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83 극사실주의 클로스 외

   

서양 미술사 - 83(극사실주의: 클로스 )

   


34.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 Hyperrealism: 1960년대 후반)

1960
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회화와 조각의 새로운 경향을 말하며
슈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 ·라디칼리얼리즘 ·샤포포커스리얼리즘 ·
포토아트라고도 한다. 같은 시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시도된 비슷한
경향의 미술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처럼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며
아무 뜻없이 장소 ·친구 ·가족 등이 다루어진다.
또한 감광제(感光劑) 캔버스에 발라 직접 프린트하는 경우도 있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리얼리즘으로, 특히 아트의 강력한 영향
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따라서 극사실주의는 아트와 같이 매일매일의 생활
우리 눈앞에 항상 있는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만, 한편 아트와는
달리 아주 억제된 것이어서 아무런 코멘트 없이 세계를 현상 그대로만
취급한다. 그러나 감정이 배제된 기계적으로 확대된 화면의 효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가 육안으로는 알아낼 없는 추악함, 이를테면 모발에
가려진 점이나 미세한 흉터까지도 부각되어, 보통이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현상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잔혹한 인상을 받게 한다.

극사실주의는 미국적인 즉물주의(卽物主義) 낳은 미술사조라고도
있지만, 종래의 추상미술과 사진 자체에 대한 아이러니의 표현이라고도
있다. 세밀한 묘사, 마술적 리얼리즘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였던 극단적인
사실주의의 하나로 간주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자연주의가 아니라 극도의 사실표현을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으로서, 사실주의의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진기의 눈이 포착한 영상은 사실인 것이 확실하지만 그것도 결국 실물로부터
떨어져서 자립한 일종의 허구일 따름이다. 물론 이러한 허구는 새로운 현실
있다. 카메라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줄 있다는 인간 시각의 위위성의
회복, 증발된 주제를 되살리고 소재를 일상성에서 생활 자체로 확대시켜, 과학
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인간 자신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되살리려는
노력, 그러면서도 화면은 어디까지나 평면성을 유지하며 작가의 표현에 의한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 우리앞에 놓여진 객관적 실재의 작품을 보여주려는
수퍼리얼리스트의 노력은 , 결국 사람들에게 '사물을 보는 다른 보다 나은
방법' 보여주려 하는 듯하다.
작가로는 작품제작에 슬라이드를 직접 ·간접으로 이용하는 C. 클로스
H.
캐노비츠, M. 몰리 등과 사진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자연의 풍경이나 모델만
대상으로 하는 P. 펄슈타인, S. 틸림 등이 있다.

클로즈(Chuck Close: 1940~ )


1940
미국 워싱턴주 먼로에서 출생하였다. 대표적인 극사실주의 초상화가
이다. 1964 예일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추상표현주의
양식의 그림을 그렸으나 후에는 극사실주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정면 얼굴을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그린 초상화로 유명하다.
초기에는 흑백으로 그림을 그렸으나 1970 무렵부터는 다양한 색채를 사용
하였다. 작품의 소재로는 주로 주변인물의 얼굴을 다루었다. 작업은 대상의
사진을 찍어 격자무늬의 구획으로 나눈 뒤자신의 주관을 배제하고 극히 사실적
으로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1988
척추혈관이 손상되어 하반신이 마비되었으나 이후 작품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68 자신의 얼굴을 그린 높이 3m짜리
《자화상》과 동료 미술가인 J.쿠커를 모델로 《조》 《마크》 등이 있다.

*자화상*

*레슬리, 1973*

*마크, 1978~79*

리처드 에스테스(Richard Estes:1936~ )

미국의 극사실주의 화가이며 1936 일리노이주 키워니에서 출생하였다.
가능한 순수하게 사물을 묘사하는 극사실주의의 대표적 화가이다.
1952
1956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에서 공부하였다.
1959
년부터 뉴욕에 머무르며 판화제작에 힘을 기울였고, 1966년부터 전업
화가로 활동하였다. 1968 뉴욕 앨런스턴 갤러리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열었으며 1960년대 말부터 극사실주의 분야를 이끄는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작품 초기에는 인물을 중심소재로 하였지만 1967 무렵부터는 건물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활동을 하였다. 흔히 있는 거리풍경을 묘사한
작품이 많은데, 어느 장면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찍고 각각의 사진들을
캔버스 위에 다양하게 투시하여 채색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표현하였다.
아크릴물감과 붓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79 발표한
《솔로몬 R.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 이밖에 세밀한 스크린 프린팅 기법을
사용한 판화 작품도 제작하였다.

