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51 야수파 죠르주 루오

   

   

The Art of Fauvism

Georges Rouault


★ 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

일꾼의 제자(자화상)

루오의 54세 때 작품이다. 자화상인데 명제를 <일꾼의 제자>라고 붙인 것을 보면
자기 작품에 대한 겸허한 심정을 말해 주고 있다.
예술가 이전에 한 자연인으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 싶다.
14세가 되면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전문으로 하는 스승을 찾아가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는데 이 때의 심정을 영원히 잊지 않은 것 같다.
이 작품은 이미 50 고개를 넘은 연령에도 불구하고 14세의 순진한 소년상 같은
느낌이다. 표면적인 묘사를 넘어 작가의 내면적인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그린다는 기술에 앞서 작가의 심적 충동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Self Portrait III, 1926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1871~1958)의 삶은 인류사에서 가장
척박한 시대인 폭력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1871년 5월 27일 파리 코뮌(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에 의해서 수립된 혁명적
자치정부)의 혼란 중 파리 교외지역 벨빌 지구의 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스테인드글라스 직공생활로 10대를 보냈다. 루오 작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검은색
테두리는 이 때의 영향으로 여겨지고 있다. 1890년(20세), 국립미술학교(에꼴 데
보자르)에 입학하면서 정식 미술 학습을 받은 루오는 이 곳에서 훗날 그의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준 상징주의 화가인 스승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만났다. 또한 앙리 마티스, A. 마르케 등 야수파 화가들과도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흔히 야수파(Fauvisme)의 일원으로 불리지만 사실 그는 당시 미술사조의 영향
과는 무관하게 작품활동을 지속했으며 서로 자유로이 자기의 재능을 계발해 나갔다.
자유로운 기질을 지닌 모로는 루오의 성향을 간파했고 자연 관찰과 진정한 개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립미술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루오가 아카데미파 화가들의
반대로 로마상 수상이 무산되자, 스승 모로는 제자 루오에게 학교를 떠나 반 아카데미
파 예술가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유했다. 루오는 점차 자신만의 개성을 발견하면서
콩쿠르에서 요구하던 주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1898년 정신적 지주였던 스승 귀스타브 모로가 세상을 떠나자 루오는 정신적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루오는 자연 속에서 휴식하며 안정을
취했다. 파리에 돌아온 후 가톨릭 지식인인 레옹 블로와(Leon Bloy)
책에 푹 빠졌는데 특히 레옹 블로와의 정신적 독립성과 직설적 스타일에 매료되어,
모순되고 천박한 현실을 고발한 레옹 블로와의 사회관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 자신도 새로운 예술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의 눈에는 현실이 추악했고
이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표현됐다. 가면을 벗고 화려한 치장을 벗은 진실한 인간을
탐구하려는 시도는 이 때부터 진지하게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초 루오는
데생과 색채의 격렬함, 역동적인 선, 날카로우면서 강렬한 붓 터치가 특징인 자신
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서커스단
의 광대나 판사, 부랑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숨겨진 면모를 예리하게 파헤쳤을
뿐 아니라, 창녀와 판사를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형상으로 그려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했다. 당시 사람들은 등장인물의 형상을 왜곡시켜서 강렬하게 표현한 루오
작품의 난폭함에 충격을 받았다. 이 때부터 루오는 재료를 중시해, 1910년경에는
풍부한 채색이 가능한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유화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
루오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테크닉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했다.

1917년, 파리의 유명한 미술상인 앙브로와즈 볼라르(Ambroise Vollard)
가 루오에게 그의 작품들 전체(770점)를 사겠다는 제안을 한다.
루오는 자신의 작업 리듬에 맞게 작업을 마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승낙
한다. 이후 10년 동안 루오는 볼라르가 요청한 판화작업에 열중했다. 볼라르는
<위비 영감의 재림>, <회상록>, <유성 서커스단>, <수난>, <미제레레>,
<악의 꽃> 등 수많은 저서의 삽화 제작을 주문한다. 이제 제작된 판화는 루오의
작품에서는 물론 그의 회화 작업 전개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1917년에서 1926년까지 10년 동안 루오는 판화작업에 열중하여, 회화 작품은
많이 그리지 못했다. 이때 제작된 100여 점은 서커스 단원들, 종교적 주제, 풍경
으로 이 시기는 역동적 선과 통일성과 단순성이 특징이다.
표현적이면서 장식적인 검은색 외곽선들은 형태의 구조를 이루어 주며 비중 있는
밀도와 움직임을 표출하며 운동감과 깊이를 준다. 판화 기법으로 끊임없이 작업
하고 단계를 밟아가던 그는 작품을 완성의 경지까지 천천히 이끌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아틀리에에서 선과 형태와 색채에 대한 실험에 몰두하여 많은
중요한 작품을 완성시켰다. 1930년대에는 평온하면서도 활기찬 색조로 가득 찬
기품 있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꽃, 풍경, 누드 등 자연의 아름
다움을 찬미하는 주제를 즐겨 그렸다. 종교적인 주제는 그리스도의 얼굴, 수난도,
성서의 풍경화가 점점 많아진다. 1945년에서 47년경에는 더 밝고 빛나는 색조로
발전한다. 재료는 두꺼워지고, 붓질은 화면위에 불규칙하게 쌓여지면서 표현 기법
에 따라 색 반죽이 형태를 잡아간다. 1940년에서 48년 사이에, 물감이 훨씬 더
두껍고 풍부해져서 작품이 실제와 같은 기복을 지니게 된다. 루오는 판화를 통해
데생과 형태를 단순화했는데, 1940년경에는 형태들이 기호나 상징적인 기하학적
구조가 되어버린다. 루오는 구상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않지만 자주 추상의 세계로
접근하곤 했다.

