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 - 78(팝 아트: 앤디 워홀, 조지 시걸)

   

서양 미술사 - 78( 아트: 앤디 워홀, 조지 시걸)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1928
8 6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였다.  피츠버그의 카네기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52년경부터 뉴욕에서 상업 디자이너로 활약하다가 화가가 되었다.  
1962
시드니 재니스화랑에서 열린 '뉴리얼리스트전()' 출품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고 만화의 , 신문보도 사진의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
마이드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轉寫)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쳤다.
1963
년부터는 《슬립》 《엠파이어》 실험영화 제작에 힘쓰고 상업영화에
손대는가 하면 소설도 출판하는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1960년대 미국 예술계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1994 9, 호암갤러리에서 그의
팝아트전이 개최되었다.  주요저서에 1970년대의 조망》 등이 있다.

미국의 아트의 대표라면 앤디 워홀을 있는데, 그는 실크스크린이라는
대량 복제가 가능한 인쇄 방법을 이용하여 반복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는 광고의 속성을 차용한 것으로 현대의 대중 문화에 걸맞는 예술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워홀은 대중적 이미지 아니라 공포의 이미지도 사용
하는데, 예를 들어 영화 배우와 같은 유명인들, , 코카콜라병, 또는 전기의자
자동차 충돌 장면, 폭풍의 현장 등을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묘사하여 거의
임의적인 색채를 첨가함으로써 미묘한 효과를 보여준다.

워홀의 작품은 대량 생산품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며 끔직한 장면이나 유명인들
대한 반응을 마비시키는 등의 결과를 초래한다.  그는 대중적 속물주의를
정착시켰다.  특히 동어반복적 표현을 통한 작품의 유일무이성 부정, 오리지낼
리티의 부정 등은 후에 추상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나는 원래 상업미술가
시작했는데 이제 사업미술가로 마무리 하고싶다.  사업과 연관된 것은 가장
매력적인 예술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미술은 심오한 정신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오락적, 일상적 '상품'으로 취급하여 미술의 새장을 열었다.

피카소가 20세기 미술에 있어 프로메테우스였다면, 선전가·장난꾸러기·벼락
출세자였던 워홀은 그리스 신화의 목신인 판이었다.  
아트는 엄청난 상업성을 위해 미국미술의 정신성을 포기한 장르다.
1960
년대 워홀은 헐리우드의 요부들과 켐벨 수프 깡통 이미지의 야한 실크
스크린 작품들로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밝고 조약한 색채 그리고
전세계는 생산된 제품일 이라는 그의 차가운 메시지때문이다.  
모든 것이 판매를 위한 생산라인 이미지로 격하 있다면, 마릴린·엘비스·
브릴로는 모두 현금으로 전환 가능하다는 것이다.  워홀은 미술은 물론 록밴드를
지원하기도하고, 잡지 <인터뷰> 창간하기도 했으며, TV 카메오 출연하기도
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당대의 번쩍이는 네온사인 역할을 했다.
사후에도 네온사인은 쉽게 빛을 잃지 않았고 , 그의 명성은 미술계를 떠돌았다.

*A Boy for Meg, 1962*

*Beethoven*

*Birth of Venus (after Botticelli)*

*Butterfly*

*코카콜라병, 1962*

*Campbell's Soup Can*

*Campbell's Tomato Juice*

*Elvis, 1962*

다소 신비롭고 환상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3개의 이미지를 겹쳐서 나타
내었다.  스타의 화려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인물을 좋아했으며 자신도 그러한 스타가 되길
꿈꾸었다고 한다.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를 작품 속에 부각시켜 눈길을 끌고
다시 이미지들을 냉담하고 무미 건조하게 하여 거리감을 만드는 것이다.  
거리감 속에서의 자유로운 해석은 감상자의 몫이다.

