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17 로코코미술 프랑스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1732~1806)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1732~1806)

프랑스의 로코코 시대화가로 <그네>(1766) 같이 섬세하고 쾌락주의적
작품으로 유명하다. 남프랑스의 그라스 출생, 파리에서 J.샤르댕에게 배우고
이어서 F.부셰에게 사사하였다.
1752
로마대상을 받고, 17561761 로마에 유학하여 G.B.P.
티에폴로의 영향을 받았다. 파리로 돌아와서는 1765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역사화도 그렸으나, 대부분 여인 ·아이의 초상, 혹은 목욕하는
여인이나 연인들을 제재로 풍속화를 즐겨 그렸으며 섬세하고 미려한 관능적
정취를 짙게 보여주었다.
동판화에도 뛰어나 부셰의 후계자로서 양식을 만들어냈다. 생활면에서도
루이 15, 16 치하의 귀족들과 친교를 맺어, 화려한 생활을 했으나
프랑스혁명 후에는 완전히 영락하여 파리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있는데, 중에서도 《음악 레슨》《목욕하는
여인들》(루브르미술관) 《그네》(런던 월레스 컬렉션) 등이 널리 알려졌다.

*Psyche showing her Sisters her Gifts from Cupid,1753*

*The Musical Contest,1754*

*Venus and Cupid,1760*

*The Bathers,1765*

프라고나르의 작품 <목욕하는 여인들> 같은 로코코 계열의 화가 부셰의
작품 <목욕하는 다이아나>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한결 에로티즘과
화려함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루벤스의 대담한 화면 구성과 색채 미학을 이어
받은 프라고나르는 유화가 지니는 자유로운 운동성을 한결 우아하게 표현할
아는 화가였는데, <목욕하는 여인들> 여인들은 모두 육감적인 몸짓과
자태가 환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젊은 여인들은 연못가에서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욕을 즐기고 있다. 서로 몸을 부둥켜안고 물장난을
치는 여인들이 있는가 하면, 화면 중간에는 마치 공중에 있는 몸짓으로
몸을 활짝 펼치는 장난스런 몸짓을 하는 여인도 있다. 연초록색의 나무들은
더욱 생명감과 젊음을 불어넣는 듯하며, 하얀 구름들이 피어나는 배경과 더불어
세밀한 묘사가 아닌 인체의 특징적인 부분만 가볍게 묘사한 것이 한결 그림을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역사화를 그리기도 했던 프라고나르는 주제 의식이 담긴 그림을 포기하고
이처럼 가볍고 즐거우며 화려한 일상의 모습을 즐겨 담았다.
그는 화면 구성상의 움직임이나 극적인 긴박감, 강렬한 빛의 효과 등의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목욕하는 여인들>이나 <그네>같은 세속적인
작품들을 즐겨 그렸다.

*Portrait of a Singer Holding a Sheet of Music,1769*

*Inspiration,1769*

*Marie-Madeleine Guimard, Dancer,1769*

*The Love Letter,1770's*

*The Reader,1770-72*

*The Confession of Love,1771*

*The Meeting,1771-73*

*The Swing,1776*

작품 <그네> 프라고나르의 가장 선정적이며 농염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전형적인 로코코 회화이다. 공원에서 밝은 분홍색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하인이 뒤에서 밀고 당겨주는 그네를 타면서 애인에게 관능적인 매력을
호소하기에 바쁜 표정이다.
1766
년에 줄리앙 백작의 주문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은, 여인과 맞은
언덕에서 여인의 속옷을 들여다보는 애인의 풍경이 화려한 밝은 색채와
함께 빛나고 있다. 여인은 발을 높이 쳐들다가 신이 벗겨져 공중에 뜨고
애인은 팔을 들어 놀라움과 기쁨을 표시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의 천사 부조상과 화면 가운데의 아기 조각상은 마치 살아있는 이들의
연애 장면을 놀라운 표정으로 쳐다 보고 있다. 하늘은 비가 구름이 잔뜩
모습이지만, 속에 매달린 그네를 타는 젊은 여인의 육감적인 몸짓은
어떠한 근심이나 걱정도 없어 보인다. 이는 사랑과 쾌락만을 좇던 당대 프랑스
상류 여인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의 구도는 화면
왼쪽으로부터 중간 오른쪽을 향해 "공간적" 형태로 꾸며져 있다.
애인의 비스듬한 자세와 여인의 , 모자, 그리고 그네줄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대각선이 그림을 가로지르며, 이들을 모두 감싸고 있는
숲속의 무성한 나무들이 밖으로 넘칠 듯한 대담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처럼 화려하고 감각적인 그림을 즐겨 그리던
프라고나르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하여 그의 그림이
모두 배척받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A Boy as Pierrot,1776-80*

