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93 페미니즘 : 오 키프, 신디 셔먼

   

서양 미술사 - 93(페미니즘: 오키프, 신디 셔먼)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


미국의 대표적 여성미술가인 오키프는 컬렉터이자 사진작가인 스티그리츠의
부인으로도 유명하다(Alfred Stieglitz 1864-1946).
미국 위스콘신주 선프레리 근처 농장에서 태어나 1904 시카고 미술학교,
1907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공부했으며 상업미술 활동을 했다.
1912~1916
년에 텍사스 등의 학교와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1916
사진작가인 앨프레드 스티글리츠가 그녀의 소묘를 보고 작품성을
인정하여 화랑 '291'에서 개인전을 열어주었다. 이들은 1924 결혼하였고
스티글리츠는 그녀의 작업을 항상 격려해 주었다. 스티글리츠는 그녀를 모델로
수백 점의 연작 인물사진을 찍었다. 그후 그녀는 뉴욕과 뉴멕시코에서 살다가
1946
스티글리츠가 죽자 뉴멕시코 사막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오키프는 정밀주의적 화풍을 보이는 수채화로 유명한데, 주제는 조개 껍질, ,
두개골, 골반 , 바위 산등 자연의 형태를 확대시킨 것들이다.
탐구적이고 미묘한 율동을 지닌 윤곽선으로 이러한 형태들을 그리고 위에
선명한 색채의 엷은 물감으로 강약을 부여했다. 신비스런 암시를 던지며 감각적
이면서도 상징적인 해석을 가능케하는 그녀의 작품은 여성의 신체 일부를 연상
시킴으로 패미니즘적으로도 또는 남성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상당히 관능적인
매력이라는 두개의 상반된 기능으로 작용한다. 평생을 뉴멕시코 경계에 살았던
그녀는 주변의 자연을 주로 소재로 삼았던 점에서 자연주의와 일치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 작품에 대한 평가는 항상 엇갈린다.
최근 패미니스트 계열에서 활발하게 거론되는 그녀의 작품은 여러가지 의미를
더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키프 자신은 그녀가 패미니스트들과 함께
거론되는 것을 상당히 거부하는데, 자신이 의식적으로 여성임에 대해 전혀 염두
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때론 "나를 도와준 전부 남자들이었다"라고 말하는
성적 분류에 대한 반감마저 갖는다. 그러나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이러한 의도와
달리 분명 그녀 작품 안에는 당시 패미니즘 미술의 의미를 발견할 있는
같다. 작품 안의 여성성의 결부는 관객들에 의해 부과된 것인데, 특히 비평가들
오키프 그림을 보고 " 아기가 갖고 싶어요"라고 외친다고 평가함으로 더욱
같은 의미가 증폭되었었다. 그녀 작품의 , 표면 질감들이 상당히 성적,
또는 관능적 감각을 유발시키는 것은 사실인데, 때로는 성기의 노출과 같은
표현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리스 Iris >에서 보이는 꽃의 형상이
그렇다. 그녀는 자신이 살았던 지역에 대한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작업했는데,
시간과 대지가 여인이나 자연 풍경을 마치 변형되는 것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여성 작가들은 자기가 사는 대지나 환경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높고
이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영향 준다고 있다.
고고학자들이 대지는 ""으로 세계를 다스리는 권력을 생산한다라고 했는데
바로 여성이 선사시대 이래로 이어지는 자연숭배와 대지 경외의 주체로
자리잡음은 자연에 가깝고 힘의 근원을 성의 서열적 도식에서 탈피하여 여성이
이어가고 있음이다. 이렇게 도외시 되었던 여성에 대한 찬양과 축하의 향연이
다시 시작되는 사건을 70년대 이후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 있다.

오키프는 서유럽계의 모더니즘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추상환상주의의 이미지를
개발하여 20세기 미국 미술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다.
후기 작품은 주로 뉴멕시코의 맑은 하늘과 사막 풍경을 그렸고, 1970년에
휘트니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하였다.

*Red Canna, 1923*

*Grey Line with Black, Blue and Yellow, 1923*

*Light Iris, 1924*

*Oriental Poppies, 1927*

*Shell No. 1, 1928*

*Jack-in-the-Pulpit No. II, 1930*

*Jack-in-the-Pulpit No. III, 1930*

*Jack-in-the-Pulpit No. IV, 1930*

*Jack-in-the-Pulpit No. V, 1930*

*Jack-in-the-Pulpit No. VI, 1930*

*Cow's Skull With Calico Roses, 1931*

*The Shell, 1934*

*Sunflower, New Mexico I, 1935*

*Cottonwood III, 1944*

*Goat's Horn with Red, 1945*

*Cebolla Church, 1945*

*Dark Tree Trunks, 1946*

*Sky Above White Clouds I, 1962*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 )


미국의 여류 사진 예술가로 1954 미국 뉴저지주 글렌리지에서 출생하였다.
흑백사진이 개념미술에 차용되던 1970년대에 팝문화를 기반으로 대중문화와
매체에 관심을 갖고, 1977 《무제 사진 스틸》 시리즈 작업을 시작하였다.
1950~1960
년대 미국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을 패러디한 시리즈는,
미국적 아이콘인 금발머리의 여배우로 변장한 신디 셔먼(Cindy Sherman)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카메라의 뒷면이라는 관음자적 모더니즘 주체가 아닌,
카메라 앞에 나와서 보여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주체를 있다.
, 사진가(관람자) 시각에 모델(객체) 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작품의
모델이 되어 시선의 주체와 객체를 모두 담당했다. 이와 같은 독특한 역할은
1970
년대 비평을 선도했던 《옥토버 October》지의 주요한 비평의 대상
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주제별로 대략 5단계로 나누어진다. 1975~1980년대
초기는 '흑백스틸' 작업 시기로서, 금발의 여배우로 분장한 신디 셔먼이 등장
하는 《무제 사진 스틸》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번째 시기(1983~1984) 패션모델을 패러디한 《패션사진》시리즈
제작 시기로, 여기에서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이 아닌 추하고, 피곤한, 역전된
여성의 모습을 포착한다.
1985~1991
년의 작품은 비평가들의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시기이다.
애브젝트 아트(Abject Art)라고 하는, 신체와 관계된 액체 분비물·정액·혈흔·
토사물 등의 불쾌한 것들로 작품을 만들었다. R.크라우스는 작품들을
'
재난들과 동화들' '역겨운 사진들' '시민전쟁'이라고 불렀다.
특히 주목되는 작품은 《무제 #153(1985)인데, 텔레비전 드라마 《트윈
픽스》의 장면인 강가 모래밭에 길게 누운 젊은 여성의 시체와 똑같이
연출한 장면이다.
번째 시기(1988~1990) '역사 초상화' 패러디한 시기이다.
고급 모더니즘으로 상징되는 15~19세기 후반 유럽 귀족의 초상화를 가슴을
드러내거나 평범한 여성 등으로 대중화시켜 패러디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마지막 시기인 1992년은 절단된 마네킹의 사지가 등장하는 마네킹과 섹스
사진이 특징이다. 유명한 《무제 #250(1992)에는 노인의 마네킹이
성기를 노출한 임신한 몸을 흉측하게 드러내며 누워 있다.
1997
년에는 영화 《오피스 킬러 Office Killer》를 제작하여 할리우드를
선망하는 여성의 허무한 모습, 불혹에 이른 아역배우, 40 후반의 중산계급
중년여성 등을 묘사하였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와 머리, 성형수술의
후유증을 상징하는 듯한 플라스틱 인조 가슴, 추한 화장과 의상 등으로 묘사
되는 여성의 외적 이미지를 보여주어 삶에 찌든 할리우드의 이면을 드러내었다.