* Five Deaths Eleven Times in Orange *

*Flower*

*Goethe*

*Jackie*

*Lenin*

*Mao #91*

*Marilyn, 1962*

*Four Marilyn Monroes*

*Liz, 1965*

마릴린 먼로와 마찬가지로 리즈 또한 워홀이 사랑한 스타이다.
그녀의 눈두덩과 입술에 더해진 워홀의 거친 처리 방식에 주목해 본다.  
평평하고 야한 색채로 이루어진 표현에 대해 그는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녀는 아름다우며, 색채도 아름다울 뿐이다." 라고 말하였다.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이기에 작품화 했다는 것이다.

*Ingrid Bergman, Herself*

*신사와 숙녀들, 1975*

아홉 명의 신사와 숙녀의 이미지를 단순화 시키고 변형시켜서 나열한 작품이다.  
이는 워홀이 사용하는 표현법으로 이미지들을 단편적이고 무감각하게 반복
나열함으로써 이미지 나름대로의 개성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나서 인식되는
새로운 의미들을 감상자에게 보여주는 듯하면서 감추어 버리는 것이 워홀의
전략인 것이다.

*Mickey Mouse*

2 대전 전부터 미국인에게 매우 친숙하였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생쥐라
칭해지는 미키 마우스 이미지이다.  당시 워홀은 신화라는 제목으로 파손
위기에 처한 고전 작품들을 시리즈로 제작하였다.
비너스의 탄생이나 최후의 만찬 시리즈와 같이 제작한 것으로 보아 워홀은
미국인에게 미키 마우스는 다빈치의 작품 만큼이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같다.

*Red Race Riot*

*Self-portrait*

*Troy Diptych*

*슈퍼맨, 1981*

워홀은 뽀빠이나 미키 마우스 그리고 슈퍼맨과 같이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지극히 대중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작품을 제작하곤 했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미술에 대한 개념을 극복하고자 것이다.
또한 어떻게 해서든지 여느 그림과는 다른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그래야 대중에게 어필할 있다는 그의 신념을 표현한 것이다. <>

*제인 폰다, 1982*

마릴린 먼로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 그리고 제인 폰다와
같은 헐리우드 스타들도 그의 작품 주인공이 되었다.
또한 지극히 대중적인 소재로, 지극히 대중적인 작품을 제작하여 지극히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위함이었다.  인기는 부와 명예로 연결될 있으니까.

*브룩클린 다리, 1983*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뉴욕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 부룩클린 다리이다.  
다리의 특징을 좌우의 양방향에서 잡아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한 연작
시리즈 하나 이다.  강렬한 단색을 사용해서 저녁놀로 인해 생긴 그림자
실루엣처럼 보이고 있다.  워홀은 인기를 위해 지극히 미국적인 소재로
미국민들의 호응을 꾀하였고, 대중은 그의 의도에 충분히 답해주었다.

*도날드 기념식, 1985*

미키 마우스와 함께 유명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빗자루를 들고 행진을 하는 도날드 덕의 모습이 4 거울에 비취고 있는
처럼 그려졌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거울 도날드들은 가운데 도날드가
반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다른 도날드처럼 그려져 있다.

*사과, 1985*

너무나 유명한 매킨토시 컴퓨터의 로고다.  몇몇 미술인이나 디자이너들이
이용하는 브랜드지만 반쯤 베어먹은 사과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상징이다.

*그레이스 켈리, 1987*

1954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1950년대 미국 영화계의 별이었던
여배우다.   모나코의 왕과 결혼하여 금세기 최고의 얼짱 왕자들이 탄생
되게 주역이다.  1982, 좁고 작은 나라 모나코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했지만, 여전히 미국인들에게는 그들의 조국이 탄생시킨 나라의 왕비로
기억되고 있다.

*달에서의 걸음, 1987*

1969 아폴로 11호에서 내린 루이 암스트롱이 달에 미국의 국기를 꽂고
인류로서는 처음으로 첫걸음을 내딛었던 순간이다.
"
나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진보이다" 말도 유명하다.  
장면도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깊이 박혀 그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느낄 있게 하는 사건이었다.

*베토벤, 1987*

미국의 음악가는 아니지만 베토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는 작곡가
이다.  그의 인생 만큼이나 격정적이고, 어두운 그의 음악을 많은 이들은
사랑하고 있다.  워홀은 작품을 제작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인생은 끝이 나지만 명성만큼은 베토벤처럼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랬을 것이다.