화가 루오의 인생에서 마지막 십년(1948~1958)은 폭발하는 듯한 색채와 재료에
대한 심취로 특징지어 진다. 이 최후의 시기는 그의 작품이 가장 빛을 발하고 완성
의 경지에 이른 시기다. 그림에 덜 희석된 물감이 몇 센티의 두께로 곳곳에 쌓여
있다. 폭 넓은 검은 외곽선이 기복 효과를 강화 시켜 준다.
오랜 동안 고집스럽게 색을 반죽하고, 주물러서 그 특성이 변화될 정도이다.
'사라(Sarah)'의 얼굴은 이 시기의 전형적인 예이다. 색채의 뉘앙스와 빛의 효과를
늘려가며 물감을 중첩시키는 방식은 그림에 조각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색채와 밀도있는 화면을 통해 그의 작품이 경지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회화의 재료에 대한 고집스런 탐구 작업은 루오의 특징이다. 그는 연금술사처럼
비밀에 싸인 채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들을 변형시키고 완숙의 경지에 이르게 하면
서 실험과 연구를 계속해 나간다. 회화 기법에 대한 탐구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열된 감수성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은 루오의 작품에 생명과 호흡을 불어넣는다.
그에게 예술은 데생과 색채와 질감을 통한 소통의 수단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종이나 화폭에 내려놓는다. 그에게 있어서 회화는 무엇보다도
뜨거운 자기고백이다. 루오의 예술은 단순한 조형적 실현을 뛰어넘는 한 인간의
사회 참여이기도 하다.

1939년 7월 볼라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볼라르의 후손들과 루오는
계약에 포함되어 있던 미완성 작품의 소유권을 두고 소송을 벌인다.
루오는 승소했고 작품을 받았지만 전작품을 소각시켰다. 작품을 완성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미완성된 작품은 자신의 양심과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신념
에서다. 루오의 삶과 작품은 타협하지 않는 예술정신의 정수로 요약된다.
흔히 루오에게는 '20세기 마지막 종교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말년에 이르러 심오한 종교적 성찰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정의를 갈망한
한 예술가는 종교적인 삶을 추구했지만 종교 자체를 주제로 하지 않았다.
루오가 그림의 영감을 얻은 곳은 현실세계가 아닌 숭고한 영적세계에서였기 때문
이다. 현실과 숭고한 영적 세계를 넘나들었던 루오는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진정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위비 영감의 재림:Reincarnauions du Perer Ubu>, 1928*

위비 영감의 재림은 화상 볼라르가 극작가 알프레드 자리의 희곡 '위비왕'에 자극을
받아서 쓴 여러가지 글들을 함께 펴낸 것이다. 1917년 볼라르는 루오에게 이 책
의 삽화를 부탁했고 그 조건으로 판화집 <미제레레>의 출품을 승낙했다.
이 글들은 선생이나 부자들의 용렬함이 냉소적으로 기괴하게 묘사되었다.
루오는 이 주제를 두 가지 테마로 표현하였는데 하나는 혹사 당하며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선량한 흑인가족이며 다른 한쪽은 부와 권력을 움켜진 악독한 폭군 위비
영감의 모습이다. 앙브로와즈 볼라르는 1932년에 이 책을 출판하였다.

*<회상록:Souvenirs Intimes>, 1926*

루오가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문학가나 화가에 대해서 쓴 회상과 함께
그들의 초상을 실은 판화집이다. 서문은 앙드레 수아레스(Andre Suares)가
썼으며, 1926년에 출판되었다. 구스타브 모로, 레옹 블로와, 보들레르, 세잔,
르누아르, 도미에 등의 초상이 실려있다.

