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참고자료/르네상스 - 이탈리아 (매너리즘까지)

서양미술사06매너리즘 파르미지아노, 틴토레토

AH101 2012. 2. 1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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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후기 르네상스 (Mannerism)

16
세기말 대가들의 소묘실력은 정점에 달해 있었고 이상의 발전에 대한
의문으로 반고전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한다.
완벽한 기법의 숙달로 16세기말 사람들은 미술의 발전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정신적 혼란속에 당시의 젊은 미술가들은
르네상스의 이상인 "조화와 균형을 거부하고 반고전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안렌즈로 바라보듯이 목을 길게하거나 하여 신체의 일부를 과장하여
신기하고 부자연스러운 효과를 기도했는데, 16세기 초의 이러한 경향의 미술을
매너리즘이라고 한다. 후기 르네상스는 매너리즘으로 불리며 예술적 기교에
치우친 타성적 예술이다. 전성기 르네상스 이후의 경향들을 일러 흔히 평가
절하되어 경향이기도 하다. 인위적이고 기교적인 성격이 강하고 형식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대의 거장들의 기법을 모방했다고 간주되어 창조성에서 의심을 받았다.
전반적인 그림들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신비감, 몽상적인 분위기, 기괴한 배경
과장된 인체비례에서 시대정신의 면의 표출로 보기도 한다.
특히 파르미지아노(1503-1540), 틴토레토(1518-1594), 코렛지오(1489-1534)
그레코등이 대표적인 매너리즘 작가로 꼽히고 있다.

이미 티치아노(베네치아 화파) 이후 부터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하던 것이
틴토레토에 이르러 매너리즘의 획을 긋는다.
틴토레토는 충격적이고 극적인 그림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한편 매너리즘의 1세대 화가로 꼽히는 파르미지아니노의 유미주의도 이와
상통한다고 본다. 하지만 매너리즘의 기법을 가장 깊이있게 밀고나간 대가는
그리스 출신의 그레코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혹평을 받던중 스페인으로 건너와 인정을 받게 되는데
그레코의 작품들은 이미 바로크적인 역동성을 배태하고 있지만 지극히
정신적으로 흘러서 신비감과 모호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회화 세계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양식적 특징으로는 인체의 장신화, 차갑고 선명한 색조, 표면처리의
매끈함, 원근법의 과장, 비논리적인 공간배치 대가 그림의 일부 차용 등을
있다. 반면에 긍정적인 측면을 수도 있다. 이전 르네상스 양식의
이성적 접근은 미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며, 새롭고
색다른 감성적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 매너리즘은 긍정적이다.
이러한 점은 이후 바로크 미술의 계기가 된다.

Parmigianino(1503~1540)

파르미지아노는 일반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다.
본명이 지롤라모 프란체스코 마리아 마촐라(Girolamo Francesco
Maria Mazzola)
이다. 1503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에서 태어나 37세에
요절한 화가로 대표적인 매너리스트 화가다.
코레조에게 사사하여 그의 후계자가 되었다. 1523 로마로 가서 7년간
체재하며 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았다.
1530
볼로냐에서 샤를 칸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1531 파르마로 돌아와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의 성모화는 목이 길어서 ' 목의 성모'라고
일컬어지는데, 이것은 마니에리즘(manirisme:기교주의) 특유의 포름으로
코레조풍의 섬세한 명암법을 살리고 빛의 효과를 구사하여 우아하고 세련된
화풍을 이룩하였다.

*Self-portrait in a Convex Mirror.1524*

*Rest on the Flight to Egypt,1524*

*Cupid,1523-24*

*The Vision of St Jerome,1527*

*Portrait of a Man,1528-30*

*Madonna and Child with Saints,1530*

*Madonna and Child with St. Jerome (Madonna with the Long Neck),1534-35*

*Pallas Athene,1539*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 1518~1594)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7 티치아노의 제자가 되었다.
로마로 가서 미켈란젤로에게 감화를 받았으며, 화려한 색채와 미켈란젤로의
데생을 이상으로 웅대한 작풍을 이룩하였다.
종교 신화에서 소재를 취한 다수의 작품 외에 베네치아의 역사화, 기타 초상화
등을 많이 그렸다. 그는 베로네세와 함께 베네치아파 대표자의 사람으로
16
세기 후반의 화단에 영향을 끼쳤다.

*The Birth of St. John the Baptist, 1540*

*Adam and Eve, 1550*

*Judith and Holofernes, 1550>

*Vulcanus Takes Mars and Venus Unawares, 1560*

*Women Playing Music*

*은하수의 기원, 1570*

틴토레토가 그린 <은하수의 기원> 제우스와 헤라 여신, 아기 헤라클레스가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그림이다.
이야기는 제우스가 알크 메네라는 여인과 바람을 피우는데서 비롯된다.
제우스가 알크메네와 동침을 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유명한 헤라클레스이다.
제우스가 외도를 애까지 낳은 사실은 제우스의 부인 헤라 여신의 분노를
산다. 미칠 듯이 화가 헤라 여신은 어떻게 해서든 '저주스러운' 헤라클레스를
죽이려 한다. 그러자 알크메네는 가족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아기를 성밖에
내다 버린다. 가여운 아기는 허기와 따가운 햇살에 지쳐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를 이상 두고만 없었던 제우스는버려진 아기를 안고 몰래
천궁으로 올라온다. 우선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일이 급선무였다.
부성애에 사로잡힌 제우스는 앞뒤 가리지 않고 아내 헤라의 처소로 숨어들었다.
마침 헤라 여신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제우스는 헤라가 잠든 틈을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여신의 젖을 물렸다. 아기는 여신의 젖을 있는 힘껏 빨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결코 젖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슴이 심히 불편해진 헤라 여신. 급기야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다급해진 제우스는 강제로 아기를 떼어 놓았다. 그러자 여신의 가슴에서
젖이 하늘로 분수 같이 솟았다고 한다.
하늘에 점점이 박힌 젖은 무수한 별들의 군집, 은하수가 되었다.
은하수가 '젖의 (Milky Way)' 불리게 사연이 여기에 있다.
한편 땅에 떨어진 젖은 백합꽃이 되었다 한다.
그림에서는 백합꽃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원작의 부분이 파손되어
보수 과정에서 잘려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제우스의 부성애가 아름다운
은하수의 탄생을 야기했다는 사실이 코믹하면서도 훈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악명 높은 바람둥이라도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은 여느 아버지
못지 않았다. 헤라 여신은 헤라클레스가 죽을 때까지 그를 갖가지 시련에
빠뜨렸다. 그러나 헤라 여신도 알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어떤 시련도
이길 영웅이라는 것을...
그는 다름 아닌 헤라 여신의 젖을 먹은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리스도의 세례(Baptism of Christ),1570*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발이 물속에
발이 완전히 잠겨있고 두손을 가슴에 모은 자세가 수태고지에 등장하는
천사를 보는 하다.

*수태고지(Annunciation),1583~1587*

마리아가 있는 건물 안으로 천사가 들어오며 성령인 비둘기가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붉은 색으로 빛의 효과가 뛰어나다.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1570~75*

*Portrait of a Gentleman in a Fur,1550*

*Saint George and the Dragon,1550*

*Man in Armour, 1550*

*Vincenzo Morosini,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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