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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 바로크 프랑스 푸생

AH101 2012. 2. 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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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바로크 - 푸생(Nicolas Poussin, 1584~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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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풍요롭고 강력한 국가였다.
결과 예술의 중심지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파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또한 골동 취미적, 귀족적, 영웅적인 내용이 강조되고 밖의 양식은 빛을 보지
못했다. 결과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화가들은 조르즈 투르와 우이 르냉 등이다.
이들 그림의 공통점은 카라바조가 호평받았던 자연주의 강렬한 종교정신을
강조했던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J.르메르시에·F.망사르 등이 바로크 건축을 수입
하였는데, 나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문주의의 전통이
뿌리 깊었으므로 바로크도 고전주의적 색채를 현저하게 띠고 있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바로크를 <루이 14세의 양식>이라고 한정하여 부르는 일도
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적 건축으로 루이 14세의 명령에
의해 건립된 베르사유궁의 대조영(大造營) 있다. 궁전의 설계는 J.H.망사르
조원(造園) 노트르, 장식은 화가 C.르브룅에 의해 이루어졌다.
회화에서는 J.칼로·르냉형제·G. 투르를 있으며, 조각에서는 F.지라르동·
A.
쿠아즈보의 고전풍에 비해 P.퓌제에게서는 격렬한 감정 표출을 있다.
한편 영국 바로크에서는 런던의 세인트 대성당을 재건한 C. , 풍자를 주로
화가 W.호거스가 주목된다.

[
베르사이유 궁전]성당 건축과 함께 궁전 건축이 중심이었는데, 베르사이유 궁전은
대표적인 예이다. 대비를 이용하여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주제가 등장한 회화는
풍경화, 정물화, 세속적 인물화가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바로크 예술은 전체에
종속되는 부분들의 조화를 통한 균형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균형이란
전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던 각각으로도 완벽한 부분들이 이루는 전체적인
균형과는 다른 것이지만 매너리즘의 종종 고의적으로 조화를 깨뜨리는 점이나
로코코의 신경질적인 단편성 보다는 오히려 르네상스에서 말하는 균형과 공통되는
점이 많다.

태양왕 루이 14세에 이르러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고전주의가 거의 완성되어
가장 활발하게 작용하게 된다. 그의 유명한 '짐은 국가이다' 에서도
있듯이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게 그를 찬양하는 작품들이 여기서
등장하게 된다. 또한 샤를르 르블렁은 프랑스에서 예술의 독재자로 군림하게
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는 왕립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어 프랑스의
모든 미술가들에게 고전주의 양식을 강요하게 된다.
바로 푸생이 가지고 있었던 이성적인 예술양식에 대한 강요를 하게 것이다.
여기서 공부하게 작가들은 예술을 분석하는 기본적인 소양교육을 동시에 받게
되는 , 여기서 '카라뱌조가 0점을 받은 것은 아무래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프랑스의 고전주의적 바로크 양식을 확립한 화가는 니콜라 푸생이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에서 생활하지 않고 거의 모든 생을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보냈다. 푸생은 카랏치를 통해 전해진 이유로 그는 카랏치를 바로크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 사비니 여인들을 보게 되면 그는 문학을
소재로 작품에서 감상보다는 지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작품에서 구도나 형태만이 강조되고, 색채는 아에 뒷전에 밀리게 되었다.
영웅적인 인물들은 일반화 되었으며, 동작은 조각처럼 굳어져 있다.
이들의 묘사는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에서 빌려온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푸생은 형태와 색채, 사고와 감정, 진실과 아름다움 이상과 현실이 모두 조화되고
균형잡혀 있는 예술세계이다. 그는 회화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성에 의해
반드시 설명 되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회화관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의 화가 푸셍은 노르망디의 레장드리에서 출생.
처음에 고향에서 Q.바랭에게 배우다가 1612 파리로 나가 F. G.랄르망에게
사사하였다고 하나, 시기까지의 일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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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상부르궁() 장식에 필립 샹파뉴와 함께 고용되었다. 왕궁에
소장된 라파엘로의 작품을 알게 되었고 원래 이탈리아 고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더욱 로마를 동경하게 되었다. 24 로마로 가서 당시의 유행 작풍이었던
카라치파의 작품을 배우고 도메니키노의 아틀리에에서 제작하였다.
그가 지니는 명쾌 단정한 구도와 약간 차가운 듯한 색조는 시기의 수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베네치아파에서도 영향을 받아 라파엘로 고대에 심취하였고
로마와 상상적인 고대풍경 속에서 균형과 비례가 정확한 고전적 인물을 등장시킨
독창적인 작품을 창출하였다. 28 성베드로대성당의 제단화를 그릴 무렵부터
명성이 높아져, 39 마침내 고국 프랑스의 루이13세로부터 수석화가로서
초빙되었다. 그러나 파리의 화가들과 맞지 않아, 42 다시 로마로 돌아와
죽을 때까지 곳에 머물렀다. 신화와 고대사, 성서 등에서 제재를 골라, 그것을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독특한 이상적인 풍경 속에 그렸는데, 장대하고 세련되고
정연한 화면구성과 화면의 정취는 프랑스 회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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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프랑스 최대의 화가이며 프랑스 근대회화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Apollo and Daphne,1625*