*크로싱거 제과점*

필립 펄스타인(Philip Pearlstein: 1924~ )

1924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출생했다. 카네기공과대학
에서 공부했으며, 뉴욕대학교에서 예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대 사실주의 유파의 가장 중요하고 혁신적인 작가 사람이다.
회화작업 사진이나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포토리얼리즘을 연상
시킬 정도로 사실성을 생명력 넘치는 누드화를 즐겨 그렸다.
그림의 대상들은 독단적인 절단과 거친 명암을 통해 비인간화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특성은 《등나무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모델 Model
Seated on a Rocking Rattan Lounge
(1984) 나타나 있다.
리얼리즘을 다시 한번 생명력 넘치는 예술로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
펄스타인은 밀워키 아트 뮤지엄이 1983년에 기획한 회고전을 열었으며
곁들여 그의 기성 작품들의 가지 주제로 전시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에 《녹색 기모노를 입은 모델 Model in Green Kimono
(1979)
등이 있다.

*Mr and Mrs Edmund Pillsbury, 1973*

*Two Models on a Kilim Rug with Mirror,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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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80 키네틱아트 칼더, 팅겔리, 아감

   

서양 미술사 - 80(키네틱 아트: 칼더, 팅겔리, 아감)

   


32.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움직이는 예술)


1960
년대에 성행한 움직이는 예술작품으로 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넣은 예술작품으로 작품 속에 움직임을 표현하거나
아트와 같이 시각적 변화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작품은 거의 조각 형태이며 이러한 경향은 미래파나 다다의 예술운동에서
파생된 것이다. 최초의 작품은 1913 M.뒤샹이 자전거 바퀴를 써서 제작한
《모빌》이고, 이후 프랑스의 N. 셰페르, 스위스의 J. 팅겔리 등이 우수한
작품을 만들었다. 1922년에는 N. 가보가 《키네틱스크랩처》라는 작품을
발표하였고, 이러한 일군(一群) 움직이는 작품을 L. 모호이 노디는 키네틱
아트라 불렀다. 61 스톡홀름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예술에 있어서 움직이
"전시회는 키네틱아트의 "황금의 60년대" 예고하는 것이었으며 미술계
에서 공용어로 정착된 것도 이때였다.
옵아트 다음에 키네틱 아트가 뒤따랐는데, 키네틱 아트의 작품은 공기의 유동
이나 기계로 움직이도록 설치된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때때로 움직임들은
벽이나 스크린에 광선을 반영시킴으로서 효과를 얻기도 하는데, 관람자들이
기계를 작동시키도록 하기도 했다. 이것으로 미술에서 관객의 참여가 더욱
촉진되었고, 퍼포먼스, 해프닝이 미술작품으로 제시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키네틱 아트의 모든 것은 다다의 오브제와 카바레 퍼포먼스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여러측면에서 즐거움을 주는 움직이는 미술의 한가지
창안물은 '모빌'이다. A. 칼더의 일군의 모빌이나 J. 팅겔리의 기계조각 등이
유명하다.

키네틱 아트는 1955 파리 드니즈 르네 화랑에서 열린 <움직임>전과
선언문을 계기로 하나의 집단적 경향으로 확립되기 시작하여 60년대에 비로소
키네틱 아트라는 풍부한 내용의 미술양식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1965
뉴욕 현대 미술관의 <반응하는 >, 1967 파리 시립현대미술관
에서 열린 <빛과 움직임> 많은 국제전이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개최
되었다. 키네틱 아트는 1972 영국 에딘버러에서 열린 <키네틱아트
국제전> 고비로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1960년대의 , 움직임, 소리로
대표되던 키네틱 아트의 미학적 요소에 의한 구성 대신에, , 안개, 연기,
생물적 요소를 포함하는 일종의 생태학적 방법론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
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비디오
아트, 레이저 아트, 홀로그래피 등의 첨단적 기술로 접근해 가는 미술가들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변모에서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기계 장치의
운동에 역점을 두었던 키네틱 아트가 1920년에서 1960년까지로 종말을
고하고, 기계의 운동 자체보다는 영향에 의한 여러 가지 효과와 결과에
주안점을 두는 키네틱 아트로 옮겨간 것이다. 키네틱 아트는 이제 '움직이는
환경' 이라는 현대 사회의 도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미술과 사회 또는 미술과 생활의 접근이라는 의미로 종종 해석되고 있다.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