*The Bolt (Le Verrou),1778*

*The Stolen Kiss,1780's*

*Fantastic Figure(Portrait of Abbe de Saint-Non)*

   

설정

트랙백

댓글

로코코 영국 레이놀즈(Sir Joshua Reynolds: 1723~1792)

조슈아 레이놀즈경(Sir Joshua Reynolds: 1723~1792>

T.
게인즈버러와 함께 영국 로코코 대표적인 화가다.
플리머스 근교 출생, 17411742 런던에서 초상화가 T.허드슨에게
사사하고, 17461749년경에는 이미 고향에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17491752 이탈리아로 유학,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코레조나 베네치아파() 대가들의 모사에 힘쓰고, 고전 작가들의 기교에
대해 연구하였다. 귀국 런던에서 살면서 루벤스 등의 기법도 섭취,
다이크의 아류가 만연하는 영국 미술계에 새로운 초상화 스타일과 기법을
확립시켰다. T.게인즈버러와 나란히 당대 굴지의 화가로 꼽혔으나, 기법
에서는 물론 화단적 세력에서도 압도적이어서 18세기 후반의 영국 미술계에
1인자로서 군림하였다. 1768 로열 아카데미가 창설되자 초대
위원장이 되고, 이어서 기사작위를 받고 1784 궁정화가가 되었다.
또한 아카데미에서의 강연은 뛰어난 '미술론'으로서 다대한 영향을 끼쳤다.
각계의 명사 ·숙녀의 초상화를 수없이 그리는 동시에 S.존슨 등의 문학자
들과도 친교를 맺어, 초상화 장르 화가들의 지위 향상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아름다운 색채와 명암의 교묘한 대비에 뛰어나고, 장중하며
우아하였다. 그러나 그의 초상은 곧잘 신화 ·전설상의 영웅 ·여신들로 꾸며져
화면의 남성은 언제나 고귀하고 용감하며 여성은 우아하고 아름답게 그려졌다.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초상을 즐겨 그렸는데 여기서도 순진성의 과장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다. 결국 장식 과잉이기는 하나 끝내 기교를 존중한
아카데미션이었던 셈이다.

*The Children of Edward Hollen Cruttenden*

*Nelly O'Brien,1762*

*George Clive and his Family with an Indian Maid,1765*

*Lady Cockburn and her Three Eldest Sons,1773*

*Lady Elizabeth Delmé and her Children,1777-80*

*Colonel St.Leger,1778*

*Portrait of Admiral Viscount Keppel,1780*

*Colonel George K. H. Coussmaker, Grenadier Guards,1782*

*Admiral Sir Edward Hughes,1786*

*Lady Sunderlin,1786*

*Master Hare,1788-89*

*Francis Rawdon-Hastings,1789*

설정

트랙백

댓글

로코코 영국 게인즈버러(Gainsborough, Thomas:1727~1788)

게인즈버러(Gainsborough, Thomas:1727~1788)


18
세기 영국의 화가 게인즈버러는 서포크주() 서드베리 출생.
런던에서 그림을 배우고 풍경화에 관심을 가졌으나 초상화가로 데뷔하였다.  
레이놀즈와 함께 당대 영국 화단의 권위자였으며 음악 애호가였다.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영국 풍경화의 개척자로서 갖는 의의는 한결
크다.  빛과 색의 회화적 처리에 의해 컨스터블 등과 함께 19세기 풍경화의
선구자로 간주되고 있다.  초상화에서는 다이크의 영향을 받아 라이벌이던
레이놀즈의 냉정한 통찰에 입각한 성격묘사와는 대조적으로, 모델의 성격을
정서적으로 파악하여 유연한 광선 밑에 생겨나는 명암조와 우아한 색조로
표현하였다.  평생 풍경화를 계속 그렸으며 만년에 취재차 시골을 방문할 틈이
없을 때에는 탁상에 놓아둔 나뭇가지나 작은 돌을 보며 풍경화를 그릴 정도로
정열을 쏟았다.  그의 풍경화는 자연에 대한 애정 표현으로 19세기 풍경화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1767 레이놀즈와 함께 로열 아카데미 창립에 참여
하였으나, 아카데미와의 관계가 항상 원활하지 못하여 자택을 작품
발표회장으로 삼았다.

