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참고자료/르네상스 - 이탈리아 (매너리즘까지)

서양미술사04전성기르네상스 다빈치, 미켈란젤로

AH101 2012. 2. 1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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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성기 르네상스(Cirquecento, 1500년대)

이성적 규칙을 통한 객관적인 정확성과 조화와 균형이라는 미의 이념이
구현된 황금기다.   다른 어떤 세기보다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으며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레오나르도 빈치, 미켈란젤로다.

레오나르도 빈치 (Leonardo da Vinch;1452 - 1519)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다.  
그는 피렌체 근교의 빈치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생애는 대개 5시기로 나눌
있다.
1 시기는 466년에서 82년까지로, 1 피렌체 시기이다.
시기에 그는 베로키오 밑에서 도제수업을 받았으며, 엄격한 사실주의
기법을 터득하였는데, 스승과의 공동작인 <그리스도의 세례>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지네브라 벤치》, 《마돈나 베아노》에서 그의
치밀한 사실기법은 명암법에 스푸마토를 병용함으로서 완성의 경지에 다다랐다.
시기의 그의 작풍은 엄격한 사실에서 깊은 정신세계를 발견 있다.
2 시기는 1482년에서 99년까지로, 1 밀라노 시기이다.
시기는 동안 축적된 그의 다양한 재능이 충분히 발휘된 시기이다.
《최후의 만찬》은 객관적 사실과 정신내용을 훌륭하게 융합함으로서 다음 세기
고전양식을 이미 완성하였다. 또한 과학 연구와 저술에 힘쓴 시기이기도 했다.
3 시기는 1500년에서 06년까지로, 2 피렌체 시기이다.
시기에 그는 《모나리자》를 제작하였고, 특히 과학연구에 몰두한 시기이다.
4 시기는 506년에서 13년까지로, 2 밀라노 시기이다.
시기에 그는 《동굴의 성모》를 완성하였고, 《성 안나》 등의 제작에 착수
하였다. 《성 안나》 그의 예술의 귀결인 동시에 전성기 르네상스 고전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기의 그는 오히려 여러 가지 과학연구, 특히
수류에 관한 연구나 운하공학 또는 기계학과 해부학 등에 주력하고 있었다.
5 시기는 1513년에서 19년까지로, 로마·앙부아즈 시기이다.
그는 시기에 수학연구에 몰두하였고, 앙부아즈의 궁정화가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방대한 양의 수기를 정리하고 여러 가지 사색에 잠겼으며, 운하
설계나 궁정설계를 지휘하면서 충실한 생활을 하였다.
그의 방대한 수기는 평생에 걸친 여러 과학의 연구 예술론과 인생론이
비롯된 것으로, 현재는 서구각지에 분산 소장되어있다. 과학론은 그의 실증적
경험주의와 냉철한 관찰적 사고법의 결정체로 선구적 의의가 크다.  

*The Dreyfus Madonna

(The Madonna with a Pomegranate),1469*

*The Annunciation,1472-1475*

*벤치의 초상, 147476*

*Madonna with the Carnation, 1475*

*베노아의 마돈나, 1478*

* 족제비와 여인, 148390*

*비례 연구, 1487*

*Madonna Litta, 1490*

*최후의 만찬, 1498*

*Madonna of the Yarnwinder, 1501*

*Virgin and Child with St. Anne,1510*

레오나르도 빈치의 유화는 15점의 많지 않은 작품이 현존하는데 비해, 소묘는
상당수가 남아 있다. 1510년경 밀라노에서 그려진 그림도 많은 밑그림과 데생을
거친 작품이다. 현재는 작품의 소묘 점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어머니 안나의 무릎에 마리아를 그리는 소재는 중세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
성모는 안나의 무릎 위에 걸터앉아 팔을 뻗쳐 아기 예수를 끌어안고 있다.
아기 예수는 어린양을 붙잡은 성모를 향해 미소짓고 있다.
안나는 모자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안나의 시선이 성모의 머리
부분을 통과하여 아기 예수의 눈과 정확하게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구도는 마사치오의
영향이라고 있다.
한편, 작품은 레오나르도 빈치의 공기 원근법 연구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공기 원근법으로 인해 풍경은 안개가 흐르는 부드럽고 신비롭게 채색
되어 있다. 빈치는 윤곽선으로 형태를 나타냈던 이전 화가들과는 달리 풍부한 명암법
(
키아로스큐로)으로 사실적인 입체감을 나타냈다. 윤곽선을 흐릿하게 하고, 어두운
색에서 밝은 색으로 미묘하게 변해 가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은 형태를 부드럽게
드러내면서 주위와 융화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명암법은 사람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통일체로 비춰지게 한다.
작품과 내셔널 갤러리의 소묘를 비교하면, 어린 세례 요한이 양으로 바뀌었으며
소묘에서는 서로 마주 보았던 성모와 안나의 시선 또한 수정되었다.
안나가 성모를 아래로 굽어봄으로써, 그림은 수평 구도에서 수직 구조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안나의 시선의 변화는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의 모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섬세한 요소들에 힘입어 작품은 종교적 메시지보다는 가족의 화목한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Mona Lisa (La Gioconda), 1503-1506*