그녀의 작품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여성' ''이다. 신체라는 외부 이미지를
넘어서 여성 신체를 구성하는 내부 이미지를 묘사한 오브젝트 아트에 이르기
까지 여성의 신체는 셔먼 작품의 근원이다.
여기에는 모더니즘과 가부장적 남성 사회가 단지 아름다움으로 규정했던
여성의 신체를 불쾌감을 주는 신체 내부적 요소로 보여줌으로써, 변장 뒤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여성의 진정한 자아확립과 주체회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무제 스틸 #13(Untitled Film Still #13) by Cindy sherman*

*Untitled Film Still #15, 1978*

*Untitled Film Still #48, 1979*

*Untitled Film Still #50, 1979*

*Untitled #71, 1980*

*Untitled #76, 1980*

*Untitled #86, 1981*

*Untitled #96, 1981*

*Untitled #98, 1982*

*Untitled #123, 1983*

*Untitled #153, 1985*

*Untitled #272, 1992*

*Untitled #323, 1995*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는 세계 미술의 최신 흐름을 발빠르게 선보이고 있다.
현대 여성사진가에서 절대적으로 빼놓을 없는 신디 셔먼과 한참 맹활약 중인
바네사 비크로프트가 주인공들이다.
전시 제목 'HER BODIES' 언뜻 문법에 맞지 않는 문구이지만 분명 상상이 되는
제목이다. 이렇게 15년의 나이 차이를 가진 작가들임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에서
두여성 작가의 작품을 전시로 묶어 보여줄 있게 계기는 제목에서도
있듯이 그들의 작품이 모두 여성의 몸을 기본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신디셔먼은 1970년대부터 30 동안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으로 자신을 변화
시키는 연출사진을 제작해왔다.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작품 <미스터리 살인
인물들(Murder Mystery People)> 현재에는 없는 17점의 세트작품으로
이후 제작되는 '무제(Untitled)'라는 제목이 붙은 일련의 작품들과는 약간의 차이를
지닌다. 스튜디오의 선이 정리되지 않은 드러나고 그림자 처리가 되지 않은
조금은 엉성한 듯한 그녀의 초창기 작업으로 눈여겨 볼만하다. 또한 전시 작품
<
무제 #224(Untitle #224)> 역사 인물 초상 시리즈 가장 논의가 많이 되고 있는
작품으로 미술사 속의 거장 '카라바지오(Caravaggio)' <병에 걸린 바쿠스>
떠올리게 한다. 카라바지오의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은 신화속의 인물
바쿠스의 의상을 입고는 있지만 해쓱한 얼굴과 더러운 손톱으로 사실성에 충실한
작품이다. 셔먼은 카라바지오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연출 해낸다.
2000
년도로 들어서면서 셔먼은 중년여성의 과장된 모습을 보여준다.
<
무제 #357 (Untitled # 357)>같은 작품들이 그것인데, 이상 '예쁘다'
없는 사진 여성들의 과장된 메이크업과 가식적인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거북한 느낌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중년여인 시리즈는 셔먼의 최근 작업인 광대시리즈로 연결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최근 2004 작품 <무제 #425 (Untitled #425)> 점이
컬렉션 되었다. 광대 시리즈는 컴퓨터기법을 이용하여 각각의 광대 이미지들을
하나의 화면속에 구성하였다. 지금까지400 이상의 작품에서 캐릭터들을
실험해 셔먼의 작품 세계가 '광대'라는 인물로 집약되어 보여진다.
광대시리즈는 작가로서 셔먼이 재현하고 있는 여성이미지이며 동시에 중년으로
넘어선 셔먼 자신의 모습임을 눈치챌 있어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셔먼의 작품이 작가가 연출한 여성 이미지라면,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작품의
여성들은 실제 여성들이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52회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가져온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가장 유망한 현대 여성작가 명이다.
회화 같기도 조각 같기도 그녀의 작품은 자체로 조형적 특성을 지니며 전체
구성을 형성하는 살아있는 누드 퍼포먼스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벽하게 꾸며진 누드 모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피곤에 지쳐 주저 앉거나 눕기 시작 모델들의 벗은 몸은 이상 눈요기거리가
아닌 그저 벗고 있는 몸이 된다. 꾸며진 몸에서 거짓 없는 몸으로, 여기에 퍼포먼스의
전략이 있다. 사진과 비디오 작품으로 남겨지는 그녀의 작품들 , 아라리오 갤러리
에는 작가의 의붓 자매를 모델로 "시스터 캘린더 (Sister Calender)" VB45,
VB47, VB48, VB52
사진 작품 20 점이 전시 된다.
한국에서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퍼포먼스가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아라리오 갤러리에서는 다방면으로 그녀의 퍼포먼스 기획을 검토했으나, 누드
퍼포먼스에 대한 국내 인식 부족과 작가의 개인적 사정에 의해 실제 퍼포먼스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VB48 기록한 비디오 작품이 전시되기에 실제 퍼포먼스가
주는 감흥을 갤러리를 찾는 모든 관객들이 경험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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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95 페미니즘미술 : 루이스 부르주아, 바바라 크루거, 에바 헤세

서양 미술사 - 95(페미니즘:루이스 부르주아,바바라 크루거, 에바 헤세)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 )


"
나의 조각은 나의 심리분석학이다" 라고 작가가 언급하였듯이 루이스 부르주아
작업 세계는 자전적인 심리의 탐구에 기초한다.
부르주아는 무의식과 내면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여 욕망, 쾌락, 사랑과 고통,
소외와 고립 과거 속에서 그가 직면하였던 경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고
이는 신체, 성적인 이미지와 에로틱하거나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표출되었다.
남성과 젠더에 대한 작가의 분노, 갈등과 혐오를 상징하였던 그의 과거 작업이나
1990
년대 중반 이후에 제작된 대형 거미 조각의 압도적인 규모와 위압적인
형상의 브론즈 작업으로부터 작가는 최근 손바느질한 조각을 제작하고 있다.
이는 재료와 기법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이다. 작가에 따르면 바느질은
치유의 행위를 뜻하고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신작 인물상들은 이렇듯 화해,
통일과 회복을 상징한다. 청동의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성이 아닌 작가의 손이
어루만지듯 천으로 기운 부드럽고 따뜻한 섬유 조각은 인간관계의 여러 가지
모습을 더욱 애절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계적인 원로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90세를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
하고 왕성한 작품 제작과 전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녀는 1911 프랑스 파리 태생으로 1938 미국으로 이주하여 1982
뉴욕 근대미술관 (MoMA)에서의 여성 작가 회고전에 이어 8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 남미와 일본 등지에서 차례 회고전을 가졌으며 1999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현재 세계 유수한 미술관들과 주요 콜렉션들에 널리 소장되어
있다. 학계(예일대학과 메사츄세츠 미술대학)로부터는 명예 학위를, 미국과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문화훈장과 일본문화협회로부터는 세계문화상을 수상
하는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부르주아는 여전히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 UNTITLED, 1997,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 UNTITLED, 1997, Red ink, blue ink, and black ink music paper*

