교라 불렸던 새로운 가치관과 전통적 그리스도교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다른 르네상스 화가들에 비해 사실성을 무시하고 다소 과장된 곡선의 미를 보여주게
되고 점차 신비로운 경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보티첼리의 혼란했던 가치관에 사보나롤라라는 수도사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세속화를
비판하는 그로 인해 보티첼리는 종교화에 매진한다. 광신적인 수도사는 신비로운 예언
설교로 보티첼리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지만 결국 이단죄로 화형을 당하게 된다.
일로 여린 감성의 보티첼리는 충격을 받게 되고, 음울한 그림을 그리다가 마침내 세상과
인연을 끊고 만다.

*비너스와 마르스, 1485*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고, 마르스는 전쟁의 신으로, 사이는 연인이다.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비너스 앞에서 잠에 곯아 떨어진 반나의 마르스를 보면
부드러운 여성성이 강한 남성성의 우위에 위치하는 듯하다.
마르스의 모델은 보티첼리의 후원자 줄리아노 메디치이고, 비너스는 그의
애인인 피렌체 최고의 미인 시모네타라고 한다.

*프리마베라, 1476*

작품의 명칭은 봄을 의미하는 프리마베라 또는 알레고리아 델라 프리마베라
(l'Allegoria della Primavera)
라고 불린다. 꽃이 만발한 피에조레의
저녁놀이 깃든 숲속에 사랑의 에로스를 거느린 미의 여신 비너스를 화면
중앙에 설정하고, 왼쪽에는 막대를 치켜들어 이슬을 떨어 내리는, 주로 신들의
사자(使者) 등장하는 헤르메스를 선두로 엷은 옷을 걸친 미의 여신들, 그리고
오른쪽엔 온몸을 꽃으로 장식한 봄의 여신과 뒤로 꽃의 여신이 바람의 신에
떠밀리며 나타나는 것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475 기마(騎馬) 경연대회 우승자였던 줄리아노 메디치와
그의 애인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사랑을 축복한 시인 안젤로 풀리치아노의
고전적 상징시 ' 지오스트라' 보티첼리가 1476 무렵에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너스의 탄생,1486*

《프리마베라》와 함께 산드로 보티첼리의 최대 걸작으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485년경 보티첼리가 메디치가() 로렌초
피에르 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로렌초가 자신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주문한 그림이라고 하며, 당시 철학자들이 설명한 인간의 영혼을
신플라톤적 해석을 통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크로노스가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한 , 남근을 바다에 던지자 남근 주위로 바다 거품이
모였고, 키프로스섬 근해의 바다 거품 속에서 비너스가 탄생하였다는
그리스신화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사랑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는 푸른 바다
거품으로부터 태어나 진주조개를 타고 바다 위에 있다.
그림 왼쪽에는 서풍의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가 있는데, 제피로스는
비너스를 향해 바람을 일으켜 그녀를 해안으로 이끌고 있다.
비너스의 오른쪽에 펼쳐진 키프로스섬의 해안에서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외투를 들고 비너스를 맞이하고 있다. 속에 잠겨 있다가 방금 깨어난 듯한
표정과 나체를 감추려는 은근한 모습 등으로 신비로운 미의 여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수줍어하고 있는 비너스의 신체는 10등신이며, 모델은 당시
피렌체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꼽던 시모네타로 전해지고 있다.