*<서커스:Cirque>, 1930*

서커스는 출판 예정이었으나 출판되지 않았던 판화 시리즈이다.
서커스라는 테마는 루오가 젊은 시절부터 관심을 두고 그려왔던 주제였다.
달리는 말의 등에서 재주를 넘는 여자 곡예사, 줄을 타는 무용수, 광대 등, 불안정
한 자세에서 균형과 안정을 찾으려는 서커스단 사람들은 루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본문은 1926년 시인이며 평론가인 앙드레 수아레스가 썼으며 발간은
원래 1931년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현재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유성 서커스단:Cirque de l'Etoile Filante>, 1935*

17점의 다색 판화로 이루어진 <유성 서커스단>은 본문은 루오가 쓰고 목판위에
루오가 그린 그림을 조르주 오베르가 새겼다. 그리스도를 그린 옆에 무희와 어릿
광대, 창녀의 초상을 함께 그렸다. 이 모두의 공통적인 요소는 뚜렷한 윤곽선과
활기찬 자세와 생명력이다. 이는 강렬한 야수파적인 색채가 다소 밝은 부드러운
색채로 바뀌었으며 때로는 순수한 톤으로 바뀌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화려한 존재들과 그것과는 거리가 있는 매우 슬픈
삶 사이의 극단적인 대비를 서커스의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루오는
말했다. 그리스도와 같은 고귀한 인물들의 이미지는 그릴 때처럼 삶에 내재한
비참함을 포착하기 위해서도 그의 현대적인 감수성을 이용했다.
'유성'이란 뜻은 출판사 이름이다.

*<수난:Passion>, 1935*

루오의 그림과 수아레스의 글을 합작하여 출판하려는 시도는 <서커스>, <미제
레레>가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수난>은 수아레스의 본문과 루오의 색채
동판화 17점, 목판화 82점으로 제작되어 1939년 출판되었다. 볼라르는 이
책의 출간 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에 그의 마지막 출판물이 되었다.

*<악의 꽃:Les Fleurs de mal>, 1938*

악의 꽃은 시인 보들레르의 시집으로 루오에게는 이 시집을 테마로 한 판화집이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볼라르의 요청으로 제작된 동판화집이며, 또 하나는
색채 동판화 시리즈인데 1936년부터 38년에 걸쳐 제작된 30여점 중 완성된
12점이다.(이번 전시된 작품은 색채 동판화)

거울 앞의 娼婦

루오는 1902년 이후 무서운 정열로 일련의 창부들을 그리게 된다.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이다. 그는 많은 나체의 창녀들을 그리고
있는데 그들의 고달픈 삶의 탓일까? 모두가 노기(怒氣)가 서린 표정들이다.
이 작품 역시 냉정한 입장에서의 사회 관찰이나 비판성은 전연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노기에 찬 격렬한 고발심과 격정적인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다.
이 작품이 단숨에 그린 수채화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드가나 로트렉도 나부를
많이 그렸지만 화면에서 풍기는 냄새가 이질적으로, 루오 특유의 세계가 잘 나타
나 있다.

겨울(풍경)

제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수년 전부터 루오는 많은 풍경화를 수채로 그렸는데,
그 대부분은 20×30cm의 소품들이다. 경사진 언덕과 도로, 수직(垂直)으로 된
나무들, 지극히 의도적인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그린 이와 같은 구성적
의식은 후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의의는 매우 큰 것이다.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인생의 고난과 사랑이 그림 속에서
숨쉬는 것 같고, 그리스도가 금방 그 옆에 와 있는 듯한 절박감을 갖게 한다.
깊은 인간애가 루오의 그림 속에 서식해 있고, 이 인간애는 철학적 차원을 넘어선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승화되고 있다.

풍경

루오는 1911년에 지금까지 살았던 정든 곳을 떠나 교외로 이사한다.
이 시기를 고비로 여러 장의 전원풍경(田園風景)을 남겨 놓았다. 공원 또는 한적한
농촌의 풍경을 그렸는데 필치는 무척 경쾌하다. 대개의 경우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자연 속의 점경인물(點景人物)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작품이며 세잔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기할 것은 루오 특유의 암색조(暗色調)에서 밝은 화면으로 변한 점이다.

우울한 광대(道化師), 1902-03

루오가 소년 시절 스테인드글라스 공장에 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작품에서는
그때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검고 굵은 선, 많든 적든 간에 단순화된 색조
처리, 투명한 색감 등이 그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얼굴 부분의 광채는 비현실적일
정도이다. 루오는 도화사(道化師)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 조명을
받은 듯이 보이는 안면 처리, 크게 뜨고 있는 눈, 모두가 너무도 강렬하다.
그리고 상의에 붙어 있는 백색의 리본과 이에 어울리는 색채적 효과는 이 화면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교외의 그리스도

그의 작품이 창작되는 순간, 그것은 항상 기념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작품이란 작가의 온갖 노력 끝에 생산되는 것으로, 그가 항상 그와
같은 긴장의 연속 속에서 온갖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까닭이다. 이 풍경에서
느끼는 것은 세속적인 소요나 허식이 없다는 것이다. 쓸쓸한 표정을 지닌 집이
몇 채 있을 뿐, 아득히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길 저편에는 달이 외롭게 떠 있으며,
길은 그 반사를 받아 환히 비치고 있다. 이것은 도화사들이 그들의 생활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갔을 때의 고요일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그 도화사들
옆에는 항상 그리스도가 함께 있다.