★죠지 시걸(George Segal: 1924~2000)


미국 뉴욕 출생의 조각가이다.  쿠퍼 유니언, 뉴욕대학교 등에서 수학하고
1950
년대까지 회화에 전념하였으나, A.카프로를 만나 해프닝(happening:
非演劇的·脫領域的 연극형식) 공간적 공연을 계기로 석고에 의한 인체상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현실의 인체에서 직접 본떠, 주형(鑄型)으로 실물과
닮은 모조품을 만들어 일상생활 속에 있는 환경적 오브제와 함께 전시
하였다.  1960년대 초에 주목을 대중미술의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대도시 대중의 군상(群像) 표현한 환경조각은 미국 풍경의 회화와 연계
되는 독자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순백한 석고상과 환경적 장치는 차츰
규모가 커지고, 1970년대 이후에는 색채를 가한 인체상도 제작하였다.

1960
년대 팝아트의 중심이었던 시걸은 실물크기의 석고조소 제작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로이 리히텐스타인이나 앤디 와홀이 광고, 잡지, 만화
등에서 영감을 받은 것과는 달리 일상의 하찮은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작업을 했다.  그는 미술가. 비평가 모두가 인정하는 20세기 최고의 조형
조소가, 환경미술가였다.
그의 형태들은 인체를 거의 변형시키지 않고 석고로 본뜬 것이다.
그의 작품은 지하철에서 앉아 졸거나, 매니큐어를 칠하거나, 록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일상적인 생활 중의 포즈를 제작하였다.
시걸 작품의 요점은 매우 간결하며, 유령과 같이 하얀 석고상과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선명한 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일부 작품을 실제의 사람 몸에서
석고로 직접 뜨기도 하는데, 이들 작품은 영혼이 없는 유령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석고물에 적신 무명 천조각으로 실물 모형을 감싸는 그의 제작법
조각에 거친 질감을 주고 표면의 세부를 생략함으로써 신비감과 고립감을
높여준다.  시걸의 인물들은 신비적이면서 고독함에 쌓여 있으며, 영혼이 빠져
나간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저녁식사, 1964~6*

*커튼, 1974*

*러시 아워(Rush Hour), 1983, 청동*

조지 시걸은 60년대 이래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팝아트 계열의 환경
조각가로서 실제 인물을 석고형으로 떠서 생활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상황을
재현하는 작업으로 유명해졌다.  70년대에는 신체의 일부분으로 가상적인
움직임을 표현하는 부조작품을 제작하였고, 80년대 들어서는 영역을 확장시켜
야외조각도 제작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시걸은 사회에서 소외된
비극적 일상을 표현하며 산업사회에 도사린 소외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990
년대에는 동일한 맥락하에서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
러시 아워> 출근하는 여섯 사람의 군상으로 일상의 무게를 재현한 작품이다.  
조각대 위의 전통적인 조각과 달리 작품은 실물크기로 제작되어 바닥에
직접 놓임으로써 현실감을 주며 작가의 주변인을 모델로 하여 사실감을 강조
하였다.  한편 작품표면 파티나의 풍부한 질감은 마치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회화작품을 보듯 처리되어 있다.  한발을 내딛고 걷는 사람의 모습은 이집트
미술 이래 미술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인물상의 자세로, 미술사에 대한
시걸의 관심을 엿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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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77 팝아트: 리히텐슈타인

   

