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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88 개념미술: 솔 르윗, 차학경

AH101 2012. 2. 17.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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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 88(개념미술: 르윗, 차학경)

   


르윗(Sol Lewitt: 1928~ )


현대미술사에 획을 그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거장이다.
미국 코네티컷 하트포드에서 러시아계 유태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시라큐스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했으며, 1960년대 로버트 맨골드
Robert Mangold,
플래빈Dan Flavin 미니멀리즘 작가들과 교류
하면서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된 객관적이고 단순한 회화를 주창하며
기존 회화에 반기를 들었다. 또한 작가는 아이디어만을 제공하고, 실제 작업은
조수들이 하는 "개념미술" 선보이면서 작가가 직접 작업하는 것이 작품
이라는 기존 회화의 정설 또한 뒤집어 엎었다.
1951
6.25전쟁 중에 한국에서 일년간 근무하면서 포스터 제작을 포함한
선무작업에 동원되기도 했다. 1967 <개념미술에 대하여>에서 "개념미술에
있어서 관념과 개념은 작품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모든 계획과 결정이 먼저
내려지며 제작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일이다. 관념은 미술을 만들어 내는
기계가 된다" 말하였다.

*ABCD 5, 1968*

*Horizontal Colour Bands and Vertical Colour Bands I, 1991*

*Irregular Wavy Bands, 1996*

기하학적 곡선을 보여준다. 르윗의 작품에는 기하학과 수학의 원리가
동원된다. 무질서하게 그려진 같지만, 여기에는 작가의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아이디어가 담겨있다. 직사각형 캔버스위에 1cm간격으로 입방면체
계속 배열해 나간다든지, 다양한 곡선을 엇갈리게 배치한뒤 삼원색을 그려
넣는 식이다. 미니멀리즘 계열의 작가들은 작가의 감정을 배재하기 위해
작품의 재료를 시장에서 있는 공산품으로 사용하는데, 위의 르윗의
회화도 흔히 포스터물감이라고 부르는 과슈물감으로 이용해 그렸다.
르윗은 과정에서 작가는 아이디어만 제공하고실제 작업은 조수들이 하는
개념미술을 선보였다.

*Concentric Irregular Bands*

*Cube-Circle 4*

*Stars (7-pointed), 1996*

*Untitled Structure, 1997*

*Maquette for Irregular Progression (High) No. 7 (Vertical Blocks), 1998*

*Arcs and Bands in Colors (A-F), 1999*

*Arcs and Bands in Colors 2, 1999*

*Colors Divided By Wavy Lines, 1999*

*Circles Arcs and Bands, 1999*

*Wall Drawing #606, 2000*

*Bands of Equal Width in Color, 2000*

*Bands of Equal Width in Color, 2000*

*BK X, 2000*

*Untitled (Doctors of the World), 2001*

*Horizontal Brushstrokes (More or Less), 2002*

*A Square with Broken Bands of Color, 2003*

*Wall Drawing #1096, 2003*

*Wall Drawing 1119, whirls, 2004*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 1951~1982)


부산출생, 5형제중 셋째로 태어나 11세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간
1.5
세대에 속하는 한국계 미국작가로서 이산(離散 Diaspora) 언어의
문제를 중심으로 탈장르 작업을 시도, 포스트모던 미술에 확실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녀의 부모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피해 만주에서 성장하였고
2 대전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이승만 정권의 몰락이후 가족이 정치적
불안과 소요에 휘말리게 되자 미국이민을 선택한다. 그들은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면서 구한말부터 시작된 유랑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렇게 차학경은 한국의 근대사에 얽힌 독특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69
년부터 10년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분교(UC버클리)에서 비교
문학과 미술을 전공하고 문학사, 미술학사, 동대학원에서 미술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6년에는 현대 영화 이론 공부를 위해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기
하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때 알게된 고다르 등의 실험영화와 프랑스
영화 이론에서 크게 영향을 받아 이후 영상 작업에 적용하였다.
그녀의 비디오와 영상 작업에서 있는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미묘한
명암의 변화, 느린 장면 이행시간의 점진적 추이, 현실도 꿈도 아닌 모호한
시간과 공간의 연출에서 영향을 찾아 있다.