*The Linley Sisters  (Mrs Sheridan and Mrs Tickell),1722*

*공원의 풍속화, 토머스 게인즈버러,174647*

<공원의 풍속화> 등장하는 쌍의 커플은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해진 바로는 남자는 화가 게인즈보로를, 여자는 1746년에 그와
결혼한 마가레트를 표현했다고 한다.   작품은 결혼한 부부의 회상이라는
독특한 주제가 담겨 있어,  여느 회화 작품과는 다른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게인즈보로는 20세의 젊은 시절 영국으로 건너갔는데, 그림은 바로 시기에
완성된 것이다.   작품에서 그는 장르적 특징, 특히 풍속화에 관한 그의 회화
양식 가지를 접목시키고 있다.   번째로는 기품 있고 고귀하게 풍경을
묘사해낸 것이며, 번째로는 그라블로의 스타일처럼 조각을 새겨 표현한
같이 정확하고 세밀한 인물 초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대담하고 실험적인 기법으로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당시 영국에서 유행
했던 풍경화의 사실적이고 낭만적인 양식들이 첨가되어 더욱 뛰어난 풍속화들로
태어날 있었다.

*Mr and Mrs Andrews, 1748-49*

*Mrs. Philip Thicknesse,1759~60>

*The Artist's Daughters with a Cat, 1759-61*

*Mary, Countess Howe, 1764*

*Portrait of Henrietta Vernon

(Lady Grosvenor, wife of Richard, first Earl Grosvenor),1766-67 *

*The Blue Boy,1770*

*Portrait of a Lady in Blue,1770's*

*The Honorable Mrs. Graham,1775-77*

*Johann Christian Bach,1776*

*The Hon. Frances Duncombe,1777*

*Mrs Grace Dalrymple Elliot, 1778*

*Johann Christian Fischer, 1780*

*Mrs. Peter William Baker,1781*

*Mrs Sarah Siddons, 1785*

*Mr and Mrs William Hallett ('The Morning Walk'), 1785*

*Self-Portrait, 1787*

   

설정

트랙백

댓글

서양미술사16 로코코미술 프랑스 샤르뎅

   

샤르댕 (Jean-Baptiste Siemon Chardin 1699 ~ 1779)

18
세기 귀족풍의 몽상적 세계가 퇴조하고 보통사람들의 에피소드를 그리기
시작한 샤르댕은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손꼽힌다.
평범한 아름다움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과 공간 질서에 대한 명쾌한 감각을
보여주는 샤르댕은 풍속화가인 동시에 정물화가였다.
<
주방정물>에서 보듯이 그가 그린 대상은 꾸밈없는 일상적인 것이었으며
그는 존경에 가까운 마음으로 이를 떠받들고 있다.
그는 눈에 띄는 효과나 날카로운 비유를 추구하지 않고 가정적인 정경의 시정을
느껴 화폭에 담았으며 신중하게 구사된 색조의 미묘한 농담의 변화와 꾸밈없어
보이는 화면 구성을 하였다.

