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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87 개념미술: 키엔홀츠(Edward Kienholz),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AH101 2012. 2. 17.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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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 87(개념미술: 키엔홀츠, 코수스)

   


37.
개념미술(Conceptual Art: 1970년대)


미니멀 아트 이후의 현대미술의 경향으로 있으나 특정한 미술운동
이라기 보다는 1960년대말 활동배경이 다른 여러 작가들이 모여 생겨난
하나의 경향이라고 있다.
사진 또는 도표로 나타내는 문서 등을 수단으로 종래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외면하고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미술적 제작 태도를 가리킨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동유럽권을 포함해서
북미·남미·오스트레일리아 일본에까지 확산되어 있다. 맥락은 예술의
'
최소한' 강조하는 미니멀 아트의 논리적 귀결에서 찾을 있다.
또한 네오다다이즘이나 플럭스(flux) 파문을 일으켰던 1960년을 전후하여
여러 기존형식을 파괴하는 일련의 운동과 함께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하였다.

그러나 개념미술의 선구자는 M.뒤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13
미술가의 역할에 대하여 "물질을 교묘하게 치장하는데 있지 않고 미의 고찰을
위한 선택에 있다" 정의를 내렸다. 이것이야말로 개념미술의 근본적인
미학이다. 뒤샹은 《레디 메이디:Ready-made》와 이후의 작품들을
통하여 형식과 기교 회화의 낭만성을 버리고 평범한 대상물과 사상쪽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동향은 예술 일반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결과적으로 그는 아무런 미술작품도 제작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그는 생활 자체가 미술이요, 조형활동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관점에서 그는 이미 미술가들이 창조자로서의 존재에서 밀려나와서
연출자나 제조자로 빠져 들어갈 함정을 예견하였던 것이다. 뒤샹의 작품은
1960
년대 말기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미국의 신진 개념미술작가들이
계속 추구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다. 개념미술의 다른 원류는 다다이즘
에서 찾아볼 있다.

1 세계대전 이후 정신적인 갈등과 혼매(昏昧)에서 탄생한 다다이즘은
허무주의적인 내용과 반미술적인 형식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과 흡사한 1960년대의 정신적인 고갈에서 많은 젊은 미술가들은
반물질적인 태도로 작품을 만들었다. ,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은
조형예술을 추구하였다. 산업적으로 조립된 회화와 조각은 미술에서 점차적
으로 '손재주' 제거 당하는 구체적인 증거로 나타났다. 복잡한 형태가 허물어
지는 당연한 귀결로서 나온 것이 바로 미니멀 아트였다. 그러다가 여기에서
걸음 나아가 미술작품 자체를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새로운 바람이 개념
미술이다. 물질적 대상에서 심리적 이미지로 옮겨간 비약적인 변천이고
내용은 보통 사진이나 문서, 상투적 문구 또는 일상적인 산문뿐만 아니라
때때로 작가들의 공식적인 서명을 수단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어떤 비평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변천된 사항은 미술을 문학으로 대체
하려는 같은 인상마저 풍기는 것이다.

개념미술의 대표적 작가인 J.코주드는 사전의 낱말풀이를 그대로 신문에 실어
작품으로 발표하였고, D. 후에불러는 《지속적인 단편들》이란 명칭으로
작품을 내놓았는데, 이것은 지도와 도면에 기록을 남긴 것이다.
특히 개념미술은 상품으로서의 작품을 거부함으로써 미술작품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을 약화시켰다. 이것은 수집가 ·미술가 전통적인 미술작품에 적용하는
모든 가치기준을 거부하는 공격의 화살이다. 따라서 미술가들은 자신을 장인
(
匠人) 아니라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거의 모든 사물을 미술
작품으로 제시하게 한다. 그들의 주제는 일반적인 것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것도 포용한다. 사소하거나 심오한 , 사실이거나 추상적인 어느 것도
가리지 않는다. 한정된 주제와 꾸며낸 조형이 아니라 가능성의 전달을 의도
한다. 따라서 작품은 조형물의 결과에서가 아니라 거기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은
미술가의 관념에서 우러나온 가치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감상자는 메티에(mtier:전문적 또는 특이한 기법) ·마티에르(matire) 부정한
작품 또는 작품의 흔적을 대하면서거기에서 작가가 추구한 과정 또는 관념을
찾아야 한다. 개념미술은 추상표현주의로 대표되는 Modernism 의의를
제기했다. 실제 개념미술의 효과는 예술 내에서만 있고, 대중적 효과는 미비
하였다. 사회문화와 대중미술을 연계한 방향의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 1927~1994)


에드워드 키엔홀츠는 1927 Washington Fairfield 에서 태어났다.
자라서 목장경영을 하거나 목동이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농장생활에서
그는 기계를 만지는 기술과 목수로서의 훈련을 습득하게 된다.
동부 워싱턴 교육대학에서 수학하고 짧게 스포케인에 있는 Whitworth
College
에서 수학하지만 공식적인 미술수업을 받을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는 벌이를 위해서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게 된다. 정신병원의 간호사로, 댄스
밴드의 매니저로 그리고 중고차 딜러로 일했으며 연회주선 담당자, 데코레이터
진공청소기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다양한 직업편력은 그의 작업에
다양한 형태로 반영되어 나타나게 된다. 1953년에 그는 로스엔젤레스로 이사를
오게 되며 1954 로스엔젤레스의 릴리프 제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1956년까지 제작되던 릴리프 작업은 서서히 더욱
뚜렷한 3차원 작업으로의 진행을 암시하는 것이었다고 있다.
작품활동의 초기부터 그러했던 키엔홀츠 특유의 거칠고 야만적인 어법은 그의
작품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간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는 것이어서 지속적인 센세이션을 몰고 다니게 된다.
1972
사진 저널리스트인 그의 다섯 번째 부인인 Nancy Reddin Kienholz
만나고 동료로서 조력자로서 공동작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독일과 미국의
스튜디오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94 10, 그는 아이다호의 Hope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John Doe, 1959*