서양 미술사 - 77( 아트: 리히텐슈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미국 뉴욕 출생. 아트의 대표자이다. 1960년대 미국의 대중적인 만화를
주제로 인쇄의 망점(網點:dot)까지 그려넣어 만화의 이미지를 확대한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매스미디어 방법에 준하여 묘사한
전형적인 아티스트로 평가받았다.
1970
년대가 되자 주제가 확대되어 고대 그리스의 신전건축과 정물화 등에서
부터 피카소와 레제, 그리고 미래주의 모던 아트의 명작에까지 미쳤고,
표현방법은 인쇄 미디어를 의제(擬製) 망점이나 사선이 전개되어 추상적인
구상에 접근하였다. 청동이나 철판에 에나멜로 채색한 조각도 다루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경우는 만화의 형식,주제,기법등을 그대로 사용하고 값싼
만화가 인쇄되는 제판 과정에서 생기는 망점을 세밀하게 재현하여 사물을 확대
하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그는 또한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넓은 붓자국을 만화
양식으로 변형시킨 대규모 연작을 발표하는데, 이는 추상표현주의의 과장된
표현방법을 비웃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가그리는 만화는 기성만화의 한컷을
모방한다는 것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같은 성격의 것이다.
한쪽은 실물의 제출이요, 하나는 실물의 모사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미니멀의 지우기의 행위로서 징발된 것이지만, 리히텐
쉬타인의 레디메이드는 철저하게 지우기를 거부하는 입장에서 징발된 사물들
이다. 그가 그린 만화 한컷은 미국이라는 하나의 이념을 상징하는 하나의
스틸인 것이다.

*Cowboy on Horseback, 1951*

*Indians Pursued by American Dragoons after Wimar, 1952*

*Untitled, 1960*

*Look Mickey, 1961*

*Blam, 1962*

*Takka Takka, 1962*

*Aloha, 1962*

*In the Car, 1963*

*Whaam!, 1963*

*Temple of Apollo, 1964*

*Grrrrrrrrrrr! , 1965*

*Pop. 1966*

*Modern Tapestry Cartoon, 1967*

*Modular Painting with Four Panels, #2, 1969*

*Bananas & Grapefruit #1, 1972*

*Still Life with Goldfish Bowl and Painting of a Golf Ball, 1972*

*Still Life with Glass and Peeled Lemon, 1972*

*Still Life with Silver Pitcher, 1972*

*Still Life with Crystal Bowl, 1973*

*Cubist Still Life with Playing Cards, 1974*

*Still Life with Lamp, 1976*

*Still Life with Folded Sheets, 1976*

*Go for Baroque, 1979*

*Dr. Waldmann, 1979*

*Jar and Apples, 1980*

*Landscape with Figures and Sun, 1980*

*Expressionist Head, 1980*

*Potrait, 1981*

*Yellow Apple and Red Apple, 1981*

*Paintings with Roses, 1982*

*Painting Near Window, 1983*

*Sunrise, 1984*

*Paintings:Oriental Still Life, 1984*

*Landscape with Red Roof, 1985*

*Imperfect Painting, 1986*

*Imperfect Diptych, 1987*

*Reflections: Sunday Morning, 1989*

*Reflections: Portrait of a Duck, 1989*

*Interior with Yellow Chair, 1993*

*Large Interior with Three Reflections, 1993*

*Nue with Yellow Pillow, 1994*

*Woman: Sunlight, Moonlight, 1996*

*Composition II, 1996*

*Collage for Interior with Ajax,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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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76 팝아트 - 올덴버그

   

서양 미술사 - 76( 아트: 올덴버그)


30.
아트 (Pop Art: 대중 미술)

20
세기 중반에 일어난 구상미술의 경향으로 1950년대 영국에서 전조를
보였으나 19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
하고 매스미디어와 광고 대중문화적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
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경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미술평론가
L.
앨러웨이가 1954년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아트가 비평
용어로 채택되기 이전에 아트적 징후를 상기시키는 작품이 영국에서 나타났다.
1949년부터 F. 베이컨이 작품에 사진을 활용함으로써 아트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나 베이컨은 아트와 실질적인 관련이 없으며 1954~
1955
겨울에 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공동작품 그것과 관련된 토론 가운데
아트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대중 소비문화에 대한 관심 아래 조직된 전시가 1956년에 열린
'
이것이 일이다'이며, 전시에 R. 해밀턴이 출품한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작품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아트 작품이라고 있다.

