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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76 팝아트 - 올덴버그

AH101 2012. 2. 1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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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 76( 아트: 올덴버그)


30.
아트 (Pop Art: 대중 미술)

20
세기 중반에 일어난 구상미술의 경향으로 1950년대 영국에서 전조를
보였으나 19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
하고 매스미디어와 광고 대중문화적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
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경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미술평론가
L.
앨러웨이가 1954년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아트가 비평
용어로 채택되기 이전에 아트적 징후를 상기시키는 작품이 영국에서 나타났다.
1949년부터 F. 베이컨이 작품에 사진을 활용함으로써 아트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나 베이컨은 아트와 실질적인 관련이 없으며 1954~
1955
겨울에 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공동작품 그것과 관련된 토론 가운데
아트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대중 소비문화에 대한 관심 아래 조직된 전시가 1956년에 열린
'
이것이 일이다'이며, 전시에 R. 해밀턴이 출품한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작품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아트 작품이라고 있다.

영국의 아트는 사회비판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으며 기존의 규범이나
관습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다다이즘과의 근친성을 보여준다.
영국 작가로 해밀턴을 비롯 P. 블레이크, D. 호크니, R.B. 키타이, E. 파올로치
등이 있으며, 특히 해밀턴이 바람직한 예술의 성질로 열거하고 있는 것들
예컨대 순간적, 대중적, 대량 생산적, 청년문화적, 성적(性的), 매혹적, 거대
기업적일 등은 현대 대중문화의 속성을 그대로 압축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아트의 성격은 미국적 사회환경 속에서 형성된 미술에서 구체적
으로 반영되고 있다. 미국 아트의 선배 세대인 R. 라우젠버그와 J. 존스는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각종 대중 문화적 이미지를 활용하였는데, 이들의
작업이 다다이즘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고 해서 네오 다다(Neo dada)
불려졌고, 외에 신사실주의, 신통속주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미국 아트의 대표적 작가는 A. 워홀, R. 리히텐슈타인, T. 웨셀만
C.
올덴버그, J. 로젠퀴스트 등과 서부지역의 R. 인디애너, M. 라모스,
E.
에드워드 키엔홀츠 등을 있다. 이들 가장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가가 워홀이다. 그는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대중문화의 스타나
저명인사들을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묘사하거나 임의적인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순수고급예술의 엘리티시즘을 공격하고 예술의 의미를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다.

아트는 텔레비전이나 매스 미디어, 상품 광고, 쇼윈도, 고속도로변의 빌보드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의 다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코카 콜라
만화 속의 주인공 범상하고 흔한 소재들을 미술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 위계적 구조를 불식시키고, 산업사회의
현실을 미술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다이즘에서 발원하는 ()예술의 정신을 미학화시키고
상품미학에 대한 진정한 비판적 대안의 제시보다 소비문화에 굴복한 것으로
있다.

서구사회의 모든 다른것과 마찬가지로, 대중문화는 산업혁명과 그에 뒤따른
일련의 기술혁명의 산물이다. 모든 것이 수동적으로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유행은 여러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성적
매력을 더하기 위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사회적 신분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경직된 사회구조의 꼭대기에서 시작된 유행은 점차 아래로 침투되어 내려
오면서, 그에 따라 점점 원래의 정교함과 멋진 스타일을 잃게 된다.
실로 정교함과 멋진 스타일이란 거의 같은 것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유행을 따를 엄두를 여가도 돈도 없었다. 그런데 기계가 이것을 변화시켰다.
기계와 관련해서 유행은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물건들은 이제 닳아서 없어지는 것보다 훨씬 빨리 유행에 뒤떨어져서
못쓰게 되었다. 유행을 보증하는 것은 이제 정교함이 아니라, 새로움과
충격이다. 리차드 해밀튼은 예술의 바람직한 특성을 '일시적이고 대중적이며
싸구려이고, 대량생산된 , 젊고 재치 있고, 섹시하며, 교묘하고 매력적인
동시에 대기업인 '이라고 정의했는데 모든 특성은 이미 대중적 유행의
특성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상한 미술' 반기를 들고 '저속한' 대중
문화와의 접합을 기치로 내세웠던 아트는 고도의 산업화된 1960년대
서구 대중사회의 환경을 미술 안으로 수용한 미술사조이다.
기계화되고 산업화된 현대사회의 현실은 흔히 말하듯 '이미지의 홍수' 특징
지워진다. 속에 사는 인간의 시각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 등의 매스
미디어, 상품광고, 상품이 진열된 윈도우,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이 쉴새없이
퍼부어 대는 엄청난 양의 이미지의 공세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
아트는 한마디로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다루는 미술이다.