18
세기 프랑스는 얼굴을 지닌다.  화려한 대저택에서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잔잔한 일상에 묻혀 사는 서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가들은 귀족들의 사치와 풍요로움을 화폭에 담아 내는데
주력했다.  샤르댕은 18세기 로코코 양식의 화가이면서도 소재 면에서 다른
화가들과 엄격히 다른 세계를 추구했다.  귀족들의 호사스러움에 휩쓸려 다녔던
당대의 화가들과 달리 그는 시민계급을 대표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함을
모티브로 한다.   샤르댕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일상성은 그의 삶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아카데미 출신의 화가가 아닌, 직공의 아들이라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당시 시민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체험했고, 이를 통해
로코코의 화려함보다는 풍속화와 정물화로 자연스럽게 화풍의 변화를 가져갔다.  
당시 3계급으로 치부 당했던 시민들의 모습은 엄격한 교육과 합리적인 생활
검소한 생활 등으로 요약된다.  샤르댕은 이들의 삶을 자신의 화폭 위에 재현해
냈다.  그의 작품들은 정물화의 시초라고 있는 네덜란드 보다 단계
앞선 수준의 것들이었다.  이같은 정물화의 경험을 토대로 샤르댕은  후에
인물을 그릴 때에도 정물을 그리듯이 표현해 냄으로써생명감을 부여하기 위한
빛의 활용이 매우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샤르댕의 세계는 18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술품 수집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었던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와 정물화였다.  따라서 파리 살롱전에 전시된 샤르댕의 그림은 소재나
규모가 특출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찬사를 받게 되었다.
샤르댕의 꼼꼼한 장인 정신은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도 눈에 띄었다.
화면에 쏟아 넣은 그의 조형적인 수단은 완벽에 가까웠다.  정물과 색채의
완벽한 조화, 그곳에는 아무것도 과장되지 않은 통일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묵묵함은 그를 동시대 최고의 거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작품에 흐르는
묵묵함과 어두움이 그의 신분 이었기는 하나 이면에 흐르는 일상을 통한
따뜻한 휴머니티 또한 같은 경험적 토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통해 부활한 휴머니티와 생명력은 움직이지 않는 정물들로 하여금
마치 숨을 쉬고 있는 살아 있는 표정을 부여한다.
샤르댕의 눈에 포착된 사물들은 항상 그의 손에 닿으며 정신과 하나로 합쳐진다.  
따라서 그가 그려낸 정물들은 하나 하나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는 무생물이
아니라, 겸손한 인생을 가꾸어 나갔던 샤르댕의삶 속에 자리잡았던 것이다.
정물화의 본질이 손이 닿는 물건의 촉각적인 공간이라고 이해했을
샤르댕의 정물화가 갖는 의미는 바로 사물에 대해 가족과도 같은 끈끈한
정신적 공감이다.  샤르댕은 손에 온기를 담았다.
그럼으로써 주위의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없는 소중한 것으로 이들은 자리
잡았다.  나아가 이것들은 생명성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았고, 내성화의
깊이를 통한 참다운 존재로 발전하게 된다.
샤르댕은 고집스러운 화가였다. 다른 어떤 사람들의 말보다도 오직 자신이
원하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찾아 생각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명예나 출세와 거리가 멀었다.  샤르댕은 아카데미를 거치지
않았고, 따라서 예술가로서의 직위를 얻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따라서 그에겐
항상 가정적인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었다.  참을성 있게
착실하고 열정적인 태도로 샤르댕은 그림에 몰두했다.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도 주저하지 않았다.  드로잉도 없이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 자연의
생명력을 캔버스 위에 재현해 나갔다.  정성들인 그의 물감은 아름다운 광택을
발했고, 중간 톤의 색조는 점잖고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세밀한 관찰을 통한 섬세하기 그지없는 빛의 표현은 샤르댕 정물화의 최고
정수라 만하다.

*The Ray(홍어),1728*

샤르댕은 로코코의 경쾌함과 피상적인 터치와는 다른 소박하면서도 경건한
세계를 지향하였다.  샤르댕은 1728년에 정물과 동물화 부분의 왕립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는데, <홍어> 이때 아카데미에 출품한 작품이다.  
털을 세운 고양이와 미끈한 홍어, 그리고 도자기와 식탁보와 같은 다양한
물건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은 물론 정물화가로서의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겠다.  그러나 그가 그린 것은 세브르산 도자기나, 은식기가
아니라 검소한 중산층 가정의 부엌 한켠에서 쉽게 있는 물건들이었다.  
이러한 부엌의 가재도구와 식기들은 동시에 청교도적인 검소함과 노동을
상징한다.  샤르댕이 즐겨 다루었던 소박한 물건들과 가정의 풍경은 마치 로코코
시대 궁정과 귀족들의 지나친 향유에 대한 해독제처럼 느껴진다.