"모나(Mona)" 이탈리아어로 "부인" 칭하는 말로써, 작품의 제목은 <리자 부인>
정도가 듯하다. 피렌체의 은행가 자놀리 지오콘도(Zanoli del Giocondo)
부인, 리자 지오콘도(Lisa Giocondo) 작품의 모델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빈치 자신이 정확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모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작품은 모델의 이름을 따서 < 지오콘다
(La Gioconda)>,
혹은 불어로 < 죠콘드(La Joconde)> 소개되기도 한다.
모나리자는 3/4 측면 자세로 약간 몸을 비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대 로마 이래 초상화의 기본적인 자세는 측면이었다. 15세기 중엽 플랑드르
화가들이 3/4 측면 자세를 시도하긴 하였지만, 다음 세대의 초상화 형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빈치의 <모나 리자>이다.
명확하지 않은 윤곽선, 은은하고 부드러운 색채를 겹겹이 덧발라 형태는 대기 속에
부드럽게 녹아 있다. 빈치가 창안한 "스푸마토(Sfumato)" 기법은 형태와 형태가
겹쳐지고 융화되는 부드러운 화면을 만들었다. 모나리자의 생기 있는 눈가와 입매는
흐릿한 그림자로 처리되어 조금씩 계속 변하는 미소는 작품의 독특한 개성을
만들어냈다. 빈치는 작품에서 아이크가 시도하였던 공기 원근법을
완전하게 만들었다. 멀리 보이는 구불구불한 , 다리, 계곡, 암벽들은 점차 푸르스름한
빛으로 채색되어 모델이 있는 곳으로부터 상당한 거리감을 나타낸다.
풍경은 왼쪽 지평선이 약간 낮게 깔려 있고, 모나리자의 얼굴도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모나 리자> 보는 이의 시점이 바뀜에 따라 그림의 일부분이 크게
보이거나 다른 쪽이 작게 보이는 신비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빈치는 1503 밀라노에서 그리기 시작한 작품을 자신이 프랑스 궁정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 작품은 그의 사후에 프랑수아 1세의 컬렉션에 소장
되었으며, 1804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The Virgin of the Rocks, 1483-86*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 - 1564)

역사상 인간의 육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미켈란젤로는화가인 동시에
시인, 건축가이며 당시 세도가였던 메디치가의 소장품들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들을 연구했다. 그는 이로부터 아름다운 인체를 묘사하는 고대의
스승의 비법을 알았으며 인체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연구, 인체 해부학을 탐구
하였다.  화려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시작하여 매너리즘, 바로크 양식의
미술까지 열었던 그의 가장 뛰어난 역량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그의
조각상에서 있다.  1508년에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위촉받아 12년만에 완성하였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그가 율리우스
2
세의 묘비 건립의 일부분이었던 군상 하나인 빈사의 노예와 다윗상, 모세상
에서 있다.  그는 평소에 회화에서 보다 조각에 관심이 많았다 한다.  
격렬하고 뒤틀린 듯한 포즈, 조용하기 이를 없는 듯한 자세 등은 아무리
자세가 복잡하더라도 하나의 통일감 전체적인 윤곽의 뚜렷함 이나 단순하고
안정된 듯한 느낌이 있다.

*피에타, 149899*

미켈란젤로의 초기 작품이며, 동시에 르네상스 전성기의 대표작이다.
그리스도의 시신(屍身) 무릎 위에 앉은 어머니 마리아의 군상(群像) 자연
스럽고도 이상적인, 특유한 아름다움을 띠며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후기에 가서도 같은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그가 보여준 것은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상(大理石像)이었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피에타상 형식의 직접적인 계보는 중세 북구(독일) 형식의 개신(改新)
이라고도 있다.  실물 크기 이상의 마리아가 보통 크기의 그리스도를 크게
포개진 옷의 무릎 위에 비스듬히 사선으로 안고 슬픔과 고통을 내면화(內面化)
시키고 있는 청정하면서도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당시의 미켈란젤로가 보여준
독특한 이상적 조화미의세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겠다.