道化師: 빨간 코

관객들 앞에 나와서 웃음을 팔던 도화사들이 이제부터 자취를 감추게 된다.
주로 수채를 써서 그린 제 1기에 해당되는 작품들은 인간 사회에서 최고로 노동을
강요당하던 비애와 슬픔에 얽힌 군상들이다. 그러다가 제 2기에 들어서면서
내면적인 변화가 점차 심화되어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수채화가
아닌 유채화이다. 뿐만이 아니라 관중 앞에 나온 도화사도 아니다.
그의 억세고도 굵은 상과 그리고 강렬한 색채 및 표정 등은 전자보다 더욱 작가의
내면적인 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양식은 만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피에로

루오가 그린 피에로 작품 가운데에서도 온화한 표정의 그림이다.
어둡게 처리된 배경으로 안면이 부각되어 있다. 중후감이 넘쳐 흐르는 표정은
필경 루오 자신의 모습이리라. 언뜻 보아 무표정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쓸쓸한
분위기를 보여 주는데 인간의 신비감마저 감도는 듯 하다. 이와 비등한 구성은
만년까지 계속되는데 전체적인 색감, 공간의 처리 등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성탄절의 풍경

달은 안 보이지만 야경이 틀림없다. 민가의 지붕에는 잔설(殘雪)이 희게 비치고
있으며, 보고 있노라면 왜 그런지 쓸쓸한 적막감이 찾아온다. 인물은 안 보인다.
이 화면에서 인물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도화사가
연상되며, 일종의 공통된 세계를 보여 주는 것 같다. 한편 지평선 저쪽으로는
청색이 보이며, 밤 하늘에 무한히 뻗어가는 인상을 더해주고 있다.

상처를 입은 道化師

루오의 예술은 강렬하면서도 구수한 민화적(民話的)인 흐름을 보여 주고 있다.
상징적이면서도 설화적(說話的)인 내용이다. 그 설화 속에는 달, 구름, 도화사의
의상과 표정들이 보면 볼수록 끝이 없이 인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싶다.
앞의 두 사람은 기운없이 눈을 아래로 뜨고 있으며, 키가 작은 뒷사람은 앞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고 있다. 상단 부분에 안면을 내보이는 인물은 누굴까?
분명 도화사는 아니다. 고달픈 인생항로(人生航路)를 말하는 듯 설화성이 있으면
서도 전체가 풍기는 상징적인 효과는 또다른 별개의 예술성을 말하는 듯 하다.

법정에 나온 그리스도

맑은 표정을 가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의연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남녀 각각 상기된 표정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윤곽이 다르고 인상이 다르다. 그들은 천사의 얼굴도 아니요,
사도의 얼굴도 아니다. 피고와 증인 같은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인상이
험상궂게 보인다. 얼굴은 모두가 열 여섯이나 되는데, 세 사람을 빼면 열 세 사람
이 남는다. 필경 그리스도를 배반한 유태인을 그린 것일까? 혹은 빌라도 법정에
선 그리스도를 조소하는 대사제(大司祭)나 군중일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도의 얼굴

루오의 그리스도는 전능하고 영광에 찬 그리스도 상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가련한 도화사, 재판 받는 피고나 가난한 사람들과 도피하는 사람의
괴로움을 함께 나누려는 고난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 상이다. 루오는 안면을 아래
로 숙인 그리스도 상을 무수히 그리고 있다. 배경이 되는 넓은 공간 속에 유독
붉은 구름이 광채를 보이고 있다. 화면 구성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이 구름은
화면에서의 상징적 의미 또한 큰 것이다.

푸른 새

전쟁 중 연극계에서 명성을 얻은 여배우 마리아 라니가 모델이 되었다.
고개를 약간 갸우뚱한 자세로 눈을 아래로 깔고 있는 이 미녀는 루오 자신이
화면 윗부분에 표기해 둔 바와 같이 '푸른 새'를 상징적으로 그리면서 화면을
정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새에게 노래를 시키려면 눈을 멀게 하라'는 습관이
있다. 그와 같은 속세적인 것에서 취재, 비록 새를 상징한 얼굴을 그렸지만
루오는 이를 자신의 예술과 비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루오는 훨씬 더 차원 높은
그의 인간상을 주제에 용해시켜 더 멀리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

소가족

대작을 별로 안 그린 루오에게는 예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작이다.
높이만 2m가 넘는다. 원래 이것은 규도리 부인에게서 의뢰받은 다피스리를
위한 그림이다. 매우 감동적인 표현이다. 상처 입은 가족 중의 한 사람을 두고
서로가 위로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생활의 고통을 나누려는 표정은 무한한
인간의 사랑을 말해 주는 듯, 아니 보다 더 종교적인 차원에까지 끌어 올리고
있다. 필경 루오는 이와 같은 슬픈 사연의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궁극적
으로는 그것에서 인간의 참다운 행복과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루오의 또 다른 대작은 1931~32년에 그려진 <무희>(216cm X 116.5cm)다.