*The Buffet,1728*

*The Silver Tureen,1728*

*A "Lean Diet" with Cooking Utensils,1731*

*The Young Schoolmistress,1736*

*장터에서의 귀가,1739*

샤르댕은 일반적으로 정물화를 가장 저급한 장르로 평가하는 전통과 편견에
맞서, 젊은 시절부터 위대한 화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초기 작품에 속하는 정물화가 전시된 , 1728 왕립 아카데미는 전통과
편견을 깨고 샤르댕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작품 <장터에서의 귀가> 샤르댕의 몇몇 다른 작품들과 함께 1739
루브르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이때 그는 중산계층의 매우 통속적인 생활을
제재로 하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하고 있었다.
1881
콩쿠르는 "샤르댕의 예술은 그가 사랑하는 자신의 세계 안에서만
창조된다. 그리고 그는 그저 자신을 감동시키는 것만을 끈질기게 그린다."라고
비평했다.   그림은 시장에서 장을 보고 부엌으로 들어와 장바구니를 정리
하려는 여인의 모습을 담담하고 편안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평범한 옷차림을 여인의 미소 얼굴, 손에는 가지고 물건들이 담긴
보따리가 들려 있고, 다른 손은 책상에 얹은 덩어리에 놓여 있다.  
18
세기 프랑스의 일반 시민들이 사는 생활의 단면이 유쾌하면서도 밝게
묘사된 작품에서 당시의 풍속을 흥미롭게 발견할 있게 된다.
작품을 포함해서 샤르댕이 루브르에 출품한 작품들은 19세기 사실주의를
앞서 예견한 듯한 자유로운 묘사가 표현되었는데, 샤르댕의 회화는 당시
아카데미 화단에서는 이탈을 것처럼 보이지만 르냉이나 쿠르베로 이어지는
프랑스로 사실주의로 절묘하게 연결되는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Girl Peeling Vegetables*

*Girl with Racket and Shuttlecock, 1740*

*식전의 감사 기도, 1740*

샤르댕은 평생 정물화와 가정을 배경으로 풍속화 장르에 매진하였다.  
풍성하고 부유한 가정보다는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을 담아낸 그의 장르화는
일상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가장 전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온화한 정서들은 결코 의도적으로 고안된 인위적인
감정이 아니며, 화가 자신의 정직함과 통찰력, 서민에 대한 공감의 산물이다
샤르댕은 작품에서도 이제 식사 기도를 드리려는 가정의 어머니와
딸을 그렸다.  실내의 차분한 빛과 부드러운 색채 속에서 식사에 앞서 식전
기도를 드리려는 조용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세밀하게 그려진 되는
식기들과 함께 뒷벽의 선반에 놓인 변변치 않은 가재 도구들, 어머니의 수수한
옷차림은 소박한 가정의 모습 그대로이다.  어머니와 아이는 아직 어려서
낮은 의자에 앉아 있는 막내를 주시하면서,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것을 가르치고 있다.
작품은 본래 루이 15세의 컬렉션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왔다.
평생 로코코풍의 화려한 궁정 양식을 선호했던 루이 15세의 취향을 생각할
작품이 왕실 소장품이었던 것은 이채로운 일이다.

*흡연실,1737*

18세기 프랑스 화단에서 샤르댕의 정물화는 매우 신기하고 이단적인 존재였다.
그는 병풍이나 문에나 그렸을 소재들을 그린다고 샤르댕을 비난하던 당시
프랑스 아카데미화단에 대한 강한 저항을 보이면서 이런 주제를 끈질기게
추구했다.   그림은 테이블이 그려내는 선들이 그림 하단에 수평으로 받치고
있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비교적 안정된 구도를 가지고 있다.
개봉된 담배상자에는 몇가지의 소품들이 끝부분만 드러내고 있으며
담뱃대가 담배상자 왼쪽에 살짝 걸쳐있다.  오른쪽으로는 물병과 , 유리잔
등이 배열되어 있는데, 오래된 물건들에서 만져지는 투박하고 엷은 질감의
효과를 보이는 색채혼합은 평범한 소재를 하나의 따뜻한 풍경으로 상승시키고
있다.  샤르댕의 후원자들 중에 하나인 디드로는 샤르댕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의 마술은 참으로 포착하기 어렵다.  여러 겹으로 묻힌
그림물감의 효과가 최후에 가서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정교사,1938*

18세기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온화한 가르침과 격려를 통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이끌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에밀』과 같은 교육서를 썼던
루소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그는 가정에서 생활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녀의
양육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샤르댕은 장르화를 통해, 중산층의 노동과 함께 교육에 관한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아이의 가정교사는 학교에 가는 것도 잊고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를 꾸짖어 타이르고 있다.  흐트러진 아이의 놀잇감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보모의 정리된 바느질 바구니와 대비된다.  
그렇지만 아이의 뒤편으로 열려진 문은 보모가 손질해준 모자를 쓰고 학교에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나태함에 대한 계몽적인 경계의 메시지가 분명하다.