현대사회에서 대중문화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인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대중문화'라는 개념은 자체로
단순히 긍정적이거나 또는 부정적인 개념-그렇다고 전혀 아무런 맛도 없는
그런 - 아니다. 그것은 외모, 지적수준, 재산, 사회적 지위 등과 관계없이
신문, 라디오, 잡지, 텔레비전 그리고 온갖 종류의 전시회를 통해서 누구에게나
쏟아지는 정보 홍수와 그래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취해
보려는 우리의 허영과 갈등의 상황을 웅변적으로 표현한다.
한마디로 Mass Culture로서 대중문화라는 개념은 대중교육의 전파와 대중
매체의 발전으로 엄청나게 확대된 문화시장의 존재와 함께 어떤 종류의 문화
라도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해진 현대의 문화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어빙 호우(I. Howe) 말처럼 대중문화란 우리가 아무리 경멸한다 지라도
숨을 쉬기 위해서는 누구도 벗어날 없는 우리 모두 호흡하면서 사는 문화적
대기권 같은 것이다. 이렇듯 대중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명쾌하게
제시된 경우는 아트에서이다. ' 아트' 표현법에는 유화, 조각, 꼴라쥬
판화 시각 예술의 작업들,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의 재료들 도상, 기법
관례적 표현의 소재로 사용했던 전문적 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된 작업들이
망라된다. 아트는 직접적으로 감지된 현실이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이나 대중
매체 가운데에서 발견되는 현실에 대한 기준의 표현방식들을 음미의 대상
으로 삼는다. 팝아티스트들이 인상주의 혹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적
작업장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난 시대의 사람들에게 의미 있었던 들판
나무, 산들을 뜻하는 것으로서의 자연이 현대 도시민들에게 와서는 거의 완전히
인공적으로 구축된 빌딩의 실내, 도로 표지판, 신호물, 포스터, 신문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등의 세계로 대치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트는 기법적인 면에서도 역시 어떠한 이미지를 대칭 또는 반복적, 연속적
으로 화면에 나열해 놓거나 실크스크린, 판화기법을 쓰며 포스터의 평면 사진
이미지를 즐겨 쓴다. 예를 들면 리히텐스타인은 작업 단계에서 한번에 그린
같이 가장함으로서 손으로 그린 회화를 기계적인 것으로 보게 만든다.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은 인쇄된 동일한 이미지에서 인쇄되거나 스텐실된
사진 등은 작업 속에서 가능한 예술가의 평면기호로써 가장 정확한 규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행위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관심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아트는 뒤샹의 기성품에서 행위의 의미를 제거하고 기성품
자체를 재생시키는데서 출발한다. 아트가 다루는 이미지의 특성을 종합해
보면, 첫째는 사회의 모든 대중이 공유하는 범속한 이미지라는 점과
둘째는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점으로 모아질 있다. 아트에 나타난
이미지는 마를린 먼로, 재클린 케네디 매스컴을 통해서 너무나 알려진
인물로부터 코카콜라, 수프 깡통 등과 같은 소비 상품, 신문에 실린 사진, 만화
등과 같이 모두가 흔해빠진 것들이다. 그것은 대중과 대중문화 예술성의
관계항이며 확대된 미의식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의식의 모멘트를 제시했다.
이렇듯 아트에 있어서 두드러진 특징은 '예술의 대중화'라는 열림 이였다.
산업사회 이후 고도로 발달된 산업문명은 인간의 물적 태도나 생활 양식을
바꾸어 놓았을 아니라 걸음 나아가서 정신적 영역 , 사고 행동
양식까지 변화를 준다. 결과 아트는 기술 혁명의 시대로 특징 지워지는
현대사회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생활양식을 새로운 시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양태의 예술을 가능케 하였으며, 생활주변에 널려있는
것들이 예술 작품화 있다는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예술의
일상화를 실현시켰다고 있다.
가운데 특히 대중잡지,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으로 대변되는 매스커뮤니
케이션 수단의 급속한 성장은 대중사회를 촉진시켰으며, 대중의 의식을 변화
시켜 대중으로 하여금 '수동화', '획일화'하게 하며, 매스미디어의 현실 도피적
내용은 감각을 상실시키며 사회적 무관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트를 만들어 문화란 이렇듯 현사회의 모든 실질적 문제처럼 산업
혁명의 산물이며 뒤를 이은 일련의 기술혁명의 소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트는 산업사회의 기계적 풍물의 표현과 생활주변의 시각적 사실들은 광범위
하게 포함하는 현실 표상의 확대를 통해 들어찬 상징적 풍경이나 인간 활동의
흔적 등을 메카닉한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 바와 같이 팝아트는 대중 속에서 발생하여 대중과 더불어 있고
대중을 그의 미학의 근원으로 삼고 있으며 그것은 매스 커뮤니케이션, 매스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대중문화로부터 그려진 것이지만 그것과 동질의 것은
결코 아니다. 작가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써 대중문화의 집단의식에 참여
하면서 그들은 반항아로서가 아니라 일상적 현실의 확인자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예술가가 일상적 사건으로 돌아왔으며 현실과의
밀접한 통합은 집단의 미학예술의 사회화에로의 발돋움을 시작한 것을 의미
한다.