저녁놀

루오는 1937년부터 39년까지 많은 풍경화를 그렸다. 1920년경에 그린 <교외
의 그리스도>, <성탄절 풍경> 등에 비하면 화면(색조)이 맑아졌다.
이미 그의 풍경화는 시각의 자연에서 심각(心覺)의 자연으로 변해 온 것이다.
구도나 여기 등장되는 건물, 인물들은 물론이지만 광선 처리나 화면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종교인으로서의 심각적 감정에서 솟아난 새로운 차원의 세계이다.
그리스도와 2, 3명의 인물들이 노상에 서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필치, 굵은 선,
충만된 구성 등 실로 놀라운 경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녹색조(綠色調)의 하늘 처리 등은 격조 높은 그의 품위를 말해 주는 듯하다.

저녁놀 2, 1952

聖顔(성안), 1929-1939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는 도중 한 여성이 수건으로 땀을 닦아 준다.
이상하게도 그 수건에 그리스도의 상이 찍혀 사람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르면
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때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聖顔(성안)이라고
한다. 루오는 여러 장의 성안을 그렸는데,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은 일본 도쿄의
요시 재단에 소장되어 있는 지극히 종교적인 걸작이다. 많은 화가들이 예수의 모습
을 그렸으나,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예수의 모습은 루오의 이 작품이 처음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뇌와 인내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본질
에 관해서는 중세 이래 많은 신학자들이 논해 왔다. 루오는 화가로서의 두터운
신앙심으로 성안을 그린 것이다.

聖骸布(성해포)

흑색을 주조색으로 굵은 필치, 대담한 색조 등 유니크한 작품이다.
이것은 수난의 성안(聖顔)을 그린 것으로 어느 친절한 사람(唐墨-당묵-을 선사
해 준 분)에게 사례로 건네준 작품이다. 단조롭게 처리된 이 작품은 내용에서
부터 풍기는 광채가 형용할 수 없는 품격을 지니고 있다. 신비로운 경지, 동양적
인 정감, 여기에 루오의 회화성이 있으며 그 마력이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 1954

The Old King, 1937

노왕(老王)의 표정은 몹시 침통하다. 이 작품에서는 왕의 권위나 위신 등은 찾아
볼 수 없다. 왕관 그리고 화려한 의상에서도 그와 같은 허영심은 없다.
마치 <수난의 그리스도> 나 <상처입은 도화사> 상과 일맥 상통하는 인간상이다.
신비롭게 가라앉은 화면 처리는 마치 중세 시대의 '글라스 회화'를 연상시켜 준다.
싸인이 없는 것을 보면 다시 가필하려는 작가의 고원(高遠)한 인간상을 물씬
느끼게 된다. 한편 이 작품은 루오 인간상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작가의 정신 내부를
잘 표현한 걸작이다.

受難(수난)에서(모든 이의 惡의 지식)

유리와 같은 투명한 배경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나상은 대화하는 형태로서
중후감이 넘쳐 흐르고 있다. 화면이 양분되기 쉬운 위태로움을 안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가 다리를 벌려 그 위태로움을 덜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반신
이 상반신에 비교해서 짧게 표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있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두 사람 모두의 바깥쪽 다리가 상반신을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일까? 색채도 대조적인 색을 사용했음에도 품위가 한층 높아 보인다.
중량감이 넘쳐 흐르는 작품이다.

受難(수난)에서(같은 밤 함께 죽어)

그리스도 좌우로 두 사람이 그려졌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도적들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부터는 은은하게 광선이 흐르고 있다.
핏빛으로 물든 골고다 언덕(화면 좌측) 아래로부터는 달이 떠오르고 있다.
은은한 광선은 하반신을 비추고 있다. 화면 구석구석에까지 드라마틱한 처리를
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화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마치 액자의
테두리) 부분의 수법은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하는 데 효력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루오의 심원한 회화성이 있다.

受難(수난)에서(무게도 부피도 없이 그는 나간다)

루오의 작품은 섬세한 묘사가 있다. 그 보다 더 차원 높은 경지를 그리기 위함
이리라. 초기에 그는 모로의 교실에서 배웠으며 모로는 물론 렘브란트의 영향
까지 받았었다. 그래서 그의 24세 때의 작품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녀
들> 등을 보게 되면 무서운 묘사력을 지녔던 루오이다. 루오는 단연 그 묘사에서
벗어나 대담한 필치와 색면(色面) 처리들을 자유롭게 표출하는데 이는 보다 더
차원 높은 경지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受難(수난)에서(두 궁전에 연한 이 인기(人氣)없는 길)

환상적인 수아레스의 문장에 맞추어 제작된 시리즈의 한 장면이다.
희게 입고 오른쪽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그리스도로, 왼쪽 건물 끝에 우뚝 서
있는 망루대 같은 수직으로 된 건물 부분과 조화를 이루면서 어울린다.
그 위 하늘에는 역시 달이 떠 있다. 테두리를 그려 넣은 것도 특수한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도 없는 중앙의 길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평선 너머로
우리를 유린해 가는 듯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기만 하다. 우리의 심층 한 부분에
있는 고독감을 루오는 자신의 예술 세계로 승화시킨 것이다.