*수태고지,1489*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수태를 알리는 장면.
그림은 1870년에 보르고 핀치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막달레나 파치 수녀원
소속의 피에조레 지구 별장 안의 예배당에서 발견되어 2 후인 1872년에
우피치 미술관에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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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미술가 전기작가 바사리가 체스텔로의 수도원 예배당 제단화로서
보티첼리가 그렸다고 기록한 그림이 바로 이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래서 제작 시기도 예배당이 세워지던 때인 1489~90년으로 보고 있다.
역시 보티첼리의 독특한 감미로운 애조가 충만한 작품에는 불의의 방문자인
천사를 맞아 책을 읽다 말고 몸을 천사 쪽으로 돌리고 있는 마리아가 그려져
있다. 수태를 알리는 천사의 얼굴과 손의 표정에는 엄숙한 신의가 나타나
있고, 거기에 이끌려 마리아도 손을 내밀고 있다. 풍부한 곡선으로 형상되고
있는 인물의 자태는 배경의 수직 벽면과 지면의 직선 교차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밖의 아름다운 원경은 실내의 극적 장면의 긴장감을
한결 부드럽게 해줄 아니라, 정서적인 분위기마저 조성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 동방박사의 경배, 1482*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세명의
동방박사를 그린 것이다. 보티첼리는 작품안에 자신을 후원하는 메디치가의
사람들을 모델로 등장시켰다.
오른쪽 끝에 서서 관람자를 노려보기라도 하는 듯한 황색 옷의 사나이는
보티첼리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Madonna with the Book,1483*

*Madonna and Child with an Angel,1470*

*Madonna and Child and Two Angels,1470*

*Fortitude,1470*

*The Temptation of Christ,1480*

*Madonna of the Magnificat (Madonna del Magnificat),1480-81*

*The Virgin and Child with Four Angels and Six Saints (Pala di San Barnaba),1488*

*Coronation of the Virgin (San Marco Altarpiece),1490-92*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1480*

도끼모양의 길다란 창을 손에 가진 지혜와 전쟁의 여신 팔라스가 화살집을
둘러메고 오른손에 활을 쥐고 폭력과 무지를 상징하는 반인 반마인 켄타우로스
머리털을 부드럽게 거머잡고 있는 광경이다. 팔라스는 뭔가 생각에 잠긴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고, 그녀의 옷에는 메디치 가문이 사용한 다이아몬드
문양이 들어 있으며 감람나무 가지가 얽혀 있다.
반면, 켄타우로스는 슬픈표정에다 겁을 집어먹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림은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피에르 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려진 것으로
말해지고 있고 19세기 중엽에 피티궁에 들어갔다가 1922 이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왔다. 제작 연도는 로렌초가 나폴리왕으로 하여금 피렌체
시민에게 적대하지 않도록 설득에 성공한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귀국한 1480 설과 메디치 가문이 더욱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굳히는
1486
설이 있다. 그러나 작품 양식으로 미루어 화가가 시스티나 예배당
벽화를 그린 뒤에 로마에서 피렌체로 돌아간 직후인 1482~83 무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작품은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승리의 상징설 외에
이성(팔라스) (켄타우로스) 제어 한다는 도덕적 내면이 상징되어 있다는
해석도 있다.

*The Mystical Nativity, 1500*

Giovanni Bellini(1430~1516): 베네치아 화파

초기 르네상스 회화의 다른 중요한 중심지를 찾는다면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빠뜨릴 없다. 여기에 대표되는 화가로는 다름아닌 야코포
벨리니와 그의 아들 젠틸레 벨리니와 지오반니 벨리니로 이어지는 벨리니
일가다. 그들을 비롯한 베네치아 화파의 영향은 호화로운 장식이나 아름다운
색채의 효과 내지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풍경과 풍만한 인체의 표현을 통해서
다음 세기의 여러 작가들에게 이어졌다. 또한 이곳에 연관을 가졌던 중요한
작가로 인물의 조소적인 파악과 축소법을 효과적으로 구사한 만테냐나 맑은
색채를 사용한 메시나 등을 빼놓을 없다.

*Madonna with the Child (Greek Madonna),1460-64*

*Crucifixion, 1455-60*

*Madonna of the Red Angels,1480~90*

*St. Francis in the Desert, 1480*

*Angel Announcing and Virgin Announciated,1500*

*Madonna and Child, 1485~90*

*Portrait of a Condottiere (Giovanni Emo),1475-85*

*Madonna and Child with Four Saints and Donator,1507*

*Baptism of Christ*

*Sacred Conversation,1490*

*The Doge Leonardo Loredan, 1501-05*

*초원의 마돈나, 1505*

*Madonna with saints, 1505*

* 크리스토퍼와 루이스와 제롬, 1513*

*신의 축제,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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