*비누방울,1739*

제법 크게 불어진 비누 방울을 바라보는 소년의 표정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조바심 속에서도 서서히 입김을 불어넣는 일을 계속한다.
놀이 속에는 긴장감과 일상에 대한 뛰어난 묘사가 표현되어 있다.
샤르댕은 비누 방울을 주제로 그림을 작품 외에도 그렸으며
작품은 중에서도 조형미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Boy Playing with Cards,1740*

*The Copper Cistern,1733*

*Still-Life with Jar of Olives,1760*

*'La Brioche' (Cake),1763*

*Self-Portrait, 1771, Pastel *

  

설정

트랙백

댓글

서양미술사15 로코코미술:바토((Watteau, Jean-Antoine:1684~1721), 부셰(Francois Boucher: 1703~1770)

   

6. 로코코 미술(Rococo Art: 왕실 중심의 동적인 18세기 미술 양식)

17
세기의 바로크 미술과 18세기 후반의 신고전주의 미술 사이에 유행한
유럽의 미술양식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도 퍼져나갔다. 로코코라는 말은
프랑스어의 로카유(rocaille)에서 유래한다. 본래는 당시 귀족사회의 생활을
미화하기 위하여 고안된 장식양식 내지 공예품에 대하여 쓰인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시대의 프랑스 미술, 나아가서는 유럽미술 전반에 걸친 양식
개념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어원에서 오는 조소적(嘲笑的)
의미는 불식되고, 독자적인 형식감정과 이에 부응하는 창조적이며 자율적인
가치를 가진 미술 양식으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로코코는 그에
앞서는 바로크 미술이 즐겨 쓰던 부정형(不定形)이나 유동적인 조형요소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바로크의 연장 변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바로크가 지녔던 충만한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따위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유희적 정조로 바뀌었는데, 다시 말하면
바로크가 남성적, 의지적(意志的)임에 비하여 로코코는 여성적, 감각적이라고
있다.

18
세기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과 산업은 인간의 실제 생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현실세계에 대한 낙관하였고 내세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실에서 행복과 향락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18
세기 미술활동의 무대는 교회와 왕실이었지만 중상주의 정책의 결과
부르조아지가 등장하면서 살롱(Salon) 미술활동의 새로운 무대로
등장하였다. 부르조아지들은 바로크의 묵직한 미감 대신에 상쾌함을, 지적인
구성 대신에 감각적인 관능을 중시했다.
18
세기초 자유스럽고 향락적인 인간 감정이 존중되기 시작한 풍토 속에서
만들어진 미술이 로코코 미술(Rococco Art)이다.
로코코 미술가들은 귀족의 연애와 우아한 연희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로코코 미술은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로 나아갔다.
시대는 회화가 번성한 시대이기도 하였다. 단지 귀족들만이 아니라
서민층에도 회화 취미가 침투하여 전람회(살롱) 통하여 화가와 대중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미술평론이라는 새로운 장르도 나타났다. 엄격한 데생을 주장하는
푸생파(구파) 색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루벤스파(신파) 대립을 거쳐
무렵에는 이미 신파의 승리가 결정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경쾌한 필치와 풍요한
색채에 의한 화려한 구도와 정서적인 표현방식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신파 외에 베네치아파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색채와 함께 풍속화의 양식도
유입되어 사실적 표현이 애용되었다.

와토(Watteau, Jean-Antoine:1684~1721)


로코코 미술의 창시자중 한사람으로, 전원극 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희극에서 사교계의 풍속을 그대로 옮겨 그려 여기에 시적인 해석을 가해
<
우아한 잔치> 불리어지는 로코코의 대표적인 그림 제목을 만들어 내었다.
현실적 감각과 몽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사랑스런 화풍이 특징이다.
프랑스 발랑시엔 출생이다. 1702 파리로 나와 당시 그랑드 오페라극장의
장식화가였던 C.질로에게 배우고 이어 장식화가 C.오드랑의 조수가 되어, 주로
인물사생과 희극배우들을 스케치했다. 오드랑은 당시 뤽상부르궁의 어용화가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의 접촉으로 궁전에 있는 루벤스나 플랑드르계
명화를 접하고 감화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16세기 베네치아파에서도
영향을 받아, 점차 로코코회화의 창시자로서의 작풍을 확립해 나갔다.
17
왕립아카데미 정회원이 기념으로 그린 《시테섬으로의 출범》(루브르
미술관 소장)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그림 속에는 와토 예술의 특색이
나타나 있다. 그는 당시 베르사유궁전을 중심으로 꽃핀 화려한 왕조문화의
궁전풍속을 비롯하여 주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던, 밝고 우아하며
어딘지 모르게 관능적인 매력을 풍기는 풍속이나 취미에 적합한 작풍을 전개
하여 '아연'으로 불리는 로코코회화 특유의 테마와 정서를 확립해 가고 있었다.
자연관찰에 착실하였으며,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다른 로코코 화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없는 풍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육체적으로 연약했던 와토는 일찍부터
폐병을 앓아 20 요양차 런던에 갔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다시 파리에 되돌아
왔다. 그런 와중에서도 친구 제르생이 화상을 시작하였을 , 가게의 간판
그림으로 평생의 걸작 《제르생의 간판》(베를린 샤를로템부르크궁 소장)
그리기까지 하였다. 그림을 완성하고 얼마 가서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18세기의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The Embarkation for Cythera,1717*

