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52 야수파 모리스 블라맹크, 앙드레 드랭

   

   

 

Restaurant de la Machine at Bougival, 1905/Maurice de Vlaminck



★ 모리스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1876~1958) ★



프랑스의 대표적인 포비슴화가로 파리 출생이다. 부모는 음악가로 아들의 교육에는 관심
이 없었다. 그는 자유방임적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 12세 경부터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고, 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기계공 등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갔다.
이듬해 고흐의 회고전을 보고 정열적인 작풍에 깊이 감탄하여 강렬한 원색과 분방한
필치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블라맹크는 야수주의 작가중에서 가장 야수적인 정열을 소유한 작가였다.
빨강과 녹색의 대비를 통해 강렬한 느낌을 주는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블라맹크는 자전거 경주 또는 프로 레슬러와의 시합 등 당당한 체구와 성격에 어울리는
활동적인 경력을 소유한 사람이었으며 5권의 소설을 쓴 문학 작가이기도 했다.
정규 교육이라고는 받은적이 없는, 화가를 지망하였으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
한 것은 1900년 A. 드랭과 알게 되어 센 강가의 성관(城館)에 공동 아틀리에를 가지게
되었을 때부터였다. 그는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순수한 색채를 튜브에서 직접 짜서 그림을 완성하고 싶다. 여태까지 나는 나의
파괴적인 본능을 실감하고, 이를 생생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야수주의 작가들이 귀스타브 모로의 화실에서 공부한데 비해, 모든
전통적인 기법과 소재를 거부하면서 내적 표현의 매체로 색채의 자율적 가치를 강조한다.
그는 "예술은 본능이다." 라고 단언하면서 자신의 내적 충동을 과감하게 분출시켰다.
회화에 의해서 무엇보다도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회화라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생명 표현의 한 수단으로 나타났다. 색채의 불협화음과 과장되고 기괴한 분위기의 작품
을 주로 제작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속에 흐르는 개인적인 분방한 성격 때문이었다.
또한 아카데믹한 권위를 무시하고자 한 반항적인 의지에서 유래하는 것이었다.
1904~07년까지는 튜브에서 짜내는 물감을 그대로 캔버스에 칠하는 기법으로 색채를 구사
하였다. 1906년에 그린 [빨간 나무가 있는 풍경]과 [서커스]는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
고 있다. 그의 직관적인 정열이 낳은 강렬한 원색의 힘찬 선은 진정 야수주의적인 태도
라고 할 수 있겠다. 1907년 세잔의 작품과 만난 이후 그의 작품은 강렬한 원색의 빛이
사라지고, 흐린 청색 또는 다갈색을 주조로 한 구성적인 방향으로 전환된다.
1910년 이후 그의 작품에는 힘이 있고 일반적으로 세느강 풍경이나 일-드-프랑스 지방의
경치를 소재로 한다. 대전 후 블라맹크의 사실주의는 점차 강화되고 독일 표현주의와
네덜란드 자연주의적인 화풍에 근접해 갔다. 세상과의 교류도 없이 폭풍이 휘몰고 간
후 황량한 풍경을 탐색으로 표현한 그림을 그리며 여생을 마쳤다.

The Bay from L'Estaque, 1886

The Factory, 1904/04

Woman with a Hat, 1905

Picking up Deadwood, 1906

Landscape with Red Trees(빨간 나무가 있는 풍경), 1906

블라맹크는 야수파 화가들 중에서도 가장 야수적이라 할 수 있다.
당당한 체구와 그에 걸맞는, 넘치는 정열은 그로 하여금 격정적인 터치와 색채를 낳게
하였던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본능이다."라고 단언한 그의 작품은 내장의 영위와도
같아 생리적인 강렬함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도 그의 직관, 정열의 모든 것을 그
강한 색채, 굳건한 생리적인 선에 의하여 나타내고 있다.
나무 사이에 집들이 보인다. 인상파 화가들이 잘 그리던 풍경 구도이나 인상파 사람들
의 화면에서 볼 수 있는 멀리 바라다 보는 듯한 느낌의 집들, 혹은 광활한 개방감 등은
찾아볼 수 없고, 충격적일만큼 강렬한 나무의 표현, 강하고 밝은 색채 처리, 특히 빨간
색의 효과로 박력이 넘쳐 흐른다. 강한 색채에 모든 것을 걸어 자극이 강한 포브의
표현을 전개한 블라맹크 대표작의 하나이다.

The Circus, 1906

Barges on the Seine near Le Pecq, 1906

샤티옹의 다리, 1906

샤티옹 출생의 드랭과 함께 샤티옹파를 형성한 블라맹크는 그곳에서 자전거 경기에 열중
하기도 하고,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 등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세느강을 오르내리는 배, 강가의 풍경이나 근교의 전원 풍경 등을 즐겨 그렸다.
"이런 모든 것들의 색채는 우리를 매료 시켰다... 그 곳이 샤티옹이었다."
이 그림은 그 중의 하나로 수작으로 뽑히는 작품이다. 특기할 것은 여기에서 고흐의
뚜렷한 영향을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1901년 베루네엠 주느 화랑에서 고흐전
을 보고 "그날, 나는 아버지보다 반 고흐를 사랑하였다."라고 할 만큼 강한 인상을 받았
는데, 그의 작품 속에서 고흐의 영향을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은 1905년 고흐
회고전을 보고 난 뒤 부터였다.
이 그림은 주제나 색조에서 특히 터치에서 고흐의 영향이 분명하긴 하지만, 순수화된
색조나, 평면화된 화면 처리는 현실에서 승화된 포브의 비젼으로 나타내고 있다.
포브의 창시자를 자인하는 블라맹크는 포비즘을 형성하는 세 그룹 중 샤티옹파의 핵심
멤버였으며, 샤티옹을 무대로 한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고 이 그림도 그 중의 하나이다.

