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참고자료/르네상스 - 플랑드르

서양미술사09 북유럽르네상스 네덜란드 브뤼겔

AH101 2012. 2. 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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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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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후반에 있어서 북유럽 최대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그는 농민 생활에서
취재한 소재를 예리한 사실적 수법으로 묘사한 작품을 많이 그려 농부의
브뤼겔이라고도 불리운다. 그의 그림은 17세기의 네덜란드 풍속화와 풍경화에
길을 터놓았다. 아이크 이래 북유럽 자연주의에서 출발한 그는 이탈리아
유학길에서 알프스의 풍경에 감명을 받고 스케치한 풍경화를 남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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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이 현존한다. 53 귀국하여 안트웨르펜에서 제작생활을 하다가 63
결혼 브뤼셀로 이사하여 곳을 활동 본거지로 삼았다.

민중미술의 선구자인 피터 브뤼겔(1525~1569) 민족의 아픈 현실을
복음과 결부시킨 작품으로 표현,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했다.
브뤼겔이 활동하던 당시의 플랑드르는 칼뱅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국가였다.
그러나 가톨릭국가인 스페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모진 탄압을 받았다.
특히 카알 5세때는 무서운 학정으로 인해 고통속에 있었다.이러한 정치적
종교적 탄압 속에서 브뤼겔은 당시의 부패한 지도자들을 풍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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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그림', `헤롯의 영아 학살', `최후의 심판'
`
사형장에서의 무도' 등이 그런 것들이다.한편으로는 `빙판 위의 어린이들'
`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바벨탑' 종교적이고 낙관적인 그림을 통해 민족에게
종교적인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가 16세기 북유럽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손꼽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가 `농민의 화가' 불렸던 것은 농부들의 생활을 대담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풍부한 창의력으로 인간의 결점과 우매함을 재치있게 화폭에 담았다.
이러한 브뤼겔의 그림에 대해 지나치게 풍자적이라고 비평하는 사람도 있고
깊은 공감과 애정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엽,인상주의 회화를 연구한 비평가들은 브뤼겔의 풍경화가
가진 신선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인간에 대한 그의 비관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인간의 소행에 의해 순수성이 손상되지 않은 매우 긍정적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힘으로 보았다" 재평가했다.

플랑드르 브라반트 지방의 브레다에서 태어난 그는 북해 연안 저지대 국가의
회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각각 `벨벳의 브뤼겔' `지옥의 브뤼겔' 알려진 그의 아들 얀과
피테르를 거쳐 18세기까지 이어진 브뤼겔 화파를 이루는 시조가 됐다.
그러나 브뤼겔만큼 숨막힐 정도의 놀라움을 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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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때인 1551년,브뤼겔은 당시의 북유럽 화가들처럼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그 과정에서 그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환상적인 착상과 파티니르의
경건하고 정열적인 풍경화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그러나 그는 단순한 모방에서
그치지 않고 독특한 미술세계를 창출해 냈다

브뤼겔은 자기 고장의 현실적인 고통을 복음서와 결부시킴으로써 구원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했다.그 결과 플랑드르는 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 오늘날의
네덜란드를 세우는 놀라운 기적을 이뤄냈다.

*거지들(The Beggars),1568*

16세기 북유럽이 종교개혁으로 인해 극도로 혼란한 사회로 치닫고 있을
플랑드르 지역은 이러한 혼란을 비껴가면서 더욱 풍속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브뤼겔 또한 이런 사회가 보여주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빗댄 작품들을 많이
그렸는데, 작품 <거지들> 또한 그러한 전형 중의 하나이다.
그림 오른 편에 부랑자들을 외면하며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목발을 집고 한데 모여 있는 부랑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들의 행색과 흐리게 처리된 표정이며 남루한 의복들을 보면 묘한
슬픔이 배어 있다는 것을 느낄 있다. 정확한 원근법이 후면에서 앞으로
접근하게끔 배치되어 시선이 가운데로 고정되게끔 구도를 설정하고 있는 작품은
당대 플랑드르 화파들이 보여주지 못한 알레고리들이 숨어 있다.
아주 작은 크기이지만 작품은 작가 브뤼겔이 인간 사회를 향한 조소와 고뇌를
그리면서, 한편으로 그것들을 감싸안는 한없이 따뜻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이 단순히 나병 구제소에 수용되어 있던 문둥이들이 마을 축제를 구경가기
위해 출발하려는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심오한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의미가 숨어 있다고 수도 있다. 어쨌든 그림에서 가장
중요하게 눈여겨 보아야 부분은 인간 육신의 고통과 부랑자들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에 대해, 브뤼겔은 강력한 메시지로 혹은 은유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장님의 우화(The Parable of the Blind Leading the Blind),1568*