영국의 아트는 사회비판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으며 기존의 규범이나
관습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다다이즘과의 근친성을 보여준다.
영국 작가로 해밀턴을 비롯 P. 블레이크, D. 호크니, R.B. 키타이, E. 파올로치
등이 있으며, 특히 해밀턴이 바람직한 예술의 성질로 열거하고 있는 것들
예컨대 순간적, 대중적, 대량 생산적, 청년문화적, 성적(性的), 매혹적, 거대
기업적일 등은 현대 대중문화의 속성을 그대로 압축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아트의 성격은 미국적 사회환경 속에서 형성된 미술에서 구체적
으로 반영되고 있다. 미국 아트의 선배 세대인 R. 라우젠버그와 J. 존스는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각종 대중 문화적 이미지를 활용하였는데, 이들의
작업이 다다이즘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고 해서 네오 다다(Neo dada)
불려졌고, 외에 신사실주의, 신통속주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미국 아트의 대표적 작가는 A. 워홀, R. 리히텐슈타인, T. 웨셀만
C.
올덴버그, J. 로젠퀴스트 등과 서부지역의 R. 인디애너, M. 라모스,
E.
에드워드 키엔홀츠 등을 있다. 이들 가장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가가 워홀이다. 그는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대중문화의 스타나
저명인사들을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묘사하거나 임의적인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순수고급예술의 엘리티시즘을 공격하고 예술의 의미를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다.

아트는 텔레비전이나 매스 미디어, 상품 광고, 쇼윈도, 고속도로변의 빌보드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의 다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코카 콜라
만화 속의 주인공 범상하고 흔한 소재들을 미술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 위계적 구조를 불식시키고, 산업사회의
현실을 미술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다이즘에서 발원하는 ()예술의 정신을 미학화시키고
상품미학에 대한 진정한 비판적 대안의 제시보다 소비문화에 굴복한 것으로
있다.

서구사회의 모든 다른것과 마찬가지로, 대중문화는 산업혁명과 그에 뒤따른
일련의 기술혁명의 산물이다. 모든 것이 수동적으로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유행은 여러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성적
매력을 더하기 위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사회적 신분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경직된 사회구조의 꼭대기에서 시작된 유행은 점차 아래로 침투되어 내려
오면서, 그에 따라 점점 원래의 정교함과 멋진 스타일을 잃게 된다.
실로 정교함과 멋진 스타일이란 거의 같은 것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유행을 따를 엄두를 여가도 돈도 없었다. 그런데 기계가 이것을 변화시켰다.
기계와 관련해서 유행은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물건들은 이제 닳아서 없어지는 것보다 훨씬 빨리 유행에 뒤떨어져서
못쓰게 되었다. 유행을 보증하는 것은 이제 정교함이 아니라, 새로움과
충격이다. 리차드 해밀튼은 예술의 바람직한 특성을 '일시적이고 대중적이며
싸구려이고, 대량생산된 , 젊고 재치 있고, 섹시하며, 교묘하고 매력적인
동시에 대기업인 '이라고 정의했는데 모든 특성은 이미 대중적 유행의
특성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상한 미술' 반기를 들고 '저속한' 대중
문화와의 접합을 기치로 내세웠던 아트는 고도의 산업화된 1960년대
서구 대중사회의 환경을 미술 안으로 수용한 미술사조이다.
기계화되고 산업화된 현대사회의 현실은 흔히 말하듯 '이미지의 홍수' 특징
지워진다. 속에 사는 인간의 시각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 등의 매스
미디어, 상품광고, 상품이 진열된 윈도우,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이 쉴새없이
퍼부어 대는 엄청난 양의 이미지의 공세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
아트는 한마디로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다루는 미술이다.