Tugboat on the Seine, Chatou, 1906

The Blue House, 1906

Andre Derain, 1906

The River Seine at Chatou, 1906

Le Havre: Le Grand Quai, 1906-09

Still Life with Oranges, 1907

The Locks at Bougival, 1908

River, 1910

Landscape with Trees, House and Lake, 1912

The Red Roofs(Landscape), 1912~14

Italian Village

빨간 작약, 1930

블라맹크의 작품은 제작 연대가 확실치 못한 것이 많다. 이 화가의 경우 그 연대의 추정
은 카탈로그를 보더라도 여러 이설이 있어서 결정하기가 힘들다.
1907년을 고비로 격하고 정열적인 포비즘에서 차차 냉정한 세잔적인 균형있는 구성에 중점
을 두게 되는데, 1914년까지는 그런 대로 기하학적인 형태의 단순화를 추구하여 뼈대가
튼튼한 일을 계속하였지만, 원래 이지적인 방법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은 그는 무겁고 울적한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묘사적 세계에 찾아들게 된다.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를 살려 눈 경치를 그리기도 하고, 명쾌한 색채의 콘트라스트를 의식
하면서 꽃의 정물을 그리기도 하지만, 그 선명하고 강렬하였던 블라맹크의 화면에도 1920년
후반에서부터 고독감과 비극적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환희가 없어졌다.
검정 색이 점점 중요한 색조가 되었고 세잔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되었으며, 그의 작품에서
는 가장 야수파적인 과거의 불타는 듯한 선명한 원색이 사라졌다.

The Remorquer, 1905/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블라맹크는 죽기 얼마 전 파리 Atelier Mourlot의 인쇄업자 Charles Sorlier와 함께
자신의 작품들 중 선별하여 석판화집을 발행하였다.

Chatou, with Red Tree, 1906/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Sunset in the Forest of Senoches, 1938/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The Harvest, 1945/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1958

Still Life with jugs, 1945/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Still life with whiskey bottle, 1945/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Allainville under Snow, 1946/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The Logny Road, 1953/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Anenomes, 1955/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China Asters, 1955/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Delphiums, 1955/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The Road, 1957/Color Lithograph after a Painting, 1958



★ 앙드레 드랭(Andre Derain:1880~1954) ★

The Artist in his Studio, 1920-21

프랑스의 화가이며 파리 교외인 샤토(Chatou) 출생이다. 일찍이 회화와 기계에 취미를
느껴 공과대학 입학준비를 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회화를 전공하였다.
처음에는 샤토에 살고 있던 M. 블라맹크와 친교를 맺고 같은 아틀리에에서 제작하였다.
1905년 H. 마티스와 알게 되어 그 해의 살롱 도톤에 출품, 가장 대담한 포비즘의 화가
로서 주목되었으나, 2∼3년 후에는 격정적 색채를 버리고 침정(沈靜)한 색조로 바꿨으
며, 세잔과 흑인 조각의 단순화된 형태와 긴밀한 구성에 마음이 이끌린 것이 큐비즘
(Cubism:立體派)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이지적인 그의 기질이, 포브[野獸]의 분방한 원색의 범람에서 궁극적으로 형태의 엄격
함, 화면질서나 구성을 바라는 원래의 방향으로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에도 이탈리아 근세 초기의 회화나 고딕 예술, 프랑스 옛 대가의 화풍 등에 심취
하면서 독자적인 탐구를 계속하여, 전통을 현대로 계승시킨 신고전주의자로서의 위치를
확립하였다. 은근한 어두운 계통의 색채를 기조로 뚜렷한 명암과 오묘한 세부적인 잔
손질로 화폭에 뛰어난 내면성과 청신한 현대감각을 담았다.
드랭은 실내 장식가로서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었으며 극장의 무대장식을 많이 제작했
는데, 특히 러시아 발레단을 위해 제작한 무대장식이 유명하다.
또한 책의 삽화도 많이 그렸다.

드랭은 마티스와 블라맹크의 중간 역할을 하면서 그들과 포비즘의 탄생에 큰 힘이 되기
도 하였다. 특히 야수파 중에서도 가장 세련된 색채 체계를 표현했으며, 또한 세잔,
마네, 코로의 경향에 경도되어 격정적 색채는 버리고 황갈색을 주조로 한 고전적 색채
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위는 항상 쓸쓸한 편으로 고독한 생활을 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엔(1941년)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가져 친독파로 몰려 불행한 생을 보내
다가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Bal des soldats a Suresnes, 1903

마티스의 초상, 1905

Boats, 1905

Boats at Collioure's Harbor, 1905

Collioure, 1905

Boats at Collioure, 1905

Suburb of Collioure, 1905

The Turning Road, L'Estaque, 1906

The Pool of London, 1906

St. Paul's Cathedral from the Thames, 1906

Blackfriars Bridge, 1906

Donna in Camicia, 1906

The Houses of Parliament, 1906

The Thames, 1906

Charing Cross Bridge, London, 1906

Bathers, 1907

Trees on the Banks of the Seine, 1912

Portrait of Iturrino, 1914

Harlequin and Pierrot, 1924

Portrait of Madame Guillaume, 1928

La Clairiere, ou le dejeuner dur l'herbe, 1938

The Painter and his Family,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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