*피에타, 1550*

*다비드, 150104*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다윗은 골리앗의 목을 승리의 청년상(靑年像)
으로서 조각가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아래 골리앗의 목을 누르고 ()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소년상
(
少年像) 그런 일반적인 다윗상의 형식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가로서의 자신을 충분히 발휘한 것도 역시 다윗상에서였다.  
그러나 그가 1501 8 피렌체 대성당의 의뢰를 받고 제작하게 커다란
대리석상은 그와 같은 승리의 상과는 취향을 달리하고 있다.  
망태를 메고 옆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서서 돌을 쥐고 던지려는 순간의 나체
(
裸體) 청년상이 균형감을 지키면서 드러나 있다.  
자신 같은 때에 청동(靑銅) 다른 다윗상을 만들었다고 전하나 실물은
없어졌다.  1495 메디치가에서 일단 나온 그는 실물보다 헤르쿨레스 상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Madonna and Child, 1501-05*

*Doni Tondo,1503*

미켈란젤로가 친구인 피렌체의 명문가이며, 양모직물업자인 도니(Doni)
결혼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흔히 '도니의 원형화(Tondo Doni)'라고도 부른다.  그림의 주제는
성가족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어린 그리스도를 무릎 위에 안고 있고 요셉이
옆에서 그를 찬양하는, 다른 일반적인 성가족의 구도와는 다른 모습을
성가족이다.   작품은 우피치미술관에 있는 시뇨렐리가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시뇨렐리의 그림도 같은 원형이며
배경에 이교적(異敎的) 나체의 청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켈란젤로가
여기에서 발상을 얻었으리라 짐작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점이다.  지면에 앉아 있는
마리아를 중심으로 요셉을 배치하고, 다시 그리스도를 한층 높은 위치에
둠으로써 보호받는 그리스도에서 군림하는 그리스도로 비약시킨 것이
[성가족]이라고 있다.  확실하게 미켈란젤로의 것이라고 판명되는
유일한 그림으로 현존하는 그의 회화 작품 가운데 가장 초기의 작품이다.  
액자도 미켈란젤로가 직접 디자인하였다.  성모 마리아가 남성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미켈란젤로가 여성 모델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The Conversion of Saul,1542-45*

*Martyrdom of St Peter,1546-50*

*시스틴 예배당,1475-83, 1508-12, 1535-41*

교황 줄리오 2세는 1506 미켈란젤로에게 교황청 안의 시스틴 예배실
천장화를 주문하였다.  교황의 처음 주문은 창문들 사이에 12사도를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장식 모티브를 그려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훨씬 거대한 계획을 세워 교황을 설득하고 지금의 천장화를 남겼다.  
그는 빛의 창조에서 노아의 홍수에까지 이르는 <천지창조> 주제를 택하였다.  
그는 기존의 건축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 천장에 이와 연결된 건축구조를
그림으로 만들었다.   그리자이유의 단색 기법으로 대리석 조각이 새겨진
기둥을 이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긴 9개의 면적에 천지창조 이야기를
그리고 창문 삼각형 사이의 공간엔 예언자와 무녀들을 그렸다.  
장대한 프로그램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빛의 창조, 아담과 이브의
창조와 그들의 원죄, 노아의 타락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의
과정을 보여 준다.  그리고 양쪽의 예언자와 무녀들은 구원자가 오실 것임을
알려준 존재들이다.

*Interior of the Sistine Chapel, 1475-83, 1508-12, 1535-41*

*Exterior of the Sistine Chapel,1475-83*

*천지창조(아담의 창조,1508~12,바티칸궁 시스틴 예배당 천장 부분)*

시스틴 성당 천장화는 모두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주제들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이다.  
자연의 실제 세계가 아닌, 미켈란젤로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세계가 재현된
벽화들 중에서 <아담의 창조> 가장 뛰어난 상상력이 발휘 되어있다.  
하늘로부터 강렬하게 돌진하는 하나님은 아기 천사들에 둘러싸인 이브를
옆에 끼고, 아담 향해 검지손가락을 뻗고 있다. 대지에 밀착된 아담은 하나님을
향해 몸을 내밀고 있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아 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이브를
보며 묘한 슬픈 표정을 짓는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설정은 아담의 표정과
육체와 영혼을 부여하는 신의 강렬한 눈빛으로 가늠할 있게 된다.  
몸이 반쯤 세워진 아담이 하나님에게 생명의 힘을 전해 받으며 짓는 표정에는
앞으로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어 고통스런 현실 공간으로 떨어지게 됨이
어렴풋이 암시되어 있다.  
하나님이 취하고 있는 역동성과 신비함은 아담과의 절묘한 대비로, 인간이
다다를 없는 절대적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
아담의 창조> 성당 입구에서 출발하여 구약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간
지점에 그려져 있다.  이는 인간과 신이 함께 표현되는 양식을 과감하게
창조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하나님의 창조적 힘과
인간이 만들어지는 감동적인 순간을 뛰어나게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Creation of Eve, 1509-10*