*History as a Planter, 1961*

*The Illegal Operation, 1962*

*Back Seat Dodge '38, 1964*

*The Birthday, 1964*

*The State Hospital (EXTERIOR), 1966*

*The State Hospital (INTERIOR) , 1966*

작품은 에드워드 키엔홀츠의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작품은 병동의 침상에 누워 있는 노쇠한 환자와 아래칸에 묶여있는
벌거벗은 노인의 신체로 구성되어 있다. 정신적인 생명력을 완전히
박탈당한 노인은 가혹한 육체적 변화의 희생자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의 몸은 탈색된 가죽으로 덮인 뼈다귀에 불과하며 그의 머리는 금붕어가
떠다니는 유리 어항으로 변해있다. 극도로 사실적으로 처리된 무시
무시한(개인의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장면은 심지어 냄새까지 풍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실제로 작품은 로스엔젤레스 미술관에 전시되었을
때는 속을 뒤짚는 듯한 병원 냄새가 나게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침대 윗칸에 설치된 인물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인물은 아래칸에 있는 인물을 거의 똑같이 복제한 것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만화에서 사용되는 말풍선속에 갇혀 있는
점으로 보아서 윗칸의 인물은 마음속의 이미지를 보여 준다고 말할 있다고
하겠다. 결국 윗칸의 인물은 아래칸에 누운 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 있을것이다. 말풍선이라는 추상적인 형태와
은유적인 의미를 지닌 어항의 등장은 장면이 표방하는 사실주의 정신에
비해 다분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고
있는 이러한 장치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할 뿐만 아니라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키엔홀츠가 이용한 수단은 아트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의 목적은
그리스 시대의 비극이 지향했던 바와 같다고 하겠다. 현대적인 생활의 저변에
은폐된 비참한 현실에 대면하여 키엔홀츠만큼 진실한 증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The Portable War Memorial, 1968*

*Sollie 17, 1979-80*

*To Mourn a Dead Horse, 1989*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1945~ )


미국의 개념미술가로 1945 1 31 오하이오주 털리도에서 출생하였다.
1955
62 털리도박물관 디자인스쿨에서 공부한 1963 클리블랜드
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파리로 가서 유럽 여러 나라와 북아프리카를
여행하였다. 1965 뉴욕으로 이주하여 1967년까지 비주얼아트스쿨에서
공부하였다. 196575년까지 L.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철학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67 노멀아트미술관을 창립하여 개인전을
열었다. 1968년부터 비주얼아트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7576
잡지 《폭스 The Fox》를 편집하였고, 197778 Marxist Perspec-
tives
》의 미술편집자로 활동하였다.
초기 작품에는 어떤 사전적 의미를 두지 않았으나, 1965 이후에는 작품의
기본적 요소로 언어를 중시하였다. 언어 역시 초기에는 백과사전적 정의를
분석하는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철학적이거나 심리학적인 텍스트로 폭을
넓혔다. 논문 〈철학 이후의 미술 Art After Philosophy(1969) 썼고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 One and three Chairs(1965), 《네온 전광
문자》(1966), 《흑과 White and Black(1966), Zero and
Not
(1986), 《무제 Untitled(1997) 등의 작품이 있다.

*하나 그리고 개의 의자, 1965*

예술작품이 상품이 되고 그에 따라 가격의 거품화가 심해져갔다.
그렇게 되면 돈이 있는 사람들만 예술작품을 소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품으로서의 예술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행해진다.
결코 없는 것을 예술로 제작하는 것이다.
개념미술(Concept or Conceptual Art) 대지미술(Environmental,
Earth, or Land Art)
이러한 경향을 대표한다.
작품도 없는 예술인 개념미술이다. 개념미술의 작품인
뒤샹의 '' 유명세 때문에 비싼 값에 팔렸다고는 하지만 보통 개념
미술은 관객에게 개념을 제시하고 생각하게 하는 미술이지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기에 의자의 세가지 재현물이 있다.
언어적 재현물(언어적 정의), 실제 자체, 이미지 재현물(사진)이다.
언어학자이자 구조주의자인 소시르는 언어를 기표와 기의라는 기호적
관계로 이해했는데,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 관계이면서 일대일로 대응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후기 구조주의자인 자끄 데리다는
기표와 기의 간의 일대일 대응 관계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의미가 지연
되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사전에 나온 의자와 실제 의자가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다고 것이다. 의자라는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
사람이 앉기 위한 도구'라고 나온다.
여기에서 사람, 앉다, 도구 등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며, 이러한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따라서 의미는 확정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지연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던한 상태이다.
또한 의자를 앉는다는 의미와 연관시킬 것인지, 가구라는 의미와 연관
시킬 것인지 등은 관객에 따라 다양하게 연상할 것이다.
작품의 의미가 작가가 아니라 관객에게 놓여있는 것이다.

*Sigla, Finnegans Wake, 1998*

과거의 벽화들이 종교 역사 신화 일화 등을 주제로 장식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현대에 들어와서는 건축물의 기능성이나, 주거공간에 적합한
실용적 요구에 부합되는 벽화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이는 미술과 , 회화와 건축, 장식성과 기능성의 결합으로 해석될 있다.
벽면은 단순히 작품이 걸리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벽자체가 작품의
배경이자 도구인 동시에 존재의 근원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는 기존의 회화 캔버스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3차원 공간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는 현대미술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Sigla, Finnegans Wake,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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