움직이는 조각 '모빌(mobile)' 창시자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알렉산더 칼더는 20세기 조각사의 중요한 획을 그으며 현대미술의 특성을
더욱 확장시킨 중요한 인물이었다.
미국 펜실바니아 출신의 칼더는 이미 어릴 적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아
스스로 도구나 장난감을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였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알려진 조각가이고 어머니 또한 화가
였던 집안 분위기 속에서 25세의 나이로 뉴욕의 아트스튜던트 리그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1927
친구들과 서커스 모형 공연을 열어 파리의 서커스 평론가들로부터
열광적인 평을 받은 칼더는 철사 조각으로 재미있고 다양한 표현을 보여주게
되었다. 조각가로서 칼더는 자신이 공학도로서 배웠던 기술을 적용하여 기계를
이용하여 초기의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는 20세기 유럽의 주류
화단에서 성행하였던 기계에 대한 찬미를 보여준 미래주의와 각종 산업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어낸 구성주의에서도 영향을 찾아볼 있다.

1932
마르셀 뒤샹의 제안으로 이름 붙여진 '모빌(mobile)' 크게
가지 형식을 가지는데 천장에 매다는 모빌(ceiling-hung mobile) 바닥에
고정된 하부와 움직이는 구조물이 결합된 모빌(standing mobile) 그것이다.
또한 아르프에 의해 이름 붙여진 스테빌(stabile) 완전히 고정된 구조물
로서 여러 조각의 다른 형태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있다. 칼더의 작업에는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원리가 작용하고
있으나 시각적인 효과에서는 생태적이고 유기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다.
이는 자연물에서 모티브를 모빌의 형태들에서 기인하다 있다.
칼더의 조각은 나뭇잎, 수련, 곤충, 공룡, , 강아지, 치즈 각종 다양한 생물
무생물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여기에는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와
농담도 섞여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공공장소에 배치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즐기도록 하였고 유기적이고 자연스러운 형태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있는 대중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미술교육
직접 참여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몬드리안의 회화를 움직이게 하고 싶다."
라는 희망을 가졌던 칼더의 작품 속에서는 몬드리안이 즐겨 쓰던 색의 삼원색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원색의 배치들은 작품에 경쾌함을 더해주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가 후기에 주로 쓰던 빨강색은 그가 만들어
내는 형태를 더욱 강조해주며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가 만들어낸 모빌에서 생성되는 우연한 움직임은 공간 속에서 자유로운
드로잉을 만들어낸다. 칼더의 모빌은 선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평면적이지
않다. 이러한 조합은 3차원의 입체를 만들어내며, 움직임이라는 요소가 더해져
4
차원 개념인 시간이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하게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정지된 조각의 전통적인 개념을 벗어나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공간의 개념을 뛰어넘는, 잠재된 공간으로의 연속적이고
쉬지 않는 변화와 확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연성과 즉흥성, 그리고 인간적인 따뜻함에 기반한 작가로서 칼더는 작품의
생명력을 더욱 심도 있게 전달해 주고 있다.

*새우잡는 올가미와 물고기 꼬리, 1939*

*작은거미, 1940*

* Untitled, 1945*

*Otarie (Sea Lion), 1945*

*The Beetle, 1948*

*Untitled, 1950*

*White Dots on Red and Blue, 1951*

*Yellow Disc, 1953*

*Untitled, 1960*

*구부러진 붉은 꼬리, 1970*

*Untitled (Bird), 1970*

* Untitled, 1973*

*The Poof, 1973*

*La Grosse Tete, 1976*

*Sampan-Se, 1976*

*Double K, 1976*

팅겔리(Jean Tinguly: 1925~1991)


스위스의 키네틱 아트 신사실주의 작가이며 풍자적인 기계미술 작가로
유명하다. 클레와 미로, 뒤샹의 다다이즘에 크게 매료되어 기계문명 시대를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주로 제작하였다.
특히 관객이 작품에 참여하도록 그의 작품은 예술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 평가된다. 1945 바젤디자인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부터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초기에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추상화계열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러다가 새로운 전자시대를 예감하고 동력을 이용해 제작한
금속 조각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 기계의 순기능과 역기능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특히 1960 뉴욕
근대미술관 정원에서 전시한 <뉴욕찬가> 선풍기, 피아노, 자전거, 인쇄기
폐물을 모아 이것들을 기묘하게 조립, 움직이는 것은 물론 불을 내뿜기도 하고
요란한 소리까지 내다가 결국은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것은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키네틱 아트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그의 작품은 대부분 작품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요소가 첨가된
조각형식을 취했는데, <뉴욕찬가> 외에 빛과 운동이 일체화된 작품 <발루바
Blauba>1959
많은 작품이 남아있다.
1991
사망하였는데, 스위스 바젤에는 그의 이름을 팅겔리박물관이 있다.