와토가 1717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작품으로, 루벤스의 <사랑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18세기 새로운
로코코 미술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개방적이며 곡선이 주조를 이룬 화면 구성, 밝은 색채, 행복감과 노스탤지어를
함께 불러 일으키는 전체 분위기는 18세기 프랑스 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림은 펠로폰네소스의 남쪽 해안에 위치해 있고, 비너스 여신을
섬기는 성전이 있는 시테르 섬을 향해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고전적 주제에 인물들의 의상은 당시 18세기 현대적인 의상으로
묘사된 것이 또한 특징적이다. 화려하게 치장한 세련된 젊은 남녀들이 사랑과
쾌락의 시테르를 향해 한결같이 들떠 있거나 아쉬워하는 기색이 그림에
역력하다. 와토는 행복은 본질적으로 덧없는 것이란 의식을 그의 작품 주제로
즐겨 사용했다. 그림에서 순례자들은 산과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풍만한
가슴을 지닌 여신상과 큐피드에 둘러싸여 서로 짝짓기를 하거나 아름다운 풍경
아래 사랑과 쾌락의 술에 젖어 있다. 그리고 이런 유희가 끝난 낙원을 떠나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서글픔도 보여지고 있다. 이처럼 와토는 그림에서
괴로운 현실 세계를 벗어난 이상향에의 꿈을 사랑과 쾌락이라는 주제로 소화
시키면서, 베네치아 화풍과 루벤스의 밝은 색채를 사용하여 뛰어나게 재현해
내고 있다.

*파리스의 심판,1718*

루키아노의 "신들의 대화" 20권에 기록된 파리스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져놓고 황금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자가 나를 소유하라"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헤라, 아테나, 아프로
디테 등의 여신이 사과를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다가, 헤르메스의 안내에
따라 목동 파리스에게 미의 판결을 받게 된다. 특히 루벤스 같은 화가는
<
파리스의 심판> 관한 주제를 다룬 그림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그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와토의 <파리스의 심판> 루벤스의 그림과는 달리, 작은
크기의 화폭에 구성 또한 차별화되고 있다. 그림은 화상 제르생의 간판의
배경에 나타나는 하나의 그림을 위한 습작이라는 설이 있는데 <제르생의 간판>
왼편에 그려진 뒷모습의 부인의 모델로서 전라의 여인이 묘사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가는 목과 어깨 자그마한 머리 등은 와토의 다른
여성상에서도 있는 와토적 취향의 것이다. 색채를 두고 때에도
<
화살을 빼앗긴 큐피드> 연결되는 진주색의 투명한 채색법 또는 청록색의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주제 자체를 두고 <파리스의 심판>
정경이 어떠한 시적 발상에 의한 것인지, 또는 우의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길이 없다. 방패를 들고 있는 이는 헤르메스이고, 사과를 들고 있는
이는 파리스이며 뒷모습이 아름답게 묘사된 여신은 명뿐이어서 여신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림의 제목이 말해주듯 "파리스의
심판" 와토풍으로 재현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Les Charmes de la vie (The Delights of Life),1718*