* UNTITLED, 2000, Blue and white fabric and steel*

* DO NOT ABANDON ME, 2001, Fabric and stainless steel*

*MOTHER AND CHILD, 2001, Fabric,stainless steel and wood*

*COUPLE, 2001, Fabric*

*HYSTERICAL, 2001, Fabric, stainless steel, aluminum, glass, wood and lead*

*UNTITLED, 2001, Pink fabric and aluminum*

*CELL XIV (PORTRAIT), 2000, Steel, glass, wood, metal and red fabric*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1945~ ) 바바라 크루거는 시대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아티스트(여성예술가)이다. 그녀는 사진과 텍스트를 결합하는 예술 형식을 통해 남성지배 구조하의 사회적 편견(Stereotype) 저항해왔다. 결과, 그녀가 다루었던 자극적이고 예민한 페미니즘 주제들은 단순히 예술적 차원을 넘어 비평적 대중문화의 형태로서 일반화 되었다. 예를 들면,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회비판적이고 계도적인 텍스트들은 확대와 크롭핑되어 , 잡지, 포스터, 빌보드, 포장용 가방과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인쇄되었고, 대도시 공공장소의 선전용 문안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바바라 크루거의 예술세계의 일차적 전략목표는 개인을 포함한 사회 내부에 침투해 있는 제도적 권력에 항거하는 일이다. 여기서 제도적 권력이란 남성지배 구조하에 조성되어 있는 사회적 편견을 말하며, 권력에 항거하는 일은 현대예술의 담론(Discourse) 통해서 문화와 정치의 실천적 개혁을 촉구하는 것이다. 크루거는 지난 십수년간 훌륭한 대중 정치인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정치선동가로 오인될 만큼 급진적이었던 크루거 작품은 창조라는 예술적 목표와 정치속에 문화의 확장이라는 두가지 목적을 달성했다. 크루거의 전략은 70년대 미술, 특히 개념 미술가들에게 일반화 되어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바바라 크루거는 1945 미국 뉴저지의 중산층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1964 뉴욕주 시라큐스 대학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학업을 단념 했다가 이듬해에 다시 뉴욕시에 있는 파슨 디자인 학교에 등록하여 파인아트 프로그램을 집중 교육받았다. 훌륭한 예술가에게는 학창시절 훌륭한 선생과의 만남이 있듯이 이때 그녀에게도 사진가 다이안 아버스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하퍼스 바자] 아트 디렉터인 마빈 이스라엘과의 만남이 있었다.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은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래픽적인 작품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그녀의 작품을 사진으로 편입시킬 있고, 사진가라고 지칭 만한 요소가 있다면 역시 그녀의 초기 작품과 제작 과정을 통해서 이다. 1969, 크루거가 직업을 포기하고 예술세계로 시각을 돌렸을 때는 아트와 미니멀리즘이 후퇴하고 개념미술이 득세할 무렵이었다. 그러나 예술 양식에 관계없이 시기는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들이 할거했던 70년대 중반의 예술시장과는 비교할 없을 정도로 남성 중심의 예술구조였다. 따라서 여성 예술가들의 입지는 필연적으로 협소할 밖에 없었고 성적 차별과 편견으로 인하여 원만한 작품 활동도 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1976년은 크루거가 사진으로 방향을 돌렸던 해이다. 크루거는 그해 가을, 뉴욕 에서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거처를 옮겼다. 교육적인 문제 때문에 한정된 시간을 할애하여 캘리포니아에 머물렀지만 그녀로서는 중요한 예술적 전환기를 맞이 했다. 1974 이래 거의 작품을 중단하고 사회단체 일과 정치적 행동에 관심 가졌던 그녀가 다시 예술세계로 귀환했을 보여주었던 이때의 작업들은 1977, 하층민의 애환을 상징하는 글과 함께 [Picture/Reading](1977) 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케이트 린커에 따르면, "이때가 처음으로 사진과 텍스트가 대위법적으로 만나는 시점"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 바바라 크루거는 데이비드 살르와 바바라 브름이 포함된 예술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했다(이들이 주로 뉴욕 메리 화랑의 멤버들이다). 그룹은 나중 세리 래빈, 신디 셔먼, 리차드 프린스 등이 조우함으로써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 예술가들의 면면에서 우리는 쉽게 이들이 제기하는 이슈들을 어느 정도는 예견할 수가 있다. 이들 아티스트들의 이슈는 대중매체 활용할 전략과 새로운 리얼리티의 중재 그리고 사회 속에 혼재하는 다원주의 기호체계(Channel of Signs) 상설화하는 것이다. 바바라 크루거의 경우는 힘을 동반하는 언어, 힘이 실린 비평적 텍스트를 통해서 새로운 기호체계를 실험했다. 시기부터 이미지와 함께 사회적 공론을 담고 있는 크루거의 '대중 시각언어(Popular Visual Language)' 기호의 확장과 함께 문화적 정보로서 파급효과가 컸다. 1980년의 작품 <당신이 즐거워 하는 찰나는 군사전략의 정교함을 가지고 있다(Your moments of joy have the precision of military strategy)>라는 텍스트는 바로 전략의 신호탄 이라 있다. 사진에서의 텍스트는 '당신' 전체 남성을 겨냥한 페미니즘적 시각에 접근해 있지만 이미지와는 별개로 작용하고 있다. 1982 독일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마치 롤랑 바르트의 주장을 실행에 옮기기나 하듯이 크루거의 전략적 성공 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카셀 도큐멘타는 참가만으로도 대단한 영예이지만, 크루거의 경우는 단순한 영예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각별한 초대였다. 당시 카셀시 전역은 크루거의 1980 작품 <당신이 즐거워하는 찰나는 군사전략의 정교함을 가지고 있다> 슬로건이 담긴 포스터로 장식되었다. 언어를 통해 대중에 접근하고, 접근을 통해 권력에 저항하는 채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카셀 도큐멘타는 크루거의 번째 예술적 성공이라고 보여진다. 하여튼 카셀사건 이후론 미국 에서도 자연스럽게 타임 스케어를 비롯한 주요도시에 크루거의 전략적 텍스트가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바바라 크루거 작품에서의 'WHO' 주체는 권력의 지배자와 지배자 양자를 지칭한다. 여기서 말한 권력이란 특별한 제도속에 점유되어 있는 실질적 권력, 상징화된 권력을 말한다. 현대사회의 권력은 확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익명화 되어 있거나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미셀 푸코에 의하면 현대사회의 권력은 "원격조정에 의해 교묘한 배치, 전략적 이동, 전술, 기술 그리고 기능을 통해서 전략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했다. 말의 참뜻은 현대사회의 권력행사는 물리력이 아니라 상징적 효과, 그리고 생활과 밀접한 메커니즘을 통해 침투하고 작용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바바라 크루거의 80년대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스테레오 타입의 추궁은 당시 사회적 상황과 관련이 깊다. 이런 이슈들은 작가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통용되어 있는 공감대, 바꿔 말하면 보편적 패러다임에 대한 경고 이다. 크루거가 구사했던 여성문제에 관한 텍스트들은 대부분 남성적 언어이며 이것들은 언어를 통한 문화적 도전이자 여성들에게 경각심 유도 그리고 나아가 권력에 맞선 힘의 비판이 확실하다. 바바라 크루거는 이러한 사진적 특성을 일찍이 간파했던 선구자적 아티스트였다. 물론, 크루거는 사진이 갖고 있는 일반적 채널에 대해 확실하게 대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롤랑 바르트가 주장한 있듯이 '최후의 언어는 이미지'라는 개념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단지 관심을 가졌던 쪽이 텍스트였고 사진은 텍스트를 위한 하나의 매체로서 충실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랬을 뿐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진실의 가면을 쓰고 통용되는 허다한 사진들보다, 평범한 사진이라도 매체와 잘만 결합하면 얼마만큼 무기가 있는가를 증명해 실질적 본보기라고 하겠다.