현대사회에서 대중문화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인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대중문화'라는 개념은 자체로
단순히 긍정적이거나 또는 부정적인 개념-그렇다고 전혀 아무런 맛도 없는
그런 - 아니다. 그것은 외모, 지적수준, 재산, 사회적 지위 등과 관계없이
신문, 라디오, 잡지, 텔레비전 그리고 온갖 종류의 전시회를 통해서 누구에게나
쏟아지는 정보 홍수와 그래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취해
보려는 우리의 허영과 갈등의 상황을 웅변적으로 표현한다.
한마디로 Mass Culture로서 대중문화라는 개념은 대중교육의 전파와 대중
매체의 발전으로 엄청나게 확대된 문화시장의 존재와 함께 어떤 종류의 문화
라도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해진 현대의 문화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어빙 호우(I. Howe) 말처럼 대중문화란 우리가 아무리 경멸한다 지라도
숨을 쉬기 위해서는 누구도 벗어날 없는 우리 모두 호흡하면서 사는 문화적
대기권 같은 것이다. 이렇듯 대중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명쾌하게
제시된 경우는 아트에서이다. ' 아트' 표현법에는 유화, 조각, 꼴라쥬
판화 시각 예술의 작업들,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재료들 도상, 기법
관례적 표현의 소재로 사용했던 전문적 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된 작업들이
망라된다. 아트는 직접적으로 감지된 현실이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이나 대중
매체 가운데에서 발견되는 현실에 대한 기준의 표현방식들을 음미의 대상
으로 삼는다. 팝아티스트들이 인상주의 혹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적
작업장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난 시대의 사람들에게 의미 있었던 들판
나무, 산들을 뜻하는 것으로서의 자연이 현대 도시민들에게 와서는 거의 완전히
인공적으로 구축된 빌딩의 실내, 도로 표지판, 신호물, 포스터, 신문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등의 세계로 대치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트는 기법적인 면에서도 역시 어떠한 이미지를 대칭 또는 반복적, 연속적
으로 화면에 나열해 놓거나 실크스크린, 판화기법을 쓰며 포스터의 평면 사진
이미지를 즐겨 쓴다. 예를 들면 리히텐스타인은 작업 단계에서 한번에 그린
같이 가장함으로서 손으로 그린 회화를 기계적인 것으로 보게 만든다.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은 인쇄된 동일한 이미지에서 인쇄되거나 스텐실된
사진 등은 작업 속에서 가능한 예술가의 평면기호로써 가장 정확한 규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행위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관심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아트는 뒤샹의 기성품에서 행위의 의미를 제거하고 기성품
자체를 재생시키는데서 출발한다. 아트가 다루는 이미지의 특성을 종합해
보면, 첫째는 사회의 모든 대중이 공유하는 범속한 이미지라는 점과
둘째는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점으로 모아질 있다. 아트에 나타난
이미지는 마를린 먼로, 재클린 케네디 매스컴을 통해서 너무나 알려진
인물로부터 코카콜라, 수프 깡통 등과 같은 소비 상품, 신문에 실린 사진, 만화
등과 같이 모두가 흔해빠진 것들이다. 그것은 대중과 대중문화 예술성의
관계항이며 확대된 미의식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의식의 모멘트를 제시했다.
이렇듯 아트에 있어서 두드러진 특징은 '예술의 대중화'라는 열림 이였다.
산업사회 이후 고도로 발달된 산업문명은 인간의 물적 태도나 생활 양식을
바꾸어 놓았을 아니라 걸음 나아가서 정신적 영역 , 사고 행동
양식까지 변화를 준다. 결과 아트는 기술 혁명의 시대로 특징 지워지는
현대사회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생활양식을 새로운 시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양태의 예술을 가능케 하였으며, 생활주변에 널려있는
것들이 예술 작품화 있다는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예술의
일상화를 실현시켰다고 있다.
가운데 특히 대중잡지,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으로 대변되는 매스커뮤니
케이션 수단의 급속한 성장은 대중사회를 촉진시켰으며, 대중의 의식을 변화
시켜 대중으로 하여금 '수동화', '획일화'하게 하며, 매스미디어의 현실 도피적
내용은 감각을 상실시키며 사회적 무관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트를 만들어 문화란 이렇듯 현사회의 모든 실질적 문제처럼 산업
혁명의 산물이며 뒤를 이은 일련의 기술혁명의 소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트는 산업사회의 기계적 풍물의 표현과 생활주변의 시각적 사실들은 광범위
하게 포함하는 현실 표상의 확대를 통해 들어찬 상징적 풍경이나 인간 활동의
흔적 등을 메카닉한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 바와 같이 팝아트는 대중 속에서 발생하여 대중과 더불어 있고
대중을 그의 미학의 근원으로 삼고 있으며 그것은 매스 커뮤니케이션, 매스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대중문화로부터 그려진 것이지만 그것과 동질의 것은
결코 아니다. 작가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써 대중문화의 집단의식에 참여
하면서 그들은 반항아로서가 아니라 일상적 현실의 확인자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예술가가 일상적 사건으로 돌아왔으며 현실과의
밀접한 통합은 집단의 미학예술의 사회화에로의 발돋움을 시작한 것을 의미
한다.