*The Fall and Expulsion from Garden of Eden, 1509-10*

*최후의 심판,1534-41,시스틴 예배당*

작품은 시스틴 예배당 제단 뒤에 채색된 프레스코 벽화이다.
성당 천장에 새겨진 구약의 창세기 이야기가 20 년을 흐르는 동안 유럽은
·구교로 분열되고 로마가 약탈당하면서 교황의 권위는 하락하고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후의 심판> 인간과 예술에 대한 신의 심판을 기다리는
미켈란젤로의 붓끝에서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육신의 죄와 근심으로 가득 인간들은 지상에서 고통스런 몸부림을 치며
천사들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을 심판하는 예수는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과 땅에 창조된 모든 것들 사이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다.  
예수와 대지 사이에 위치한 하늘에는 요한계시록의 선지자들이 심판의 나팔을
불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인간이 취할 있는 모든 포즈를 형상화시키고 있다.
과거가 기록된 책을 읽게 하는 천사들 속에 절망에 인간들의 모습이 보인다
무덤에서 일어난 수많은 죽은 자들, 옷을 걸치거나, 벗은 사람들, 아직 잠에
취한 사람, 벼랑에 매달리거나 위로 추락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을 감시하는 천사들 위에서 성자는 구덩이 속에 죄인을 던져
버리고 천국에 몰래 들어온 자들을 다시 지옥으로 밀어내며, 사탄은 악한
자들을 집어내어 끌고 간다. 다른 한편으로는 순교자들임을 나타내는 이들
살이 벗겨진 바르톨로메오, 십자가를 안드레가 보이고, 예수의 머리
위에는 그가 박혔던 십자가, 기둥, 그리고 가시 면류관을 천사들이
보인다.   모두가 성당 내부가 전율하듯 생동감 있게 재현되고 있다.  
흰색과 푸른색의 공간 위로 상승하는 인간의 구원으로의 욕망은 선악을
주관하는 예수의 최후 심판에 따라 환희와 절망이 곳에서 교차하고 있다.  
육체의 이상미를 추구하던 신플라톤주의와는 거리가 , 인간의 가장 더럽고
추한 모든 것들이 숨김없이 꿈틀대고 있다.  
작품은 교만한 인간들의 신앙으로의 경건하고 겸손한 복귀를 외치는
미켈란젤로 최후의 메시지이다.

*빈사의 노예,151316*

작품은 1512 <시스틴 천장화> 완성된 ,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묘비
건립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반항하는 노예> 짝을 이루는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조각가로서의 자존심은 대단한 것이어서, 당시 교황과 왕들이
그에게 작품 의뢰를 요구했던 것을 번번이 물리쳤다는 것이 일화로 남아 있다.  
작품도 원래는 후원자를 위해 만들다가 그가 죽은 율리우스를 위해
제작 되었다고 전해진다.   작품의 "노예" 죽음에 이를, 그런 상태에
있다.  차가운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주는데이는 미켈란젤로가
작품에 부여한 생명성에 기인한다. 덩어리 속에 인물이 감추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작업을 , 삶의 투쟁과 긴장에서 해방되는 노예의
마지막 순간을 실제 노예를 앞에 두고 묘사한다는 믿음으로 작업한 것이
작품을 살아있게 만든 것이다.  조상의 윤곽선에는 대리석 덩어리라는
본래의 형태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조상의 포즈가 복잡한 구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본래의 단순하고 안정된 통일성을 획득하고 있다.  
피로와 육체의 고단함으로 가득 찼던 지상에서의 고단함을 이제 놓을 있게
노예의 나른한 표정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두려움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휴식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쯤 벗은 옷을 이제 올리려고
하고 있다.

*메디치가의 줄리앙,152634*

*율리우스 2세의 무덤,1545, 로마, 피에트로 교회*

*줄리아노 메디치의 무덤,1526-33*

*로렌조 메디치의 무덤,15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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