그녀는 재학시절,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반전운동과 인권운동, 전위적
문화운동의 중심지였다. 그녀는 이런 사회, 문화운동이 제시하는 비전을
간파하는 한편, 모더니즘을 탈피할 새로운 양식적 실험을 추구하였다.
결과 오브제, 아티스트 , 종이작업, 퍼포먼스, 비디오와 영상 등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은 장르의 경계를 '위반'하게 된다. 사진, 다양한 타이포
그래피와 언어적 텍스트, 여백 등을 이용한 몽타주 방법과 분절된 이미지와
불확실한 내용, 변하기 쉽고 고정되지 않은 다층적 정체성은 포스트모더니즘
특성을 일찌감치 예견하였다. 문학, 개념미술, 퍼포먼스, 신체예술, 비디오
예술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였으나, 졸업 예술의 중심지에서 활동하려는
야망을 품고 1980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결혼 직후 근처의
주차장에서 괴한에게 피살되어 32살의 일기로 삶을 마감한다.
그를 기리기 위한 가족의 부단한 노력 끝에 1991 모교인 버크리대학교
부설 '버클리 미술관/태평양 필름아카이브' '차학경 아카이브' 설립 되었다.
현재 그녀의 작품 일체와 자료들은 이곳에 안전하게 보관 관리되고 있다.

타남Tanam출판사에서 작가 편집자, 엘리자베스 세튼 컬리지 비디오 아트
강사로 재직하였으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디자인부에서 활동하였다.
언어능력이 탁월했던 그녀는 1980 바르트, 보드리야르 등의 영화관계 글을
엮은 저서 <기관 Apparatus> 펴내고, 죽기 개월 전에는 <받아쓰기
Dictee>
출판하였는데, 과거와 현재, 역사와 허구, 이미지와 언어가 교묘하게
교차하는 책은 만주출신 교사였던 어머니와 유관순, 다르크 등의 생애를
시와 산문, 사진 등을 결합하여 엮어낸 것으로 페미니즘 예술의 지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작품제작을 위해 1978 고국을 방문하였으며, 죽기 해인 1981
에도 미술사에 나타난 손의 이미지를 모은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기 위해 재차
입국하였다. 미국내 유색인종의 문화적 정체성과 차별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복합문화주의Mulitculturalism 부상과 더불어 그녀의 예술적 성과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졌다.
차학경은 몸소 겪은 이주의 경험에서 미술과 문학작품의 주제를 끌어내었다.
경험은 단순히 장소를 떠나 다른 장소에 도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곳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바람, 다시말해 '현재 이곳'에서 '과거의 그곳'
기억하려는 갈망과 더불어 그것의 지속적인 좌절과 애초에 그것의 불가능성이
동시에 제시된다. 이주의 경험은 작가가 "나의 주제는 언어에 관한 "
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언어의 문제, 모국어의 상실과 새로운 언어의 습득과
직결된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기능적 측면에
머물지 않고 생성가 변화 구조적 탐구로 확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Videoeme"1976, "망명자 Exilee"1980 같은 작품의 제목은
영어와 프랑스어의 짜집기 또는 교묘한 말장난에 의한 조어이다.
대표적인 퍼포먼스인 <눈먼소리 Aveugle Voix>1975 프랑스어 단어의
위치를 역설적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1992~93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백남준에 이어 한국계 작가로서는 두번째로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전시를 갖기도 차학경은 특히 비극적 생애로 인해 많은 사람들
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4 95~1026 쌈지스페이스에서
국내전시를 가졌다. 차학경의 작품이 21세기의 문턱에서 재조명되는 이유는
후기 식민시대 이후 초국가주의와 인간(여성) 복잡한 위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간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유랑민이 더욱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상 순수한 하나의 기원이나 뿌리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녀는 일찍이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불확정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중심에서 사는아시아 여성이란 이중식민상태의 정체성을 표현하였다.
그가 모국을 기억할 그것은 언제나 한국과 미국, 세계의 역사가 겹친 순간일
밖에 없으며 따라서 순수한 기원에 대한 향수나 귀환과 재화합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이런 때문에 그의 문학작품과 미술작품은 탈식민주의와 여성주의
담론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는 대표적 모델로 인식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Theresa Hak Kyung Cha*