클레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


스웨덴 스톡홀름 출생으로 외교관인 아버지의 권유로 도미하여 예일대학과
시카고미술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1959 최초의 개인전을 뉴욕에서
갖고, 1950 말부터 1960년대 초에 오브제(objet) 관객과 일상적 환경
속에서 전개하는 일련의 충격적인 작품을 시도하였다.
그의 조각 작품들은 석고로 형체를 본떠서 극채색(極彩色) 에나멜을 칠한
햄버거나 핫도그 등으로, 그는 식품 오브제를 모의 식품점에 전시하기도 하였다.

일상의 오브제를 거대하게 확대하여 관객의 심리에 충격을 준다든지
전기 청소기나 선풍기 등의 경질 기계제품을 부드러운 천이나 비닐로 모조한
해학적 작품을 전시하는 등의 발상은 그의 일관된 방법론이다.
1960
년대 말경부터는 오브제를 거대한 모뉴먼트로서 도시 공간에 설치하는
데생과 구상을 발표하였다.

화가라기보다는 물체를 만드는 작가로서의 클래스 올덴버그는 작품의 크기
재료, 질감에서 놀라움을 일으킨다. 주변에 흔하게 존재하지만 흥미의 대상이
아니던 햄버그, 아이스크림, 담배꽁초 일상적인 사물을 소재로 다루었다.
그러나 그는 사물들이 견고하게 만들어져 관객으로 하여금 형태의 변형이
발생하지 않는 안전한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전통적인 조각기법으로 소재들
작품화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변형이 가능한 듯한 부드러운 형태로
작품을 제작하였던 것이다. 또한 소재들을 실물 크기가 아닌 거대한 크기로
변형시켜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바라볼
일종의 괴리감에 사로 잡히게 된다. 당혹스러움은 굉장히 익은 것이면서
아주 낯선 어떤 대상을 대하고 있는 이질적인 느낌에서 파생된다.
여기에서 사물은 이상 본래의 사물일 수가 없다.
뒤샹(Marcel Duchamp) ""(Fountain)이라는 이름의 변기를 화랑으로
도입하여 작품화하였을 변기는 이상 실용적인 의미가 아닌, 제거된
낯설은 물건이 되었던 것처럼 올덴버그의 작품에서도 그러한 의미탈락의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 또한 올덴버그는 작품이 사물로서가 아니라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영역 안에 존재하는 별개의 것으로 보여지도록 기능하는 대좌를 없앰으로써
거대하게 뻥튀기된 사물이 현실공간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로 읽혀지도록 요구
하고 있다.

*모든 것이 들어있는 두개의 치즈버거, 1962*

*부드러운 타자기(soft typewriter), 1963 *

올덴버그는 사물의 크기를 비정상적으로 확대시켰을 뿐아니라 사물의 소재의
속성을 바꾸어 버리기도 했다. 그는 타자기, 변기, 공중전화 같은 일상적
용품들을 부드럽고 유동적인 소재로 제작하곤했다. 원래 딱딱한 사물이
부드러운 소재로 표현되었을 때엔 사물의 크기가 변형되었을 만큼이나
낯설고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게 된다.
올덴버그의 작품에는 이렇듯 해학과 즐거움이 초현실주의적 마술적 효과와
병행되고 있다.

*빨래집개, 1976*

*부드러운 모피의 익살들, 1963*

*녹색 숙녀화*

*부드러운 캐비넷*

   

*샤틀콕*

*아구방망이, 1977*

*스푼 다리와 체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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