작품은 브뤼겔이 만년에 그린 작품으로, 종교적·정치적으로 광적인 믿음이
팽배해 있던 사회를 향한 분노와 조소가 담겨 있는 그림이다.
그림은 신약성서에 담긴 이야기를 소재로 전개되는데마태복음 15 1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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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바리새인들에 대한 말씀을 하면서 예를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게 되면 구렁에 빠진다" 구절이 그것이다.
브뤼겔의 역동적이면서도 강렬한 표현의 깊이가 그림의 주제를 깊이 인식
시키는 힘을 부여하고 있다. 당대 인문주의자들이 책들에 인간들의 어리석음에
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브뤼겔에게는 회화 이미지로 재생산하는
역할이 주어진 것이라고 있다.
그림을 보면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인간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장님이 장님을 어설프게 인도하면서, 뒤로 넘어지고 어디로 가야할지 좌충우돌
하는 혼란만이 화면에 가득할 뿐이다. 기이한 표정들의 장님은 막대기를 서로에게
붙잡게 하여 떨어지지 않게 하고 있지만, 벌써 앞에 동냥그릇을 사람이 넘어져
뒷사람도 넘어질 형국이다. 멀리 배경으로 비치는 교회 건물은 이들에게 아무런
구원이나 온정의 손길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징물로 나타나 있다. 당시 교회가 불러
일으킨 혼란은 브뤼겔의 눈에 위선적인 신에 대한 경멸로 비쳐졌을 것이란 느낌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삭막한 들판 위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장님들의
행렬을 통해, 16세기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브뤼겔만의 알레고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1558*

*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1559*

*Netherlandish Proverbs,1559*

*Children's Games,1560*

*Dulle Griet (Mad Meg),1562*

*The Triumph of Death,1562*

*The Fall of the Rebel Angels,1562*

*The Tower of Babel,1563*

무시무시하고 복잡한 작품이다.이 작품은 오만한 인간들을 난쟁이로 만들고
고된 노동을 개미들의 무의미한 몸놀림으로 묘사한다.이것이 바로 바벨탑이며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있는 오만의 모습이다.인간은 자신의 오만 때문에 몰락하는
불쌍한 존재다.바벨탑에 대한 그의 묘사는 단순히 성경구절을 그림으로 바꾼
있지 않다.브뤼겔은 언제나 표면만이 아닌 심층까지 탐구했다.
그만큼 그는 시각적인 의미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The Adoration of the Kings.1564*

* The Procession to Calvary ,1564*

*The Harvesters,1565*

*Winter Landscape with a Bird Trap,1565*

*The Sermon of St John the Baptist,1566*

*The Hunters in the Snow ,1565*

<사냥꾼의 귀가> 1594, 안트워프시가 네덜란드의 총독 에른스트
대공에게 기증한 6장의 달력화 가운데 1점이다.
브뤼겔은 중세의 세밀화처럼 다달의 전통적 행사를 상징적으로 다루지 않고
자연이 성장하고 결실하고 쇠퇴하여 재생하듯 생물도 그것을 본뜬다는 주제를
그리고 있다.

*The Numbering at Bethlehem,1566*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겨울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림 중앙에서 오늘쪽을 보면 시골여인을 태운 나귀를 끌고 가는 요셉의
모습이 보인다.닭들이 위에서 먹이를 찾고 있고 멀리 어린아이들이 빙판
위에서 얼음을 지치고 있다. 그림 왼쪽을 보면 호적하러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호적하러 사람들을 위해 돼지를 잡는 이,어린아이들까지 섞인 군중에 둘러
싸여 호적을 접수하는 이,돈을 내는 여인,그리고 책을 보며 호명하는
매우 분주한 모습이다.아무도 저들이 성가족임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스도는 이와같이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그림 중앙에 고을을
수비하던 스페인 군인들이 있다. 작가는 이것을 로마 경비대의 상징으로 그렸을
것이다.이처럼 브뤼겔은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베들레헴의 역사적인 장면
대신 자기 고장의 풍경을 그려 넣었다.

*Peasant Wedding,1568*

둥글고 멍청해 보이는 하객들의 얼굴과 종이왕관을 술에 취해 흡족해하는
뚱뚱하고 바보 같은 신부,음식에 현혹된 인간들의 법석을 묘사하고 있다.
불쌍한 신부는 잠깐동안 행복을 맛보는 가난한 여인이다.하객들이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음식도 기껏해야 밀가루죽과 과자 정도.그것도 조잡한 나무접시에
담아 먹고 있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초라한 축하장면이다.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풍악을 울려야 하는 연주자들은 몹시 배고픈 표정으로 죽그릇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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