   

   

*1989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 (Your body is a battleground)*

   

   

1989 워싱턴 DC에서 벌어졌던 낙태법 철회와 관련된 여성 시위와
관련하여 낙태의 권리가 여성의 것임에도, 배속의 태아를 죽이고 살리는 일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과 분노로 나타난
작품이다. 크루거는 페미니스트로서, 그것도 강직한 페미니즘 아티스트로서
현대사진의 기둥으로 자리해 왔다.
신디 셔먼이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 남성문화, 남성위주의 주류 문화에 항거하고
여성들에게 정체성을 자각하자는 메시지를 철저하게 예술의 영역에서, 예술적
표현수단으로 말해 왔다면, 바바라 크루거는 똑같은 이슈에 대해 직접 현장에서
정치 참여적으로 수행해 왔고, 작품에 있어서도 대중들이 있는 공공 장소의
포스트, 대중들이 보는 광고탑, 그리고 대중들이 착용하는 티셔츠 혹은 메고
다니는 가방에까지 자신의 표현 수단인 붉은 볼드 타입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새겨 넣어 왔다. 언어와 사진이 만났을 때의 파괴력을 간파한 그녀는 사진 못지
않게 텍스트를 중요시했고,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지는가에 대해서도 소흘히
하지 않았다. 오늘날 사진이 언어와 결합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효과를 강력하게 실증적으로 보여준 아트스트가 바바라 크루거였다.
그녀는 , 사진을 찍기 보다는 오래된 사진 연간물, 실용 안내서, 잡지로부터
사진을 골라내어 재작업 대중적 명언,정치문구, 광고 선전문구로부터
유래된 강력한 풍자적인 글을 사진에 덧붙임으로써 정확히 자신의 생각을 표현
해낸다.

   

   

   

   

   

   

   

   

   

   

   

에바 헤세(Eva Hesse: 1936~1970)


독일태생으로 미국으로 이민간 유태인 세대였으며, 뇌종양으로 1970 뉴욕에서
사망했다. 에바 헤세는 1960년대의 미국 미술의 우상(icon)이며, 그녀의 작품은
다음 세대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은 헤세와 그녀의 가족들이 1938 이후로 강제로 추방당한 곳이다.
당시 기업가이자 아트 컬렉터인 프리드리히 아른하르트 샤이드트(Friedrich
Arnhard Scheidt)
헤세와 그녀의 남편인 조각가 도일(Tom Doyle) 초청
하여 그녀가 귀환할 있도록 했다. 헤세 부부는 1964 6월부터 1965 8
까지 그녀의 고국에서 생활했으며, 에셍 (Essen)부근에 있는 샤이드트의 케트비히
온더 루르 (Kettwig-on-th-Ruhr) 버려진 방직 공장을 작업실로 삼았다.
독일에서의 시기는 헤세의 개성적이고 예술가적인 발전 단계를 보여주는 표준 시기
입증되었다. 시기는 그녀의 작업에서 일종의 방법론적인 전환점으로서, 회화
드로잉에서 벗어나 꼴라쥬와 조각적이고 조형적인 예술작품들로 향하는 전환을
보여준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선적이고 단색조의 미니멀적인 표현을 위하여 구상적
요소들을 제거했음을 나타낸다.

비엔나 미술관(Kunsthalle Wien)에서의 전시는 시기 이전과 독일에서의 체류
동안에 제작되었던 60개의 드로잉, 꼴라쥬, 과슈, 그리고 부조 등을 보여준다.
더욱이 몇몇 작품들은 그녀가 고국으로 귀환 즉시 만들어졌던 것들이다.
케트비히(Kettwig)시절로부터 모티브를 가져온 이러한 후기 작품들은, 헤세의 성숙기
이자 후기 미니멀리스트들에게 영감을 것들이며, 34세의 나이에 일찍 죽음을 맞이
하였던 짧은 생애를 포함하고 있다.
독일에서 작업한 첫번째 드로잉 연작들은 추상표현주의자의 색채를 꼴라쥬 하였으며,
헤세가 1965 3 18일에 르윗(Sol LeWitt)에게 보낸 편지 내용처럼 "거친 공간
(wild space)"
보여준다. 결과 그녀가 화가로서 작업한 이래로, 드로잉들은 더욱
구조적으로 나타났으며, 공간은 정사각형의 일종인 그리드(격자)구조의 반복적인 사용
으로 채워졌다. 이때부터 유기적이며 기계적인 요소들이 조형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의 투명한(crystalline) 선의 기계 드로잉(Machine dawing), 버려진
공장의 홀에 널려져 있던 오브제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마침내 헤세는 공간의
압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이러한 양상으로 헤세는
이러한 드로잉을 지배하는 의미에 대한 무시로서 'nonsense' 대해 말했다.
그녀는 3차원의 부조 오브제를 만들었고, 이것은 조각가가 되기 위한 결정적 극복을
보여준다. 색의 효과적인 사용은 독일에 머물렀던 기간의 특징이라고 있고,
이것은 점차적으로 부드러운 단색조로 대체되었다.
지난 동안 비엔나 미술관은 1960년대와 70년대의 중요한 작품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고, 이에 작가들의 출간되지 않았던 글들을 전시와 함께 펴내는 작업도 완성
하였다. 비엔나 전시에서 비로서 에바 헤세의 독일에서의 일기 메모책이 출간되게
것이다. 또한 카타로그에서는 시기 동안 창작된 작품들을 특색 있게 다루고 있고
이는 국제갤러리에서의 도록 출판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양상과 예술가적인 변화에 날카로운 통찰력을 제공
하고 있고 당대의 세부적 기록들을 보여준다.
에바 헤세는 그녀의 일기와 노트에서 예술가적 도전으로 중대한 통찰력을 보여
주었고, 또한 그녀의 내면의 개인적 갈등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였으며, 여성 아티스트
로서 그리고 동시에 아내로서 , 그리고 성공한 조각가이자 주부로서 자신이 결심한
생활을 이끌고자 원했던 목표의 모순성을 담아냈다. "나는 많은 것들을 가질 없다
여성, 아름다움, 아티스트, 아내, 주부, 요리사, 여성 판매원, 이러한 모든 것들. 나는
심지어 자신이 무엇인지도 없다."
에바 헤세가 케트비히 온더 루르(Kettwig-on-th-Ruhr) 주요 거주지로 삼고 있는
동안, 그녀는 작가 노트에서 도일과 활발한 여행을 했다는 것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브뤼셀, 파리, 로마, 마조르카를 여행하였고, 베른, 바젤, 취리히, 뒤셀
도르프 등지에서 전시 오프닝에 참가하는 짧은 여행을 했다. 헤세와 도일은 유럽에서
체류하는 동안에, 그들 자신이 유럽과 미국의 아방가르드 안에서 다양성을 지닌
이들의 중심이 되도록 했다. 이러한 혼합은 헤세가 만들어내는 형태의 표현에 근거해
창조되었고 정밀한 단계를 향해 기량을 연마하였다.