*Midas and Bacchus,1625*

*Mars and Venus,1627~29*

*Rinaldo and Armida,1629*

*시인의 영감,1630*

니콜라 푸생은 로마 유학을 떠나 생활하는 내내 거의 홀로 그림만을 그리면서
지냈다고 한다. 그는 관람객의 마음에 강하게 호소할 있는 명확하고
분명한 조형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무척이나 많은 노력을 했으며, 감정이 아닌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고자 했다.
종교화가 주를 이루었던 전대의 화풍에 과감히 벗어날 있는 이성적인 사고 덕택에
그는 프랑스 고전주의의 창시자이자 대가가 있었다.
푸생의 작품 <시인의 영감> 주제는 현재까지도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화가의
의도가 깊숙히 숨어있는 그림이다. 중앙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는 아폴로의 신성한
영감을 부여받고 있는 오른쪽의 젊은이는 버질이고, 아폴로의 왼쪽에 있는 여인은
서사시의 뮤즈인 칼리오페라는 의견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푸생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특징인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조각상들과의
닮은 점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황금빛이 감도는 그림의 전반적인 색채는 16세기 베네치아 학파가 즐겨 사용한
빛과 색채 기법의 영향을 이어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Apollo and the Muses (Parnassus),1630s*

*The Rape of the Sabine Women(사비니 여인들의 납치),1633-34*

*The Adoration of the Golden Calf,1633-36*

*The Triumph of Pan,1636*

*The Nurture of Jupiter,1635-37*

*The Shepherds of Arcadia,1638*

푸생의 회화는 이탈리아의 고전 바로크 양식을 프랑스의 고전주의와 결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고대 로마미술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은 <사비나 여인들의 납치>
<
계단 위의 가족> 등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로 재창조되었으며,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고대 신화에 근거하여 만든 목가적이면서도 알레고리가 숨어있는
신비스러운 그림이다.
명의 젊은 청년들과 아름다운 여인이 묘비를 둘러싸고 있다.
청년은 묘비 비문을 해독하고 있으며, 다른 청년은 묘비를 가리키는 손짓과 더불어
의미 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을 보고 있다. 묘비에는 라틴어로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Et en Arcadia Ego)"라고 적혀 있다. 말은 ", 죽음은 아르카디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라는 것을 뜻한다. 무덤을 둘러싼 인물들의 멜랑콜리한 표정들에는
비문에 적혀 있는 말이 주는 반향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두려움 같은 것들이 담겨
있다. 작품은 하나의 명확한 이야기가 단순한 구도 속에서 전개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푸생이 다른 작품에 즐겨 적용시키는 다양한 기법은 상대적으로 적게 표현
되었지만, 하나의 신비로운 메시지만을 정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엿보인다. 햇빛이 가득 내리는 목가적인 전원의 조용한 풍경 속에 삶과 죽음
너머에 존재하는 이상향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문제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작품은, 푸생의 부단한 예술적 탐구에의 결과이다.

*Venus Presenting Arms to Aeneas,1639*

*The dance to the Music of Time,1640*

*The Ashes of Phocion Collected by his Widow,1648*

*The Judgment of Solomon,1649*

*자화상,1650*

푸생은 점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림은 비슷한 시기에 계획되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은 1649 포앙델을 위하여 그려진 것으로, 현재 베를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루브르에 있는 자화상은 화가의 친구이며 후원자였던
프레아르 샹틀루를 위해 역시 1649년에 시작하여 1650년에 완성했다.
베를린에 소장된 작품이 로맨틱하며 우아한 의상을 걸치고 있는 반면, 그림은
배경에 화실 구석에 쌓아 그의 작품들이 놓여 있으며 고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기하학적인 엄격성을 지닌 작품은 작품의 그림틀이 겹친 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화가는 스케치북을 손에 들고 진지하면서도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Self-Portrait, 1649*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1650*

*Landscape with Orpheus and Eurydice,1650-1*

*여름, 니콜라 푸생,166064*

<여름> 니콜라 푸생이 1660년부터 1664 사이에 리슐리에 대공에게
증정할 목적으로 그렸던 <사계> 연작 작품 하나이다.
<
사계> 연작인 , 여름, 가을, 겨울은 모두 역사적인 주제를 뛰어나게 흡수한
풍경화로 평가받고 있다. 각각의 계절이 담은 테마는 성서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담고 있다.
하나인 <여름>에는 구약성서 룻기에 등장하는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가
재현되어 있다. 여름 수확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룻과 보아스가 만나는 장면은
마치, 그리스도 기원이 시작되는 시기인 그리스도와 신자들이 만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푸생이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기
전날에 대한 묵상과 더불어, 그의 작품 <겨울/대홍수>에서 드러나듯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가" 라는 시간을 초월한 깊은 성찰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련의 <사계> 연작들은 푸생이 드러내고자 하는 역사적 사실과 의미에
대한 회화로의 재현을 표현하고 있다.

*Autumn,1660-64*

*Winter,1660-64*

*Holy Family on the Steps,166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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