클레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


스웨덴 스톡홀름 출생으로 외교관인 아버지의 권유로 도미하여 예일대학과
시카고미술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1959 최초의 개인전을 뉴욕에서
갖고, 1950 말부터 1960년대 초에 오브제(objet) 관객과 일상적 환경
속에서 전개하는 일련의 충격적인 작품을 시도하였다.
그의 조각 작품들은 석고로 형체를 본떠서 극채색(極彩色) 에나멜을 칠한
햄버거나 핫도그 등으로, 그는 식품 오브제를 모의 식품점에 전시하기도 하였다.

일상의 오브제를 거대하게 확대하여 관객의 심리에 충격을 준다든지
전기 청소기나 선풍기 등의 경질 기계제품을 부드러운 천이나 비닐로 모조한
해학적 작품을 전시하는 등의 발상은 그의 일관된 방법론이다.
1960
년대 말경부터는 오브제를 거대한 모뉴먼트로서 도시 공간에 설치하는
데생과 구상을 발표하였다.

화가라기보다는 물체를 만드는 작가로서의 클래스 올덴버그는 작품의 크기
재료, 질감에서 놀라움을 일으킨다. 주변에 흔하게 존재하지만 흥미의 대상이
아니던 햄버그, 아이스크림, 담배꽁초 일상적인 사물을 소재로 다루었다.
그러나 그는 사물들이 견고하게 만들어져 관객으로 하여금 형태의 변형이
발생하지 않는 안전한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전통적인 조각기법으로 소재들
작품화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변형이 가능한 듯한 부드러운 형태로
작품을 제작하였던 것이다. 또한 소재들을 실물 크기가 아닌 거대한 크기로
변형시켜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바라볼
일종의 괴리감에 사로 잡히게 된다. 당혹스러움은 굉장히 익은 것이면서
아주 낯선 어떤 대상을 대하고 있는 이질적인 느낌에서 파생된다.
여기에서 사물은 이상 본래의 사물일 수가 없다.
뒤샹(Marcel Duchamp) ""(Fountain)이라는 이름의 변기를 화랑으로
도입하여 작품화하였을 변기는 이상 실용적인 의미가 아닌, 제거된
낯설은 물건이 되었던 것처럼 올덴버그의 작품에서도 그러한 의미탈락의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 또한 올덴버그는 작품이 사물로서가 아니라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영역 안에 존재하는 별개의 것으로 보여지도록 기능하는 대좌를 없앰으로써
거대하게 뻥튀기된 사물이 현실공간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로 읽혀지도록 요구
하고 있다.

*모든 것이 들어있는 두개의 치즈버거, 1962*

*부드러운 타자기(soft typewriter), 1963 *

올덴버그는 사물의 크기를 비정상적으로 확대시켰을 뿐아니라 사물의 소재의
속성을 바꾸어 버리기도 했다. 그는 타자기, 변기, 공중전화 같은 일상적
용품들을 부드럽고 유동적인 소재로 제작하곤했다. 원래 딱딱한 사물이
부드러운 소재로 표현되었을 때엔 사물의 크기가 변형되었을 만큼이나
낯설고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게 된다.
올덴버그의 작품에는 이렇듯 해학과 즐거움이 초현실주의적 마술적 효과와
병행되고 있다.

*빨래집개, 1976*

*부드러운 모피의 익살들, 1963*

*녹색 숙녀화*

*부드러운 캐비넷*

   

*샤틀콕*

*아구방망이, 1977*

*스푼 다리와 체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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