   

*untitled, 1962*

*Untitled, 1962*

* untitled, 1963*

*Untitled, 1963*

*Untitled, 1963*

*Untitled, 1963*

*Untitled, 1964*

*Untitled, 1964*

*Untitled, 1964*

*Untitled, 1964*

*Untitled, 1964*

*Untitled, 1964*

*Untitled, 1964*

*Untitled, 1964*

* LEGS OF A WALKING BALL, 1965*

*H+H, 1965*

*Oomamaboomba, 1965*

*Untitled, 1965*

*Untitled, 1965*

*Ringaround Arosie,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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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94 페미니즘미술 게릴라걸즈, 제니홀저

   

서양 미술사 - 94(페미니즘: 게릴라 걸즈, 제니 홀처)

   


게릴라 걸즈(Guerrilla Girls)


'
여성들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벌거벗어야만 하는가?
근대 미술 부분 여성 미술가들이 5%이하인데 비해 여성 누드화는 (전체
회화의 )85% 이른다.'
1980
년대부터 90년대까지 활발히 활동했던 유명 페미니스트 그룹인 '게릴라
걸즈' 이와 같이 여성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이슈를 담았던 포스터는 비단
미술계 뿐만이 아니라 여성해방운동에 있어서 사회ㆍ역사적으로 커다란 파급
효과를 주는 것이었다. 여성의 정치적 참여와 경제적 지위 향상으로 기존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독립과 평등을 외치기 시작한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조응했던 '게릴라 걸즈' 익명의 예술가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벌거벗어라'
라는 포스터는 유명한 신고전주의 화가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오달리스크'
이미지를 차용하여 누드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 위에 험악한 고릴라 가면을 씌운
것으로 이는 실제 '게릴라 걸즈' 착용하는 고릴라 가면을 의도적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미니스커트와 망사스타킹을 신고 고릴라 가면을 쓰는 게릴라 걸즈의
아이러니한 복장, 전투 유격대를 의미하는 게릴라라는 명칭과 걸즈(소녀들)라는
의미의 부조화스러운 충돌 등은 훌륭한 여성 미술가들의 재능이 부조리하게 억압
되고 폄하되었던 현실적인 상황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게릴라 걸즈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구체적으로
노출시키지 않는 것은 여성뿐만이 아니라 유색 인종, 동성연애자, 거리의 노숙자
등에 이르는 사회의 소외계층처럼 아이덴티티의 상실에 대한 호소력있는 제스
츄어였다. 게릴라 걸즈가 14년간 제작한 70여종의 포스터는 거리 곳곳에서
전쟁, 성과 인종차별, 낙태 세계 공유의 정치적 주제를 공개하고 잠자고 있는
여론을 향한 의미 있는 항변으로 사회의 타성적인 가치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조하였다. 벌거벗어야 들어갈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안의 누드 여인
, 타성과 편견에 저항하고 주체적인 가치관을 정착시키려는 소수 여인 사이
에서 과연 우리는 어디에 주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Women in America Earn Only 2/3 of What Men Earn. Women Artists Earn Only 1/3, 1985*

*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 Museum?, 1989*

*Republicans Do Believe in a Woman's Right to Control Her Own Body!, 1992*

*What to Do When Raped..., 1992*

*The Poster that Intimidated Pace Gallery into Showing a Woman Under 50, 1993*

*Cold-blooded Beast Takes Over Washington, 1995*

*Guerrilla Girls Proclaim Internet Too Pale, Too Male!, 1995*

*The Guerrilla Girls' Bedside Companion to the History of Western Art, 1998*

*The Anatomically Correct Oscar, 1999*

   

*Send a message to those body obsessed guys in Hollywood, 2000, ANTI-HOLLYWOOD STICKERS*

*The Birth of Feminism Movie Poster, 2001*

*George Bush's Letter to Santa, 2002, GEORGE HAS BEEN A GOOD BOY*

*The Schwarzenegger Shield, 2003>

*Send Estrogen Pills to the White House, 2003>

*The Trent L'Ottscar billboard: Even the U.S. Senate is More Progressive than Hollywood, 2003*

*The Guerrilla Girls' Art Museum Activity Book, 2004*

제니 홀처(Jenny Holzer: 1950 ~ )


제니 홀처는 1950 7 29 미국 오하이오의 갈리폴리스에서 태어났다.
1972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판화 회화 B.F.A. 취득하고 1975년에
프로비던스의 로드 아일랜드 미술학교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한다.
곳에서 수업하며 홀처는 그녀의 작업에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대학에서 페인팅을 전공하며 추상미술을 그렸던 제니 홀처의 관심은 공공
프로젝트와 '무엇인가 고상하면서도 인상적인 ' 추구하는데 있었다.
그리고 그런 변화와 자극을 위해 1976 뉴욕으로 간다.
뉴욕으로 이주하여 1977 휘트니 뮤지엄에서 Independent Study
Program
이수하게 된다. 그녀가 생각해 오던 명확한 표현 방식을 통한
공공(대중적) 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우며 전체 작품이 텍스트로 이루어진
번째 작품인 'Truism' 시리즈를 제작하고, 이는 종이에 프린트되어 도시
전체에 익명으로 부착되는 포스터의 형식을 가졌다.

홀처는 1982년도에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에서 수여하는 Blair
Award, 1990
년도에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수여하는 최고 파빌리온
상인 Leon d'Oro 주요 미술상을 수상하였다.
수많은 개인전 그룹전과 함께 홀처는 또한 수많은 공공 프로젝트도 만들었
는데, 중에서 1982 퍼블릭 아트 펀드에서 지원을 받았던 뉴욕 타임
스퀘어에 있는Spectacolor Board Truism 전시, 1989 MTV에서 공중파
진행된 프로젝트 등이 유명하다. 그녀는 또한 여러 권의 책도 출판하였다.