*Blauba, 1959*

*Jean Tinguly & Niki de Saint-Palle - 스트라빈스키 분수(퐁피두 센터 ),1983*

아감(Yaacov Agam: 1928~)


이스라엘 출신의 프랑스 화가·조각가이며 1928 이스라엘의 리종 레지옹
(Rizhon LeZion)
에서 태어났다. 예루살렘 사벨 미술학교와 취리히 기드온
미술학교에서 배웠으며, 1951년부터 파리에 정착하였다.
키네틱 아트(Kinetic Art) 대표자로서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와 색이 달라
지도록 하여 변형의 회화를 만들어냈다. 1955 프랑스 파리의 〈운동〉전에
참가한 이후 많은 국제전에 출품하였으며,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
하기도 하였다. 건축과 결부된 작품도 많다. 주요 작품으로 예루살렘 국회
의사당 천장에 설치된 《야곱의 사다리》(1964), 《평화의 메시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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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79 옵티컬아트 : 바자렐리, 라일리

   

서양 미술사 - 79(옵티컬 아트: 바자렐리, 라일리)


31.
옵티컬 아트(Optical Art, 아트: 시각적인 미술)


1960
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추상미술의 동향으로 아트의 상업주의나
상징성에 대한 반동적 성격을 띄고 있다.
아트는 미술품의 관념적인 향수를 거부하고 순수하게 시각적으로 작품을
제작하고자 했으며, 다이나믹한 ··움직임의 가능성을 추구한다.
아트는 크게 나누어 가지 계열이 있다.
빛의 공간으로서의 키네틱한 아트와 평면상에서 구성하는 회화적인
아트가 그것이다. 아트는 아트와 같이 시사적인 자극이라든가 정서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과도하게 지적이고 조직적이어서 차가운 느낌을
준다. 아트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가능한 방법으로 시각적 영역을 확대
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비재현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아트는 눈의 착각에 의한 시각을 절대화하며 눈을 제약한다.
인상파 이래, 감각적인 것에 치우쳤던 예술로 이는 단순히 시각적인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효과' 부심하고 있는 것이라고 있다.

옵아트란 용어는 1965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회 '감응하는
The Responsive Eye'
이후 <타임>지에서 처음 쓰였다.
아트가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정착하게 것은 1965 뉴욕 현대 미술관
에서 열린 '응답하는 눈전' 계기로 해서였다.
윌리엄 사이츠가 주최했던 전시회에서는 여러 가지의 표현 방법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출품되었는데, 기본적으로는 시각적인 착각에 따라 일어나는 색채상의
또는 조형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회화작품과 시점의 이동 또는 작품의 변동에
따라 일어나는 조형상의 변화를 추구한 조각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시회 출품작들은 평행선이나 바둑판 무늬, 동심원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의 화면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명도가 같은 보색을 병렬시켜 색채의 긴장
상태를 유발했다. 결과 관람자는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고
부분을 오래 바라볼 없게 된다.

아트는 아트와는 달리 사상이나 정서와는 무관하게 원근법상의 착시나
색채의 장력(張力) 통하여 순수한 시각상의 효과를 추구한다.
그리고 ··형태를 통하여 3차원적인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나치게 지적이고 조직적이며 차가운 느낌을 준다.
때문에 아트는 인문과학보다는 자연과학에 가까운 예술이다.
옵아트는 당시 디자인계나 패션계에 영향을 끼쳤으나 사고와 정서를 배제한
계산된 예술로서 일반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오로지 시선, 시각에만 의존하는 순수예술이며 세잔의 후예들이다.

아트의 선구자는 몬드리안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있다.
아트의 시조는 몬드리안으로 있으나, 아트의 발전을 이룩한
사람은 빅토르 바자렐리이다. 그의 대작 <직녀성> 사각형을 형성하는
선을 구부려뜨려 거대한 서양식 장기판과도 같다.
그러나 선의 구부러뜨림은 그림 전체와 관련하여 아주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고 각각의 사각형은 수축과 팽창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크기를 조절
하여 가장 사각형은 가장 작은 사각형의 10배가 넘는다.
또한 요제프 알버스는 단순히 기하학적 형태 사이의 미묘한 색채관계에 기초를
작품을 발표했다. 브리지트 라일리와 빅토르 바자렐리 등의 유럽화가들은
후기 색채주의 경향을 선택하였다. 물결치는 선들과 기하학적 모양 그리고
눈부신 조화를 사용하여 제작하는 것이다.
이미지와 바탕과의 관계는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들은 오직 시각의 분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처럼 보이는데
총체적인 와해로는 이끌지 않으면서, 대신 이미지들을 다시 우리 눈앞에
형성시킨다.