미국에서 사는 주변부 아시아 여성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2003
9~10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린 <관객의 : 차학경>
미국에서 활동하다 32세때 사망한 차학경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이다. 전시제목이 '관객의 ' 것은 차학경의 작품세계가 포함하고
있는 수많은 의미망을 관객들이 찾아내기를 바라는 기획자의 바람 때문이다.
버클리대학에서 차학경은 도예, 비교문학, 미술 등을 수학하고 미술에서
석사학위를 받는다. 무렵부터 차학경은 언어의 의미에 천착한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을 시작하여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다. 그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면서 1980 뉴욕으로 이주한 사진작가 리처드 반스와 결혼했으나
6
개월만에 변사체로 발견된다. 남편이 일하던 건물의 경비원에게 폭행 당하고
길거리에 처참하게 버려진 것이다.
미국내에서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차학경은 우리나라에 거의 소개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휘트니
뮤지엄에서 한국인으로는 백남준 이후 두번째로 그녀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렸으며, 버클리대학은 대학내 '차학경 기념 자료실' 마련하였다.

*2003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린 차학경전 포스터*

*차학경의 비디오 작품 '눈먼 음성' 장면, 퍼포먼스, 1975*

언어유희를 통해 모국어 상실을 말한다. 프랑스어 단어의 위치를 역설적으로
바꿔치기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놀이는 작품 내에 사용된 텍스트에서도
쉽게 접할 있다. 8분짜리 비디오 <입에서 입으로>1975에서는 한글모음소
그것을 발음하는 입술의 이미지가 전파장애로 발생하는 반점과 흐르는
소리에 의해 거의 지워지고 들리지 않게 됨으로써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모국어
상실의 고통이 표현되어 있다.

*차학경의 비디오 작품 '눈먼 음성' 스틸컷, 1975*

*빛과 재질의 절묘한 조화가 들어난 사진 작품*

*차학경의 대표적인 문학작품 딕테의 미국판 표지*

*차학경의 '엑사일레(망명자)' 비디오 스틸, 1980*

차학경은 1979 17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귀환에 대한 기대와
기쁨도 잠시, 자신이 모국을 떠날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외국인임을 깨닫는다.
이민자로서 귀환에 대한 갈망과 그것의 좌절, 한국과 미국, 어디에도 속할
없는 국가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이산(離散 Diaspora)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한국방문이후 더욱 확고해져서 그의 멀티미디어 대표작 <망명자>
문학작품 <딕테> 주제가 되었다. 지난 30년간 미국 내에서 차례 차학경의
개인전이 열린바 있지만 1992 겨울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제외하곤 대개 한두 작품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엑사일레(Exilee), 비디오스틸,1980 *

그녀의 작업의 핵심은 언어, 다시 말해 혀끝에서 발화되기 이전의 언어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언어는 단어와 단어가 하나의 문장구조 속에서 연결되어
상호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단어들은 서로 치환 되거나 변위될
있으며, 또한 그러한 변화로 인해 쉽게 분절되거나 파편화되고 만다.
그녀는 단어와 의미가 언어 내에서 구축하는 구문법, 그리고 문장 구조의 변화
고립, 문맥과의 유리, 반복, 최소단위로의 환원 등의 과정과 조작을 통한
언어의 변형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의 특성에 개인의 경험을 투영
시킨다. 반복되고 분절된 혹은 낯선 언어들은 새로운 의미이며 자신이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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