제니 홀처의 작품은 세계 주요 기관들, 뉴욕의 구겐하임 뮤지엄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 파빌리온, 런던의 The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파리의 퐁피두 센터 등에서 선보여 오고 있다.
그렇지만 제니 홀처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공공 장소에
자신의 개념을 뿌리기 위해 텍스트의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다.
1970
년대 후반 이후, 그녀는 거리나 공공 건물에서 작업하는데 풍경 속에서
그녀의 작품이 뒤섞일 있는 매체를 이용하게 된다. 뉴욕 소호 지역에 포스터
붙이는 행위와 함께 시작된 작품 'Truism' 맨하탄 전역으로 점차 포스터
붙이는 행위를 퍼트리며 우리들이 항상 대립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품고 있는
사회적 조건에 대해 깨닫도록 자극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또한 인터넷
작품 'Please change beliefs' 통해 웹의 장소성을 역설하며 공공 영역
속에서의 경험을 더욱 넓게 발전시키게 된다.
휘트니의 스터디 프로그램에서 접하게 글들을 통하면서 제니 홀처는 없이
명확하게 표현해낼 있는 방법인 '텍스트' 자신의 작업의 재료로 이용하게
된다. 제니 홀처는 그녀의 미술이 텍스트를 포스터 형식으로 인쇄하여 마치
광고지처럼 거리거리에 붙이며 작업을 전시하기도 한다. 이때 그녀의 글은 익명
으로 표기되어 '어떤 누군가' 위치에서 자신의 작업을 연구한다.
점차 그녀의 글은 포스터뿐만이 아니라, 티셔츠나 전광판을 통해 나타나게 되고
그야말로 공공 미술품으로 발전되며 불특정 다수인, 대중들에게 일상생활에서의
미술작업을 접하게 만든다. 제니 홀처의 작업의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
간단하고도 애매모호하며 냉담하다. 예를 들어, 그녀의 초기작 'Truism (판에
박힌 문구)'에서 예를 들자면, 'A man can't know what it's like to be a
mother.(
남자는 엄마가 되는 것이 어떤 건지 없다.)' 또는 'Freedom is
a luxury not a necessary.(
자유는 사치이지 필수가 아니다.)' 같은 글을
있다. 짧은 문장 또는 단락으로 구성되는 그녀만의 독특한 필체는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기도 하면서 여성적이다.
이런 묘한 느낌들이 짧은 문장 안에서 느껴질 있다는 것이 제니 홀처의 특징
이다. 최근 그녀의 작업은 차례 발전되어 다른 , 새롭고, 독특하고,
어쩌면 그녀가 추구하던 고상하면서도 인상적인 모습으로 보여 진다.
여기서 그녀의 작업이 '보여 진다'라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작업을 갤러리가 아닌
우리들이 살아 숨쉬는 생활 반경에 작품을 보여주고,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
에게 대가와 강요없이 '보여 준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의 눈에 '보여 진다'라는 의미를 확고히 나타내는 제니 홀처의 최근작은
특수 프로젝터를 통해 그녀의 글들이 건물의 외경이나, 물과 땅의 표면 환경적인
요소에 어마 어마하게 커다란 크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환경에 빛으로 씌어진 글은 시각적으로 대단한 효력을 주며 실제로 읽혀
지는 것보다 '보여 지는' 데에 강한 의미가 있는 듯이 보인다. 이를 테면, 대형
글자 프로젝트인 Xenon Projection 로마, 플로렌스, 베니스, 부에노스
아이리스 등지에서 전시되었고 환경과 어우러진 그녀의 작업-'글자들' 다른
환경을 만들며 예술 표현 방식의 독특한 표현법을 만든다.

* Xenon for Florence September 20-22, 1996*

*Bench, 1997*

*Mini Matrix ,Text:Selections from Truisms ,1977-79*

*Blue Tilt ,Text:Selection from Truisms, Inflammatory Essays,Living,Suvival,

Under a Rock,and Laments,1977-1989*

*Xenon for Venice Fondazione Cini June 9-13,1999*

*Xenon for Baltic Castle Keep, Newcastle, England October 26, 2000*

*Xenon for Paris Panthéon November 11, 2001*

* Xenon for Paris Pyramide du Louvre November 1, 2001*

*Xenon for Berlin Projection on Museumshöfe February 4, 2001*

*Xenon for Berlin Matthäikirche February 1-5, 2001*

*Red Yellow Looming, 2004, 13 double-sided electronic signs with red and amber diodes*

*Yellow Floor, 2004, 13 electronic signs with amber diodes*

* Rib Corner, 2004*

*Lambert02 Looming, 2004*

*Xenon for Bregenz Alte Pfarrkirche zum heiligen Nikolaus, Lech,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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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92 페미니즘 미술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미리엄 샤피로Miriam Schapiro

   

서양 미술사 - 92(페미니즘: 주디 시카고, 사피로)

   


36.
페미니즘(Feminism)