受難(수난)에서(풀에 샘물이 속삭이듯)

조부모도 양친도 모두가 독실한 카톨릭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이었다.
루오의 그와 같은 가정 화경과 거기에다 예술적인 충동이 섞여, 그가 그리는
그리스도는 그의 인간 내부의 전부가 성화(聖畵)의 내용과 일치되면서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를 앞에 앉히고 영적대화(靈的對話)가 오가는
것이다. 달이 어김없이 닮은 마리아 상 위(위쪽 상단)에 떠 있으며 좌우의 균형을
이루어 주고 있다. 루오의 작품 앞에서는 그저 머리가 숙여진다.

受難(수난)에서(여기서 이 세상은 없어지고 새 세계가 탄생했다)

화면에 골고다 언덕은 가운데, 그리고 좌우로 십자가가 그려 있을 뿐 언뜻 보아
적적하고 음산하고 무섭다. 십자가는 하늘을 향해서 치솟아 있을 뿐, 모든 지상
의 역사가 이미 종말을 고하는 듯한 느낌조차 든다.

그리스도 안에 모여, 1945

受難(수난)에서(너희들은 이 세상의 어려움을 아느냐?)

앙드레 수아레스의 종교 시집 '수난'(1939년)의 삽화 12매 가운데 10매를 뽑아
동판화를 새로이 유화로 제작한 것이다. 슬픈 사연에 잠긴 여인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박진감에 넘쳐 흐른다. 멀리 달이 떠 있으며 엄숙한 분위기
표현에 성공한 작품이다. 루오의 작품이 모두 그러하듯이 단조롭게 보이지만,
내용에서 풍겨 나오는 이야기는 보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쟉 보노무

쟉 보노무는 농민을 가리키는 속칭(俗稱)이다. 백의와 푸른 하의, 그리고 붉은 띠를
두른 이 사나이는 뒤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상반신을 약간 숙인 채로 달이
떠 있는 밤에 어디론가 걸어 가고 있다. 모든 인간들의 보이지 않는 운명적이며
숙명적인 상(像)을 그는 이 그림을 통해서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리고 더욱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고독감이다. 멀리 지평선 위로 외딴 집
이 한 채 서 있다. 집의 흰 벽면은 인물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붉은 띠와
지붕이 또한 색채적인 조화를 형성하면서 한층 화면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피난

루오가 처음부터 시도한 시리즈 <피난>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그림이다.
루오는 그의 '독백록'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피난하는 사람들, 그 모습들은 우리 세대의 모든 사람들의 상(像)이다.
사람들은 병마와 권태와 빈곤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리고, 겨우 벗어나려고
하면 다시 재난이 닥쳐오며 급기야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 아무 의욕이나 희망을 갖지 않은 피난자들은 얼굴을 숙이고 힘없이
걸어야 한다. 뒤를 돌이켜볼 여유도 없이, 그리고 많은 예언자들이 약속한 행복
따위는 잊은 채 거닐고 있다." 저녁놀은 어느덧 불길한 핏빛으로 물들었으며
희망의 별은 까마득하다.

그리스도교적 夜景

루오가 그린 수많은 풍경화 중에서 가장 우주적인 작품으로 보여진다.
구도는 아래 부분에서 윗부분으로 장대하게 울려 퍼졌고, 수 개의 원(圓)과 반원
(半圓)의 포름이 화면 중심부에 위치해 루오 특유의 안정감을 나타내고 있다.
내면 세계를 표출 시키는 그의 회화 언어가 그러하듯 이 그림에 등장한 배, 바다,
달, 섬, 집, 수목 등은 달빛을 받은 달밤의 자연 현상을 시각 체험대로 재현시킨
것이 아니고, 그 실체를 보는 루오의 내면적인 세계, 즉 심각적(心覺的) 진실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티베리야스 호(湖)에서의 그리스도와
제자(그림 아래 부분)가 모티브인데, 신비스러운 빛과 검은 그림자 및 무한히
크고 넓은 화면이 어떤 영겁의 세계, 영원한 정신 세계를 표상하고 있다.