*Gilles(Pierrot),1718*

와토의 그림에는 우울한 주제가 담긴 작품들이 많이 있다.
후에 들라크루아에게 영향을 주었던 멜랑콜리(우수) 원초적이며
현실 삶의 고단함을 인물에 그대로 투영시키면서, 인물보다는 환상적인
배경을 통해 생의 허무함이 더욱 강화되는 극적인 대비 효과가 나타난다.
작품 <피에로>에서는 직업상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도 슬픔을 속으로
삼켜야 하는 피에로의 슬픔이 묻어나고 있다. 거의 등신대로 그려진
작품은 "회화 예술의 정점, 인간 정신의 가장 빛나는 표현의 하나"라고까지
극찬되고 있는 놀라운 작품이다. 질르는 흰옷을 걸친 어릿광대의 모습으로
때묻지 않은 천진 소박한 인물로 무대에 등장한다. 작품에 그려진 질르의
모델이 누구이며 또한 배경을 이루는 몇몇 인물들, 특히 당나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수한 해석이 존재한다. 이제까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예를 들면 깜찍한 아가씨무용수, 어린이, 피에로, 아를캥
나아가서 , 등은 모두 와토 자신의 극중 인물들이었다.
따라서 질르의 천진함과 소박함, 방심한 자신을 방어할 아무런 능력도 없는
같은 순진무구함 생에 지치고 힘겨워하는 모습 등은 힘든 삶을 살다가
37
살에 폐병에 걸려 죽은 와토 자신의 모습이라고 추측해 있다.

*Pilgrimage to Cythera,1719*

*Plaisirs d'amour(The Pleasures of Love),1719*

*Reunion en plein air(Meeting in the Open Air),1719*

*Voulez-vous triompher des Belles?

(Do You Want to Succeed with Women?),1720*

*Sous un habit de Mezzetin(In Mezzetin's Costume,1720-21*

*Gersaint's Shopsign,1721*

   

   

   

부셰(Francois Boucher: 1703~1770)


프랑스 파리 출생. 한때 F.르무안에게 사사하였으나, A.와토에게서 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1723 왕립미술원에서 회화대상을 받고 1727
이탈리아로 당시 이탈리아 최대의 장식화가인 G.티에폴로를 연구한
귀국하여 1734 아카데미 회원, 1765년에는 회장이 되었는데 그동안
궁정화가로서 루이 15세의 2부인인 퐁파두르부인의 총애를 받아 화단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취재하여 요염한 여신의 모습을 그렸고
귀족이나 상류계급의 우아한 풍속과 애정장면을 즐겨 그려, 프랑스 로코코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뛰어난 장식적 재능을 발휘하여 고블랭공장을 위해
많은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을 그리고, 삽화나 만화 분야에서도 다채로운 활동을
하였다.

*Venus Demanding Arms from Vulcan for Aeneas, 1732*

*The Rape of Europa, 1732-34*

*Rinaldo and Armida,1734*

* The Afternoon Meal,1739*

*The Birth of Venus, 1740*

*Leda and the Swan,1741*

*Diana Leaving her Bath,1742*

로코코 미술을 이끌어가던 선두 화가로는 와토가 있었으며, 그를 뒤이어
프랑수아 부셰에 이르러 로코코 미술은 더욱 화려한 회화 양식을 빛내게
되었다. 작품 <목욕하는 다이아나> 부셰의 회화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그림이라 있다.
빛과 매력이 가득 환희에 넘치는 배경에, 여인이 이제 목욕을 마치고
숲가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목욕 전에 사냥을 죽은 새들이
화면 오른쪽에 있고, 화살통이며 사냥개들이 죽은 사냥감과 좌우 대칭을 이루며
왼쪽에 배치되어 있다. 몸을 만지고 있는 여인의 벗은 몸은 눈부시게 화려한
색채와 빛으로 관능적으로 빛난다. 성숙한 여인과 사냥이라는 소재가 하나의
화폭에 담겨있는 풍경은 상류 사회의 사치스런 취미와 쾌락을 즐기던 당시의
풍속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랑과 쾌락, 신화의 에로틱한 이야기들을
차용해서 화려한 그림을 그리던 부셰를 뒤이어 프라고나르에 이르면, 프랑스
로코코 미술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Diana's Return from the Hunt,1745*

*A Summer Pastoral, 1749*

*An Autumn Pastoral, 1749*

*The Toilet of Venus,1751*

*Venus Consoling Love,1751*

*Nude on a Sofa (Reclining Girl),1752*

*The Odalisk, 1753*

* The Visit of Venus to Vulcan ,1754*

*The Marquise de Pompadour,1756*

*Portrait of Marquise de Pompadour, 1759*

*Shepherd and Shepherdess Reposing, 1761*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