페미니즘(Feminism)이라는 용어는 여권 확장론, 남녀 동권론 등의 역어로
라틴어의 "Femina(여성)"에서 유래하였다.
페미니즘은 문학를 비롯한 예술, 종교, 매체 등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발생론적 차원에서 ,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함축된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단순하게 정의내릴 없는 다원주의적인 해석과 시각이 요구된다.
페미니즘은 오랜 세월 동안 남성의 부속물로 취급되어 여성의 잃어버린
주체성을 찾고 여성에 대한 사회의 고정 관념을 탈피하고 나아가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편협된 사회 가치나 개념을 부각시켜 바로잡아 올바른 사회를
확립해 가는데 목표가 있다.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은 과거의 인본주의적 페미니즘(1:19C-20C)
후기 페미니즘(2:1960-현재)으로 나누어 설명할 있다.
계몽사상과 자유사상에 입각한 과거의 인본주의적 페미니즘이 남녀평등이라는
개념으로 성별의 동질성을 주장하였던 반면, 비판과 저항정신에 입각한 후기
페미니즘은 여성의 성을 축으로 성별의 이질성을 주장하며 전개되었다.
후기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 단계의 페미니즘은 여성성에
대한 해석에 따라 '본질주의적 페미니즘(Essentialistic Feminism)' '사회
문화적 페미니즘(Sociocultural Feminism)'으로 나눌수 있다.
1기에 해당하는 초기의 페미니즘 운동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낭만적
개인주의 사상 앞에 여성과 남성은 인간 본성의 고유함을 공유하는 동등한
인간이라는 자각과 함께, 부계사회에서의 성적 불평등을 극복하고 여성의
인간적 권리를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따라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참정권과 노동권익을 위해 투쟁했으나 눈앞의
당면 문제만을 해소하려 했을뿐 여성을 억압하던 구조적 모순 자체를 진단,
변화시키지 못하고, 1930년대 초기의 한계성과 50년대의 보수 반동으로
귀결되었다. 이렇듯 초기 여권주의 혁명의 실패 원인은 부권 중심 가족제의
존속, 1920년대에 초래된 조직적 여권운동의 붕괴, 30년대의 대공황과 급진
주의 사상, 1945 이후의 전후 상황, 거기에 따른 노동운동의 형편, 마지막
으로 50년대의 일반적인 보수주의-'남편이나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
이라는 여성의 역할에 관한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을 기조로 -등으로
분석해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여성노동인구의 증가, 중산층
여성들의 자각, 시민 운동권의 성장으로 지금까지 획일적으로 전개되어
전통적인 정치이념들과 문화적 신화들에 대해 사회전반적으로 혼란이 야기
되면서, 기존의 성에 대한 관습과 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들이 흔들리기
시작, 여성운동도 혼란기의 여러 사회운동의 하나로 다시 활발해졌다.
이것이 2기의 ()페미니즘 운동으로, 남녀의 동질성을 강조하여 성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드려고 하는 초기 페미니즘의 주장에 이어 남녀동질론을 이끌어
새로운 기구의 창설, 선언문의 발표, 새로운 입법 등을 도입하여 기존 사회에
대한 대중들의 반대운동과 데모를 일으키고, 대중화된 서적과 논문 들을 출판
하면서 힘을 두드러지게 나타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 페미니즘은
남녀의 이질성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80년대 새롭게 보인 페미니즘은
여성의 성적 특성을 살려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오늘날의 미국사회의 상황은 여성의 직장 진출, 성역활의
유동화, 가족형태의 다양화, 전체적인 남녀관계의 변화 지금까지 미국
페미니스트들이 저항해 것이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한편
으로는 미국 페미니즘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그것은 인공중절,
인공수정, 포르노 그라피, 강간, 불평등 고용 등은 최근 고도 과학기술의 발달과
미국사회의 남녀 평등화로의 움직임을 배경으로 나타난 문제들이며, 본질주의적
페미니즘은 여성을 성적인 존재로 부각시켜 오히려 남성들의 성적 도구로 전락,
여성해방운동이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용되는 결과를 초래
하여,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페미니즘 미술은 1930년대에 여성 미술가들이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초기의 여성해방운동과 마찬가지로 동질성의
공간에서 출발, 여성도 남성처럼 훌륭한 화가가 있다는 차원에서 출발하고
있다. 주체는 부르주아 남편 혹은 아버지를 가진 여성들로, 그들의 작품들은
여성주의적 시각이 아닌 기존의 미학적 속에서 창작 것이다.
경제 공황기에는 많은 여성 미술가들이 정부보조로 작품활동을 하면서 사적인
성격을 벗어나 공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지만, 공황기가 지나고
사회가 다시 안정을 되찾은 1940, 50년대에는 여성은 일터에서 가정으로
되돌아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작가들은 가정과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며, 여성 작가들은 이같은 외적 조건에 반항하듯 전통을 고수하는
주류 미술에 반발하여 주제와 소재면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며 산발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페미니즘 미술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초가
되면서 본격화 되어 여성의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여성 작업장' 여성
미술가 단체들이 창단되었다. 한편, 시기의 페미니즘 작가들은 지나간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과 아울러 인종차별, 성차별, 파시즘 과잉 진압 등에 항의
하고,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남성권위가 지배하는 미술계
풍토를 풍자, 비판하며, 이제까지의 연약하고 부드럽고 모호한 여성의 이미지
탈피하여, 강인하고 명확한 여성상을 창출하며, 다양한 주제와 재료 기법
사용 주류 미술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미리엄 샤피로(Miriam
Schapiro)
있으며 그들의 작품이 나타내는 중심 이미지는 여성의 열등성을
시하는 의미를 여성의 신체와 정신의 자존심을 암시하는 의미로 바꿈으로써
성적 차이를 분명히 하고,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하려는 성적
차별성을 보였다. 1973 사피로는 "여성의 (Woman house)"이라는
전시회에서 쉐리 브로디와 함께 "인형의 (The Dollhouse)" '파마쥬
(Femmages)'
라는 추상화속에서 직물 꼴라쥬와 아크릴화를 결합시켰다.
파마쥬는 꼴라쥬, 앗상 블라쥬, 데쿠파쥬, 포토 몽타쥬 등의 온갖 활동들을
함축하는 것으로서, '여성(Female)' '이미지(Image)'라는 용어를 결합시킨
조어로, 그것은 여성만의 영역이자 가정의 소도구에 불과한 레이스, 직물, 단추
등을 작품의 소재로 이끌어내고 전통적인 여성의 기법인 꿰매고, 자르고,
수놓고, 아플리케하는 기법을 기존의 미술표현으로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직물을 예술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려는 생각은 1970년대의 우상
타파이자, 역사적으로 특정한 재료와 과정이 예우 받아온 기존의 방식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있게 도전할 있는 배경을 만들었다. 또한 이시기에는
그림을 통하여 성적 차이를 만들어내고 강조하는 방식이 많은 여성들의 작품의
중심 소재가 되어, 20세기 전위 회화에 나타난 남성우월주의에 반박하였다.
여성 미술가들은 여성의 모습을 이상 수동적이 아닌 보다 다각적이고 긍정적
모습으로 묘사하였고, 남성을 묘사하는 경우에도 여성앞에서 포즈를 취한
수동적인 남성 누드모델을 그리는 '활동적 여성 자신의 모습' 그리기도 하는
, 남성 = 강건, 용맹이라는 식의 표현에서 벗어나 여성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때로는 약하게 혹은 순진무구하게 혹은 에로틱하게 남성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70년대의 본격화된 페미니즘 미술은 80년대에 들어 바바라 크루거
(Barbara Kruger),
제니 홀져(Jenny Holzer), 신디 셔먼(Cindy Sherman)
로리 앤더슨 신세대 여성 미술가들로 이어졌다.