우리들의 쟌느

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나치스 군대가 프랑스로 진주(進駐)했었다.
남달리 프랑스를 사랑하던 루오의 심정은 국민들의 추앙받는 성녀(聖女) 쟌
다르크를 의식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이 작품을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조국의 영웅이라기 보다 수난받는 인간상으로 그렸다. 배경은 이 시기에 꾸준히
그린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풍경화와 같다. 주인공은 숨김 없이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조국애의 강렬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작가란 때로는 그 시대의
증인이며 대변자가 된다. 그리고 그 시대를 고발하기도 한다. 그 아름다운
조국애는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우리의 것이리라.

풍경(세 사람이 있는)

루오는 만년에 이르자 화포에 바른 유채 물감을 나이프로 깎아 내고 다시 바르는
기법을 버린다. 따라서 화면은 울룩불룩하고 터치 자국이 더욱 생생하게 나타난다.
중기 작품의 특색인 문지른 듯한 색의 투명감은 없어지고 '용암(熔岩)과 같은
중후한 색채 덩어리(P. 크르테온)'가 조형의 수단으로 화한다.
색채는 선명하고 밝으며 따라서 건강하다. 이와 같은 분명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조형 의지는 그의 기나긴 고난 끝에 얻어낸 예술 경지와 독실한 신앙심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에서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세 인물을 그림 전면에
배치하고 파뿌리 모양의 성당을 그림 원경 중앙에 앉혀 하늘 나라와 인간 사회를
상징적으로 대조,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게 했다. 루오는 이 해에 볼라르 가(家)와
의 소송으로 되찾은 그림 가운데 315점을 불태웠다.

트리오, 1943

피에로의 얼굴에 찍힌 점 하나. 타인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감추고 찍은 바보 같은 점에서 성자의 모습이 아스라히 잡힌다.
이 작품은 3명의 삐에로를 그린 것이지만 종교화적인 엄숙함을 지니고 있다.
루오에게 있어서 삐에로와 곡예사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루오는 그들을 인간사를 벗어난 자유의 상징인 동시에 수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모습을 지녔다고 보았다. 창부의 모습이 개성을 담은 개인이라기보다는
영혼까지 파멸되어 가는 인간사의 대표로 그려졌다면 그와는 반대로 삐에로는
옷을 통해 그 직업을 확실히 추측할 수 있기는 하지만, 루오의 그림 속에서는
대체로 삐에로의 묘기나 역할, 그리고 소도구 등은 가능한 배제되고, 인간적인
갈등이나 슬픔 고민을 안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부각되며, 그것마저도
초월한 성자로서의 모습까지도 느껴지게 한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삐에로는 형형한 눈으로 세상과 삶을 응시하여 그 허무는 직관하고 통찰하는
인물들로 그려지고 있다.

푸른색 배경의 삐에로들, 1943

루오는 소외되고 잊혀진 변두리 인생들 중에서도 삐에로의 곡예사들의 모습에서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끝없는 동정과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푸른색 배경위에 등장하고 있는 두 인물은 삐에로들로 이들은 항상
타인의 웃음을 사기 위해 몸을 우스꽝스럽게 움직여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 속의 두 삐에로는 고요한 푸른색 배경에 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푸른 색은 전통적인 서양 종교화에서 정신성과 초월성을 상징하며, 루오는
전통적인 색의 상징성을 이어받아 푸른색을 정신적 의미로써 사용하고 있다.
푸른 배경 속에 놓여진 고요한 두 명의 삐에로는 낮고 천한 일을 고단하게 수행
하는 가운데서도 정신적 고귀함을 잃지 않는 듯이 보이며, 이것이 바로 루오가
세상을 살면서 얻고자하는, 그림 속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가치이다.

베로니카, 1945

전승에 의하면 성녀 베로니카는 예수께서 갈바리아 산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예수님의 흘러 내리는 피땀을 닦아준 예루살렘의 어느 부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옷으로 성면을 씻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거기에 주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 여인은 베로니카로 알려졌는데, "베로"는 라틴
어로 "베라(참, 진실한)"이고, "이카"는 "참모습"이란 뜻이 된다.
루오의 베로니카는 단순한 선표와 면으로 이루어진 종교적 초상화이지만, 이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여인의 얼굴은 초월성과 지상의 아름다움, 종교적 엄숙함과
여인의 따스함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가 그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고통
속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자의 고독함을 표현하고 있다면, 그의 베로니카는 세상을
향한 넓은 자비와 따사로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무지개 곡마단의 소녀 마술사, 1948-49

곡마단의 소녀 마술사는 옅은 미소를 띄고 관객을 바라본다.
전체적인 화려한 색감은 소녀 마술사가 펼치는 루오의 종교적 인물들에서 보여
지는 전형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전통적인 종교화에서 아치형의 건축
구조물 안에 있는 예수나 마리아, 성인 등의 인물이 등장하는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으로 인해, 이 소녀의 복장이 아니라면 마술사가 아닌 종교적 인물로
생각될 정도이다. 루오가 그려내는 현실을 살면서 현실을 초월하는 인물들은
루오가 표현하고자 하는 종교적인 주제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아가 바로 이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수난), 1953-56