빅토르 바자렐리 (Vicor Vasarely: 1908~1997)


헝가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아트 화가 바자렐리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선에
의한 착시효과를 나타내는 '키네티시즘'에서부터, 아트, 공공건축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활동을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가이다.
부다페스트에서 모흘리 나기로부터 바우하우스 전통의 교육을 받은 그는
1903
헝가리를 떠나 파리에 정착한다. 부다페스트 바우하우스에서 구성
주의를 시작으로 점차 기하학적인 추상예술에 관심을 가졌다.
파리에서는 처음에 생계를 위해 상업예술가로 활동하였으나,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나갔다. 드니즈 르네와 함께 디자인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1930
년대 동안 그는 구성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며, 1940년대에 이르러
기하학적 형태와 그에 상호작용하는 생기 넘치는 색으로 특징 지어지는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나오게 되었다.
그의 스타일은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에 이르러 더욱 성숙하였다.
이때 그는 밝고, 역동적인 색을 사용하여 시각적인 환각을 통한 움직임의
형태를 표현하였다.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가장 독창적인 실천가이자 이론가이기도
바자렐리는 엄격한 구성에 의한 기하학적인 추상을 추구하였으며 수학적으로
면밀히 계산된 조형을 표현하였다. 그는 단조로운 도형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부분의 미묘한 변화와 착란에 의하여 화면에 생생한 움직임을 주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인 모호성과 분산을 느끼게 하였다. 바자렐리는 수학적으로
계산된 기하학적 형태를 생생한 색채로 구성, 착시로 인한 시각효과와 움직임
느끼게 하는 화려한 양식을 확립하여 아트의 창시자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많은 회화와 데생 구성은 대부분 순전한 흑백으로 되어있다.
그것은 거대한 서양식 장기판인데, 규칙성은 사각형을 형성하고 있는 선을
구부려뜨림으로써 깨뜨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구성단위의 일람표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을 충분히 전달해 주지 않는다.
표준이 되고 있는 사각형의 크기는 그림 전체의 크기와의 관련하여 신중하게
선택되어 있으므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림을 흑색 사각형을 대각선
으로 이루어진 그물 모양에 이어지게끔 관람자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각형 중의 다수는 일그러져 있으며 크기는 상당히 다르며
가장 것은 가장 작은 것의 10 배가 넘는다.
결과로, 아무리 멀리서 바라보아도 우리의 눈은 모순된 데이터를 받아
들인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화면의 일부를 대각선에 의해 그리고 다른
부분을 수평선과 수직선에 의해 읽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은 사실상 우리에게 앞뒤로 움직일 것을 강요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움직이면 화면 자체가 늘어나고 휘청거리고 수축되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직녀성> 삼차원의 대상이라면 우리가 그것에 대응
하여 움직이는 경우에 관찰되는 효과의 다양성은 한층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나 경우에 우리는 각각의 눈에 따라 모순된 데이터의 상이한
결합을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Tridem-K*

*Feny*

*Cheyt-M*

*Vega-Kontosh*

*직녀성, 1969*>

*Vonal Ksz*

*Dell-3*

*Vega-Zett-2*

*AXO-77*

*Tampico - 1953*

*Togonne*

*Koskar*

*Ollo - 1988*

*Vega-Bi-Arct*

*Xexa-Domb*

*Zebegen*

*Untitled XLV - Gruen*

*Planetary*

*Enigmes IV - 1974*

*Progression 1 8 Blatt*

*Progression 2 8 Blatt*

*Progression 3 8 Blatt*

라일리(Bridget Riley: 1931~ )


런던출생 영국의 화가. 골드스미스미술학교와 왕립미술학교를 나왔다.
1960
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개시하여, 1965 뉴욕근대미술관에서
열린 <감응하는 The Responsive Eye> 전람회에 출품하여 아트의
대표작가로서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다.
처음에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작은 세모꼴의 배열과 줄무늬 모양의 곡선으로
보는 사람의 눈에 파도치는 것처럼 보이게 시각효과를 추구하였으나
1967
년경부터는 색채도 대담하게 쓰기 시작했다.
대표작에는 <흐름> 등이 있다.

*Cantus Firmus - 1972-1973*

*Fall(폭포)*

*Movement in Squares serigraph*

*Nataraja*

*Achaian (serigraph)*

*Blaze 4 seri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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