페미니즘 미술가들은 우선 역사적으로 여성들에게 부과되어온 역할들을 비판적
으로 분석하고 밝혀내기 위해서 상실된 여성미술가들의 역사를 회복하고 여성적
시각으로 이미지들을 재해석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미술사
교재에 나타나 있는 위계 질서, 다시 말해 유럽 북부 지역의 미술보다 이태리
르네상스를, 19세기 미국 미술보다는 19세기 프랑스 미술을, 공예보다는 순수
미술을 그리고 여성미술 보다는 남성미술을 우위에 두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남성 천재들의 일렬행진으로 보이는 미술사의 기준을 비판하고, 여성
이기에 가질수 있는 경험과 조건, 남성과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그들만의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페미니즘 미술을 발전 시키고 있다. 작품의 주제로서의
여성 이미지의 변화를 페미니즘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개념의 문제는 페미니즘 미술가들에 의해 재조명 되고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묘사하는 경우 지금까지 남성미술가들이 여성을
수동적이며 에로틱한 대상, 고통받는 희생물, 혹은 이상화된 성녀 등으로
묘사한 것과는 달리 여성 미술가들은 여러 가지 여성 역할 모델이나 여주인공
그리고 숭배나 영감의 다른 이미지로 여성 이미지를 묘사했다.
또한 여성이 남성을 묘사하는 경우에도, (기존 질서에 대한 피해의식의 보상적
형태라고도 있으나) 여성앞에서 포즈를 취한 수동적인 남성 누드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활동적인 여성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였으며, 남성=강건,
용감이라는 식의 표현에서 벗어나 여성들의 관점에서 때론 약하게 때론 순진
무구하게 때론 에로틱하게 남성을 표현했다. 따라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시야에서 남성위주의 해석으로 그려졌던 여성의 모습은 이제 단순히 관능적
형태미의 묘사 위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게 되었다.
미술 표현에 있어서 여성 미술가들은 수예, 자수, 매듭, 직조물, 구슬, 레이스,
퀼트 모든 종류의 장식물들을 그들의 작품속에 적용하기 시작, 1960년대의
미니멀 아트를 위시로 차갑고 절제된 예술형태를 거부하고 풍요로운 장식성
추상적 스타일을 소개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패턴과 장식운동"
커다란 영향을 미쳐 70년대부터 남성과 여성미술가 모두가 발전시켜, 여성들
고급 미술과 저급 수공품 사이의 구분을 없애면서 서구 미술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선두가 되어 예술운동을 이끌어 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패턴과 장식미술은 추상표현주의와 환경예술을 동시에 특징 지워주는 전면적인
감수성의 확장으로, 여성들만의 가사일에 불과하였던 다양한 소재들이 실용성과
결부되어 예술로 표현되고 결과적으로 여성들의 독창적 시각을 발굴하고 그것을
하나의 예술적 움직임으로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오늘날의 페미니즘 미술은 단순히 남성을 중심으로 주류미술의 가장자리
에서 그를 비판하고 거기에 반대되는 것만을 묘사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류에
새로운 기운울 불어넣고 반성의 기회를 만들어 주어 인간성 회복의 차원에서
서로 보조를 맞추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 대한 인습의 멍에가 벗겨지고, '여류'라는
고정관념이 언제 사라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한국의 페미니즘 미술은 1980년대 중반, 민중미술의 기반 위에서 출현하였다.
1987
9 '그림마당 '에서 개최된 그룹전을 계기로, 처음 '여성에 의한
여성미술' 구별되는 '여성주의 미술', 미술에서의 페미니즘이 공적으로
거론, 인식되었다. 1979 12 예술의 자율성과 서구의 모더니스트 사조에
대한 맹종을 거부하며, 한국의 정치 사회적 현실에 대한 발언을 예술의 목적으로
삼는 〈현실과 발언〉이 발족되고,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된 일종의 반항
예술로서 민중미술이 모습을 드러낸다.
1986
8, 〈현실과 발언〉의 동인들을 주축으로 하여 〈민족미술 협의회〉
결성되었고, 그해 12월에 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성차별 문제를 포함한다는
인식과 함께 협의회의 여성분과인 '여성미술 연구회' 발족되었다.
연구회의 성과가 바로 〈여성과 현실〉전이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화풍
으로 그려진 전시 그림들은 주로, 일하는 여성과 삶의 현장, 중산층 여성과
허위의식, 투쟁하는 여성과 사회적 병패에 관한 것으로, 성차별 문제보다는
사회적 신분으로 규정되는 여성의 삶을 통해 계급과 소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후, 작업의 현장화, 공동 제작, 실천을 모토로 하는 여성미술연구회
그림패 '둥지' 공동 제작한 대형 걸개그림을 삶의 현장에 전시하여 그들이
지향하는 삶의 예술을 구현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여성의 현실적 문제를
다루는 사회의식보다는 계층으로의 여성과 그들의 의식을 가시화 하였기
때문에, 여성주의 미술이라기보다 '민중미술', 혹은 '쟁의적 여성 미술'이라고
부르는 옳을 같다. 그러나 당시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지역성에서
자생한 의식있는 여성미술이라는 , 개인이 아닌 그룹 활동과 실천을 중시
한다는 점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미술운동이었다고 있다.
1999
9월에 여성미술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현실을 점검하는 99 여성
미술제 <팥쥐들의 행진>(9. 4~27 예술의 전당 미술관) 열렸다.
<
팥쥐들의 행진> 가부장적 시각으로 주체의식을 갖고 작업하는
여성작가들이 팥쥐로 비춰진다는 현실을 풍자한 제목이다.
역사전과 5가지의 주제전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를 통하여 21세기 역사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여성특유의 감수성·사고방식·세계관을 살펴보고
있다. 1,2부로 구성된 전시회는 우선 우리나라 여성미술의 역사를 총체적
으로 돌아보고 현황을 점검하는 최초의 대규모 페미니즘 미술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 주제전은 '21세기 팥쥐들' 발굴, 조명
하여 이들을 국제 무대에 선보일 대표선수로 개발하고자 하는 야심찬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다섯 명의 여성 큐레이터들이 상호 협의하여 도출해
주제, '여성과 감수성', '여성과 생태', '섹스와 젠더',' '제식과 놀이',
'
속의 미디어' 각각의 책임 큐레이터들에 의해 구체적인 전시회로 가시화
된다. '섹스와 젠더' 다른 소주제들을 모두 아우를 있는 페미니즘 이론의
핵심 코드이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1939~ )

*Dinner Party, 1979*

미술작업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해 보다 은유적으로 탐구해 미국의
페미니스트이다. 그녀는 여성의 성적, 신체적인 모든 기능을 나타내는
노골적인 이미지를 사용해 여성의 (Sexuality) 탐구한다
"
만약 예술이 인간의 삶과 관계된 것들을 말하는 것이라면 예술은
그때까지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인식을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미국 작가 주디 시카고가 언급한 그녀의 예술철학은 여성 미술가
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의 편애에 대한 저항 의식이 그녀를
확고한 페미니즘 작가로 탄생시키는 데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미술 세계,
나아가 사회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여성성의 부조리한 시각에 대한
깨달음이 보다 근본적인 힘이 되었다. 시카고의 가장 역량 있는 작품
'
디너 파티' 역사 속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999명의 위대한 여성들의 이름을
새겨넣고 삼각형으로 둘러싸인 테이블 위에 정찬을 차려 그들을 초대한
설치작이다. 과거 미술속에 등장하는 여성 이미지는 마녀와 뮤즈를 오가며
남성들에게는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여성들에게는 대상화된 그녀 자신들의
모습을 관조하는 매조키즘적인 성향을 띠는 것이었다.
'
디너 파티' 식탁 위에 드러난 여성의 버지나는 여성들의 억눌린 성에 대해서
자각시키고 그간 금기시 되어 성기 묘사, 단순한 포르노그라피로 폄하됐던
컨트 아트(Cunt Art) 통하여 여성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의미를 지닌다.
시카고는 '디너 파티'에서 여성들만의 것으로 생각되는 수공예적인 기법과
장식적 묘사로 아트의 키치적인 성격을 의도적으로 표출하여 사회적으로는
여성의 주체의식을 살리고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의 선을 지우려는 정치적인
속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주디 시카고는 그녀의 디너 파티에 999명의 여성들
만이 아닌 세계 많은 사람들을 기쁜 마음으로 초대하고 있다.

*Through the Flower*

미리엄 사피로(Miriam Schapiro: 1923~ )


Born in Toronto, she studied painting at colleges in New york and
Iowa. She married Paul Brach, an artist in 1946. Schapiro worked
a series of odd jobs until she became a artist full-time in 1955.
She originally painted in the Abstract Expressionist stlye.
As her commitment to feminism grew during the 1960's, she devel-
oped her own personal style which she called femmage.
Combining such commonplace elements as lace, fabric scraps,
buttons, rickrack, sequins, and tea towels she transformed them
into sophisticated compositions that often imply multiple layers of
both space and meaning. Her recent works juxtapose intricately
patterned abstract backgrounds with stylized human figures in
motion-whether falling or dancing- made of brightly colored paper.

*Mother Russia, (fan), 1994, acrylic and mized media on canvas*

*Incognito, 1987, acrylic and fabric collage on canvas*

*Floating World of Quilts, 1983, acrylic and fabric collage*

*The Poet #2, 1984, acrylic and fabric on canvas*

*Heartland, 1985, acrylic and fabric collage on canvas*

*Russian Matrix, 1994, Silkscreen, fabric collage and acrylic an canvas*

*Collaboration Series: Cluny Tapestry, 1973, acrylic and paper*

*High Steppin' Strutter I, 1985, acrylic on paper*

*Frida and Me, 1990, color lithograph, fabric and color Xerox*

*Delaunay, 1992, screenprint on custom paper*

*Goncharova, 1992, screenprint on custom paper*

*Popova, 1992, screenprint on custom paper*

*Goncharova's Peasant, 1996, acrylic and fabric*

*My History, 1997, acrylic and Xerox collage*

*Lost and Found, 1998, lithograph with color Xerox A.P. ed*

*A Thirty Year Retrospective, Works o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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