루오는 "보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될 만큼 감동적인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하곤 했다.
따라서 그가 그리는 예수의 얼굴은 극도로 간단한 선묘로 이루어져 있지만,
조용히 감긴 눈과 긴 코, 그리고 의지로 다물어져 있는 입매만으로도 극한의
초월성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구도의 얼굴은 예수 그리스도의 알굴 뿐 아니라,
가난한 삶 속에서 고귀함을 실현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실적인 인물들의 얼굴
에도 적용되어 있다. 루오가 그려내는 인간의 고귀함은 고통 한가운데서 그
고통을 감내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고, 그러한 고귀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사라, 1956

루오의 마지막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반죽처럼 걸쭉한 물감이 두꺼운 층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색채의 뉘앙스와 빛의 효과를 늘려가며 실험하던 말년의
제작기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림 속 얼굴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그림에 조각적
인 느낌을 가져다 준다.

"As proud as if she were still alive of hier noble descent", 1937

Tete d'une jeune fille, 1939

Couverture II pour Verve 4, 1938

Madame Carmencita

Le Christ et Mammon

Clown et Enfant(서커스), 1930

Ballerine(서커스), 1932

Enfant de la Balle(유성 서커스단), 1935

Parade(유성 서커스단), 1934

"Ecce homo"

Fille de Cirque

Christ in the Neighborhood, 1935

Christ among the poor, 1935

Automne(가을), 1938

Christ on the Cross, 1938

Seated nude, 1938

The Conversation, 1938

Dr. Paille and Prof. Poutre, 1938

The flying fish, 1928

Les Visages

루오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인간의 비참한 모습과 그리스도의 자비를
대조적으로 나타내는 화집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A. 수아레스의 성시(聖詩)를 근거로 그린 <미제레레Miserere:
비애>
연작(連作)을 탄생시킨 것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자적인
것으로 그의 예술이 확립되고, 20세기의 유일한 종교화가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인간 군상들이 그리스도의 자비와 은총을 갈구하며
궁극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구원으로 나아가려는 갈망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육체적 결함과 고통이 정신적 가치와 위상에는 손상을 주지 않음은 물론
이고 오히려 그것이 더 인간을 위대하게 하고 견고하게 함을 일깨워 준다.
수아레스는 "예술가란 사랑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만들어 고통 받는 이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런 면에서 둘은 서로 잘 통했으리라.
가장 높은 단계의 영성은 가장 밑바닥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그의 예술철학
이 바로 그의 독창적 예술을 낳았고 그만의 개성과 천재성을 구축하는 토양이
되었다. 그의 종교화는 종교적 틀에서 벗어난 세속적 종교화다.
그래서 사회에서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미제레레'라는 명칭은 4세기 라틴어 번역본 '불가타 성경'의 시편 50편 구절인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주여 불쌍히 여기소서)"에서
기원한다. 루오는 이 판화집의 본문을 따로 만들지 않고 직접 지은 시구나 성서
구절에서 뽑아 제목만 붙였다. 미제레레 연작은 첫 구상에서 출판까지 27년이
걸릴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처음 구상은 <미제레레와 전쟁>이라는 제목에
50점으로 구성된 동판화 작품집으로 루오는 100점이 넘는 밑그림을 바탕으로
1921년부터 동판화 제작을 시작해 1926년 58점을 최종 완성했다.
1927년 58점의 동판화가 인쇄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과 출판업자의 갑작스런
사고사(1939년)에다 미완성 작품에 대한 소유권 소송이 겹치며 출판이 지연
되었던 것이다. 결국 1948년 파리의 한 출판사에서 <미제레레> 판화집이 간행
되며 세기의 명작은 빛을 보게 되었다.
<미제레레> 연작은 루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깊은 애정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2번의 전쟁에 지친 프랑스 국민들
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 깊은 울림
을 일으켰던 것이다. 많은 화가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추상의 세계로 도피할 때도
그는 현실세계 속 인간으로 이어진 끈을 놓지 않았고, 후세에 '정의로운 화가'로
기억될 수 있었다.(이번 전시에는 작품 58점 모두 전시되고 있다.)

Miserere, 1923

하느님,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Les ruines elle-meme onto peri, 1926

폐허조차도 사라져 버렸다.

Are we not all convicts?, 1926

우리 모두 죄인이 아닙니까?

Solitaire, en cette vie d'embuches et de malices, 1922

The condemned man was led away, 1922
유죄선고를 받은 자는 떠나버리고...

En tant d'ordres divers, le beau metier d'ensemencer une terre hostile/
In so many different domains, the noble task of sowing in a hostile land, 1922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가장 좋은 직업은 척박한 땅에 씨 뿌리는 것.

Homo homini lupus, 1926

Squelette, 1927

De profundis/From depths of soul, I cry to you, O Lord,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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